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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말한다. A
Korea, Republic o 강호 2 497 2009-12-26 17:55:09
두망강은 예나 지금이나눈물에 젖은 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일제 강점시기 탄압을 견디지 못한 이주민들이 두망강을 넘어 만주땅에 넘어갔고, 항일에 꿈을둔 용사들이 만주땅에서 항일에 불씨를 지펴 내나라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강을 넘었으며, 오늘날에는 생활고를 못이겨 사랑스런 고향을 떠나 중국에서 떠돌다 한국에 왔거나 아직도 3국에서 갖은 고생을 하는 탈북자들이 흘린 눈물이 두망강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중국 두망강 연선에서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내가직접 겪었던 탈북자들과의 일들을 몇회에 거쳐서 올리려고 한다.
1, 탈북자의 원조.
내가 도강자를 처음으로 본것은 아마도 1995년 가을쯤으로 기억한다. 하루는 향 소재지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도중 빨리가려고 두망강옆 지름길을 택하여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 아저씨" 하고 부르는 낯설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깨끗한 옷차림의 아가씨 두명이 약간은 두려운듯한 눈빛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주춤하고 서있는 사이 내곁으로 다가온 한 처녀가 " 사실은 강건너에서 중국 친척집에 도움 좀 받으려고 주소만 들고 무작정 강을 넘어왔는데요......도와주십시요." 라는 것이였다. 북한에 친가쪽 친척들이 모두있는 나로서는 가련한 마음에 그들을 도와 버스 정류소까지 안내해주고 연길까지 들어갈수있는 차비로 인민페 50원을 쥐어주었다. 그들은 친척한테 도움을 받으면 은혜를 꼭 갚겠다면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후 보름정도 지나서 그들은 친척한테서 얼마간 도움을 받았다며 술과 사탕과자를 사들고 나타났고 그날 밤 경비대 군인과의 약속 장소를 통하여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때 나는 그들이 탈북의 개척자가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2. 마을마다 탈북자
1997년 중반 북한의 식량난이 고조에 치달으면서 북한과 인접한 두망강 지역의 농촌들에는 탈북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배씸이 두둑한 남자 탈북자들이 그 주류를 이루었었고 그들이 일손이 필요한 농촌 가정들에 일꾼을 데려다 주는 역할을 하였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탈북자에 대한 단속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조선족지역특성상 연선의 공안 일꾼 간부들 대부분이 조선족인 까닭으로 식량난 때문에 강을 넘어온 탈북자들에 대하여 관대하였던것은 사실이였다. 간혹 단속이 되였다고 할지라도 세관으로 보내지 않고 두망강으로 돌아가도록 조치를 취하는 일들이 많았었다. 지어 화룡시의 정부 간부들이 주민집들을 돌아다니면서 " 조선에서 식량난때문에 사람들이 건너오면 보내지말고 밥을 주고 잘 대접하라, 그러고 나서 정부에 보고하면 그들에게 필요한 식량을 지원해준다. 앞으로 그들에게 집단 난민촌을 만들어 준다," 는 등의 선전을 하였다고 한다.
그때 연선의 마을들 마다에는 탈북자를 쉽게 볼수가 있었고 짧은 기간이였지만 공안의 단속에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였던 시기였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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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inf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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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시기 2009-12-28 04:46:27
    맞는 말씀이지요
    그런시기가 있었어요, 91년부터 기근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잡곡을 조금씩 밀려 주던 배급마저 끊어지고 갑자기 불어 닥친 식량난에 여기저기서 먹거리를 찾아 행방을 떠나다가 도착한곳이 중국이기도 했습니다
    당국은 당시 간부들까지 다 굶고 있어 대책을 세울수가 없었습니다
    단체 기업소들대로 식량을 구하는 외화벌이 단위들을 조직하고 국민들은 스스로 먹을 걸 구하려 떠나도 말릴수 없었던 그런 때가 있었죠.
    그때는 식량을 구하러 갔었다는 것이 확인되거나 술이나 담배등 뇌물만 먹이면 연선지구에서 15일 강제 노동단련대에 가거나 그 자리에서 놓여 나오는 수도 있었고 비밀리에 고향으로 돌아 갈수도 있었죠
    그렇지 않으면 다 긂어 죽겠는 걸요. 그때는 군인들 까지 다 영양실조로 제대되는 군인들이 많았고 그땐 국가도 통제능력도 없었고 조금만 있으면 다 망하거나 나라가 문을 열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죠 처음으로 북한에서 개인상업이 시가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에겐 나라를 살릴수 없는 더없는 기회였지요
    조선 족도 공화국 인민을 많이 도왔습니다
    하지만 90년대말 2000년도 부터 김대중 과 손을 잡은 북한 정권은 힘을 받아 탄력을 받았고 기회는 다시 정부 쪽으로 돌아 갔습니다.
    먹지못헤 떠나갔던 자들이 돌아오고 자수하면 다 용서 해준다고 했지만
    한 쪽으로 국경을 봉쇄 강화 하였고 두만강 도강자를 반역자로 몰아 감옥에 보내고 지어는 사형 까지 시켰습니다. 그때로 부터 자연적인 도강으로 부터 정신적인 탈북이 시작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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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시기 2009-12-28 05:03:27
    ㅜㅠ...그땐 국가도 통제능력도 없었고 조금만 있으면 다 망하거나 나라가 문을 열수 있다는 (개방) 희망도 있었죠 처음으로 북한에서 개인상업이 시가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에겐 나라를 살릴수 있는 더 없는 기회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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