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들어갔다 오라는 게 말이 됩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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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들어갔다 오라는 게 말이 됩니까? 북한과 남한, 서로에게 너무 상처가 되는 한국전쟁을 벌인지 벌써 60년이 다 되가네요. 전쟁이 끝난 뒤, 서로 총부리를 겨눈 지도 56년, 길고 긴 시간 동안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 공포에 떨면서 지내왔지요. 국민의 정부 들어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있는 듯싶었으나 10년 만에 다시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건으로 평화가 깨질까 조마 조마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탈북자들이 있지요.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북한에서 한의사였던 김지은씨는 2002년에 남한으로 들어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의학을 공부하고, 올해 한의사 면허시험에 합격하였지요. 5월 30일, ‘진 한의원’과 ‘남북한의학연구소’를 여는 탈북한의사 김지은씨를 만나 이야기 들어보았어요. -한의원 개업을 앞두셨는데, 소감은 어떠신가요? “지나고 보면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는데, 이루어지면 힘들었던 과정은 생각나지 않잖아요. 힘든 과정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다고 봐요. 성공이라고 표현하지는 못 하겠지만 바라는 삶을 살 수 있는 준비를 어는 정도 마쳤다고 봐요. 만감이 교차하네요.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눈물이 많이 나요. 제가 눈물을 안 흘리는 성격인데, 요즘은 혼자 있다가도 주르르 눈물이 나네요.” “남한 사회는 적어도 자기 스스로 도전을 할 수 있고, 북한 사회보다 자유로워” -북한에서 사시다가 한국에서 6년 사셨는데, 어떤 차이들이 있나요? “정말 힘들어서 유서 적어놓고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힘들었지만 남한사회가 북한사회보다 좋아요. 남한 사회에서는 기회가 저한테 있기 때문이죠. 남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지내지만, 계획을 세우고 평생을 노력해도 못 이룰 수 있겠지만 적어도 도전을 할 수 있는 사회잖아요. 선택권이 나한테 있고, 어떤 일이든 도전 해볼 수 있는 거죠. 또 자유로워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사회죠. 남한 사회는 약육강식이 판치는 썩고 병든 자본주의사회라고 북한에서 배웠는데, 그런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부 그렇지는 않았어요. 따듯한 심성들 가진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나눔을 하는 사람도 엄청 많고 희망이 있는 사회라고 생각이 들어요. 대학에서 다시 공부를 할 때, 애들이 같이 놀아주고 저를 챙겨주고 이끌어줬어요. 칭찬을 하고 싶어요.” -15년 동안 북한에서 한의학 공부를 했음에도 다시 한의대를 다니셨습니다. “북한은 한의대가 7년이에요. 그렇게 7년 공부하고 8년 동안 한의사를 하다가 남한으로 왔지요. 다른 법제도에 왔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는 게 당연히 마땅하죠. 직업엔 귀천이 없고, 한국에서 반드시 한의사하려고 한 건 아니라 교차로, 가로수를 보면서 일자리를 찾으려 했고, 한국에 적응하려고 했어요. 전화를 하면 제 억양을 듣더니, 교포세요? 탈북자세요? 물으면 ‘예’라고 대답하게 되죠. 운전은 할 줄 모르고, 컴퓨터는 할 줄 안다고 대답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하고 끊어요. 저는 다시 연락 주는 줄 알았어요. 한국에서 그 표현은 거절의 의미더라고요. 그걸 이해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어요. 탈북자들이 사회에 정착을 잘 못한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어떻게 하면 잘 정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하자, 침 놓고 맥 짚고 약 짓는 걸 제일 잘하니까 다시 한의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통일부에 자격신청을 내서 학력을 인정받았고 교육부에서 한국한의대 6년 졸업한자와 동등한 자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국가고시 시험을 치르는 게 안 되는 거예요. 자격은 교육부 주관이지만 시험은 보건복지부관할이에요. 보건복지부에서, 의사생활을 했다는 서류를 북한에서 가져오래요. 남북관계가 너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달러 가지고 북한에 들어가서 필요한 서류를 가져나오면 된대요. 서류가 중요하다는 건 이해가 돼요.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에게 서류를 가져오라고 하는 건 완전히 언어도단이에요. 북한에 들어가서 필요한 서류 가져오세요”, “북한에 들어갔다 오라는 게 말이 됩니까?” 