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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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찬풍이 내리불어 풍선보내기 매우 불리하여 시간이 나네요. 기회로 나의 이력을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있어 인사겸 올립니다. 로씨야 벌목 갔다 왔다?! 아닙니다. 중국으로 탈북(1990년),체포북송후 재탈북(1991년) 중국1년표류 후 로씨야국경4일간 강따라 넘어(이길로 차후 탈북청년도 탈북시킴), 우쑤리스크에서 하바롭스크, 모스크바 감.1994년 탈북자로서 유엔난민1호등록후 1995년서울도착, 북한에서 뭘했나?! 김책공대반도체학부갔다 쌀은 공산주의라는 수령의 교시 받들어 순천농업전문, 남포농업대학 졸, 대학연구소연구원 후, 국가과학원으로 이동 연구원하다 식량해결방법 비교시험, 개인농하면 집단농보다 5배이상 난다는 것 중앙당1호편지 보냈는데 오히려<이색분자>라는데 어버이 인민수령님이 매우 의심스럽던 중 남한삐라 보는 계기로 탈북결심. 삐라의 중요성을 직접경험한자로서 폐쇄가특징인 북한과의 대응에서 최선의 전략이 페쇄를 뚫기전에는 백약이 무효라는 신념하에 자유롭게 뚫는 풍선개발하게됨. 좌파정권이 김정일요구로 2000년4월부터 대북전단방송중단조취에 도전받아 연구시작. 초기고무풍선으로 삐라 한장씩 달아보내다가 한번에 6만장 날리는 대형비닐풍선개발시작 2005년7월완성,다름달8월부터 북한의 풍선항의 지금까지35차례집계. 왜 본명을 공개하나? 무엇보다 나자신을 견제하기 위해서. 북한에서 굳어진 나쁜습성, 즉 매사 부정적이고 남 헐뜻는(호상비판습성) 나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서. 본명을 쓰면 매우 심사숙고, 남을 함부로 비평하기 힘들어. 될 수록 만사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쓰고 남을 칭찬하는 습성을 키우려 애쓰지만... 신학대학원을 6년졸, 목사하라고 재촉 하지만 나자신을 내가 가장 잘 알기에 목사는 못 된다고 사양. 현재 미국LA충현선교교회 파송북한선교사로 부족한대로 할 수있는 것은 대북운동을 조용히 하고 있음. 애정어린 여러분의 지지를 기원하면서- 최북단 백령도에서 구정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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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보낸 삐라를 봐 왔었는데 별 느낌은 없더라구요,,,반대로 남에서 보낸 삐라는 북한 주민들에게 잘못된 현실을 일깨우는데 중요한 것이군요....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땅이 생활총화가 잇습니까 사상투쟁이 잇습니까 자기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만들어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차 변질될 충분한 여건이 잇다고 생각합니다
해삼 전복 문어 멍게 같은건 지구는 못가도 실컷 먹구는 갈것입니다
나중 통일한국에서는 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오직 당신이 유일하게..북한사람들에게 희망을 줄수가 있으니까요...
저는 탈북자 인식에 좋은 평가을 안하는사람입니다 .
중국에서 많은 조선족들 을 만나 친분도 가져봣고 한국사람으로써 내조국에 긍지을 가지며 최대한 베풀면서 타국 생활에 살고있습니다
조선족들을 수없이 만나다보니 그속에 많은 탈북자들이 조선족 위장을 하면서 살아가는 탈북자들도 수없이 만나본사람입니다 .
탈북자들은 중국에서 생활은 긴장속에서 삶을 살아가고있는게 현실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많은 탈북자들을 도왔으며 그사람들 안전을 위해 나름대로 정보도 들려주면서 가까이 했지만 항상 마지막엔 뒷통수을 얻어맞곤 했습니다 .
저는 조선족보다 더 무서운게 탈북자라고 생각합니다
탈동회 에 글을 올리는 탈북자들 중에서도 인격도없이 자기쓴글에 반박에 글이보이면 이해보다는 거침없이 욕썰부터 시작하는게 탈북자들입니다
한국사람들이 처음에 탈동회 에 호기심을 갖고 관심의 갖고들어오지만 얼마 지나면 실망을 안고 탈동회을 모두 떠나고맙니다.
탈북자 여러분 왜 사람들이 탈동회을 떠나는지 모르십니까?
여러분들이 글을 쓴걸 한번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반박에 글은 어김없이 욕으로 보답하는게 바로 탈북자들입니다
지금 이글을 읽으면 또비판보다는 똥뙤넘이니 어쩌니 하면서 욕으로 도배들을 할겁니다
한국사람이 쓴글인지 조선족이 쓴글인지 분간은 안하고 태극기만 보고 판단 직격탄을 날리는 사람들 자중하기바랍니다.
한가지 부탁이 있다면 중국에 은든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공안이나 북한 보위부에 신고나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럼 하고자 하는 사업에서 새로운 건투를 비나이다.
