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대표작가 바오 닌을 만나다 세계일보 | 입력 2012.05.13 17:46 | 수정 2012.05.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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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하노이까지 날아가 베트남의 대표작가 바오 닌(60·Bao Ninh)을 만나려고 한 것은 한국에서 새롭게 출간된 그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 때문이었다.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정작 세계문학에서는 소외돼 있는 아시아의 문학을 '아시아문학선'이라는 이름으로 도서출판 아시아에서 발간하기 시작하면서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이다. 1999년에 한국에서 처음 출간된 번역본은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중역한 것인 데다 중간에 빼먹거나 간단하게 축약한 부분들도 적지 않아서 이번에 베트남어 원본을 텍스트로 삼아 새롭게 번역했다.
'전쟁의 슬픔'을 대하는 독자들은 첫머리에서부터 밀림에 진동하는 시취와 시체와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 몽롱하고 어두운 색조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작가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끼엔'이라는 병사의 상념을 따라가게 된다. 작가 자신이 수많은 전투에서 시체의 언덕을 넘어 기적처럼 살아남은 사람이어서,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핍진한 죽음과 죽임은 전율로 다가온다.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으로 베트남 대표작가로 떠오른 바오 닌. "아무리 좋은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단정한다.
바오 닌은 하노이의 자택으로 일행을 청했다. 1층 거실 소파에 둘러앉아 인터뷰를 시작하려 하자 "인터뷰는 대충 건너뛰고 술이나 마시자"며 서둘러 술병의 마개를 땄다. 지독한 죽음의 터널을 지나온 퇴역병사가 술을 마시지 않고는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쉽지 않았을 터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 또한 술을 마신 자가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이런저런 상념 속을 건너 뛰어다니며 두서없이 전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면 둔중한 슬픔의 망치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그와 오래 친분을 유지해 오며 허물없이 지내는 통역을 맡은 한국 여인이 "바오 닌은 산만한 아이 같다"면서 인터뷰부터 마치자고 그를 달랬다.
―출간된 지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당신 작품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전쟁 속 사람들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그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전의 베트남 전쟁문학은 문학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과도하게 강요했다. 예컨대 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는 시계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당이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규정되어야 했다. 내 작품은 특별하지 않다. 다만 사회주의가 요구했던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 지금 북한의 문학이 예전 베트남문학과 수준이 비슷하지 않을까.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그런 글들을 읽지 않는다."
―당신에게 '슬픔'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의미를 뛰어넘는 무게를 가진 것 같다. 소설에서 당신은 "슬픔 덕에 우리는 전쟁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썼다. 당신을 해방시킨 '슬픔'의 질감은 보통사람들의 것과 어떻게 다른가.
"솔직하게 말하면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아주 특별한 환경 속에 있었다. 종전 직후의 베트남은 정말 너무 가난했지만 전쟁의 승리에 모두 들떠 있었던 시기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불행한 줄도 슬픔도 잘 몰랐다. 그때의 상황은 말로 설명해도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한다. 글로 써야만 했다."
―베트남은 전쟁이 끝난 지 37년이나 흘렀지만, 휴전 상태인 한국에서는 아직 전쟁의 슬픔이 진행 중이다. 이 소설이 한국인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는가.
"작가란 목적이 없는 사람이다. 교육자도, 정치 간부도, 도덕가도 아니다. 사회주의 예술은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하고 무언가에 늘 봉사해야 했다. 베트남도 그런 시기를 견뎌야 했다. 다만 바라건대, 한국이 문제를 적어도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 책을 통해 전달됐으면 좋겠다."
―당신이 싸웠던 적들 중 하나가 한국군이었는데….
"내가 병사로서 전쟁을 할 때는 한국군이든 미군이든 사이공군대든 다 적이었고 서로 총을 쏘고 죽여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날한시에 자식을 서너명씩 잃은 어머니의 슬픔과 고통은 여전히 가슴에 묻혀 있을 것이다."
―당신은 끔찍한 전쟁을 7년이나 겪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인가.
"전쟁을 단 하루만 겪더라도 인간은 다른 어떤 것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17세에 병사가 돼서 그 참혹한 죽음의 바다를 건넜는데, (그 뒤끝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내가 이 소설을 썼다고 이전의 (순수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만약 나에게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지나온 전쟁을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할 수 있다면.
"죽은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가. 길거리에서 사고가 난 광경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도 3∼4일 정도는 그 모습이 떠올라 불편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운동장 전체가 시신으로 덮여 있는 걸 보았다. 모든 형태의 시신을 살아서 다 보았다. 나에게 전쟁은 그런 것이다. 눈만 감으면 그 광경이 바로 떠오른다."
―전장에서 무수한 죽음을 접한 당신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평범하게 살다가 사주팔자대로 자연사하는 죽음은 끔찍하지 않다. 하지만 전쟁의 죽음은 다르다. 더 살았으면 어떤 소녀를 만나 사랑도 하고 평범한 삶을 누렸을 청년의 인생을 한순간에 도려내는 게 전쟁이다. 전쟁은 평화의 반대어가 아니라 일상의 반대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인터뷰 말미에 프랑스와 싸워서 독립을 쟁취했고, 거대 제국 미국까지 그 오랜 전쟁 끝에 이길 수 있었던 베트남의 힘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진지하고 슬픈 눈빛으로 "병사들만 진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가슴에 폐허를 안고 살아남은 자나, 이미 죽어버린 병사들에게 이기고 지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반문이었다. 그는 소설의 한 대목에 이렇게 썼다.
"전쟁이란 집도 없고 출구도 없이 가련하게 떠도는 거대한 표류의 세계이며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는,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단절과 무감각을 강요하는 비탄의 세계인 것이다."('전쟁의 슬픔')
하노이(베트남)=글·사진 조용호 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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