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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신군부에 사형선고받고 감동의 법정 최후진술하는 김대중
Korea, Republic o 타는목마름 0 350 2010-03-20 04:31:27
◆한승헌 변호사가 떠올리는 감동의 김대중 법정 최후진술
...앞 부분 생략
1980년 5월17일 밤 군사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투쟁을 이끌어 오던 김대중이 계엄사 합동수사부 요원들에 의해 남산 지하실로 납치되 듯 끌려갔다.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민주진영의 여러 재야인사들이 속속 검거되어 고행(苦行)의 장정(長征)길로 들어섰다.

계엄사는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의 수사결과라는 것을 발표했고 남산 지하실에서 거의 두 달 동안이나 온갖 고문·협박 끝에 만들어 낸 시나리오에 따라 군법회의라는 ‘연출’을 시작했다. 전두환 등 소위 신군부의 정권탈취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김대중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때 나도 ‘조연급’으로 스카우트되어 함께 구금되고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그네들의 속셈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내란음모도 엄청난 범죄지만 그 죄명만으로는 사형을 선고할 수가 없으니까 김대중을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 구성 및 수괴로 얽어놓았던 것이다.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의 10월유신에 항거하여 귀국을 거부하고 미국과 일본에서 반유신운동을 펼치던 중 일본에서 한민통을 조직하고 그 의장 취임을 승낙하였다는 혐의였다. 이에 대하여 김씨는 한민통 결성 전에 일본에서 한국기관원들에게 납치되었으며 의장직 수락도 한 일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한민통이 반국가단체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았다.


첫 공판이 열린 것은 그 해 8월14일이었다. 육군본부 법정 안은 살기마저 감돌았다. 김대중에 대한 공소장 낭독만도 오전 8시부터 시작하여 1시간27분이 걸렸다. 오후에 속개된 공판에서 나머지 23명의 공소사실 낭독은 5시간 만에 끝났다. 하루 종일 공소장 낭독만 한 셈이다.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범죄 혐의를 부인했다(고문 결과인지 몰라도 한두 사람이 사실과 다른 묘한 말을 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심판관들에게 언성을 높이며 역습을 하기도 했다. 9월11일에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관은 김대중에 대하여 사형을 구형했다. 그 다음 날에 피고인들의 최후진술이 있었다.

김대중의 최후진술은 9월13일에 열린 19차 공판에서 있었다. 원고도 없이 장장 두 시간에 걸쳐 감동적인 발언이 계속됐다. 한 신문은 “마치 유언을 하듯 비장하면서도 담담하게 이어지는 김씨의 최후 진술은 법정을 완전히 압도하였다”고 썼다. 그 두 시간 동안 재판부도 제지하지 않았다. 숙엄한 분위기에서 간혹 방청석의 흐느낌만 들릴 뿐 김대중의 최후 진술만이 또랑또랑하게 울려나갔다. 그 진술은 경외감을 넘어서고 있었다.

김대중의 감동적인 진술에 모두 넋이 나간 듯 했다. 문익환목사 이문영교수 예춘호 고은태시인 김상현의원 한완상교수 송건호기자 유인호교수 서남동목사 이호철 이택돈과 청년학생들인 이해찬 이신범 조성우 이석표 송기원 설훈 심재철 등의 피고인들 조차 그 역사적 현장에 두려움 마저 거두는 진술이었다.

“나는 그저께 구형을 받았을 때 의외로 차분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날은 평소보다 더 잘 잤습니다. 나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면 이 재판부를 통해 나를 죽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나를 살릴 것이라고 믿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더라도 국민들의 손에 의해 민주주의가 살아날 것을 확신합니다. 이번에 다시 구속돼 성경을 읽고 더 한층 하느님께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이해합니다.”

끝으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여기 앉아 계신 피고인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약 두 시간에 걸친 유언 같은 최후진술이 끝나자 방청석의 가족들이 모두 일어나 민주주의 만세, 김대중 만세를 외쳤고, “오, 자유여…”로 시작된 ‘민권의 노래’를 불렀다. 사흘 뒤인 9월17일 아침 10시, 군법회의 재판장 문응식 소장의 입에서는 (우리가 걱정했던 대로) “피고인 김대중, 사형”이란 말이 떨어졌다.


참고 : 김대중 평전(김삼웅),
5.17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진실과 역사적의의(이만렬교수)
인용 : 디제이로드 http://www.djroad.com/
원본 : 일요신문 바로가기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0&articleId=5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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