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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박지원은 이런놈입니다. | 노노데모 자유게시판 30 / 2010.05.13 14:45 녹차러버(cherubwoo) 대한민국국민 http://cafe.naver.com/nonodemo/184761 예전에 우리 카페에 올라왔던 글입니다. 박지원은 이런놈입니다. 교활한 놈... 입에 담기도 더러운 인간. 박지원, 동거애인 처치위해 살인 청부업자 2번 보내 동거 애인, 인기스타 최정민씨 진정서에서 진상공개 70년대 최고 히트 드라마 아씨에서 기생 홍도역을 맡으며 당시 남성팬들의 폭발적 관심을 끌었던 젊은날의 최정민씨. 사진은 그녀의 출연작 영화 (변장호 감독, 신성일 최정민등 주연) 중 한장면. 최씨의 기사, 사진은 여기 엄청 많이 있군요. http://tong.nate.com/coreacinema/40415141 이하 당시 언론에 보도된 최정민씨 진정서 “저는 힘이 연약한 홀로 사는 한 여성입니다. 단지 평범한 여자가 되지 못하고 세상에 제 이름이 알려질까 두려워서 이글을 진작 올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과거에 유명 연예인 이였습니다. 제가 미국에 1977년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N.Y. 한인회 회장이였던 박지원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1978년경) 그분과 동거를 하면서 저희는 양가 가족들의 후원 받으면서 지낼수 있을 정도로 그분은 저를 사랑했습니다. 한데 몇 년이 흐른 후 그의 가정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부인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저는 헤어질 것을 결심한 후 다른 사람과 선을 보도록 권유를 받고 선을 봤습니다. 박지원 청부 살인업자 보내 최여인 죽이도록 교사하기도 그 사실을 알게 된 박지원씨는 사람을 시켜 청부 살인을 하려고 계획하고 어느 날 9시경 내가 경영하는 스타꽃집에 괴한 최모씨가 들어 왔습니다. 살인 청부업자인 최모씨는 가게 문을 걸게 만든 후 총을 들이 대며 죽인다고 말하고 지하실로 끌고 내려가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차라리 나를 먼저 죽이고 딸을 데려 가라”고 최씨에게 애원하며 호소하며 매달렸습니다. 그러니까 엄마의 호소에 최씨는 우리 모녀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고 엄마의 모습에 감동되어 저의 목숨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 후 그 청부 업자는 또 다시 박지원부인의 부탁을 받고 저를 또 다시 처치해야 되는 처지가 되어 (2천불) 저의 가게로 왔으나 그때도 제 약한 처지를 깊히 알고 동정을 하게 되어서 오히려 우리 모녀를 보호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지만 저는 늘 불안 속에서 공포에 질려서 박지원씨의 노예 마냥 끌려가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정민 서울로 도망, 탈출 했는데 박지원 다시 찾아와서 성폭행 동거 당시 LA코리아나 뉴스에 보도된 최정민 씨의 자필 편지 그러다가 85년 말 한국에서 영화 출연교섭이 와서 저는 그와 헤어질 수 있는 기회라고 한국에 나와 삼촌 집에 거처하고 그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박지원은 자신이 꿈꾸던 정치의 길이 보이자 나를 과감히 버리고 그 길을 택하려고 저가 급히 하던 모든 작품을 중단시키고 미국으로 들어가서 뉴욕서 멀리 떨어진 서부 쪽으로 이사를 보냈습니다. 저를 설득해서 아무런 위자료 없이 헤어지지 않은 것처럼 위장해 저를 동부 쪽에서 서부로 쫓아냈습니다. 못난 저는 매일 매일 찾아 줄 것을 기다리며 차 사고를 내는 엄청난 시련을 겪으며 그를 기다렸지만 매정하게 버림을 받고 저는 세월이 흘러 88년경에 N.Y.에 다시 가서 까페를 경영 했는데 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1996년 4월 10일 부천신문에 보도된 최여인에 대한 증언기사를 보자. “증언에 따르면 박 대변인은 77년부터 미국에서 동거하던 C씨와 85년 말경에 헤어 졌다가 88년 국회의원 도전에 실패로 돌아간 후 다시 가끔 만났지만 89년 박 대변인이 한국으로 완전 귀국함에 따라 완전히 헤어 졌다는 것이다. ▲ 영화 '미워도 다시한번'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최정민 씨와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편지 하지만 박 대변인은 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ㅊ씨가 한국에 온 것을 알고는 ㅊ씨가 살던 서울 송파구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단지의 한적한 곳에 소나타 승용차를 대놓고 ㅊ씨를 불러낸 뒤 운전기사를 차 밖으로 나가게 하고 차 뒤 좌석에서 ㅊ씨를 강제로 성폭행 SEX를 했다는 것이다. 또한 ㅊ씨가 반항하다 더 이상 견디다 못해 성폭행을 당한 뒤에 박 대변인에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자 박 대변인은 오히려 큰 소리치며 반문 했다는 것이다. ㅊ씨 측근은 기자에게“박 대변인은 국회의원 배지를 상당히 경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 후 ㅊ씨는 정신적 충격을 받아 3년 동안 어느 선교회에서 집사로 일하며 살아왔고 박 대변인으로부터 위자료로 3억원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증언했다.”고 보도 했다. 