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외선전용 잡지 '등대'에 실린 한 월북자와 그의 가족.
이 월북자는 평양 외국문도서출판사 영어사전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됐다.
남한에서 북한으로 월북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다. 최덕신 전 외무장관과 같은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의 경우 그들의 북한생활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정확한 월북자의 수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과거 북한 매체에는 월북자들의 기자회견 내용이 더러 실렸지만 최근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월북자들의 북한 적응은 쉽지 않다. 월북자들을 직접 접촉해 본 탈북자들에 따르면 이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주위 사람들의 외면이다. 누구도 월북자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 않는다. 괜히 몇 마디 했다가 국가안전보위부에 끌려가 취조 받기 일쑤기 때문이다. 월북자들에게는 2중3중의 감시가 붙어있다.
90년대 초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다 월북, 북한 유명대학에 특별 입학했던 한 월북자는 친구 집에 있는 러시아제 흑백TV를 보고는 무심결에 『이런 TV는 남한에 더 이상 없다. 컬러 TV도 수시로 바꾼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주변 친구들까지 곤욕을 치르고는 그를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없게 됐다.
월북자들에게는 고급 담배가 국정가격 50전~1원에 매달 30갑씩 공급된다. 한 월북자는 장마당에서 담배가 50~100원에 팔리는 걸 보고 이유를 물었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북한 실정을 잘 몰라 쉽게 「왕따」를 당하는 것이다.
한 월북자는 김일성이 사망하자 『이제 북한도 바뀔 때가 됐다』고 말했다가 그날로 행방불명됐다.
탈북자 김성일(가명·31)씨는 북한에서 월북자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가 모든 대화를 거실이나 복도에서만 하려고 해 도청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87년에 보위부 감옥에 끌려간 적이 있는 탈북자 안혁씨는『월북자 김철승 김광현 김종필 등이 발언을 잘못해 보위부 감옥에서 취조받고 있는 걸 보았다』면서 『이들은 「공화국 법이 이런거냐, 단식하겠다」고 항의하다가 주위의 웃음만 샀다』고 전했다.
월북자들은 대부분 6개월 정도 지나면 북한의 선전에 속았다는 걸 깨닫고 심한 갈등을 겪는다고 한다. 북한을 동경해 월북한 사람들일수록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속성을 재빨리 파악한 월북자들은 그런대로 순응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월북자들에 대한 대우는 일반주민들의 생활에 비해 파격적이다. 「개별적 또는 집체적으로 의거하여 오는 적 군대 복무자들을 대우함에 관한 군사위원회 결정」에 따르면 월북자에게는 평양의 아파트와 상금이 주어진다. 상금은 대략 북한돈 5만~10만원 정도다.
월북자들은 5~10년 간 3호 청사 공급소(대남 공작원들을 위한 공급소)에서 생활필수품들을 공급해 준다. 80년대 중반 외국에서 북한에 들어갔다가 다시 탈출해 나온 한 인사는 『대남공작기구에 배속된 월북자들은 별도의 상금은 없지만 모든 공급이 공작원 수준이어서 웬만한 간부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참고 : 북의 대남공작기구에는 월북자들 뿐만 아니라 남한이나 제3국 등에서 북으로 강제납치된 인사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요즘 북한 신문과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월북자는 10여명으로 남한사회를 비판하고 북한사회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있다. 이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들은 대개 『여기서는 빠져나가지 못해 안달인데 왜 제발로 찾아오지』라며 월북자들의 행동에 고개를 젓는다고 한다. 월북자들이 북한을 동경해서 왔다고 하면 심문하는 보위부원조차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월북자들이 북한 일반 주민들에 비해 나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것을 남한과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북의 경우 거의 모든 고위 간부들이 자택에서 마누라와 나눈 잠자리의 대화조차 도청되어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되고 있는 듯 하니 월북자들이나 납북자들의 경우 어느 정도의 감시를 받고 있을 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북한사람들이 더 잘안다는 생각이드는데...
남쪽사람들이 북한의 지역정서를 잘 모른다는게 사실일겁니다.
이성계. 김구. 안중근. 이승만 이분들 다 이북출신들입니다.
북한사람들이 경기도 서울 깍쟁이...
다알아요...
그래도 우리는 충청도를 양반이란 말을 하지요.
팔도께서는 황해도는 어떻게 알고계십니까?
함경도와 남쪽의 어느지역사람이 부딧치면 불이 날겁니다.
평안도==전라도.........황해도==충청도.....함경도==경상도....
함경도와 남쪽의 어느지역사람이 부딧치면 불이 날겁니다??
전라도? 경상도?
저도 양강도,자강도 다 알아요...
어느지역 사람일까요?
북한에서도 지역감정이 아직 있는가요?
전라도 경상도 지역감정처럼?
그래도 선과 양심은 있습니다.
자기의 주장이 엄청 강하다는거죠.
그냥 참고만 하십시오.
월북자란 자의로 북한을 선택하여 입북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입북시기(한국전쟁 이전, 한국전쟁 시기, 한국전쟁 이후)에 따라 월북 동기, 북한에서의 생활수준 등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 입북자의 경우 자신의 의사 확인이 어려워 월북자와 납북자의 구분에 어려움이 있다.
<전체규모>
* 한국전쟁 이전 시기: 관계기관은 약 3만명 내외로 추계하고 있다.
- 주로 조선공산당과 남로당 열성분자 활동가 중 체포 위협을 받은 자, 공산주의를 동경하던 학자, 교수, 예술인, 과학자 등과 당시 인민당·신민당·근로인민당·신진당·민중동맹 등 좌파 정파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월북하였다.
