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통일 체육 축전을 응원하는 걸까. 구름 한 점 없는 평화로운 하늘 아래 잠자리가 한가로이 날아다니고 만국기의 펄럭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간 보고 싶었던 햇빛이 빛을 더하는 순간 동국대학교 운동장엔 축복 받은 가을이 만개했다.
탈북자 지원활동을 펼쳐온 '좋은 벗들'이 21일 동국대학교 대운동장에서 북한 탈북자와 남한 주민이 함께 하는 '제1차 통일 체육 축전'을 열었다.
96년부터 시민들을 대상으로 북한 인도적 지원활동과 통일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국제평화·인권·난민 지원센터 좋은 벗들'은 '남북한 동포 좋은 이웃되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1차 통일 체육 축전을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 모인 서울·인천·부산·광주 등 10개 대도시에 거주하는 탈북자와 남한주민·자원활동가 300여 명은 합동 차례, 운동회, 장기 자랑 등을 벌이며 오래전부터 간직한 남과 북의 하나된 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오전 9시 탈북자들 곁을 쓸쓸히 지나가 버린 추석을 대신해 합동 차례가 열렸다. 조상들에게 예를 올리고 고향에 두고 온 이웃과 친척의 안녕을 비는 탈북자들의 눈시울이 젖어들자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어 동시 다발적으로 축구·족구(남자), 피구(여자) 등의 게임이 진행되며 본격적인 체육 대회가 펼쳐지자 분위기는 곧 반전되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라산, 압록강, 두만강, 백두산 네 팀으로 나눠 경기를 치른 체육 축전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어울림' 의 한 마당이었다.
▲ 100M 달리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 ⓒ2003 김진석
▲ 이 날 행사에 참가한 많은 어린이들의 장난감(?)인 리어카. 스님 한분이 아이들을 태운 리어카를 밀며 뛰어가고 있다 ⓒ2003 김진석 한편 부대 행사로 운동장 한쪽에선 이웃돕기 일일장터, 내고향 맛자랑, 민속놀이 등이 열려 몸이 불편해 체육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들의 섭섭함을 달래주었다. 어린이들은 '달리는 통일 돼지'라 불리는 풍선 달린 리어카를 타고 운동장을 돌고 어르신들과 여성들은 윷놀이 및 제기차기, 널뛰기 등을 즐기며 그간의 시름을 잊었다.
해가 높이 떠오를수록 운동장의 열기도 높아 갔다. 함께 땀 흘리고 몸을 부딪치는 사이 처음의 어색함은 흔적 없이 녹아들었다. 단체 경기인 이어달리기, 줄다리기, 박 터트리기가 이어지자 주춤했던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참여해 어느 덧 하나가 되었다.
체전은 신명을 나누며 어깨춤을 같이 췄던 대동 놀이로 마무리 됐지만, 진짜 축제는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대략 40여 팀이 참가해 춤과 노래로 '끼'를 발산한 장기 자랑 경연대회는 관객들을 시종 일관 환호하게 만들었다.
들뜬 분위기에 즉석에서 벌어진 댄스 경연 대회엔 다섯 살 배기 어린이부터 연로하신 어르신들까지 무대 위에 올라 기염을 토하고 이에 운동장은 곧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남한에 온지 1년이 된 김금순(60)씨는 "원래 체육에 소질이 없어 체육 대회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만큼은 예외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동 놀이 관람 중 흥에 겨워 난생 처음으로 즉석에서 북을 연주하게 됐다는 김씨는 "그간의 고됨과 설움이 잊혀 지는 것 같다" 며 "오늘 체전을 통해 몸이 십 년은 젊어졌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 남쪽으로 온지 일년이 됐다는 조복련(20, 검정고시 준비생)씨는 "북쪽에서도 제기 많이 차요"라며 즐겁게 제기를 차고 있다 ⓒ2003 김진석이어 김씨는 "그간 바쁘게 사느라 만나지 못한 탈북자들과 만나니 잃어버린 부모 형제를 만난 기분이다, 꼭 내 고향에 온 것 같다" 며 끝내 감격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남한에서 주차 관리를 하고 있는 채이정(59)씨는 "목숨을 걸고 남한에 온 탈북자들의 그 절실한 심정은 겪어 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모를 것"이라며 "동병 상련의 느낌을 나누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이런 체전이 매해 가을마다 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제가 풀려야 체전을 해도 흥이 나지 않겠는가?"라며 "타율과 통제에 의해 열리는 북한의 체육 대회는 흥도 덜하고 점차 없어져 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또 채씨는 "무엇보다 북한과 달리 모든 경기와 응원에 자율적으로 참여 할 수 있는 남한의 체전을 통해 그간 잊었던 체육의 즐거움을 다시 찾았다"며 "비로소 갑갑했던 마음이 열리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동국대 운동장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올라와 처음 봤던 사람들이 서먹함을 털어버리고 그 누구보다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아는 형제, 친척, 친구가 되었다. 외로움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 그들을 어느 덧 붉은 저녁 노을이 따뜻하게 감싸기 시작했다.
"북한 여자 축구는 탈북자와 북한 동포들의 자부심"
99년도에 남한으로 온 최OO(30)씨는 그간 북한 여자 축구 및 남한 축구 A매치 경기를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본 축구팬이다. 북에 있는 친한 친구와 닮아 '고종수' 에게 정이 많이 간다는 최씨는 홍명보를 남한의 최고 선수로 뽑았다.
"골을 넣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결국 골을 잘 넣기 위해서는 뒤에서 지키고 있는 수비수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게 그가 홍명보 선수를 뽑은 이유였다. 2002 월드컵에서 안정환 선수가 역전 골을 넣었던 이탈리아전을 가장 잊을 수 없다는 최씨는 "북한의 축구 열기 또한 남한 못지 않다"며 "특히 북한 여자 축구는 전 국민적 스포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에선 여자 축구 선수들이 남자 축구 선수들과 똑같이 동등하게 훈련받고 대우받는다"며 "2003 미국 여자 월드컵 우승 확률은 최소한 70%이상 될 것 "이라고 자신했다.
"체력이 동등한 상태에서 기술의 기량으로 경기 승패가 좌우되는 남자 축구에 비해 기술보다 체력이 승패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게 여자 축구"라고 설명한 최씨는 북한 여자 축구가 선전 할 수 있는 이유로 '체력'을 꼽았다.
또 그는 "남한의 여자 축구 또한 '다크호스'로 적잖은 기대가 된다"며 "남한 남자 축구 못지 않은 선전을 바란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간 남한에 있으면서 북한 여자 축구를 보며 큰 위안을 얻었다는 최씨는 "팔은 안으로 굽는 것 아닙니까?"라며 "북한 여자 축구는 탈북자뿐 아니라 북한 동포들에게 자부심을 안겨 준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안타깝게도 북한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 하는 국가"라며 "부디 우리 선수들이 좋은 결과를 내어 그 후 당당히 따뜻한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김은성/김진석 기자 (frame4@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