이기사의 보도 때문 이였는지 선거 중반 까지 우세했던 박후보는 선거에서 실패 했으며 당시 언론들은 “박지원후보가 낙선된 것은 불법 유인물과 불법 유인물을 보도한 언론 때문인 것 같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부천신문 취재팀에게 증언을 해준 ㅊ씨의 친척은 ㅊ 여인이 쓴 진정서 가운데 중요한 몇 부분을 빠뜨리고 증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70년대 인기스타 최정민씨 아시아 영화제 주연 여배우 상 받아 그러면 문제의 ㅊ여인은 누구인가? 그는 지난 70년대 안방극장 TV와 영화 스크린에서 인기절정을 누리던 스타 최정민씨. 당시를 살아온 지금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사극의 여왕으로 까지 불리던 여배우였다. 그런 인기 스타가 1977년경 어느 날 갑자기 TV와 스크린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당시에는 “미국 교포에게 시집을 갔다”하는 소리와 함께 당시 초년생 가수였던 T모씨와 스캔들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최씨는 지난 1971년 당시 19살의 나이로 TBC TV 8기생으로 합격 브라운관에 얼굴을 선보였다. 그녀는 데뷔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TV 연속극 사상 최대의 시청률을 올린 인기 드라마 ‘아씨’에서 기생 홍도역을 맡아 남성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그녀의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 오르고 있었다. 30여 편의 드라마에서 주연을 한 그녀는 영화배우로 전환 ‘사랑의 학교’ ‘마부’등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73년 영화 ‘미워도 다시한번’은 한국 영화사상 최대 히트 작품을 만들어 냈다. 50여 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그녀는 76년 ‘이 밤이여 영원히’로 아시아 영화제에서 주연 여우상을 받을 정도로 튼튼한 인기 있는 여배우였다. 그녀가 77년 별 다른 큰 말썽도 없이 스크린에서 사라 졌는데 그녀의 측근들에 의하면 “인기 있을 때 은퇴해야 한다”는 주변 어른들의 충고에 따라 라스베가스에서 꽃집을 경영하는 이모 초청으로 미국 여행길에 올랐다고 한다. 라스베가스에서 뉴욕으로 박지원 만나 비밀 동거생활 최씨의 어머니 증언에 의하면 어머니가 서울에서 꽃꽂이 작가로 활동 하였기 때문에 최정민은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하고 꽃집 경영을 바랬다고 한다. 그래서 라스베가스 이모 꽃가게에서 머물며 기술을 익힌 후 뉴욕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때 박지원을 만난 것으로 확인 됐다. 당시 박지원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가발 장사를 하고 있었으며 돈을 잘 번 젊은 사업가로 한인회 회장으로 활동 하고 있었다. 여기서 부터는 최여인의 진정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자. 그래야 더욱 진실감이 있고 실감이 나기 때문이다. (이하 최여인 진정서 - 위에 수록) 최여인의 진정서는 여기서 끝났다. 그러나 박지원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간 탓인지? 아니면 사랑의 힘에 노예가 됐던지 최여인은 박지원과 다시 만나며 서울 친척집에 머물고 있었으나 결국 박지원의 배신에 치를 떨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불러내어 자동차 안에서 반 강제적으로 CAR SEX를 당한 후 “박지원이 같은 인물이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매몰진 마음으로 진정서를 써서 선거 때 뿌렸던 것이다. 박지원 최여인 죽이겠다고 혈안, 박지원 친척이 나서 최여인 미국보내 박지원은 선거에서 낙선 한 후 정신병자 같이 행동했다. 최여인을 죽이겠다는 말을 하고 다녀 생명의 위험을 느낀 최여인은 다시미국으로 도망쳤다. 그때 박지원의 고종 사촌 형이 되는 사람이 여러 가지로 위로를 했다고 한다.미국으로 탈출한 최여인은 샌디아고에 숨어서 미장원을 경영 하다가 98년부터 스타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 평양을 방문한 박지원이 북한 미술가 협회를 방문,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그런데 최근 언론인들에게 노출되어 박지원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서 다른 지역으로 피신한 것으로 측근 가족들이 말했다. 또 “결혼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언론에 보도 되면 안 된다”고 가족들이 언론 보도를 한사코 만류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와 최여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그리고 박지원이 공직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박지원의 마수와 같은 더 나쁜 몇 가지는 보도 하지 않고 자제해 왔었다. 그러나 이제 최여인이 결심을 하고 새로운 인생 출발을 준비 하고 있으며 박지원이 공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그의 정체를 모두 드러내 국민들에게 알려 줌으로써 김대중 대통령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 나라를 망쳤는가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계속) 2007년 12월22일 10:24분 09초 손충무 발행인의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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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한텐 어떨지 몰라도 나한텐 남북통일이 제일 먼저다...
