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탈북스토리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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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에 이어) 11 탈북스토리 연재 후 많은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런 엄청난 고생과 위험을 겪었을지 몰랐다며 어떤 분은 통화 과정에 울기도 하셨다. 그 분들에게 나는 2만 명의 탈북자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씀 드렸다. 아니 어쩌면 난 남들에 비해 덜 고생하며 탈북한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북한에서부터 갖고 나온 달러에 기댈 수라도 있었고, 창용아저씨, 신광용씨, 왕초린과 같은 평생 못 잊을 은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나의 굶주림이란 거지처럼 거리에서 동냥을 한 번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고, 1월의 산 속에서 추위에 떤 날도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사관에 들어갈 때까지 중국 땅에서의 방황도 남들처럼 수년세월이 아니라 2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산속에서 몇 년을 토굴생활 하다가 온 탈북자들, 공안에 잡혀 북송됐다 살아 온 그 기막힌 운명들을 글로 옮겼다면 아마 나의 탈출기는 배낭여행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곡절 많은 탈북여정을 어떻게 다 그려낼 수 있겠는가. 탈북자동지회 홍순경회장님은 태국에서 북한 보위부에 납치되어 실려 가는 과정에 불행 중 다행의 차사고로 현지경찰에 망명을 요구할 수 있었다. 자유북한방송국 김성민 국장은 쇠고랑을 찬 채로 달리는 북한열차에서 뛰어내려 자유의 소원을 두 손에 꼭 모아 쥐고 무릎걸음으로 얼어붙은 두만강을 기어서 넘었다. 우리의 탈북은 한 목숨만으로도 부족한 것이기도 하였다. 탈북자구출센터 백명학 소장은 세 번이나 북송됐다 세 번 탈출하여 대한민국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조선일보 강철환기자는 노예 같은 북한공민의 권리조차 없었기에 인권을 찾아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서 살아 나온 사람이다. 이렇게 온 우리들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탈북자라고 한다. 그러나 탈북자란 그 이름마저 갖지 못한 채 이국땅을 방황하다 숨진 이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메콩강의 급류 속에서 튜브 하나에 가족의 운명을 실었다가 아이만 살려 보낸 한 부부의 비극도 있고, 영사관 진입 도중 공안들이 달려들어 눈앞에서 생이별한 눈물의 母女(모녀)도 있다. 탈북! 그 말은 이렇듯 북한체제의 탈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결심할 때 이미 생명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목숨의 탈출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인류가 말할 수 있는 모든 비극이 가슴에 응축되어 피멍든 그들, 각자마다 최소한 이별의 아픔이라도 부여안고 모대기는 그들이 바로 우리 2만 명의 탈북자들이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부르짖고 싶다. 당신들에겐 그냥 태어난 대한민국이지만 우리 탈북자들에겐 이렇게 죽기를 각오하고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정녕 조국이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죽어서도 묻히고 싶은 곳이라는 것을! 나는 또한 대한민국의 어르신들에게 엎드려 큰 절을 드리고 싶다. 내 조국 반쪽이라도 이렇듯 자유의 땅! 민주의 땅! 선진화의 땅으로 만들어주셨기에 우리는 우리의 생명도 사람의 것이라고 기어이 살아서 가리라! 외치며 사생결단 찾아 올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의 두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대한민국 흙 한줌도 보듬고 싶을 만큼 이 땅이 고마워서 울고, 그래서 북한에 두고 온 그리운 얼굴들 때문에 또 운다. 이별은 떠나는 마음보다 보내는 마음이 더 아프다 했지만 살아도 삶이 없던 그 땅에선 이별의 권리마저 없었기에 그 아픔마저 주지 못한 나는 이별의 죄인이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우리 탈북자들 모두가 아직도 탈북하지 못한 가슴 반쪽을 부여잡고 좋은 음식이면 좋은 음식에 목이 메어 울고, 설날이면 또 가는 한 세월에 울고 있다. 