* 한국전쟁 시기: 전쟁 기간 중 행방불명자는 30만명, 납북자는 8만5천여명 그리고 군관련 행방불명자는 1만9천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조: 한국전쟁피해통계집(국방군사연구소, 1996), 6.25행불자명부(국방부 포로관련자료집, 1997. 10), 국군포로 문제-실상과 대책(국방부, 1999. 10)
* 휴전 이후 시기: 정확한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참고로 1989-1998년까지 북한측 방송을 통해 집계된 월북자(북한측의 주장)는 93명으로 집계되고 있다.(일본측의 평양방송 청취결과를 근거로 한 추정치임)
<귀환 규모>
* 현재까지 자진 월북자로서 귀환한 사례는 알려져 있지 않다.
* 오길남의 경우 자진 입북 형식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회유와 유혹에 의한 입북이었으며, 입북 후 억류자의 입장에서 생활하다가 탈출에 성공한 경우이다.
<북한으로부터 추방 사례>
* 일부의 사례가 있다.
* 북한은 1998년 1월 16일 자진 월북했던 최모씨를 중국으로 강제 추방했다. 자진 월북자를 강제추방한 최초의 사례로 알려져 있다.(조선일보, 1998. 2. 19. 29면)
* 1999년 월북한 홍모씨가 북한에 24일간 머물다가 추방당하였다.(조선일보, 1999. 4. 5. 23면)
[월북자들의 북한생활] 실상 몰라 '왕따'당하기 일쑤
◇북한의 대외선전용 잡지 '등대'에 실린 한 월북자와 그의 가족.
이 월북자는 평양 외국문도서출판사 영어사전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됐다.
남한에서 북한으로 월북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다. 최덕신 전 외무장관과 같은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의 경우 그들의 북한생활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정확한 월북자의 수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과거 북한 매체에는 월북자들의 기자회견 내용이 더러 실렸지만 최근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월북자들의 북한 적응은 쉽지 않다. 월북자들을 직접 접촉해 본 탈북자들에 따르면 이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주위 사람들의 외면이다. 누구도 월북자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 않는다. 괜히 몇 마디 했다가 국가안전보위부에 끌려가 취조 받기 일쑤기 때문이다. 월북자들에게는 2중3중의 감시가 붙어있다.
90년대 초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다 월북, 북한 유명대학에 특별 입학했던 한 월북자는 친구 집에 있는 러시아제 흑백TV를 보고는 무심결에 『이런 TV는 남한에 더 이상 없다. 컬러 TV도 수시로 바꾼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주변 친구들까지 곤욕을 치르고는 그를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없게 됐다.
월북자들에게는 고급 담배가 국정가격 50전~1원에 매달 30갑씩 공급된다. 한 월북자는 장마당에서 담배가 50~100원에 팔리는 걸 보고 이유를 물었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북한 실정을 잘 몰라 쉽게 「왕따」를 당하는 것이다.
한 월북자는 김일성이 사망하자 『이제 북한도 바뀔 때가 됐다』고 말했다가 그날로 행방불명됐다.
탈북자 김성일(가명·31)씨는 북한에서 월북자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가 모든 대화를 거실이나 복도에서만 하려고 해 도청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87년에 보위부 감옥에 끌려간 적이 있는 탈북자 안혁씨는『월북자 김철승 김광현 김종필 등이 발언을 잘못해 보위부 감옥에서 취조받고 있는 걸 보았다』면서 『이들은 「공화국 법이 이런거냐, 단식하겠다」고 항의하다가 주위의 웃음만 샀다』고 전했다.
월북자들은 대부분 6개월 정도 지나면 북한의 선전에 속았다는 걸 깨닫고 심한 갈등을 겪는다고 한다. 북한을 동경해 월북한 사람들일수록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속성을 재빨리 파악한 월북자들은 그런대로 순응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월북자들에 대한 대우는 일반주민들의 생활에 비해 파격적이다. 「개별적 또는 집체적으로 의거하여 오는 적 군대 복무자들을 대우함에 관한 군사위원회 결정」에 따르면 월북자에게는 평양의 아파트와 상금이 주어진다. 상금은 대략 북한돈 5만~10만원 정도다.
월북자들은 5~10년 간 3호 청사 공급소(대남 공작원들을 위한 공급소)에서 생활필수품들을 공급해 준다. 80년대 중반 외국에서 북한에 들어갔다가 다시 탈출해 나온 한 인사는 『대남공작기구에 배속된 월북자들은 별도의 상금은 없지만 모든 공급이 공작원 수준이어서 웬만한 간부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참고 : 북의 대남공작기구에는 월북자들 뿐만 아니라 남한이나 제3국 등에서 북으로 강제납치된 인사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요즘 북한 신문과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월북자는 10여명으로 남한사회를 비판하고 북한사회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있다. 이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들은 대개 『여기서는 빠져나가지 못해 안달인데 왜 제발로 찾아오지』라며 월북자들의 행동에 고개를 젓는다고 한다. 월북자들이 북한을 동경해서 왔다고 하면 심문하는 보위부원조차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월북자들이 북한 일반 주민들에 비해 나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것을 남한과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북의 경우 거의 모든 고위 간부들이 자택에서 마누라와 나눈 잠자리의 대화조차 도청되어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되고 있는 듯 하니 월북자들이나 납북자들의 경우 어느 정도의 감시를 받고 있을 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