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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 문제에 대한 언론의 기사들과 기타
자유수호 6 385 2005-10-11 14:32:09
강정구 교수 문제에 대한 기사들과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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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논란, 왜 '학교 이미지'로 불똥튀나?

[대학생 칼럼] "동국대생 나쁜 여론몰이 옳지 않다"
[2005-10-10 11:44]

▲ 경찰의 구속방침이 선 강정구 교수

동국대학교 게시판에서 ‘강정구’로 검색하니 일주일 동안 48개의 글이 나왔다. 하루 평균 7개 정도의 관련 글이 올라오는 셈이다.

제목을 달리해 게시한 글들을 감안하면 최근 게시판의 50%를 차지하는 정도다. 이는 학교게시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사건이 이제 조금씩 학교 전체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최초 강 교수 논란이 발생한 당시 학생들 간에는 ‘학문의 자유냐’ ‘국가체제 부인이냐’, 또는 ‘교수로서 책임 있는 행동이었나’ 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학생들이 학문적으로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또 이 문제가 학생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현실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교내 일각에서 ‘추방운동’과 ‘사법처리 반대운동’이 충돌해도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단지 귀찮은 문제일 뿐이었다.

동국대생 취업 불이익 발언 적절한가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한상공회의소 한 고위직 인사는 지난 4일 “강 교수의 강의를 들은 학생이 올바른 경제관이나 역사관을 가질지 의문”이라며 “기업 채용 때 대학수업 내용 등을 참고하도록 경제단체 차원의 대책 마련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 ‘취업시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동국대 이사장 현해(玄海) 스님은 ‘강 교수를 면직(免職)시키고 싶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상의 고위 인사의 발언은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동국대 학생들을 모두 강정구 교수와 비슷한 이념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지나치다.

특정 교수의 이념과 역사관이 해당 학교의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줄만큼 학교를 좌지우지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전공 교수 수업을 피하기도 어렵다. 이것은 강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학생들은 강 교수의 괴이한 논리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한 두 과목의 전공 수업 때문에 전체 학생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도 과도한 처사라며 분노하고 있다. 적지 않은 취업준비생들은 ‘만에 하나’ 자신의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강 교수 논란, 학문적 잣대로 평가해야

동국대 이사장의 발언대로 강교수가 면직까지 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금 강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수업권 침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두 달이 넘게 강 교수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이제 학생들은 학자적 양심이고 뭐고를 떠나 학교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더 우려하고 있다. 학문의 대상으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결국 누가 나에게 피해를 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버린 것이다.

학생들은 어떻게든 이 문제가 빨리 결론이 나고 잠잠해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학교나 정치권은 마치 뼈가 든 고기를 입에 머금고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한 가지 의미를 찾자면 이런 일련의 일들이 지금까지 교수의 수업이 정설인 것처럼 듣고 있던 학생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거의 무비판적으로 들었던 수업에 학생들의 비판의식이 생겼다. 이러한 빌미는 강 교수 스스로가 제공했다.

한편 우려스러운 점은 이번 강교수 문제를 경과하면서 대학 교수님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일에 더 소극적이 될까봐 우려스럽다. 몇 달 전 위안부 문제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왔던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글이나 강정구 교수의 글은 결국 학계와 수용자들의 평가에 맡기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최옥화/ 동국대 북한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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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흘러간 레코드 그만 돌려라"


김정열 동명정보대교수 "기밀문서해제로 진실 드러났다"
"지적 태만과 오만을 버리지 않으면 지식인으로서 불행"
2005-10-04 10:43:44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최근 들어 “사회주의 체제로의 통일도 통일”, “6.25는 북한이 시도한 통일내전, 이를 막은 맥아더 장군은 전쟁광” 등의 발언을 하더니만 마침내 지난 9월 30일에는 “1946년 국민들의 무려 77%가 공산주의, 사회주의 지지했고 14%가 자본주의를 지지했기에 당시 국민들이 원하는 공산주의 체제를 택했어야 했다”, “지금 한국사회의 주류는 자발적 노예주의자”, “한미동맹을 반민족적, 예속적, 반평화적” 이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이런 순서라면 다음 발언은 과연 무엇일까 매우 궁금해진다.