아무리 공무원이로서니 북한에 들어갔다 오라는 게 말이 됩니까? 저는 지금 대한민국 등록증을 갖고 있습니다.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인데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주민과 접촉할 경우 국가보안법에서 저촉되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발급해달라고 했더니 그렇게는 할 수가 없대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냐. 왜 책임 없는 발언을 하냐, 했지요. 나중에 한의대 편입하는 게 어떠냐는 공문이 왔지요. 북한에서 공부하고 한의사를 했었지만 분명히 남한과 다른 부분이 있을 거 같았어요. 자꾸 배우면 좋은 거잖아요. 좋다, 다시 배우자고 편입을 하려고 하는데, 학교대학법상 한 사람이 같은 전공을 두 번 공부할 수 없대요. 저는 이미 한의대 6년 공부하고 졸업한 자격을 받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예요. 교육부에서는 한의대 졸업자격주고 보건복지부는 시험 안 된다며 편입하라고 하고, 대학은 이미 자격 있으니 편입 안 된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국회에 청원을 넣었고 국정감사 때 발표를 했지요.” -국정감사 때,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철저히 대한민국 법을 따르겠다, 내가 그냥 한의원을 열겠다는 게 아니라 증명을 받고 싶다, 부합이 안 되면 안 하겠다, 그런데 왜 시험도 못 치르게 하느냐고 국회에서 얘기를 했지요. 시험을 치고 안치고도 중요하지만 탈북자라고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어요. 이정도만 해줘도 감지덕지하겠지, 이거 먹고 떨어져 이런 식으로 저를 대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든 거예요. 이건 저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제2, 제3의 김지은이 나타날 겁니다.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저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데, 다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걸 다 인정해달라는 게 아니라 북한이 한국에 비해 뒤떨어져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걸 보충하게 해달라는 거예요. 보충을 해야 정착을 잘할 수 있지요. 탈북자들이 정착을 못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국가에 다시 환원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앞으로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통일이 되어서 집단과 집단이 만날 때, 우리 같은 사람을 통해서 데이터를 축적해 놓으면, 훗날 행정을 풀어갈 때 조금 더 쉬울 거예요. 제 후배들은 제 과정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런 걸 발판삼아 통일이후 정책추진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여기에 앉아있는 국회의원들이 방심한다면 대한민국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니 국감장이 조용해지더라고요.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실 비서실장이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라고 해주셔서 대학에 편입을 하게 되었죠.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20년 차이가 나고, 시스템도 많이 차이가 나서 힘들기도 했지만 참 재미있게 공부했고 정말 재미있게 지냈어요. 대학공부를 잘 마쳤고 이번에 졸업을 하고 한의사 시험에 합격을 하였죠.” -탈북자들이 한국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 무엇이 힘든지요? “탈북자들이 회사생활을 잘 못해요. 가장 중요한 건 탈북자 자신이 변하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고 애를 써야겠죠. 그동안 시키는 일만 해서 창조적이지 못 하거나 시간 되면 바로 퇴근했기 때문에 일을 잘 못 할 수 있어요. 한국에선 오너가 뭘 주면 그게 끝이더라고요. 본인이 알아서 해야 되는데, 탈북자는 알아서 하는 게 익숙지 않은 거예요. 처음엔 조금 더디더라도 하나하나 가르쳐주면 지금보다 훨씬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과정을 좀 참아줬으면 좋겠어요. 북한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의 일반 지식수준이 높아요. 정보채널이 많이 있고, 아는 것도 많죠. 북한 사회는 많이 닫혀있기 때문에 탈북자는 많이 어려워해요. 한국 사람들이 일 잘하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렇다면 무조건 못 한다고 하지 말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이끌어줬으면 좋겠어요.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말도 있듯이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기다려줬으면 좋겠어요.