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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해제
Korea, Republic o 수전노 0 422 2010-01-16 17:03:20
무장해제      

“탄약 공급 수!
사수들에게 총탄 열두 발씩 나누어 줄 것!”
3소대장 이XX의 명령이다.
“알았습니다.”
명철이가 770발의 7.62미리 자동보총의 탄환이 담겨 있는 아연도 박스에서 알이 들어있는 쌈지들을 꺼내어 세 명의 사수들에게 열두 발씩 나누어 주었다.
나는 자동보총을 왼쪽 손에 쥐고 왼쪽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앉은 다음 명철이가 주는 탄알을 받아 30발배기 탄창 3개에 각각 네발 씩 맞추어 넣었다.
그런 다음 그 탄창들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나 재빠르게 총을 오른 어깨에 메었다.
“전사, 수전노 탄약 공급수로부터 탄알 열두 발을 넘겨받았습니다.”
내가 답변하는 같은 시기에 두 명의 사수들에게서도 똑같은 동작과 말이 울려나왔다.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수인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
가운데 선 영남이가 배워준 격식대로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소멸하라!. 소멸하라! 소멸하라!...”
나도 다 같이 세 번이나 목구멍이 아프도록 골짜기를 향해 소리 질렀다.
“사수는 앞 계선을 차지하고 나타나는 목표를 소멸하시오!”
소대장의 지시가 날아왔다.
“알았습니다.”
나는 눈이 5센티미터 정도 쌓인 산판을 10여 미터 정도 배밀이로 기어 참호에 도착하였다.
아침에 멀건 시라지 국에 쌀알이 실없이 불어 난 영양가가 하나도 없는 밀밥을 먹고 2시간 나마 이 지랄을 부리니 이제는 모든 것이 다 귀찮았다.
하늘에서 떡이라도 뚝 떨어지면 창피고 뭐고 한번 배 터지게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건만 2달째 계속되는 고된 훈련은 식은땀만 잔등에 용솟음치게 만들었다.
참호에 도착하면 25초 내에 탄창주머니에 있는 알이 배긴 탄창을 총에 끼워있는 빈탄창과 바꾸어 맞추고 3백 미터 앞의 가슴 형 과녁을 겨누고 있어야 하였다.
소대장이라는 녀석은 가벼운 권총을 하나 옆구리에 차고 범 잡은 포수마냥 뒤를 쫓아다니며 성가시게 굴었다.
“앞에 있는 가슴 형 과녁.
겨눔자 서이(3).
총탄 네 발.
겨눔 점 중심 중부, 단발 롯!”
-딸각, 딸각.-
자동보총의 안정장치를 여는 소리이다.
“전사 수전노, 사격준비 끝”
나의 입에서 뿜어지는 김이 차가운 자동보총의 약 통실 뚜껑에 물기를 발생시켰다.
나는 왼쪽 눈을 지그시 감고 오른 쪽 눈으로 과녁의 받침대를 겨눔 점의 중심에 맞추었다.
세 명의 사수들의 목소리가 다 들리고 25초의 시간이 지나자 과녁이 자기의 윤곽을 드러내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쐇!”
소대장이 들고 있던 오른 손의 빨간 깃발을 허공으로 그으며 개고함을 쳤다.
-탕, 타당, 탕....-
요란한 소리가 골짜기를 진감하며 나의 귀를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고 몹쓸 놈의 닭의 똥내가 코를 자극했다.
허약에 걸려 체중이 50킬로 그람으로 저하된 나에게 있어서 4.3킬로 그람의 자동보총을 하루도 아니고 몇 개월을 들고 다니며 쏘기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격이었다.
총도 무게가 뒷받침되어 안정된 자세에서 쏘아야 명중이 되겠는데 자그마한 겨울바람에도 몸이 뜨는 정도에 어떻게 총을 유지시킬 수가 있겠는가?
과녁을 미국 놈의 털가슴으로 또 그 괴뢰들인 남조선깡패들의 흉물스런 모양으로 그려보며 쏘면 잘 맞는다고 날마다 너스레를 떠는 장교들의 말대고 영화에서 보았던 미군 역을 한 배우의 모습을 그리며 쏴도 계속 낙제였다.
그렇다고 낙제를 맞으면 다시 쏘게 하고 또 계속 쏘게만 하니 생각 같아서는 총을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이 불뚝불뚝 솟구치곤 하였다.
“돌격준비!”