강 교수가 언급한 내용은 대부분 미국외교사와 냉전시대에 대한 수정주의 시각을 대표하는 것으로 학문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수정주의 시각은 ´미국외교의 비극´의 저자 미국 위스콘신 대학 역사학과 교수 윌리암스(William A. Williams)와 그 제자들에 의한 학풍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문제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의 의견도 용인되는 우리 한국사회가 질적으로도 그만큼 성숙하였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강 교수의 논점이 그가 바로 위스콘신 대학원에서 공부할 당시 기존의 전통주의가 불신을 받던 분위기와 경험에 고착되어 지금도 주변 상황의 변화에 고집스럽게 귀를 막고 있는 것 같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러나 강교수도 최근 수정주의가 고개를 숙이고 다른 접근이 시도되고 있는 최근 국내외 학계의 경향을 알 법도 한데 학자로서 계속 일방적인 주장을 동어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뭔가 다른 의도가 있거나 이를 부추기는 세력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구심을 갖게까지 한다.

수정주의적 시각은 월남전을 거치며 미국에서 풍미하였으며 한국에서는 브루스 커밍스(Bruce G. Cummings)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소개됨으로써 기존 시각에 경천동지의 충격을 가하였다. 풍부한 자료와 노력을 바탕으로 한 커밍스의 시각은 군사독재 정권 속에서 밖으로는 월남전과 안으로는 광주사태를 보고 겪으며 자란 지금 한국 사회의 중추세력이 된 당시 ‘냉전에 질린 세대’ 즉 소위 ‘커밍스의 아이들’ 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이후 종교의 경전과 같이 각인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오로지 경험과 감정에만 의존해오던 국내 기존 전통주의자들의 연구 태만에서 비롯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과거 소련의 기밀문서가 해제됨으로써 한국전쟁에 대한 묻혀진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자 그간 제한된 자료와 가설에 의존해오던 수정주의 시각이 여지없이 무너지게 시작하여 마침내 커밍스 자신도 일정부분 오류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해외에서부터 먼저 한국전쟁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기밀문서를 분석한 전 레닌그라드 국립대 안드레이 란코프(Andrey Rankov) 박사(현재 국민대 초빙교수)는 1946~52년의 소련 정치국의 한반도 관련 결정문을 분석한 결과 “북한은 스탈린이 만든 나라이며 김일성은 충실한 실행자였다” 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전 플로리다 주립대 교수였으며 현재 윌슨 센타 냉전프로젝트 선임연구원인 캐더린 웨더스비(Kathryn Weathersby)는 1966년의 소련의 외무성 극비문서를 분석한 논문에서 “한국전쟁이 북한 단독으로 시작한 내전이 아니라 김일성이 아이디어를 내어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허락과 원조를 얻고, 당시 공산혁명에 성공하여 득의만만했던 중국의 협력을 얻어 일으킨 철저한 국제전쟁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연구에서 그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소련은 북한에게 전쟁을 포기하라고 지시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련의 지시 이후 바로 중국이 참전하면서 스탈린의 지시는 유야무야 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북한은 소련을 불신하게 되었고 전쟁 이후 중국과 소련과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정구 교수가 평양에서 참배록에 적었다는 소위 ‘만경대 정신’ 에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주체사상’ 을 표방하는 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미국 버지니아대 역사학과 첸 지안(Chen Jian) 교수 등은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게 된 것은 유엔군의 진격으로 국경에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며 공산혁명 이후 민심수습용이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서 한국전쟁이 브루스 커밍스가 말한 이승만 대통령이 끊임없이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북한의 도발을 자극하였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소위 북침설과 내전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역사학자인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는 ´새로 쓰는 냉전사´에서 냉전은 힘의 균형상 불가피했으며 책임을 따지자면 미국보다 오히려 소련과 스탈린이라는 인물에 의해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냉전에서 결국 소련에게 승리한 것은 권위주의적인 ‘강압’ 보다 민주주의적인 ‘초대’ 에 의한 제국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인 시각은 국내 젊은 사학자들에 의해서도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최근 관련 연구분야의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방대한 분량의 2권의 책을 펴낸 박명림은 한국전쟁은 ‘혁명적 민족주의’ 가 아닌 ‘군사적 급진주의’ 의 결과였으며 전쟁유도설의 근거인 ‘해주북침설’ 은 북한의 위장선전과 남한의 허위보도에 의한 해프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김영호는 한국전쟁을 국제정치적으로 해석하면서 스탈린이 미국의 봉쇄선에서 ‘연한 지역’(soft spot)을 뚫어 점령하려는 시도의 하나로써 그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알이 깨어 새가 나오고 씨앗에서 싹이 틀 때와 같이 세상 모든 일에는 안과 밖의 요인과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하물며 전쟁에 있으서랴! 한국전쟁의 발발에는 우리 민족 내부의 누적된 갈등과 구한말에서 식민시대와 해방을 거치면서 국민들간 불신의 심화가 한 요인이 되었고 수정주주의자들이 말하는 계급갈등의 측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본 영화 ´씨받이´나 소설 ´장길산´, ´태백산맥´ 등은 그런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외부적인 변수를 배제하고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는 식의 논리전개는 너무 나이브하고 협소한 감정의 논리에 치우쳐 있다.