네가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든 나쁘든 우리는 개이치 않는다.
누구의 눈치를 보고 또 누구의 비위를 맞추는것이 우리 탈북자들이 아니다.
깔깔깔아. 네 개다리수준에 무슨 탈북자들을 도와 주었겠냐? 무서워서 피하지 않았으면 다행일것이다.
그리고 탈동회에 올리는 글에는 탈북자들이 거침없이 욕설한다고 했는데 북한을 체험한 우리들에게 재수없이 북한에 대하여 설교하려니 그걸 그냥 읽고만 갈수가 없는것이다.
너도 한국사람이라니 대한민국에 너같은 바보가 있다는것이 유감이구나.
너희들이 탈동회에 관심이 없어도 된다. 사이트 자체가 탈동회다. 그러니 당연한거 아니겠어?
너같은 병신이 조선족과 친분관계를 맺었다니 그래도 다행이다 . 비굴하게 사는 네 모습이 처량하게만 생각한다.
병신아! 네 이 사이트에 다른 이름으로 들어와 북한 독재자 정일이를 욕 해보라 그글에도 너를 욕하는 댓글이 달리는가를 .... 개 주제헤가지고 뭐.. 이런것들이 중국에 들어가 자기민족과 나라를 우롷한다.
만약 그렇다면 설립목적 제일 첫항목은 어떻게 해석 할것인가 의 문제에 직면한다.
말과 글은 한번 뱉으면 거둬들일수 없는것 상대의 글에 억하심정이 있다고 탈동회의 설립목적에 반하는 말은 삼가해야 되지않나....ㅉㅉㅉㅉ
보통 누가 좋을 글을 올리면..거기에 대해서..상당히 부정적으로 댓글을 달거나
쌍욕을 먼저 하면서....탈동회 사이트를 걸레로 만드는 놈들을 몇놈 받습니다
3년동안 쭉 지켜보니..말하는 수법이나..방식이. 완전히 평양에 기지를 둔..대남사업부
해킹요원들입니다..이놈들은 한명이 수십개의 닉네임을 사용하면서..탈통회 사이트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봅니다..우리 탈북자 분들과 남한분들 !!힘을 함쳐 이놈들에 모략에 절대로 넘어가지 맙시다 !!
여기에 쓴 경력 하느님 앞에서 진실하다고 장담합니까?
가령 북한의 2번째 대학인 김책공대 갔다가 평양농업대학도 아니고, 지방의 전문대인 순천농업전문에 갔다는...그런거 말이죠.
서울에서 연세대 입학했다 경북 농전에입학했다는 그런 거 저눈 납득이 안되는군요.
언제나 마음속으로나마 존경하던 사람입니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기념풍선을 준비하는 님에게 다시 한 번 건투를 빕니다.
왜서인지 백령도 앞 전경의 황해도 장연과 용연, 그리고 태탄은 제가 군 복무를 한 곳인지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그 곳에서 삐라를 보고 남한행을 결심한 한 인간으로서 그 효력의 정당성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고 믿습니다.
백령도 전방 10여킬로미터 구간에 완강한 방어진을 구축한 북한군 4군단의 장병들에게 삐라는 더 없이 아름답고 고상한 이 행성의 천사입니다. 조금이라도 주눅들지 마시고 더 힘차게 하고자 하는 사업에 매진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앞으로 저도 여유가 있으면 이 길에 같이 동참해 볼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자기 밖에 모른다
더불어 산다는 것.민주사회라는게 먼지 ...
내 의견과 다른 사람을 봤을때 그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그럴수있다는 생각 한번 해봐라
북한사람이란 소리하기 쩍 팔릴때가 많타
그리고 최승철 기자의 글 나도 봤는데 그게 머 어쨋단건가
정보의 정확성을. 신뢰성을 잃지 말자고 하는 말인데 그게 어디 틀렸는가
마약은 그사람이 실례로 든 말이다
그사람이 잘 몰랐을수도 있고 아님 누구들 오차과 조금씩 있기 마련이다
철천지 원쑤라해도 인정할부문과 랭정을 잃지않은 판단력을 가질때 승리할수있다
그런사람이 강한사람이고 흥분에 휩사여서 하루 살이마냥 날뛰는 사람들보단 강인한 의지와 투철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민주사회니까 내가 비록 김정일이를 개보다 못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를 진짜 영웅으로 아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그런글이 여기 혹 올라올수도 있다
중국 초기 개방화 시절에 한국에 일하러 왔던 사람들도 매우매우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이나
이해도가 떨어졌습니다.
이런건 머리로 이해되는게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또한 사실 우리도 그랬더랬습니다.
공명정대하게 선거해야 하는데 마치 장연한듯 고무신 받고 찍어주고 ( 당연하게 생각했죠. )
저희 할머니중에는 고무신 두개 받아 두사람 다 찍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
사회 습성이나 관습이 있기 때문이죠.. 조금씩 조금씩 바뀝니다. 오래 살다보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