분단의 철책선이 땅에만 아니라 그렇듯 생살까지 찢으며 가로 지른 그 수난자들이 바로 우리 탈북자들이다. 이 수기를 쓰는 며칠 동안에도 나는 5년 동안 겨우 잠재웠던 악몽에 또 다시 시달려야 했다. 두만강을 넘다가 총에 맞기도 했고, 창용아저씨 장모집 옆 빈농가에 숨어있다 불쑥 나타났던 공안의 얼굴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친구가 공안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날 살리려고 벼랑에서 뛰어내린 꿈을 꾼 날에는 한 밤중에 일어나 앉아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북한 땅에서 어떻게 살았던가 싶을 만큼 기억만으로도 공포에 시달려야 했고 악몽만으로도 숨 가쁜 생사에 가슴조려야 하는 탈북자가 어디 나뿐이랴. 그렇다. 우리 탈북자들은 결코 북한체제를 탈출만 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의 탈북은 땅에 묻은 사람들의 복수였으며 독재 권력과 인간과의 치열한 전쟁이었으며 살아서 온 인간의 승리였다. 나는 이 수기를 마치며 소원하건대 심양의 왕초린을 찾고 싶다. 내가 인터넷에 글을 올린 이유 중 하나가 그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쯤 대상, 아니 남편이 되었을 그 친구와 결혼도 하고 어느덧 애들도 가졌을 것이다. 어느 날 불쑥 연락이 와서 친구처럼, 아니 친척처럼 소식을 주고받고 내왕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공상을 해 본다. 영사관에 들어가면 신광용에게 전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그러면 초린이에게 내 소식도 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의 보호를 위해 허락해주지 않았다. 며칠 동안 졸라 마침내 나대신 다른 분이 연락을 넣어 봤지만 그때 신광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후에 주민등록증을 받아 대한민국 국민이 된 날 창용아저씨를 통해 바뀐 광용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고,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지금도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광용은 초린이 삼촌 집 전화번호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현재 광용은 탈북자인 청진여자와 함께 노원구에서 살고 있다. 예쁜 엄마를 닮은 아들도 있다. 창용아저씨는 우리가 준 700달러로 견인기 대신 소 한 마리와 가전제품을 샀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아니 조선족 사람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솔직히 그들이 없다면 오늘날 2만 명의 탈북자도 없다고 본다. 비록 사회주의 중국에서 살고 있지만 민족적 동정심과 인간의 양심으로 김정일 정권에 침을 뱉는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탈북자들에겐 숨어있을 은신처와 얻어먹을 만두가 있고 탈출의 방법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김정일은 민족의 포위망에 든 셈이다. 분단의 38선 너머에는 자유민주주의 국민이 있고 내부에는 주민들의 분노가 있다. 북쪽에는 김정일을 민족의 수치로 생각하는 우리 조선족 사람들이 탈북자들의 탈출을 도와주고 있다. 그들은 중국에선 소수민족일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에는 민족과 영토의 유구한 역사와 그 가치의 대를 잇고 증명하는 大민족이라고 본다.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탈북자들이 그들에게 감사하고 단체 차원에서 연대활동도 벌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더 많은 탈북자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절실히 필요하고 그들이 우리의 예의와 도리에 감동하여 탈북자들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게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조선족 사람들이 親한정서를 가질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여 김정일 정권을 더욱 고립시켜야 한다. 