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말한다.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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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국으로- 한국으로 중국의 탈북자 단속이 최 고조에 달하면서 탈북자들은 자기들의 종국적인 정착지가 중국이 아닌 한국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에 있는 한국 영사관이나 외국인 학교 진입과 또다시 국경을 넘어 3국의 영사관 진입을 시도했고, 그러는 과정에 차마 눈물없이는 볼수없는 많은 비극들도 발생하였다. 영사관 진입에 실패하고 북송된 수많은 탈북자들은 또다시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보위부 구류장이나 단련대에서 옥고 를 치루어야 했고 심한경우에는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경에 있는 한국영사관에 진입하려고 사다리와 솜이불을 준비한 탈북자들이 영사관에 진입하는 광경을 뉴스를 통하여 본 사람들이 많을것이다. 당시 북경주재 영사라는 분의 말을듣고 나는 가슴이 미여지는것만 같았다. 11명이 진입을 시도했는데 성공한 사람이 고작 4명 뿐이란다, 높은 담장위에서 솜이불을 던지고 그위에 뛰여내렸는데도 발목뼈가 부러져 오랜기간동안 고생한사람이 있고, 담장위에 설치된 철조망에 긁히여 얼굴과 손들에서는 피가 흥건히 흘러내렸고, 진입에 실패한 가족때문에 눈물과 걱정속에서 나날을 보낸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한국 정착에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의 입국 경로를 이용하여 또 다른 탈북자의 한국 입국을 성공시켜주었고 (일명 브로커들) 오늘날에는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수가 2 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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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만큼 간결하게 역사성있게 잘 쓰셨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상처입지않게 사실주의 적으로 잘 정리하였네요.
저자가 수준있는 분이며
깊은 애정을 가지신 분으로 느껴 존경합니다.
북한사람의 중국체류의 비극적 운명을 한눈으로 보게해주셔
감사합니다.
알고 지내고 싶습니다.
leejnk@hanmail.net
서로 좋은것은 추구하고 서로 다른것은 남겨두자.. 는 중국의 한자성어가 있는데 .. 일단 탈북자 문데도 정치인들이 인식하는 단계에 까지는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탈북자가 한국이나 삼국으로 가지 않더라도 중국에서 정착만 할수 있는 여건만 허락한다면 모든면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리라 봅니다.
조선족들의 도움이 컸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그때는 정직한 사람들과 순수눗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죠
ㅜㅠ...초기에 잘만 했더라면 국가도 통제능력도 없었고 조금만 있으면 다 망하거나 나라가 문을 열수 있다는 (개방) 희망도 있었죠 처음으로 북한에서 개인상업이 시가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에겐 나라를 살릴수 있는 더 없는 기회였지요....하지만 국가는 해볕정책으로 탄력을 받고 중공과 협력하여 죄없는 탈북자들을 탄압하고 잡아들이고 국경은 단단히 봉쇄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