그리고 최근 냉전 이후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나 운동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연구와 시각은 일면 보기에는 매우 타당하고 유용해 보이나 그것이 대중의 열망에 부합하거나 아니면 제도화의 빈곤을 활용한 지배계층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하여야 한다. 그래서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민족을 고대로부터 존재해온 원초적인 실재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문화적 조형물인 ‘상상의 공동체’라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과의 관계를 다른 요소를 배제한 오로지 ‘민족’ 이란 개념으로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며 위험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고구려사나 독도문제 접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독일의 총선 결과를 보면 독일이 근래 ‘민족’ 이란 개념에 치우쳐 통일문제에 접근하여 결국 글로벌 경쟁에 낙오자로 전락하여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강정구 교수의 글이나 연설에 일관되고 있는 지나친 민족주의 강조는 바로 이러한 허구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강 교수는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 (7월 27일 데일리 서프라이즈)란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인천지구 황해도민회 류청영 회장이란 사람을 예를 들며 맥아더를 ‘구세주’ 라고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나는 먼저 강 교수가 이름있는 대학의 교수로서 아무리 인터넷 공간에서이지만 그런 제목으로 글을 쓴다는 것에 매우 실망한다. 이는 지나친 지적 오만의 결과이다. 그리고 황해도민회 회장이라면 황해도 출신으로 어쨌던 목숨을 걸고 월남했던 사람일 텐데 당시 국민들이 77%가 지지하는 공산주의를 버리고 왜 그렇게 했는지 그리고 왜 맥아더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국 전체적으로 수정주의 학풍이 풍미하였고 그 중심인 대학에서 공부를 한 강 교수의 경험과 체험도 중요하지만 한국전쟁의 포연 속에서 사선을 넘고 월남하여 자유를 사랑하고 살며 맥아더를 영웅으로 보는 필부들의 경험과 체험도 소중한 것이다. 지식인으로 또한 학자로서 강 교수는 이미 흘러간 그리고 자칫 그릇될 수도 있는 이론을 고장이 난 레코드처럼 다시 돌리는 지적 태만을 버리고 또한 지적 오만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지적 태만과 오만으로 잘못된 주장을 계속하는 것은 결코 지식인의 자세가 아니라 사회운동가의 그것이다. 적어도 지식인이고 학자라면 설정된 목표를 위해서 학문적 진리를 짓밟는 일은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김정열 동명정보대 사회과학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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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교수는 차라리 고마운 분

통일전쟁, 사회주의지지는 낡은 레퍼토리
이제 우리... 진실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최홍재 / 2005-10-01 12:04] 조회 : 1463

95년 일입니다. 신문에는 ‘반미불패’사건으로 소개되었고, 조사받는 과정에서 ‘김일성주의청년동맹’으로 다가온, 이른바 주사파 조직사건 책임자로 저는 구속되었습니다. 제가 주사파였음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 검찰은 단지 91년 고대 총학생회장 당시 만들었던 유인물과 93년 한총련 조통위 정책실장으로 있을 때의 활동(북과의 연계활동, 이적표현물 제작 등)으로만 공소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집행유예를 받았지요.

물론 저를 연행하면서 집에서 다수의 북한 서적이 나왔고, 검찰은 그것을 증거물로 채택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이렇게 재판정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통일의 한쪽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알아야 올바르게 통일운동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서점에 나온 북한 책들을 보고 소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죄가 되는 것입니까?” 나는 순수한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데 반통일세력이 탄압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무슨 조직사건이 일어날 것 같으면 미리 대자보를 붙이고 농성을 합니다. ‘안기부와 대공분실에서 저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 그래서 애국 청년학생들을 잡아다 조직사건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이렇게 선전하며 이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조직은 있었고, 그 조직에서는 맑스주의나 주체사상, 혹은 그 둘 다가 체계적으로 교육되었지요. 주사파조직의 대다수는 김일성-김정일의 대남 선전기구인 ‘한민전’의 지침을 투쟁방침의 가장 중요하고 1차적인 문서로 다루었습니다. 다만 ‘학우’들과 ‘애국시민’들에게는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지요. 검찰에서 우리의 진짜 모습을 이야기하면 그것은 독재를 연장하려는 터무니없는 음모이고, 공안탄압이라고 되받아쳤지요.

