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모레면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다. 지난 주부터 여러 곳에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가 벌써 시작되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살기들이 무척 힘든 때이지만, 아직도 나라 생일인 독립기념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고 미국민들이다. Happy Birthday, America!
미국이 독립하고 87년이 지난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필자가 40년 살아온 펜실베이니아 州 중부에 위치한 게티스버그란 자그마한 시골마을에서 남북전쟁 양대군의 최대 접전이 벌어졌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로 유명해진 바로 그 게티스버그 대접전이다. 남북군 다 합쳐서 16만 가량의 대군이 사흘간 죽기살기로 싸워서 거의 5만명이 죽고 다치고 실종된 끔찍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수훈을 세워서 후일 미국 최고무공훈장 (Congressional Medal of Honor)를 받은 사람은 북군 사령관 조지 G. 미드 장군도 아니고, 남군 사령관 로버트 E. 리는 더더구나 아니었다. 북부 메인 州 시골에서 대학교수를 하다가 남북전쟁이 나자 자원입대하여, 게티스버그 전투에서는 임시대령 계급장을 달고 메인 주 제 20연대를 이끌고 북군의 최좌측면 바위高地를 死守했던 조슈아 로렌스 챔벌레인 연대장이었다.
게티스버그 전투와 챔벌레인 대령을 주제로 마이클 샤라란 작가가 쓴 “살인 천사들, Killer Angels”이란 역사소설(1974년)이 있고, 1993년에는 富者 테드 터너가 이 소설을 “게티스버그”란 장편영화로 만들어 발표했다. 필자는 이 영화를 DVD로 자주 본다. 게티스버그 전투는 역사소설을 읽어도 감동적이고, 영화를 보아도 감동적이고, 링컨의 2분짜리 연설을 읽어도 항상 감동적이다.
게티스버그 전투에 들어가기 전날, 챔벌레인 연대장은, 이제는 더 싸우기 싫다는 백여명의 메인 州 출신 抗命 사병들을 인수 받는다. 상부에서는 이들을 억지로라도 싸우게끔 만들든지, 아니면 다 총살시켜도 괜찮다는 명령이 내려왔다. 나서기 싫어하고 연설하기 싫어하던 챔벌레인이 이들에게 연설을 시작한다:
“우리 연대는 지난 해 가을 고향 메인 州에서 자원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천 명이 모여서 시작되었던 이 연대가 지금은 3백명도 안 남았습니다.
우리들 중 일부는 연방을 위하여 싸우겠다고 자원했습니다. 또 어떤 젊은이들은 집에 그냥 앉아있기가 지루하고, 병정놀이가 재미있어 보여서 자원하기도 했습니다. 옆 집 친구들이 다 戰場에 나서는데, 혼자 집에 남아있기가 창피해서 자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이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자원했습니다. 우리 모두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고향 땅에서 흑인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왜 자원했었던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란…그냥 해보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군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군대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람들은 富를 위해서, 여자들을 빼았기 위해서, 노략질을 하기 위해서, 서로 싸웠습니다. 남의 땅을 빼았기 위해서, 아니면 군왕이 시키니까, 심지어는 사람들 죽이는 것이 재미있어서, 전쟁을 일으켰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다른 이유 때문에 싸우기를 자청했습니다. 이런 일은 세계 역사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딴 사람들의 자유를 찾아주기 위하여 나선 군대입니다.
내가 밟고 서있는 이 흙은 자유의 땅입니다. 이곳에서 저 태평양까지 자유의 땅입니다. 아무도 딴 사람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괜찮은 나라입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왕이 되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로 사람을 평가하지, 누구 아들이기 때문에 평가받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든 존경받고 평가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땅을 따먹으려고 싸우는 게 아닙니다. 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신봉하는 이념을 위하여 싸우는 자원병들입니다. 당신들과 나는 이 땅보다 더 고귀한 존재입니다. 나는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싸우는 게 아닙니다. 당신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종국에는, 우리 서로를 위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설교를 하자는 것이 아니었는데…그렇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어쨌든 간에 우리는 군대입니다. 생각들 해보고, 다시 싸우겠다면 총을 지급하겠습니다. 더는 싸우지 않겠다면, 그냥 따라들 오기 바랍니다. 이 전투가 끝나면 당신들이 정당한 법절차를 밟아 조치되도록 내가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출전할 시간입니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우리가 이 전투에서 지면, 이 전쟁에서도 질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시 총대를 메어준다면, 나 개인적으로 감사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제 출전합시다!”
싸우기를 거부하던 백여명의 抗命 군사들 중, 6명을 뺀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게티스버그 전투에 참여했다. 챔벌레인 연대는 전투 첫 날인, 7월 1일, Little Round Top 바위고지를 사수함으로서 연방군의 측면을 지켜냈고, 사흘 간에 걸친 게티스버그 대접전은 연방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 해, 11월 19일, 링컨 대통령은 게티스버그 전지를 찾아서 전몰장병들의 묘지를 봉헌하는 자리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2분 짜리 연설을 했다.
2011년 7월 2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南信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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