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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을 김정일의 손에서 건져내는 것을 지체하지 말라.
Korea Republic of 구국기도 0 266 2009-03-14 16:24:05
1.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데 훈련되지 못한 자를 미련한 자라고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지혜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이 겸손하심과 같이 겸손하게 된다. 하나님의 성품과 지혜에 참여하는 자는 겸손과 지혜에서 나오는 균형감각에 따라 입술을 연다. 사실 사람의 입은 사람에 의해 아가페 사랑이 나오는 입으로 길들일 수가 없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 입술을 制御(제어)하여 최고의 가치를 낼 수 없다.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입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의 혀와 입술을 통제하여 사람을 살려내는 지혜를 구사하는데 전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런 선과 지혜와 사랑을 내는 입과 혀를 내려면 오직 하나님이 통제하시는 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처럼 生命(생명)과 救援(구원)과 사랑과 지혜가 나오지 않으면서 나오는 것처럼 말하는 자들, 곧 하나님께 통제되지 않는 입을 가진 자들은 교만한자라 한다.

2. 따라서 통제될 수 없는 입을 가진 자들에게 화를 받게 한다. 통제될 수 없는 그 입술로 禍(화)를 자청하게 된다. 입술의 열매로 재난을 받게 되는 것을 舌禍(설화)라고 한다. 舌禍(설화)란 연설이나 강연 따위의 내용이 법률에 저촉되거나 타인을 노하게 하여 받는 災難(재난) 또는 타인에 대한 중상이나 비방 따위로 받는 災難(재난)이라고 한다. 사람이 받는 舌禍(설화)의 의미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언행에 따름이어야 한다는 제한을 두어야 한다.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나님이 보내신바 된 하나님의 사람들의 입에 두신 말씀으로 인해 고난을 심각하게 당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舌禍(설화)라고 하는 자들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북한주민의 그 처절한 고통, 곧 김정일의 간악한 통치하에서 참담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敢(감)히 입 벌려 인간으로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는 고난을 싫어하여 일부러 외면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설화로 여기려고 한다. 그런 그들이 곧 오늘날 높은 지성이라고 받들린 자들이다. 그런 것은 결국 김정일의 천하로 가게 하여 국가를 망하게 한다.

3. 그것은 일개 개인이 받은 舌禍(설화)보다 더 큰 舌禍(설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꼭 할 말을 해야 할 때 하지 않는 것도 설화를 불러온다. 인간이라면 응당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이들의 행위는 기회주의적이라고 한다. 자기들이 불리할 때는 침묵하고 있다가 자기들이 불리하지 않다고 할 때는 입을 벌려 말을 한다고 한다. 인간된 도리는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아끼지 아니하고 꺼리지 아니하고 어디서든지 누구 앞에서든지 상하질서를 존중하며 온유한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말로 인해 죽음과 같은 고통을 세상으로부터 받게 된다. 그것은 舌禍(설화)가 아니다. 참다운 인간이 응당 겪어야 할 아름다운 苦難(고난)이다. 오늘날 知性人(지성인)들이 조국과 자유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자유를 위해 아름다운 고난 받기를 싫어한다. 오히려 그것까지도 싸잡아서 설화니 뭐니 하며 입단속하며 눈앞에 천박한 이익만을 추구하고 찾아간다.

4. 결국 그들의 선택으로 인해 인간의 가치가 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유국가가 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와 그의 가정은 망하게 된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함에도 그들이 優待(우대)받은 세상인 것 같다. 우리 자녀들이 그들 밑에서 배우고 있고, 각종 매스컴에 그들이 메뚜기가 철을 만난 듯이 행동한다. 스스로 잘난체하면서 국민교사노릇을 당당하게 하는데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것 같다. 악에 대한 침묵은 동조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것이 이 나라의 앞길에 참담한 장애를 가져온다. 이들은 소위 말해서 기득권세력인데, 이들 세력이 있어 김정일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借用(차용)론을 펼 정도로 어떤 相扶相助(상부상조)적인 관계가 형성된 것은 아닌가 한다. 자유대한민국에서 자리 잡은 자들 중에 상당수가 애국심을 포기하고 있다면, 그들은 모두가 대한민국을 뜯어먹고 사는 자들이라는 계산이다. [베드로전서 3:15-16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5. 기독인들이 가야할 일은 하나님의 소리를 대신 전하는 것이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에 操身(조신)해야 한다는 것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이는 아가페 사랑을 전하는 기독교가 아가페 사랑을 행동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하면 격이 안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나오는 괄호의 말씀은 요한1서 3:16-19이다. 한 문단씩 끊어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북한인권 유린은 전 세계 最惡(최악)인데, 그것에 대한 침묵은 기독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하나님을 힘입고 예수님처럼 당당하게 김정일과 그 집단의 악마적인 만행을 고발해야 한다. 침묵하면 결국 김정일의 득세로 이어지게 한다. 그로 인해 남한 기독교는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될 것이다. 기독인이 하나님의 입으로 드려져서 성령의 소리를 대언하여, 그들의 만행을 책망하면 김정일은 곧 쇠잔해가는 꽃이 될 것이다. 함에도 오늘날 상당수 기독인들이 이를 침묵하고 있고, 그런 말을 하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戰戰兢兢(전전긍긍)함이 있는 것 같다.