또 그것이 북한체제 붕괴에 대비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며 궁극적인 통일의 위업이라고 본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는 이 수기를 볼 북한 통전부 친구들에게 나의 오늘을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밥 한 줌에 생명을 느끼고 산 속에서 추위에 떨며 날을 새던 도피자가 더는 아니다. 못 알아들을 중국말에 멸시받고, 개처럼 쫓기고 밥 한줌 값도 안 되는 동전을 소원하던 김정일정권의 주민이 아니다. 나는 현재 국책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한다. 대학 강의도 나가고 내 손으로 쓴 책“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와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를 누구의 간섭이 없이 출판할 수도 있었다. 한 달 전엔 서울 친구들도 부러워 할 새 아파트도 가졌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고마운 어르신들의 존함을 여기에 적는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이렇듯 충성으로 바치는 삶이 아니라 성취로 가지는 삶을 살고 있으며 민주적인 선거권으로 대통령을 결정할 수도 있다. 나는 내 목숨이 소중하고 내 삶이 이렇듯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땅에서 처음 느꼈다. 김정일은 자기에겐 불가능이란 없다고 했다. 그 불가능이란 정권도 총에서 나온다고 말할 줄 아는 독재자의 파렴치하고도 타락한 가능이다. 그러나 나에겐 인간으로서의 불가능이란 없다. 나는 이미 저 북한에서, 그리고 한국으로 찾아오는 험난한 길에서 극도의 공포도 체험해 보았고, 외로워 보았고, 슬퍼 보았고, 친구를 잃은 상실의 아픔도 느꼈다. 나에겐 이젠 더 이상의 아픔이란 있을 수가 없다. 이제 또 어려운 일에 부닥칠지라도 지금껏 겪었던 그 모든 좌절과 비극에 절대 비할 수는 없다. 얼마든지 견딜 수 있으며 백번이라도 다시 일어날 용기가 혈맥에 가득 차 넘친다. 대한민국에서 나에겐 행복할 권리와 성공의 의무만 있으며 또 그것을 위해 열심히 살 앞날만 남았다. 그 모든 것을 바칠 평생의 반려자를 찾아 새 가정도 예쁘게 만들기도 하리라. 이것이 바로 자기에겐 불가능이란 없다는 독재자 김정일과 전혀 다른 나의 무궁무진한 인간의 가능이다. 그동안 저의 글을 보아주신 여러분께. 그리고 저의 탈북스토리를 특별히 배너로 만들어 소개해준 뉴데일리, 조갑제닷컴에 진심으로 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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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북한 구권화폐 한도이상 불법교환한 주민 2명 총살했다는 소식이 뜨는군요.오지 못한 자의 몫까지 열심히 행복하게 사시길,
단란한 가정도 이루시고,,,,,
전쟁터에서 한 전우가 적진에 갇혀 있을 때, 고귀한 한 생명을 위해 목숨 걸고 구해오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에서 살 길 찾지 못하고 떠 돌고 있는 수 많은 탈북자들이 머리에서 맴돌아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처지가 님이 겪었던 처지와 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 가슴이 아리고 아픕니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정말 감동받았어요.
목슴을 담보로 한 탈출을 해야만 할 정도의 국가란게....
탈북자님들의 여러 수기를 보면 볼 수록....답답하고 안타깝고......그런 마음만 더합니다.
부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도움이 되고싶은데...제 능력이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혹시나 도움이 될까했어 메일 주소 올립니다.
bwahn39@hotmail.com
글중에 친구분도 잃으셨지만, 오신길은 다른 탈북자분들에 비해 수월했던것은 사실 입니다. 북한에서 통전부에도 근무하셨고, 남한영사관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중국에서 탈북자를 도와주려다 중국공안에도 잡여가고 탈북자분들에게 비용도 뜯기고... 도와준다는 것도 어렵더라구요.. 공안에서 맞을때는 어이구 엄청아프더군요.. 같이 공안으로 끌려간분은 지금 어떻게 됬는지..
제가 경험한 바로는 개인이 중국에서 탈북자를 만나 도와주려면 경비정도나 대사관가는 방법등 그곳에서 한국으로 갈수있는 현실적방안을 이야기해 주는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탈북자분들과 같이 오래있으면 한국사람들도 피해를 보기 일쑵니다.
조선족아저씨도 한국에 오게 해주시고...