소대장의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의 뒷전에서 들리자 참호에 엎디어있던 나는 총창을 맞추었다.
“돌격 앞으로!”
소대장의 구령에 맞추어 그 다음은 만세를 부르며 골짜기로 뛰어 내려가야 하였다.
총도 자기 가슴과 배 앞으로 다 내 뻗어야 사고가 없단다.
그래서 그런 부동자세로 급경사를 질풍같이 달려 내려가고 다음은 길가에 서서 이백 미터 앞에 있는 움직이는 구보 형 과녁을 네 발로 쏘아야 하였다.
그때에도 총탄이 있는 탄창을 바꾸며 지랄을 부렸고 2차 사격이 끝나면 소대장의 돌격구령이 재삼 들려왔다.
우리는 맞은 켠 산으로 올라가다가 가장한 적 참호에 수류탄을 뿌리고 적 허수아비를 총창으로 찌른 다음 중턱까지 쇳 비린내를 풍기며 헐레벌떡 뛰어올라가서 3차사격인 무릎 형 과녁을 속사 사격으로 쏘아야 하였다.
아침 11시경이었는데 150미터 앞에 있는 과녁을 겨누려고 탄장주머니에서 마지막 탄창을 꺼내고 맞추려는 하는 순간 내가 선 곳에서부터 불과 2미터 근처에 있는 오른 쪽 구덩이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알록달록 색상의 삐라가 한 장 떨어져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도 신기하여 사격이고 뭐이고 일단 그 것을 오른 손으로 집어 보았는데 글쎄 얼마나 아름답고 예쁜 아가씨가 체감온도 영하20도를 오르내리는 동삼에 반나체의 모양으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지 심장이 다 멈춰서는 것 같았다.
나는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잠시 그 것을 넋 없이 들여다보고 있을러니 왼손에 쥐고 있는 총의 총창이 맥없이 산비탈에 아무렇게나 박혀있는 줄도 몰랐다.
“야, 이 새끼.
뭐하는 거이야?”
나의 이상한 동작을 눈여겨보던 소대장이 나의 손에 쥐어있는 삐라를 보더니 갑자기 안색이 붉어지고 이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그 것을 빼앗아 나의 앞에 집어버렸다.
“찔럿!”
그 소리에 나는 어리둥절하였다.
(이렇게 아름답고 연약한 아가씨를 이 차디찬 날카로운 쇠로 찌르란 말인가?
이거 정말 야만새끼 아니야?)
나는 본능적으로 소대장을 쳐다보았더니 눈까풀이 파르르 떨며 백지장의 몰골로 된 그가 글쎄 영화에서 보았던 미군으로 보이면서 머리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인마.
네가 저 기생오라비 같은 년을 죽이지 못하면 저 년이 너의 뒷 잔등에 비수를 박는다.
알갔나?
적을 죽이지 못하면 적에게 네가 죽어야 하는 것이 군인이다.
설사 네 앞에 나타난 적이 여자건 늙은이건 또 어린이라 할지라도 손에 잡은 총대가 흔들려서는 안 돼.
네 애비라도 너와 사상이 다르면 너는 애비의 가슴에도 총탄을 안겨야 하는 것이 우리 혁명군대의 군인정신이다.
알갔나?
식충이 같은 자식.”
끝내 그 녀석이 나의 총을 낚아채더니 그 아름다운 아가씨를 무자비하게 찌르고 발로 밟았다.
입에는 거품까지 물고 악을 쓰면서 마치 큰일이나 한 것처럼 날뛰었다.
나의 마음은 허전했다.
(생김새도 고향의 동창생여학생들과 똑같은 처녀를 저렇게 파리 잡듯이 한단 말인가?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그럴 것 같으면 내가 소대장 녀석이 몰래 삐라를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인데.)
나는 얼마나 아쉬웠는지 열 번 나마 후회하며 소대장을 미워했다.
(뭐,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아버지도 뜻이 다르면 죽여야 한다고.
에익, 망할 놈의 새끼.
개소리 치고 앉아있구먼.)
나는 소대장의 그 마지막 소리를 상기하니 기가 막혔다.
(이것이 공산주의라면 나는 싫다.
자기 형제도 부모도 모르는 공산주의는 내가 원하는 이상향이 아니다.
개XX.
전쟁만 일어나면 너 자식의 대갈통에다 먼저 깜장 총알을 안겨야겠다.