통일을 하기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건 진실이야...
노선이 틀려 탈북자들 무척 불편해 함. 통일 반대가 목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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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은 황색신문(지하철 가판대 신문)사에 이를 알려 주어 기사화 한다.
2. 기사화가 되면 이를 받아서 메이져 신문사들이 가쉽으로 기사화 한다.
득달같이 쪼로록 나타나서 먹물뿌리는구나. 빨빨빨 민쥐
피해의식에 쩔어가지구... 등신같은 ㅅㄲ
이곳에서 빨갱이나 좌파따위나 나불거리는 자들이 북한주민에 대한 어려움과 그들을 사랑할수있는 마음이 가능할것 같냐는거다. 내주위에 있는 이웃조차도 사랑할줄 모르는자들이 우리와 다른 사회에서 살아온 북한주민은 사랑한다? 까는소리 하지말라그래.하나를 보면 열을 알수가있는거야. 오로지하나 정권욕 거기에 빌붙어 썩은 고기나 찾고 다니는 하이에나같은 무리들
이 철없는 인간들이 제 정신을 차리는 날 북괴도 정신차리고 남한도 제대로 된다. 아직은 개한민국 취급을 할 수밖에 없다. 탈북자들이나 중공, 러시아가 볼 때도 모자란 나라로밖에 느껴지질 않는다. 서방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수준 낮은 띨띨한 나라로.... 질서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것들이 자유, 다양성 떠들면 민쥐라고 껄껄~~~ 가소롭다
비자 면제 덕택에 한국으로부터 불법 체류자들 계속 증가중임.
아니 미국이 그토록 싫어서 반미하는 좌빨 놈들이 미국엔 왜 오는지 몰라.
198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교포들 중엔 정말 좌빨 쓰레기들이 없는 청정지역이였는데..
근래들어 대량 유입되어 교포사회 물 흐리는 불체 좌빨 쓰레기들.. 정말 골 아파!!
자본주의 원조나라들보다 더 심함. 위대한 성취에 존경과 경외심을 가졌다가 좆불시위 같은 것을 보면서 완전 유치원 수준의 나라, 웬만하면 만만하게 봐도 되는 나라로 생각하게 됐음. 정말 시시한 우습게 생각해도 되는 나라가 개한민국임.
경찰도 군인도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됨. 빌빌하니깐.... 데모 맘대로 하고 법 어겨도 찔찔대며 인권, 자유 행복추구권 어쩌고 대고 들면 공무원들도 슬슬 빠짐. 세계에 이렇게 꺼벙한 나라는 없다.
처음엔 대단한 줄 알고 조심스럽게 대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한국 생활 2년정도만 하면 정말 불법과 깽판부리기 낙원이 개한민국임.
이걸 요즘은 외국 근로자들도 잘 알고 많이 기어들어오고 있음.
그런데 원래부터 그랬는가? 야그들 들어보니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엄격한 질서와 체계가 나름대로 잡혀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 사망 후 노태우 때부터 약화되다 문민 떨거지들이 등장하면서, 특히 슨상과 놈년의 빠 부대들이 등장하면서 개판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밑바닥부터 붕괴시킨 장본인들인데도 지금도 지들이 잘났다고 떠들며 대한민국을 침몰시키려고 온갖 획책을 다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개한민국으로, 아님 개정일의 적화통일의 전리품으로 바치려고 작정한 놈들처럼 보임. 절대 대한민국에 도움은 안되고 개정일에게 도움이 되는 일만을 골라서 하고 있기 때문임.
이들 민쥐들을 우리는 대한민국의 반역세력으로 단죄해야 한다. 분명코 역사에 책임도 지워야 할 것이다. 특히 슨상교는 한번 빠지면 죽을 때까지 헤어나오지 못한다. 북괴의 주체사상, 바퀴벌레보다 더 끈질기고 질긴 것이 슨상교도들의 조직력과 응집력이다.
노빨들이야 금방 해체되고 말지만 이 슨상교도는 다르다. 종교성과 지역성이 결합돼 어떤 사이비 종교보다 더 태생적으로 한 인간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장악한다. 이 종교에서 교주 슨상님은 북괴의 개일성 수준으로 보면 된다. 한번 신도는 영원한 신도. 이것이 바로 슨상교의 정체다. 슨상의 유훈을 지키기 위해선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부터 밑바닥 인생까지 그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다.
서울에 정체를 안 밝혀서 그렇지 슨상 떨거지들 굉징히 많음. 특정 지역이나 슨상 잘못 야그했다 싸움 벌어지는 것 수없이 많이 봤음. 다른 지역이나 보통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했음.
그러나 배울 점은 있었다. 바로 단합심, 부지런함. 눈치 등은 정말 짱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끝난다는 점만 빼면.......
부처님 손 안에 넣고 가지고 놀면 될 정도로 이 나라는 장남감 수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