중국에서 북한사람들과 만나보았는데 사상이나 체제가 달라서 그렇지 감정은 쉽게 통하더라구요. 왜냐면 공통적으로 같은것을 배운게 있어서 인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20여일. 조선족동포도 장진성님처럼 잘 만나면 은인이지요..
더군다나 700 달러.. 일반 탈북자분들은 700 달러 큰돈입니다.
중국근로자 7개월치 월급 . 한국의 7개월치 월급..
한국정부에서도 동포들에게 잘 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문점은 다른 탈북자분들이 장진성님처럼 생각할는지는 의문입니다?
장진성님의 책 구해 읽어보겠습니다.
장진성님 홧팅
제뜻은 7백달러는 중국에서 일반노동자 7개월치 월급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한국에서의 7개월치 월급을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설경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남한에 오셨으니 축하해야지만 남한도 그나름대로 문제가 많이 잇습니다.
아마 순수적 측면에서는 북한쪽이 훨씬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통일이 될수 잇는 바탕은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해야 하는것이 아닐까라고 봅니다.
내가 남을 부정하면서 남도 나를 인정하리라고 생각하는것은 망상이라고 봅니다.
결국에 역사라는것이 반복의 가치를 부여하고 잇는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친일의 역사 마냥 또 한번 우리에게 정의로운 무엇보다
현실에 대한 순응적 측면에서 죽이고 싶을만큼 불의한자들도 결국에는 용서하고 이해하며 같이 가야될 한무리라고 보여집니다.
많이 힘드시고 어렵더라도 통일을 위한가치는 남을 배격하기보단
더 힘든것이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저도 엄청 힘듭니다.
그것을 당한 사람이야 당연하겠죠
젊은 사람도 옳고 그른것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고자 한답니다.
이렇게 쓰고 있는저같은 경우는 제법 나이가 든사람이구요
어떤 편협된 생각은 자기자신의 성장을 저해할수있는 요소도 됩니다.
하여튼 어려운 길을 뚫고 이렇게 되신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그러했던 어려움이 필자의 향후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 않습니다.
- 희망2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9-12-08 23:58:00
- 희망2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9-12-09 00:03:35
그냥 제가 생각나는 것들은...
통일과정에서도 중국이 북한을 먹을려고 달려들 겁니다. 최소한 북한을 이용해 중국이 엄청난 반대급부를 얻어내려고 할겁니다.
백두산도 반이 중국으로 넘어갔다고 하던데요.
중국이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역사를 중국의 역사라고 조작을 하는 동북공정을 치밀하게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해서 중국에게 간도를 넘긴 조약은 무효입니다. 때문에 중국은 통일한반도가 간도땅에 영유권을 적극 주장할 것에 불안해 간도에 대한 역사조작을 더욱더 치밀하게 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의 50%이상이 간도에 대한 것이랍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야욕도 경계해야 할것이고... 우리민족의 역사를 중국역사라고 조작하여 세계에 알리는 중국의 치밀함에 맞서야 할것이고... 간도땅도 언젠가는 반드시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중국이 만약 민족별로 독립한다면 ...
진짜 연변지역은 한국땅이네요~~!!!!!!!
어떤 분은 편하게(상대적으로) 라는 표현을 쓰신분도 계시지만,
장진성님이 북한으로 다시 송환되었다라면 이라는 끔찍한 가정을
해보면, 여기올 때까지 누구도 경험해 보지못했을 공포감과 긴장감에
전율을 느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탈북자분들의 입국에는 아직도 중국조선족의 역활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공감합니다.
시간이 되시면, 정부가 지금도 이역만리에서 고생하고 계신 탈북자분들의
한국행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의 조선족에게 대해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을
탈북자들의 입장에서 정리해서, 정부에 건의하는 건 어떤가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고, 항상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어서 통일이 되어서 북한도 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채우느라 허리펼사이 없이 사역하다가
들어오니 어지 간히 피곤해-
그래도 사역보고한 후 글을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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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쓰시는 데 비해
마지막 장식은 겸손으로 빛내이심에
더욱 두두러 집니다.