더러운 놈.)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소대장의 그 얼굴에 침이라도 콱 뱉고 싶었지만 그가 자기의 위세를 뽐내는 자랑거리로만 믿고 싶었고 또 최하층의 사병이라 참아야 하였다.
그날의 북한군 보병 6종 사격에서 내가 보았던 한국의 첫 삐라에 대한 소감은 그 후 나에게 많은 의문점을 던져주었다.
오전 훈련이 끝나고 점심 먹으려 모여선 오합지졸의 중대는 그래도 질서정연하게 대렬 합창을 부르며 대대식당으로 향하였다.
서슬 푸른 총창이 햇빛과 눈에 반사되며 맑은 거울처럼 번쩍번쩍 제법 윤기를 내고 있었다.

침략자 미제와 일제 발악할수록
철벽의 진을 치자 전우들이여
우리가 지켜선 조국의 방선은
남녘땅을 해방할 출발선이다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 기다리는
초소는 병사들의 돌격선이다.

......

모두가 먹지 못해 허약에 피부가 하얗게 노출되어도 대열과 목소리만은 사기가 충천하였다.
콧구멍으로 날아 들어오는 먼지를 속수무책으로 먹으며 대오를 따라가야 하는 지긋지긋한 이놈의 신세를 알아주는 삐라의 아가씨가 부르는 메시지가 멍든 가슴에 봄바람이 되어 산들산들 흘러들어오며 어쩐지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발생시켰다.
120여명이 큰 3개의 덩어리로 나뉘어 비포장도로로 흙먼지를 날리며 기운차게 지나가고 있는 그 무리 속에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병이 99%를 차지하고 소대장과 같은 악질들은 20명 안팎이었다.
백령도가 지척에 바라보이는 그 곳에서 나는 그 이후에도 많은 삐라를 보게 되었다.
북한에서 뿌린 삐라가 바람방향이 바뀌어 다시 우리 쪽에 떨어진 것을 보았는데 질적 면에서 한국의 삐라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영화배우 홍영희의 얼굴에 와 북한의 국가를 새겨 넣은 삐라는 쉽게 찢어지고 비가 한번 맞아도 색은 물론 형체조차 찾기가 힘이 드는 종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삐라는 아무리 손으로 찢으려고 해도 찢기지가 않았다.
1년이 지나도 그 색이나 내용이 그냥 그대로 유지되는 비결을 신기하였다.
깡패의 소굴이고 부익부의 빈부격차가 심한 썩고 병들고 헐벗고 굶주린다는 남한의 동해물과 백두산을 노래하는 애국가를 받아보고 놀랐고 페니실린보다 10배의 효능이 있는 새로운 항생제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보고 고도로 발전된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같은 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우리가 땀 흘리며 훈련한지도 이제는 3년의 세월의 지난 1990년3월 중순 어느 날,
황해북도 금천군 계정 리에서 평양-개성 고속도로 공사를 하던 나는 남쪽에서 날려 온 삐라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삐라 내용이 소련 어느 시의 원자력발전소가 폭파되어 그 곳에 한국의 고위인사들이 위문품을 전달하며 소련의 최고위급들과 악수를 하는 사진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소련으로 말하면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인 남아프리카남단의 케이프타운에 있는 희망봉처럼 북한의 모든 사람들이 사회주의 기치를 높이 추겨든 구세주로 늘 그려보던 강유력한 국방공업을 가진 강대한 나라가 아닌가?
미국과 당당히 맞서고 세계 그 누구도 감히 접어들지 못하는 소련의 자태를 녹여내는 남한의 외교술에 나는 놀랐다.
(장차 정세는 남한으로 기울고 있구나.
돌아보면 이 나라의 앞날이 갈수록 희미해지며 국력은 점점 쇠태해지고 무능한 간부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나 같은 무지렁이들은 그들의 수모와 멸시를 어쩌면 더 받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하면 할수록 남한이 적이라고 날마다 부르짖는 정치지도원이나 장교들의 말이나 강연이 믿고 싶지가 않았다.
마치 그들의 말은 조국과 인민을 지키는 수호천사인 군대가 동족을 적으로 간주하고 지어는 자기의 혈육도 뜻이 다르면 무자비하게 탄압하라는 야만들의 말로만 해석되었다.
그러니 돈만 들이밀면 고양의 뿔이라도 만들어주는 권세 있는 자들이 입이 아프도록 짖어대도 나의 귀에는 도무지 그들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출신성분과 상하간의 모순이 없는 조화로운 사회가 내가 그려보는 이상향이었는데 꿈으로만 느껴지니 왜서인지 한 숨만 나갔다.