그런데 우리의 말이 학우들과 애국시민들에게 훨씬 잘 전달되었지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그 당시 검찰과 시국사건 담당 경찰들은 참 답답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주사파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조국해방, 조국방위, 조국통일전쟁이라는 생각을 이야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미군 때문에 6.25전쟁이 좌절되었고, 미군 때문에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으며, 미군 때문에 남조선인민이 지지한 사회주의를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미군때문에... 미군때문에...

요즘 강정구교수가 친김정일 주사파의 오랜 답답함을 시원스럽게 풀어주고 있습니다. 6.25는 통일을 위한 내전이고, 미군 때문에 1만명 정도로 그칠 희생자가 4백만명으로 늘어 났으며, 미군 때문에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미군 때문에 통일이 되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하니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요?

강교수는 내친 김에 9월 30일 민교협 주최 세미나에서 또 속 시원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1946년 미 군정 여론조사 결과 공산·사회주의에 대한 지지세력이 77%였던 점을 예로 들며 “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당시 조선 사람 대부분이 원하는 것이면 응당 그 체제를 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 말들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지만 80년대 운동권들에게는 아주 오래 전부터 친숙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실상 민주화를 이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우리 학우들.. 이제는 아이 한 둘을 거느린 분들이 강정구교수를 통해 조금씩 표현되고 있는 이 80년대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곰곰이 살펴보게 되기를 절실하게 희망합니다.

이런 생각을 품은 채 일상을 살고 있는 운동권 동료들도 이제 나이 마흔의 좌우에서 다시 한번 그 당시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기를 희망합니다. 과연 강교수의 이야기가, 아니 속으로만 품었던 우리의 80년대 이야기가 과연 이치에 맞는지, 오늘 남북한 국민과 인민의 상황에 맞는지 돌이켜 봅시다.

어찌보면 강정구교수는 우리가 숨겨두고,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분입니다. 민주주의와 통일을 지지했던 학우들과 애국시민들 앞에 그 당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끄집어 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강교수의 입이 막히는 것보다 그이의 생각을 다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논의되기를 바랍니다. 반미와 친김정일의 뿌리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해보자는 것이지요.

강교수의 주장에 대해 저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미 군정의 조사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아야 할 듯 합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떤 규모로, 어떤 조건에서 조사가 이루어 졌는지 면밀하게 검토해야 그 사안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다만 강교수의 이야기를 100% 인정하고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여론조사가 이뤄지던 46년이면 소련군정과 김일성이 토지개혁을 단행할 때였지요. 국민들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사회에서, 그리고 38도 경계선이 그다지 험하게 봉쇄되어 있지 않아 서로간의 정보가 유통되는 상황에서 토지개혁은 참으로 커다란 흥분을 주었겠지요. 사회주의가 아니라 나치 파쇼의 할아버지라도 이런 토지개혁을 했다면 국민(인민)들이 지지했겠지요. 사회주의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토지개혁을 바랬던 것이라고 해석해야 옳지 않을까요? 과연 이 시기에 제한적으로 행해진 여론조사가 과연 합리적일 수 있을까요?

소련군정과 김일성의 토지개혁은 이미 단독정부의 기능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45년 10월부터 스탈린은 비밀지령을 통해 북한에 단독정부를 추진했고, 토지개혁은 그것을 확고히 한 것으로 분단이 고착화되는 결정적 시점으로 보아야 더 정당한 분석이 아닐까요? 실제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토지개혁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의 큰 지지가 있었지요. 종합적으로 보면 남한의 토지개혁이 북한의 토지개혁보다 훨씬 농민들에게 이익이 컸으며, 그나마도 북한은 토지 집단화, 토지 국유화 정책으로 1960년을 전후하여 토지가 강제, 반강제로 수용되고 맙니다.