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적응할 때까지 도와준다면 조금 더 자신감 갖고 기술 익히면서 정착할 수 있을 거예요. “탈북자에 대한 편견이 없었으면, 가슴 속에 말 못 할 아픔들이 다 있어” 그리고 탈북자에 대한 편견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정착 못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다며 안 좋게 보시는데, 그건 탈북자이기 때문에 사고를 치는 게 아니에요. 사람마다 다양하듯이 자기의 사고방식 때문에 물의를 일으킨 거예요. 전체 탈북자가 그런 것처럼 매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러운 게 뭐냐면 탈북자들은 인간성도 없어, 지만 살자고 가족 다 버리고 온 거라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돼요. 인터넷 게시판에도 보게 되고요.…… 남한이나 북한이나 우리 조선족들이 가족에 대해서 굉장히 끈끈하거든요. 버리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결과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할 말은 없지만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아픈 과정도 한 번 생각 해줬으면 좋겠어요. 가슴속에 말 못 할 아픔들이 다 있어요. 탈북자를 무조건 잘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한국사회가 넓은 마음으로 탈북자를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결국, 한국사회로 복이 돌아온다고 생각하거든요. 북한사회가 변화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탈북자가 변화시킬 수 있는 큰 힘을 가졌어요. 정부가 아무리 말하는 것보다 탈북자가 북에 있는 친지들에게 한 마디 하는 게 더 중요해요. 조금 더 아량을 보여주면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엄청난 폭발력이 생길 거예요. 탈북자들에게 너무 아무렇게나 얘기를 던지는데, 그런 점은 아쉽죠.” -남북관계가 점점 안 좋아지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심스러운 부분인 거 같아요. 저는 의료인이에요. 어떤 편에 들 수 없어요. 다만, 생명과 연결되는 일이라면 그 상대가 누구든지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게 제 견해에요. 생명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적십자정신에 충실해야죠. 우선, 북한이든 어디든 굶어죽으면 보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 너무 극단적으로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북한은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인데, 자칫 잘못하면 북한이란 땅덩어리를 중국에 뺏기지 않을까 걱정 돼요. 거기 살았으니 그쪽 민심을 알잖아요. 중국과 북한은 굉장히 끈끈해요. 남한사회가 그동안 많이 보냈는데, 그런 도움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관계가 틀어지면, 실컷 주고 나서 무너지는 거잖아요. 독도도 우리 땅이지만 일본과 싸우듯이, 동북공정 때문에 고구려랑 백두산을 두고 중국과 싸우잖아요. 한반도 같은 땅덩어리 안에서도 싸우는데, 국경 넘어 만주에 있는 고구려 역사를 아무리 우리 역사라고 소리쳐도, 지금 있는 너희 땅이나 잘 지켜라, 이렇게 할지도 몰라요. 제 개인 생각이지만 더 크게 보고 널리 봤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북한과 통일 안 되어도 괜찮다, 북한 버려도 된다고 말하는데, 그러면 고구려역사를 다 버리게 되고, 독도까지 버리게 될지 몰라요. 을사오적이 100년 전에 나라를 팔아먹었잖아요. 그때는 국민성이 낮았기 때문에 눈 훤히 뜨고 당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국민성이 높은데도 이렇게 가다가는 그와 같은 상황이 또 도래할 수 있는 거예요. 남한이 포용력 있게 북한을 끌어당겨서 차츰차츰 가까워져야 통일 된 다음 혼란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계획과 꿈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한의원을 열면서 남북한의학 연구소도 함께 열어요. 현재 남과 북에서 한의학을 다 공부한 사람은 전무후무하죠. 남이 우세한 게 있고 북이 우세한 게 있어요. 장점들들 살려서 완성된 하나로 만들어 ‘한국 한의학’을 세계에 내놓고 싶어요. 지금껏 눈물을 안 흘리고 지냈어요. 참고 지냈어요. 눈물 한두 방울 흘려서 해소될 수 있는 가벼운 아픔이 아니라서 울지 않고 지냈어요. 요즘은 눈물을 자주 흘려요. 이 눈물은 제가 사람과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대화하겠다는 의미에요. 충분히 눈물을 흘리면서 사람들과 교감하고 같이 아파하겠다는 의미에요. 한국 사회가 인간성이 없다는 표현은 아니지만, 냉정한 부분이 많아요. 쉽지 않겠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가고 싶어요. 제한시간 안에 환자를 봐야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시간을 쪼개서라도 환자 손을 한 번 더 잡아주고 눈 한 번 더 마주치고 싶은 게 제 생각이에요. 