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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핵폭탄을 소유했나?
Korea, Republic o 동해물 0 248 2013-02-15 08:21:29

박근혜대통령과 남북통일.

 

2. 북한은 왜 핵무기를 소유했나?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결과이다.

 

1945년 북한으로 진주한 소련은 황해도, 함경도 지역에서 우라니움 모래를 대량으로 운송해 갔다. 소련이 만든 첫 핵폭탄에는 북한과 동유럽지역에서 비밀리에 가져간 우라니움 광석이 이용되었다. 북한은 그 사실을 소련의 핵무기 실험 이후에 알았다.

 

1952년 북한은 전선에 나간 대학생들을 다시 대학으로 불러 들이 면서 유능한 학생들을 소련의 핵물리학 유학을 적지 않게 보냈다. 그들 중 일부가 소련의 핵무기와 원자력발전소 개발에 참여 했다.

 

 

1950년말~1960년대까지 그들이 북한으로 돌아왔고 북한은 핵물질 연구를 시작했다. 그때 당시까지는 소련이 핵탄을 가지고 있으면 13개 사회주의 국가들은 전부 소련의 핵 보호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련은 아세아국가들은 아세아국가들 스스로 보호를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중국의 핵무기 제조를 지원하다가 일방적으로 포기했다. 그러자 중국은 자력으로 핵무기를 보유했고 소련과 극지전쟁을 하며 대결 했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어떤 핵 보호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 하고 평안북도 영변지역에 핵무기제조 공단을 만들었다. 1960년 말 미국의 푸에블러호 납포와 이씨-121정찰기 격추로 핵무기, 화학무기, 미사일과 같은 전략무기 소유의 절박함을 느꼈다.

 

김일성은 남북한 휴전상태는 예측불허의 전쟁 상황으로 되돌아 갈수 있다고 확신 했다.

1950년 낙동강까지 전진했다가 후퇴한 것은 핵, 화학, 미사일과 같은 전략무기가 없었다는 것, 소련과 중국의 지원이 늦어지거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데서 큰 교훈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을 더 자극한 것은 남한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핵탄두 였다. 남한주둔 미군은 전선 돌파와 방어 및 군사전술지역 타격을 위한 155미리 대포, 전술미사일용 핵탄과 탱크 및 철근콩크리트 파괴용 개인휴대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 무기들은 노태우 대통령때 일본지역으로 철수 했다.

 

또 남한을 공격할 경우 핵과 같은 전략무기가 있으면 미국은 먼저 한반도에서 빠져 나갈 것이고 유엔군은 진입을 꺼려 할 것 이라고 확신했다.

 

남조선 민중세력이 혁명전쟁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핵과 같은 전략무기는 필수품이었다.

 

김일성은 천리마운동을 비롯한 산업증진 정책을 경제국방 병진 노선으로 개편하면서 전략무기 확보에 매진했다. 제2경제위원회라는 군수산업기관을 신설하고 이승기 박사를 비롯한 화학전문가들을 화학무기 개발에 진입시키고 핵폭탄과 핵미사일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중,장거리 미사일은 1980년대 말 완성되었고 미그-29기와 수중발사 중형급 잠수함을 비롯해 상용무기 자체생산 시스템은 1990년대 완성했다.

 

 

북한이 소규모 핵실험을 진행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이다. 당시 자연개조를 위한 대규모 발파가 빈번했음을 미국은 알고 있다. 소규모 핵실험 중 몇 차례의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북한은 1990년대 초에 이미 핵폭탄과 미사일 장착용 핵탄두를 완성했다. 북한은 처음부터 우리나라 지형과 전쟁에 맏는 소형 핵탄두 개발을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북한은 핵반응이 복잡한 장치가 없는 일반 상온에서도 진행된다는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고 당시까지의 모든 핵물질 연구와 방법을 재점검 하는 현상도 있었다.

 

 

현재 북한의 대구경 야포 및 방사포, 미사일 시설과 자행포차들에는 특별한 공간이 장착되어 있다. 대포알 1~3개가 보관되는 공간인데 전시에만 사용하는 장치다. 전투를 앞두고 인민무력부 전문군관들이 통신병과 포탄을 가지고와 직접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 전문가 양성기관은 함경북도 청진시에 있는 ‘두만강대학’이다. 155미리 대포급 이하는 화학탄이고 그 이상은 핵탄두 이다. 그 분야에 대해서는 일반군인들에게 어떤 교육도 하지 않는다.

 

 

1993년 클린턴이 북한영변 핵시설을 폭격하겠다고 할 때에는 이미 텅 빈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10년 후 부쉬는 영변의 빈 껍대기 원자로 굴뚝을 파괴하는 이벤트를 한 것 이다. (당시 책임자는 현재 주미대사 성김이다) 당시는 북한이 자력으로 원자력발전소 시험을 할 때이다. ‘고난의 행군’이 없고 국제적 봉쇄가 없었다면 북한은 평북태천의 원자력발전소를 자력으로 완성했을 수도 있다.

 

북한이 공개적으로 진행한 3차례의 핵 폭팔 실험은 국제적으로 전략핵무기 보유를 공식화하기 위한 이벤트에 불과하다. 전략핵무기는 우리나라 지형에 맏지 않으며 대도시 파괴용으로 북한이 회피하는 분야였다. 전략핵무기는 군사적 무기보다는 정치적, 국제적 무기이다.

 

 

1994년 김일성사망과 살인적인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은 15년 동안 전략무기문제를 주춤하고 있었다.

 

 

북한에게 있어서 핵, 화학, 미사일은 수호천사이다. 남한에 대한 공격과 방어, 반공격을 자유롭게 강행 할 수 있는 키를 잡은 것이다. 그 외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김정은의 과업은 전술 및 전략 핵무기를 소유한 상황에서의 개혁개방이다. 그의 도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동소총을 든 북한과 활을 든 남한과의 대결은 1990년대 시작된 것이다.

 

통일방송 대표 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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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생 ip1 2013-02-15 09:26:50
    이 글의 모든 내용은 정확한 사실입니다.
    북한은 1970년대 중엽부터 소형 핵탄두 를 제작하기 시작 했죠.

    단지 남한 사람들이 이글에 담긴 내용을 믿으려고도 하지 않고,,,
    저들의 군사력이 북한의 위에 높이 떠 있는 것처럼 오산하고 있는 것이...
    남한이 핵무기가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임을 모른다는 슬픔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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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뻥 ip2 2013-02-16 11:58:51
    당신이 지금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가?
    핵무기 소형화가 뭔지나 알고 나불되는가?
    북한이 이미 뭐 155미리이상 포에 핵탄을 사용할수 있는능력을 가졌다고?
    완전정신병자 아니면 북한을 대변하여 유언비언을 퍼뜨리고 있는가?
    북한은 죽엇다 깨난도 핵탄을 초소형화 하지는 못한다.
    80년대 무지한 북한군사병들과 위급장교들에게 이른바 사기를 충전시키기위하여 직경50메터 정도 되는 작은 무인도에다가 어느한 장성이 권총한발을 쏘니 그섬이 없어졋다더라 하는 코메디 뻥을 그대로 재연시키누나! 어이 정신차리라우! 개뻥가며 허위사시을 유포하여 공포분위기 조성하지 말아라 아그야 알갓느냐? 그리고 사기친돈은 빨리 돌려주라우1
    전체 탈북인들에게 누가 되는 일을 하지 말그라? 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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