따라서 이런 종합적인 상황하에 실시된 여론조사라면 몰라도 1946년 상황에서 실시된 조사로 사회주의 지지를 운운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5:0으로 질 때 그에 대한 여론조사를 객관적이라거나 타당하다고 볼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근거가 없다는 것은 그 이후의 상황전개를 보아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 77%가 사회주의를 지속적으로 지지했다면 소련과 김일성은 왜 유엔감시하 총선거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왜 친일파(?)와 아울러 민족주의자들까지 죄다 청산해 버렸을까요?

아무튼 강교수는 계속 이야기를 하세요. 이를 계기로 우리 한국현대사를 가슴 속에만 담아 두지 말고 전면적으로 재검토 해 보십시다. 무엇이 국민(인민)들에게 올바른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 무엇이 국민(인민)들의 생명을 존중하고, 그이들의 자유와 인권을 높이 실현해 왔고, 구현하고 있으며, 높여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하여 어떤 통일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겠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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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7682 조 회 945
이 름 조화유(펌) 날 짜 2005년 10월 1일 토요일

美군정청 보고서-'90%가 보수성향'

충북 지방선거 당선자 중 공산당은 단 7%
90%가 보수성향, 1946년 6월 군정청 보고
-77%가 공산/사회정부 원했다는 강정구교수 주장과 정반대



1946년 6월의 미군정청 활동을 기록한 공식 문서는 충청북도 지방 선거에서 당선된 992명 중 약 7%인 67명만이 공산당원이었다고 보고했다. 군정청이 발행하는 이 공식 보고서는
극우정당인 민주당 소속 당선자가 201명, 나머지 당선자 724명은 무소속이었으며 무소속의 90%는 보수 우익 성향이었다고 덧붙였다.
Summation of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Activities in Korea (한국의 미육군 군사정부 활동 개요)라는 타이틀로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부터 매달 발행된 이 보고서 제9호에 따르면, 그 당시 일반적으로 공산당 우세 지역으로 간주되었던 충북 제천 지방선거에서는 당선자 148명 중 공산당 소속은 단 17명 (11.5%)에 불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월례 보고서는 또 좌익계인 "민주인민전선"은 6월 2일 기관지를 통해 발표한 한 성명서에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강대국에 의한 한반도 신탁통치)을 따르는 것이 조선독립을 달성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우익은 전부 외세에 의한 5년간의 신탁통치를 반대했으나 공산당을 포함한 좌익들만 소련의 지시에 따라 신탁통치를 찬성했었다.

한편 동국대 사회학과 강정구 교수는 9월30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민교협) 주최한반도 정세토론회에 참석, “미국의 개입으로 공산화되지 않았다고 잘 됐다고들 하는데, 당시 조선 사람들은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를 훨씬 좋아했다. 1946년 미군정이 전국 84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산·사회주의 지지가 77%였고 자본주의 지지는 겨우 14%였다”면서 “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당시 조선사람 대부분이 원하는 것이면 응당 그 체제를 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바 있다.
강교수가 사용한 자료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9월30일
워싱턴에서
조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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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강정구 교수를 즉각 사법처리하라[성명]


2005/10/04 17 [성명]강정구교수를 즉각 사법처리하라.hwp



강정구교수가 건군 57주년 국군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 또 다시 대한민국의 역사와 헌법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했던 유엔의 결의까지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1946년 미군정 여론조사에서 77%가 공산·사회주의를 지지했고 이들이 원하는 체제를 택했어야 했다’는 그의 발언은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의 근본을 부정해 왔던 자신의 반체제, 반국가적 발언에 이은 또 하나의 망언으로 가히 점입가경이다.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을 이룩하자”(2001년 8.15 평양통일 축전 참가 시), “6.25전쟁은 통일전쟁” “맥아더는 전쟁범죄자, 전쟁광”(2005.7.27일 인터넷매체 기고)이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강 교수는 이번에도 “6.25전쟁에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달 이내에 끝나고 통일이 달성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6.25전쟁은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를 침략한 침략자를 격퇴하기 위하여 유엔 결의안에 의해 파견된 유엔군이 우리 국군과 함께 치룬 전쟁으로써 단순한 민족간 전쟁이 아닌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전쟁이었고 우리와 수많은 연합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싸웠던 전쟁이었다.

이런 사실을 부정하고 강 교수는 한반도가 공산주의체제가 되었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싸웠던 6.25참전국들에게는 배신감을 주고, 국립묘지의 호국영령들을 욕되게 하고, 벌떡벌떡 일어나게 하는 충격적 발언들을이다.