조금 더 사람 마음을 읽고 교감할 수 있는 한의사가 되고 싶어요. 저는 최고가 되지 않으려고 해요. 어차피 인생살이에서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없잖아요. 한국사회 경쟁은 너무 치열해서 무서워요. 본의 아니게 경쟁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줘야 하고 밟아야 되죠, 그로 인해 자신이 힘들고요. 그래서 최고가 되는 것보다 최선 다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최고가 되지 않는다고 실패가 아니거든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잘 지내 나갔으면 좋겠어요.” 귀순 용사에서 탈북자가 된 사람들, 날로 심해지는 남북갈등, 한반도 평화는 도대체 언제? 탈북자들은 예전만 해도 ‘귀순 용사’라고 불리며 영웅대접을 받았지요. 그러다 ‘귀순자’라고 불리더니 1990년대, 북한의 식량난으로 남한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2004년 ‘탈북자’라는 말을 쓰죠. ‘탈북자’라는 말이 좋지 않다는 여론이 일자 2005년 ‘새로운 터전에 정착한 주민’이라는 ‘새터민’이란 신조어를 쓰기로 하죠. 새터민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2008년, ‘새터민은 가급적 안 쓰기로 했다’는 발표가 있었고, 지금은 탈북자라고 하지요. 남한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의 숫자가 15,000명을 훌쩍 넘었어요. 그러나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죠. 2008년, 일을 구하려 했던 탈북자 가운데 취업한 사람은 12.7%밖에 안 되었으며 일한 평균 기간도 5.8개월에 머물렀지요. 탈북자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은 남한 정착 교육기관 하나원에서 퇴소한 뒤, 거주할 임대주택조차 배정받지 못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거라고 할 수 있지요. 남한과 북한도 아닌 곳에서 떠도는 탈북자들은 어디에도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지요. 붙잡혔다가 풀려난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이라는 기자들은 두만강 접경지대에서 음란 화상채팅을 강요당하는 탈북여성들의 비참한 인신매매 실태를 취재 중이었지요. 수많은 탈북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안타까운 사실이죠. 남북한은 고통 받는 탈북자들을 챙기지 않고 있습니다. 금강산 피격사건, 삐라, 위정자들의 강경발언, 개성공단 중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 PSI참여 등등 많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남북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만 있죠. 2002년, 서해 교전에서 알 수 있듯 언제든지 남과 북은 충돌할 불씨가 있지요. 남한과 북한이 서로 주장하는 선이 다르고, 비무장지대처럼 군사 완충지대가 없기에 서해엔 늘 긴장이 감돌고 있지요. 지금 긴장관계보다 훨씬 큰 문제는 앞으로 남북관계 전망이 밝지 못하다는 거죠. 헌법 4조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 정부의 1차 목표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MB정부는 통일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듯싶어요. 통일에 대한 목표와 방향은 어떻게 갈 것이냐, 한반도는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기본 원칙이 6.15와 10.4에 드러나는 데, 이런 밑그림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면서 하염없이 계속 싸울 준비를 하자네요. 한반도 평화는 도대체 언제 올까요? http://v.daum.net/link/3230392/http://blog.ohmynews.com/specialin/279707?RIGHT_BEST1=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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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남북관계의 기본원칙이 6.15와 10.4에 담겼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통일은 남북한 백성들이 한 민족이란 점에 당위성을 둔 민족의 중대사이기에 비록 당시 김대중씨가 현직 대통령이었다고 할지라도 국민적 여론수렴과 동의를 거치지 않은 채 자신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통일방안인 '3단계통일론'을 마치 남측의 유일한 통일방안인 양 내세운 것도 문제이겠거니와 그 이전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유사성이 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그 틀에서 통일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은 무리로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