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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12)
Korea, Republic o 장현석 2 433 2010-04-07 02:27:08
- 주인아저씨가 조사를 받다가 힘들어서 우리가 있는 곳을 알려준 줄로 알았다.

2010년 04월 05일 (월) 19:39:52 뉴스코리아 webmaster@newskorea.info


처음에는 그나마 친절하셨던 주인들은 점 점 더 많은 것들을 원했고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다.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언덕 아래로 자동차 소리가 난 데 없이 났다.

혹시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손발이 오그라들고, 다리가 꼬여서 어디로 도망갈 수조차 없었다. 매일 매일 잘 숨어 살았는데 이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주인아저씨가 밭쪽을 향해 ‘얼른 도망쳐!’ 하고 급하게 소리치셨다. 우리는 온 몸의 힘을 다해 산속으로 흩어졌다.

언덕아래에서 멀게 들리던 자동차 소리는 어느새 아주 가깝게 들렸다. 오후 5시쯤 이여서 어슬어슬했다.

나는 벌써부터 잔뜩 겁을 먹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뛰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고 지저분하게 흘러내렸다. 왜 그렇게 두렵고 떨리는지...잠시 후 언덕위로 올라와 집에 도착한 듯한 자동차 소리는 잠시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들리는 중국말들...우리는 한 30분 이상을 숨을 죽이고 숲에 숨어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저씨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 우리 이름을 불렀다. 공안대의 조사를 다 받으시고 다 보내드린 후 이젠 내려와도 된다고 데리러 오신 것이다.

이젠 말 할 수 있지만, 사실 그때 나는 그 주인아저씨가 조사를 받다가 힘들어서 우리가 있는 곳을 알려준 줄로 알았다.

그래서 ‘내려와도 된다’ 고 했지만, 자꾸만 걸음이 무거웠었다. 물론 내려가 보니 공안대는 다 돌아갔고 집안 구석구석은 물 뿌린 듯 조용했다. 밖에서 같이 겁을 먹은 듯한 송아지의 어색한 울음소리만 요란했었다.

그날 밤부터 우리는 방에서 자지 못했다. 나랑 동생이랑 이모는 주인아저씨의 잘 쓰지 않는 작은 방 창고 같은 곳에서 잤고, 엄마와 새 아빠는 관이 두 개 들어갈 정도로 보이는 겨울철 배추 저장 굴에서 주무시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면 엄마와 아빠는 추위를 견디려고 이것저것 많이 껴입으시고 집 옆 산기슭에 만들어 놓은 배추 저장 굴로 가신다.

그때 그게 왜 그리 싫은지...마치도 내일 아침이면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예감까지 들었었다.

다행이도 엄마와 새 아빠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이면 집에 다시 돌아왔지만, 저녁때마다 나는 그 다음날의 아침을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힘들게 일하고 나면 저녁시간이 기다려지지만, 저녁이 되면 엄마와 새 아빠가 밖에서 주무신다고 생각하니 어느 순간부터 저녁이 오는 게 싫었다.

계속 그렇게 지낼 수는 없었다. 점점 추워지고 있고 추수도 끝나가고 겨울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할 일도 없어질 텐데 무슨 이유로 주인집의 신세를 질수 있을까..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제 옥수수 추수며 해바라기 탈곡, 콩 탈곡, 배추 무 다듬는 일까지 거의 끝났을 무렵..주인아저씨는 더 이상 우리 가족을 위험을 감수하며 데리고 있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고 얘기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이제 우린 몇 일 이내로 이곳을 떠나 정말 생소한 길을 걷게 될 것이고, 주인아저씨에게서 받은 200위엔이 가족의 차비로 전부였다.

벌써부터 떠날 것을 마음속으로 준비하는 우리 가족의 얼굴은 며칠간 계속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일이나 모레쯤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왕청에서 오셨다는 주인아저씨의 지인이 오셨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아저씨로부터 우리 가족의 얘기를 들은 지인아저씨는 왕청에는 일자리도 많아서 먹고 사는데 문제없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아저씨 댁은 자기가 혼자 살아서 빈방도 있으니 원한다면 동행하자고 제안하셨다. 가서 일자리도 소개시켜주고 집에서 무료로 숙박하게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정말 하늘이 돕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꿈을 꾸는 것인지는 잘 몰랐으나 우리에게는 너무나 다행이었다. 며칠간 어두웠던 얼굴들에 화색이 돌고, 말이 없던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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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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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현자유 2010-04-09 02:03:15
    글을 대하니...너무 반갑고 좋은데....가슴이...너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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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조천안함 2010-04-15 11:19:52
    이런 수기를 읽으면 과연 저런일들이 진짜인지 하는 생각이듭니다.
    너무 고생하시고 힘든 우리 동포들이 너무 가엽고 안타깝네요.
    북한도 이제 변해야 할듯하네요. 빨리 통일이되어서 다들 행복하게 살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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