그는 또 ‘한반도의 자주적 역사행로를 막고 평화권을 빼앗아간 전쟁주범은 미국과 주한미군’이라면서 ‘한미 군사동맹은 철폐돼야 한다’고 까지 주장했다.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은 용인할 수 있는 전쟁인데 이제 그러한 전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맺고 있는 한미군사동맹은 전쟁주범과의 동맹이기 때문에 철폐돼야 한다는 그의 논리는 다시 김일성식의 전쟁을 불러 와서 공산화되어도 좋다는 논리인가?

지금 우리사회는 좌우대립과 보혁대결로 남남갈등이 확산되고 있고 국론분열로 해방전후의 혼란이 극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바로 이러한 남남갈등과 국론분열을 부추기는 장본인이 강정구 교수이다.

강정구 교수는 우리의 역사와 헌법을 부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참전국들에게 배신감을 주고 유엔의 권위까지를 부정하는 망언을 계속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공화국이다. 정부는 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을 짓밟고 있는 자를 방치하고 있는가? 단호하고도 즉각적인 사법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의 망언은 계속될 것이 뻔하고 제2, 제3의 강정구가 등장할 것이 우려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 훼손을 방지하고 국법질서와 국가기강 확립 차원에서 강정구 교수의 즉각적인 사법처리를 강력히 촉구한다.

2005. 10. 1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 황 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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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열린우리당 홈페이지 http://www.eparty.or.kr 의 부리핑룸 4236번에 있는 유은혜 부대변인의 논평입니다.

제목 [논평]김용갑씨 색깔망언에 신물이 난다

작성자 유은혜 부대변인 작성일 2005.10.06일날 15: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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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화해와 협력을 얘기하고 있는 지금
한나라당조차도 6자회담의 타결을 환영하고 있는 이 때에
김용갑씨만이 인기 없어 버려진 빨간색 안경을 쓰고 빨간색 펜을 들고
평화의 백지 위에 붉은 물을 들이고 있다.

참으로 안쓰럽고 가련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좌경, 용공, 친북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냉전용어에 의지해서 존재의 의의를 찾을 것인가?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자신이 선호하는 매체의 오보만을 가지고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을 노동당의 통일 장관이라고
매도하는 대목에서는 차라리 김용갑씨의 멘탈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김용갑씨에게 충고한다.
급한 마음에 아무리 색칠을 하고 싶더라도
제대로 된 근거 하나쯤은 들어있는 성명을 내길 바란다.

한나라당도 이런 망언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당연한 얘기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 국민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 참고로 김용갑 의원의 성명 제목은
“정동영씨는 조선 노동당 통일부 장관인가”였음을 밝혀둔다.

2005년 10월 6일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유 은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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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용갑의원 홈페이지 http://www.ykkim.com 에 있는 것입니다.


김용갑“강정구 라이벌은 정동영” [데일리안 10-06] 2005/10/06 16

김용갑“강정구 라이벌은 정동영”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
"북 요구 들어주려고 안달하다니…조선노동당장관"
"나라 근본까지 팔아먹으며 막나가는 행태는 강정구의 최고 라이벌"

[데일리안 송수연 기자]한나라당 내 강경·보수파의 대표 주자인 ‘국가보안법 지킴이’ 김용갑 의원은 6일 통일부가 남측 민간 대표단의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60돌 기념행사 참석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강력반발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특히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시종일관 ‘정동영씨’라고 부르며 “대한민국의 통일부 장관이 아니라 조선노동당 통일부 장관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맹성토했다.

김 의원은 “요즘 남북 교류가 확대된다고 하지만 북한 조선노동당은 분명 근본적으로 우리의 주적”이라며 “정동영씨가 통일부 장관이 된 이후 북한이 요구만 하면 어떻게든 들어주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는데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앞장서서 무조건 장기수 북송을 추진하고 김일성 찬양공연인 아리랑 공연장에 우리 국민들을 무더기로 보내고 있다. 여기에 전기 200만kw를 보낸다고 하더니 이제는 경수로까지 지어준다고 한다”며 “갖다 바치기 급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요즘 강정구라는 사람이 6·25를 통일전쟁이라고 칭송하고 미국만 없었다면 통일이 됐을 것이라는 정신 나간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며 “나라의 근본까지 팔아먹으면서 막 나가는 정동영씨의 행태를 보면 강정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비꼬았다.

그는 “정동영씨에게 강력하게 경고하건대, 스스로 대한민국의 통일부 장관이 될 것인지 조선노동당 통일부 장관이 될 것인지 분명하게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송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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