구구절절 말씀하시는 대로 백프로 공감합니다.
나도 내이름 이민복 처럼 이민가야 복이 있다고
북에 있었더라면 굶어죽은 고지식한 연구원에 볼과.
이곳에 와서 직장 쥘 여러 기회가 있었지만
자유라는 최고의 직업을 가졌습니다.
내마음껏 하고 싶은 통일운동을 하니 원이 없습니다.
부디 모든 탈북자들이 필자가 말한 바대로
하늘이 선택한 자유를 만킥하며
열심히 각자 노력하고 건강지키시며
통일 된 북한재건의 주역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울은 원래부터 반도의 수도였고, 태극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조국에 온 것이 아니라, 원래의 조국에 귀환한거라 생각하세여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눈물이 나네요
- 산전수전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9-12-13 18:25:28
오랫동안 북한 관련 글들과 탈북 수기들을 접하면서 눈물과 한숨과 절망을 보았습니다.
뭐가 할 수만 있다면 돕고 싶고 하나라도 지원하고 싶고....
뭐 그랬는데,요즈음 와서는 참 마음이 식어지더군요.
남의 일로 여기고 싶고 별로 간여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즈음은 멀리 하고 있습니다.
여자분들 너무 너무 고생을 하니까, 여성 탈북자들과 아이들만 받고 남성 탈북자들은 안 받았으면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특히 김대같은 명문대 출신 탈북자들은 북한에서도 소위 말하는 기득권층에 속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남한 와서도 말로는 고마워하지만, 하는 언행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남한의 안 좋은 모습과 탈북과정에서 자신들이 겪은 불합리와 모순은 잊지 않고 깊이 간직하고있으면서
오히려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이들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깊이로 감사하지는 않더라고요.
뭐, 본인들이 잘나서 그렇겠지요.
"우리가 굳이 원망들으면서 당신네들을 받아야할 이유가 뭔데" 라는 반감이 속에 고개를 들려고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탈북 지식인들은 이 수기의 글쓴이 같이 "겸손"모드를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차별을 겪고 이용을 당하고...
참 안스러웠습니다. 목숨이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의 불쌍한 자들을 이용해먹는 몰지각한 놈들 저주 받아마땅한 인간들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따스한 도움의 손길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주변에서 만난 사람 백이면 백, 모두가 다 그런 인간이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작은 도움일지라도 감사하지 앟는 모습의 삶은
탈북인을 받아준 남한 사회에 존재하는, 소외된자들을 분노케 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솔직히 무슨 연고가 있다고 도워줍니까? (도와주지 말자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오해마시기를)
돈 때문에 부모 자식간에서 다투고 형제도 나몰라라하는 각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도와야 하나요? 아니지요!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정부에서 집주고 교육시켜주고 도와줘야 된다면
무엇보다도 젊은 시절 조국에서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외국에 나가서 살다가 어려움을 겪고, 결국에는 빈손이 되어 의지할 데 없어
조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에게는 정부에서 따뜻하게 잘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정부에서 이들에게 그만큼이라도 해줍니까?
참, 슬프게도 눈꼽만큼도 안해줍니다.
외국나가서 한국 사람들 서로 물어뜩고 추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나라 사랑 다들 대단합니다.
대체로 탈북자들은 어쨋든 탈북전에는 북한에서 민족의 철천지 원수 "김일성 수령놈"에게 충성하다온 사람들이 아닌가 싶군요.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여전히 남한 욕하면서 김씨 왕조위해 살고 있을 분들 아니었을까요?
제가 좀 심한 말을 했습니다.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여성 탈북자들을 생각 한다면 제가 못할 말을 했다고 여깁니다만,
그냥 저도 김대 나온 똑똑한 탈북자들의 문제제기성 발언처럼,
생각해보자고 해본 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