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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소녀의 탈북이야기(3)
Korea, Republic o 장현석 1 536 2010-02-27 12:02:30
총알이 당장이라도 뒤통수에 박힐 것 같은 두려움

2010년 02월 13일 (토) 23:58:03 뉴스코리아 qor829@naver.com


“엄마는 여기보다 훨씬 부유한 곳을 다녀왔어. 거기에는 이곳처럼 굶어서 죽어가는 아이들은 없어. 그리고 사람들은 일한 만큼의 보상도 받아. 공부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고 사실 너희들을 너무 데려가고 싶어서 왔어. 사실 오는 게 쉽진 않았거든. 엄마는 이곳에 목숨을 걸고 있는 거야. 갈지 안 갈지에 대해서는 후회 없이 잘 결정해.”

“...”

나는 사실 바로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말한 게 전부 사실이라면,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안쓰럽고 치열한 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었다. 엄마가 한 마디 더 덧붙이셨다.

“그리고 엄마는 이제 더 멀리로 갈 거야. 아마 방금 전 내가 얘기 해준 그곳보다도 훨씬 더 멀리 일거야. 지금 헤어진다면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못 만날 수도 있어.”

“따라가고 싶어요!”

엄마와 동행할 것을 어떻게 그리 쉽게 결정했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부질없는 것이다.
왜냐면 내가 결정하는 것에 엄마의 설명이 너무나 충분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게 새 아빠를 소개해 주셨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런 거로 고민에 빠질 때는 아닌 것 같았다.
1년 동안 행방불명되었던 엄마가 나타났으니 운이 안 좋으면 아는 사람과 마주치거나 신고를 당할 수도 있었다.

엄마에게 갈 때 보다는 바싹 긴장된 상태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동생만 챙기고 바로 집에서 나왔다.
우리 아빠는 아직 밖에서 혼자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빠에 대한 마음이 내 발목을 꽉 잡고 놔주질 않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나는 고향을 떠난다는 마음보다는, 감옥을 탈출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우리가족은 새 아빠 엄마 이모 남동생 그리고 나까지 5명이 되었다.
아직까지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관심이 없다.
엄마와 다시 헤어지게 될까봐 그게 제일 두려웠다.

엄마와 헤어져 있는 동안 느낀 죽음에 대한 위협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이었다.
고향에 대한 감정은, 가난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부모님을 따라 고향을 떠나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덤덤해 보였을 것에 틀림없다.
슬프거나, 힘들었거나 내게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상태였다.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걷고 또 걸어서 두만강 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만강 변에 도착해서야 나는 우리의 목적지가 중국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위험한 길이였지만 부모님 얼굴에는 나약하고 겁에 질린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난과 죽음에서 자식을 지켜내려는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의 마지막 각오만이 불타고 있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침착한 새 아빠의 목소리는 벌렁거리는 내 심장을 진정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만약에 두만강을 건너다가 체포된다면, 어쩌면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다시 슬픔이 마구 올라와 목구멍이 꽉 메는 것을 묵묵히 느꼈다. 머릿속 모든 세포와 조직이 엄청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거센 물살에 대한 두려움, 어린 동생에 대한 염려, 총알이 당장이라도 뒤통수에 박힐 것 같은 두려움, 어둡고 칙칙한 숲에서 총구가 나를 겨냥 하는 것 같은 두려움, 식구가 다 체포되어 사형되면 어떡할까에 대한 무시무시한 마음은 자꾸만 내 다리를 경직시켰고,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 돌아서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얗게 비추는 탐조등 아래에서 우리 가족은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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