6.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그저 경제문제만을 최선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주력하느라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度外視(도외시)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자가 아니라고 하신다. 하나님 사랑을 가진 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하나님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아가페 사랑으로 사는 자들만이 진정한 기독인이다. 때문에 祈福(기복)신앙이 교회 속으로 침투하고 있고 이들에 의해 기독교는 土着化(토착화)라는 명분하에서 김정일을 수용하는 짓거리를 암암리에 하는 것이다. 아가페 사랑으로 가는 기독인은 결코 북한주민의 고통을 외면할 수가 없다. 强盜(강도)만난 자의 이웃은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하신다. 예배 의식보다 교회당을 높이는 행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주민의 고통과 그 治下(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는 일이다. 함에도 소수의 하나님 사람들 외에는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교회지도자들이 강자 편에 줄을 서서 달러를 싸들고 가서 온갖 아양을 떨다가 목덜미 잡혀온다고 한다.

7.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진실한 기독인은 사랑 곧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고 있고, 그런 사랑이 그 속에 있다면 어찌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이 가능하겠는가? 사람 가슴에 살아 있는 불이 있다면 어찌 사람이 펄쩍펄쩍 뛰지 아니하겠는가? 그처럼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 가슴에 있다면 예수처럼 살게 하시지 않겠는가? 그에 相應(상응)하는 행동을 하지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게 하시는 것이 곧 아가페 사랑이다. 정상적인 인간이 무엇인가? 오늘 날 기독인들이 시각에 아가페를 가진 인간 보다는 스톨게라는 사랑을 가진 자만이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하는 모양 같다. 그들은 사실 이웃사랑이 없다. 이타심은 없고 오로지 排他的(배타적)이다. 때문에 기독인이 되려면 마땅히 스톨게를 벗고 아가페를 입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독인의 정상적인 길이다. 함에도 오늘날 자신들의 본질이 스톨게이고 가진 것의 부요만을 의지하고 큰소리치며 누리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육적사랑은 갈아입을 옷처럼 갈아입어야 하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있고,

8.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하는 것만 강조한 나머지 아가페로 사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다. 그것이 곧 믿음의 특성을 알지 못하고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본질의 믿음을 공급하는 것에 있고, 그 믿음은 진리에 담아야 하고 그 생명은 아가페 사랑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때문에 믿음을 지켜야 한다.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 곧 形骸化(형해화)된다.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형해화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 많다면 결코 착취집단의 번식과 증식을 막을 길이 없다. [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죽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구원의 약속을 이행 받을 수 있는지 답해야 한다. 인간의 주관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의 기준에 맞는 믿음을 견지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3:1-3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9.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믿음이 죽으면 결코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여 죽은 믿음을 살리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신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믿음이 죽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믿음이 늘 생명력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불우한 이웃들에게 도움을 베풀게 하는 아가페의 의지에 따라야 유지가 가능해진다. 김정일 집단 떼강도 만난 이웃인 북한주민과 북한지하교회의 아픔을 우리는 얼마나 깊이 통감하고 있는가? 그분들의 고뇌와 아픔을 통감하고 계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움직이는 마음 곧 아가페사랑의 지시를 따라 북한주민을 어서 속히 해방하는 일에 힘을 쓰자. 그것이 믿음을 회복하는 길이고 지키고 유지하는 길이다. 또한 성장시키는 사랑의 길이다. 수령절대주의는 결코 인간에게 해로운 강도 집단의 정치구조이다. 그들이 核(핵)을 가지고 있고 인공위성 곧 사정거리 8,000km를 보내는 등의 탄도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문제는 그들의 속성이다. 그들은 마적단이고 강도떼이고 불쌍한 인민을 망치는 자들이다.

10.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자들이다. 이들의 세력이 남한에 있다. 그들이 得勢(득세)하여 두 번씩이나 집권하였고 도처에 빨치산이 남아있다. 이런 시점에서 기독인은 하나님의 요구를 따라, 아가페 사랑의 요구를 따라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김정일 집단을 무조건 편드는 아니라 이제 더 이상 그런 착취를 못하게 하는 것에 있다. 기독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남용하고 있다. 깊이 禍(화)를 받을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사랑의 반대되는 것을 회개하고 아가페를 따라 살라고 주시는 것이지, 악마의 몸이 되어 북한주민을 착취하라고 주신 것은 아니다. [로마서 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함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빙자하여 일방적인 편애를 하고 斗護(두호)하고 庇護(비호)하고 辯護(변호)하고 愛護(애호)하며 달러를 퍼다 주는 교회지도자들이 있다면 이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고 국가에 대한 反逆(반역)이다. 자유에 대한 반역이고 북한주민에 고통을 더욱 加重(가중)시키는 것이다.

11.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사랑은 이웃사랑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 이웃사랑은 강도 편에 서는 사랑이 아니라 그런 강도들에게 오히려 학대받고 고통 받는 북한주민에게 주어야 한다. 어떤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구속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이웃사랑의 차이점을 구분치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사랑은 누구든지 아가페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용서를 받는 것과 그의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한다. 회개를 통한 죄용서와 성령의 세례는 곧 아가페의 실천자가 되어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한다. 여기서 이웃사랑은 강도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강도만나 죽어가는 자의 편에 서서 그를 구원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김정일 집단은 구속의 사랑을 받으려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자체를 거부하였다. 오히려 예수교회를 망하게 하고 있다. 아울러 김정일은 이웃사랑을 파괴시키는 강도 집단으로 살아가는 것이 생업이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도 던져버린 자들이고 이웃사랑도 포기한 악마의 집단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敵(적)을 사랑하자는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敵(적)이다. 바로 그것을 그들의 정체성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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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이웃사랑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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