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딪고 일어난 제1호 탈북자 출신 연예인
전철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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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이 그랬죠.아픔이 있기 때문에 웃음이 있다고..."
성림 F&B 대표 탈북자 전철우(46)씨의 삶에는 아픔도,웃음도 있었다.
지난 18일 서울 성산동 사무실에서 만난 전 대표는 자신을 찰리 채플린에 빗대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던 찰리 채플린은 지독한 가난과 부모의 이혼, 네 번의 결혼 등 인생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전 대표도 탈북, 사업실패, 이혼의 어두운 그림자를 가지고 있지만 대중들은 그를 떠올리면 미소를 짓게 된다.
하지만 현재 그는 명실공히 외식업계에서 '성공한 사람'이 됐다.
하루만에 홈쇼핑에서 '항아리 갈비'를 2만 세트 팔아 8억원의 수입을 남기고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본인의 얼굴이 찍힌 식당을 가지고 있으며 매출은 100억을 훨씬 넘어섰다.
이런 성공은 과거의 상처와 땀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전 대표가 외식업계에 뛰어든 것은 1997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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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코미디 '웃으며 삽시다'의 '대동강 편지'에 같이 출연했던
이봉원씨가 '철우네 냉면을 차리면 엄청 잘 될거야'라고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가게를 시작하게 됐어요"
별 생각없이 시작한 냉면 사업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이 차린 진짜 북한 냉면이라는 점이 본토 북한 냉면에 대한 50년 향수를 자극한 것.
"1998년과 1999년에는 전국에 100평이 넘는 '전철우의 고향냉면'식당이 60개가 넘었죠 광주에는 '전철우 사거리'라는 지명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급한 성공은 항상 탈을 일으키기 마련, 2000년 초반에 그에게 '고난의 행군'은 시작됐다.
"연예활동과 동시에 가게운영을 하다보니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탈이 나기 시작했어요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다른 사람에게 믿고 맡길 것이 따로 있었죠"
탈북해 남한에 외롭게 혼자 살고 있던 그는 접근해오는 사람들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
그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저를 이용하려고 할 때 그 속셈이 눈에 보이지만 거절하면 그 사람이 나를 떠날 것 같아 거절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2000년 초반부터 그는 매일같이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빈털터리가 돼 아는 사람 집을 전전하기도 했고 그 와중에 이혼은 전 대표를 더 힘들게 했다.
"어차피 남한에 왔을때도 빈손으로 오지 않았나?"
어느 날 술에 취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지쳐있던 그의 머리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고 했다.
"부모님께 어렸을 때부터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난 그것을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때문에 사기당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그는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음식 맛을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
"항아리 갈비는 2005년도에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음식 맛을 재현한 겁니다. 배도 직접 갈아 넣고 양념도 15가지 재료가 들어있어요."
이 항아리 갈비는 2008년에 홈 쇼핑에서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홈쇼핑 판매만으로 매출 100억원을 달성했다.
이후 전철우의 빨간냉면, 멍게냉면 등 신 메뉴와 고속도로 휴게소의 프랜차이즈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는 "시련을 겪고 나니 배운게 많았어요.사업을 하나하나 꼼꼼히 검토하고 손님의 마음을 읽는 방법을 터득한 저에게 단순히 가게문만 열어놓고 장사하는 휴게소 매점들은 적수가 아니었죠" 라며 고속도로 휴게소 정복의 비결을 털어놓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대중들에게는 그의 웃는 얼굴이 트레이드 마크였고 고정된 이미지였다.
그가 그토록 웃는 이유는 그의 긍정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남한 사람들이 갖는 북한 사람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그
는 "제가 1989년에 탈북을 했을 당시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을 '뿔 달린 괴물'인 양 생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북한 사람은
모두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줄 생각하고 있었죠. 그래서 제가 방송생활을 하는 내내 일부러 더 웃고, 바보같이 보여도 우스운
연기를 했던 겁니다."
사실 그는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면서 북한 사람들에 대한 남한 사람의 편견을 깨려고 했다.
KBS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서 동독 유학시절 추던 디스코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게 돼 시작한 방송생활은
MBC 'TV청년내각'에서
통일부 장관 역으로 시청률 30%를 넘기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전 대표는 "방송생활에서 제 이미지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한 것 같아 기쁩니다. 이번에 국회의원이 된 조명철 당선자는 저를 소개할 때 '북한 사람의 이미지를 바꾼 공로자'라고 부른 답니다"라고 말했다.
탈북, 사업실패, 성공의 험한 길을 걸어 이제 조금 쉴만한 그에게 기자는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는 "그것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라면서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요즘 너무 바빠서 내가 지금 길을 잘 가고 있는지 항상 생각해요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 장사가 아닌 평범한 된장이나 고추장을 담가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조금씩 팔기도 하며(이런 대규모 장사는 안하고)살고 싶다고 했다.
[강현철 뉴스속보부 인턴기자]
저는 입국 6년차 탈북인 입니다
성공? 성공? 성공?
이 사회가 돈으로만 만들어진 사회가 아님을..
자본주의가 돈으로만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지 않았다는것을 ..
성공에 대하여 재삼 가다듬게 해준 발제 글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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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입국 12년차입니다.
성공 너무 강조하고 이른바 성공했다는 탈북자들이 강연을 다니는것 좀 보았는데 그것은
성공이 아니고 남한에서의 삶이라고 봅니다.
이제는 실패하고 패배한 사람들의 삶을 말하고 강의하게 하여 함부로 나대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실지로 탈북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고 경험 청취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땅에 와서 서울에 제집 마련한 탈북자가 몇명이나 되겠나요?
허파에 바람들고 사기와 협잡을 안고 실지로 참신하게 서울에서 벌어서 아파트 산사람 정말 몇명이나 될가요? 아마도 한명도 안될거라 생각합니다.
미쿡에도 탈북자 분들 어느정도 되시는걸로 아는데..
미쿡사회에서 탈북자라든지 북한인에 대해서 어떤 관념인지 궁금한데요.??
머 한국 교민사회도 그렇고...
윗 댓글은 발제글을 역으로 생각한 저의 심경입니다.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2-04-24 23:4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