천만년이 지나도 죽지 않을 신적존재로만 느껴지는 김 부자나 지고지상의 존재로만 알고 있던 조선노동당이 얄미웠다.
그들과 뜻을 같이 하려는 간부들이 미웠다.
결국 나의 총대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휘청대고 있었다.
더욱이 적색물자라고 하는 치약과 세숫비누를 몰래 건사하고 쓰는 중대장이나 소대장, 그리고 머리 큰 사관들의 행동을 보면서 저들도 나와는 별다른 생각차이가 없는 인간들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한 번은 내가 기구가 터지지 않아 그대로 떨어진 것을 주었는데 보위부에 바치라는 것을 어기고 기구의 비닐을 칼로 잘라 반나마 건사하였다가 같은 동료들과 서로 나누어 정치상학 노트에 씌워놓았더니 얼마나 깨끗하고 든든한지 2년 넘게 그 노트를 들고 다니었다.
남한의 좋은 비닐로 책표지를 멋있게 해놓고 그 속에는 온통 남한을 비방하는 문장들만 채워진 나의 정치상학노트는 이 나라 민족 분단이 낳은 이데 오르기의 상징이었다.
이렇게 한국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해소되니 고지위에 있는 포탄창고 근무를 서는 날이면 언제나 나는 총을 보초막에 벗어 기대여 놓고 그 곳에 허리를 대고 코를 골며 정신없이 자는 날이 매일이다 싶었다.
처음에는 승냥이 울부짖음이 그대로 들려오는 험한 산 정상에서 근무를 서는 것이 적보다 짐승 때문에 가슴을 조이며 긴장하게 근무를 섰으나 그 것도 날이 감에 따라 해이가 되니 모든 것이 다 귀찮게만 여겨졌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진 붉은 공산북한이라는 사회가 서서히 그 색이 바래져가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남한이 나 같은 무지렁이들의 든든한 후원자처럼 느껴졌다.
봄이 되어 눈이 녹으면 겨울을 이겨낸 위대한 생명력과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내는 완강한 힘을 가지고 구태여 누가 가꾸어주지 않아도 이 땅위에 자기의 아름다움을 활짝 펼쳐주는 조국의 진달래처럼 가냘프고 험난한 나의 삶을 폭군들의 기시와 전례 없는 사회악과 사품 치는 생활의 소용돌이들을 넘나들며 질경이처럼 악착같이 살아남아 그리운 조국의 반쪽 땅에 어떻게 하나 가고 싶은 충동을 점점 금할 수가 없었다.
나의 이 신념은 그 후 엄청난 절해고도에서도 꺾이지 않았으며 끝내는 이렇게 이 땅위에서 글을 쓰는 영광까지 안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지만 내가 살던 그 고향땅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변한 것이 있다면 돼지 같은 김일성이 죽고 악마 같은 그 자식의 새끼가 자기의 정권을 유지하려고 온갖 피비린내를 풍기며 도탄에 빠진 국민을 더 깊고 깊은 사지 판으로 밀어 넣은 것밖에 없다.
그리고 인류를 말살하려는 핵을 만들고 무지막지한 젊은이들에게 완전무장을 시키고 그 수를 백 수십만이 더 되게 만들어 언제 어디서든지 남한에 적화통일의 야망을 끝까지 실현하려는 발악밖에 없다.
그 회계한 놈이 지껄이는 사상의 무기, 계급의 무기, 통일의 무기인 지구촌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무장을 해제하는 것은 삐라밖에 없다.
독재자들에게는 두려움과 공포를 백성들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삐라야만이 우리민족의 최대숙원인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아닌가싶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빨간 사상을 씻어버리는 강한 세척제인 삐라는 그들의 손에 들고 있는 총의 총부리를 흔들게 하고 스스로 자기들의 삶과 희망을 향해 쓸 수 있게끔 하는 등대와 같다.
그 무지한 인간들이 이제 자기들의 삶을 위해 어떤 일을 치를 것인지 역사는 지켜볼 것이다.
그러니 삐라는 무장해제를 시키는 촉매와 같다.


(수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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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auty5 2010-01-16 19:52:14
    잘 읽어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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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비아 2010-01-16 20:29:19
    저도 잘 읽었습니다..
    전 포천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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