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은 이런 사람 |
---|
우리는 매일 목숨 건 전투를 했다. 지하 700~1200미터에 있는 독일 광산의 막장 온도는 30도가 넘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하는 이곳에서 안전을 위해 "중무장"을 한 채 매일 80개의 쇠동발을 박아야 했다.그러나 너무 더워 윗옷을 다 벗거나 아예 속옷만 입고 일하는게 다반사였다. 땀에 젖은 팬티를 하루 다섯 번 이상 짜서 입어야 했고,장화는 땀으로 젖어 열 번 이상 쏟아 내야 했다. 1963년 이런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데 46000명이 몰렸다.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적쟎았다.그만큼 우리는 먹고 살기 힘들었다.독일 루르탄전에 소재한 뒤스부르크시 함보른 광산.오버 하우젠시의 로이벡 광산.지금은 주변에 철조망이 쳐진 채 잡초만 무성하지만 바로 그 땅 밑 100미터 아래 막장에서 45년여 전 우리의 광부들이 1미터를 파 들어 갈때마다 4~5마르크씩 받으며 일했다. 쇠동발을 뽑고 세우는 작업을 하는 한국인 광부치고 이 쇠동발을 붙들고 울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찌는 듯한 더위와 석탄가루,채굴기의 소름은 귀청을 찢었지만 그들은 버텼다. 악으로! 독일 땅에 도착한 한국 간호사들이 처음 맡았던 일은 알코올 묻힌 거즈로 시체를 닦는 일과 그 밖의 허드렛일이였다.하지만 불평하지 않았다.그들은 66년 1월 기준으로 월(440 마르크)약 110달러를 받았다.거기서 최소한의 생계비를 제외한 거의 전부를 고국으로 송금했다.63~78년까지 독일로 건너 간 한국 광부들은 7800여명.66~76년에 걸쳐 독일로 간 한국 간호사는 10030여 명이 넘었다. 이들의 최고 송금액은 연간 5000만 달러로,한 때 국민총생산액의 2%에달했다.그들의 땀과 눈물 젖은 송금액이 경부고속도로.제철소.화학공장 건설의 종잣돈이 됐고 오늘의 우리가 있게 만들었다. 46년 전인 64년 12월 10일.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전 여사는 뒤스부르크시 함보른 광산의 공회당을 찾았다.지금은 시민체육관으로 쓰이는 곳에 파독 광부와 간호사 350여 명이 모여 있었다.얼굴과 작업복에 탄가루가 묻은 채로 달려온 광부들도 눈에 띄었다. 대통령이 단상에 오르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하지만 가사가 나오지 않자 대통령의 선창으로 모두가 함께 불렀다."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점차 커지던 애국가 소리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목부터는 목멘 소리로 변했고,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에 이르러서는 울음소리가 애국가의 선율을 덮어 버렸다. 눈물범벅이 된 애국가 제창이 끝난 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공회당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박정희 대통령은 준비된 연설 원고를 옆으로 치운 채 말했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하겠읍니다. 반드시 정말 반드시..."떨리는 목소리로 계속되던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본인도 울어 버렸기 때문이다.공회당 안은 "눈물바다"가 됐다.모두가 울었다. 세계 경제 대국 13위의 대한민국! 원조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가 됐고,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거저 이뤄진 나라가 아님을, "위대하고 존경하는 박정희 대통령은 7000만 민족과 후손에게 약속을 지켰습니다." [북한자유연맹]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요즘 이런 감동들은 느껴보기 힘드네요.
왜?
설마 요즘은 감동적 사건이 없어서 이겟읍니까?
원전 수주, 고속철 수주 (아직은 미확정), 우리 기업들의 세계적 성공 사례,
중소기업의 성공 사례 등등.....
너무나 많지만 소개를 전혀 해주지 않는 전라도 방송,
감동적인 기사 거리를 발로 뛰어 취재않는 거만한 전라도 방송들
조금이라도 좋은 소식은 민주당에 유리할 거 없지요.
어찌 뉴스 진행도 그들
워싱턴 특파원도 그들
유럽 특파원도 그들
여기도 그들
저기도 그들.
누구한테 어느 편에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떠나 나라를 위한 방송을 해준다면
그들만이 열명중에 7,8명이라도 참고 살겠읍니다.
많은 국민들이 이런 문젤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한 그들은 바뀌지 않읍니다.
언제 그들이 햇볕정책의 99%는 성공이다. 단지 1%는 잘못됐다라는 말이라도
하는걸 보신분이 있읍니까?
어떻게 10년 동안 방송국 입사 면접에서 차장 국장 이사 사장 등이 눈을 감고
인사 채용을 해도 이렇게 특정 지역인들만을 뽑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
그만 쓸랍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아무 것도 없이 가난한 나라의 유일한 탈출구로써 인력송출뿐이었다.
오늘의 한국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 당시 박정희 같은 지도자 있었으면 어디 한 번 야그해보렴... 엉? 그럼 내가 슨상교 말도 믿어주마/~
.........................................
분명 박정희는 독재자입니다 하지만 나라를 발전시킨 공은 엄청 큼니다.
중국 덩샤오핑인가 하는 사람이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하얀 고양이면 어떻냐 인민이 배불리 먹고 살면 그만이라고 하면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잘사는 중국이 탄생했습니다. 즉 박정희 대톨령도 정치적으로 검은 고양이일수 있지만 국민을 배불리만든 영웅임에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사람이면 박정희 대통령을 미워해서는 절대 안됨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화폐엔 모택동이 등장한다. 왜일까?
모택동을 부정하면, 지금 중국의 60대이상이 아직도 붙들고 있는 공산당이 무너지니까...
지금,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의 영웅이십니다."란 현수막이 가끔씩 우리의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이상한 보수단체와 권력과 집권야욕에 불타오른 그들은 또한 그 현수막에 열광하며 눈물을 짓는다.
조선일보 또한 이에 발맞춰, 북한과의 대립구도와 이념적인 공세와 더불어 박정희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기사 세팅에점점 몰두하는 추세다.
마지막으로, 노인정권에게 박정희를 밀어붙여야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적 타겟은 그처럼,
젊은 유권자를 노리기 보다는,
6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목을 매고 있다. 왜? 그들없이는 이제 재집권이 불가능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박정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야 이유를 알겠어? 중국이 모택동을 버리지못하는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