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광장

자유게시판

상세
언제집에 가게 될가?집에 가고 싶다.!(1부)
떠돌이!! 4 484 2006-01-22 17:13:41
집에 가는날 잇을가?집에 가고싶다!!(1부) 떠돌이!![2006-01-22 ]


집에 가는날이 올가? 가고싶다,



여기는 지금 러시아 연해주에 위치한 하바롭스크주변의 자그마한 해안도시 나호드카 교외에 자리잡은 나의 농장이다. 작년 여름에 한국평수로 50만평이라는 땅을 사가지고 여기에 남새농장을 건설하고 있고 각종 농산물을 생산하여 한국에 들여갈 타산이다. 그일로 수시로 이곳에 드나든다.

오늘 여기서 조금 시간이 잇는 사이에 몇자 적어볼려고 한다.

여러가지로 심경이 복잡하기도하고 그리곱게 보지않는 나라이지만 어쩐지 한국으로 가고싶은 마음도 들고 …비록 이곳에 양부모들 계시고 러시아 친구들도 많지만 그래도 입씨름이라도 내사람들 있는 곳에 가고싶다, 또 이글로 비웃는 사람이 많으리라는 것도 않다. 하지만 난 미워는 해도 그들을 증오하지는 않는다. 잘나도.미워도 함께 온사람들이고 같은 땅에서 온사람들이고 사지를 넘어 죽을 고비를 함께 한사람들이고 한국인은 외국인으로 보여도 미운 놈이라도 북한인은 어쩐지 마음이 별다른 미운 놈들이 더보고싶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다들 뭘하고 살가. 내가 아는 놈들은 뭘하고 있을가.

업무상관계로 해외를 많이다닌다.

현재 거래관계와 지사를 두고 다니는 나라까지 합쳐 7개의 나라를 정말 팽이처럼 돌고있다.

그중 많이 다니는 나라가 일본과 러시아, 남아공이다. 한국에 사는 날보다 그나라들에 나가있는 날이 더많다. 이제는 한국에온지도 3년이 넘었지만 한번도 설을 한국에서 보내지 못했다.

솔직히 돈이 받쳐주지않고 기술이 받쳐주지않고. 인맥이 받쳐주지않고.배운 것이 없이 무식한 놈에게 있어서 국내에서의 사업보다는 어찌보면 해외로 다니면서 보따리식으로나마 부스레기 돈버는 것이 어떨때는 구차해보이기도 하고 어떨때는 다행이다싶기도 하다.

성격상 남들처럼 누구밑에 들어가 착실하게 회사원 생활을 할 스타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와서 처음처럼 술집이나 붙들고 있고 싶지도않고 막막할때가 정말 많다.

그렇다고 누가 밥먹여주나.용돈주나. 제딴에는 그래도 북에있을때는 입가에 숟가락 넣어주다싶이 호강하며 살았지만 여기와서 누가 그렇게 해줄가? 그러다보니 지난날 중국이요,미국이요,캐나다요,멕시코요,정말 허구하게 마구잡이로 돌고돌았고 날아가는 돈 잡아볼려고 사기도 치고 싸움질도 하고 도적질도하고 참 별짓을 다했다. 그래서 여기 사이트 판에서도 참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또 그바람에 감옥도 같다오고 죽을 개공생도 좀하고 노숙자도 해보고,,,,

사람이 사람질한다는게 참 말처럼 쉽지않다는 것을 피로 새겼다고 할가,

내주위에서 나를 지켜본 사람들은 나의 이런모습을 보고 놀래는 사람이 많았다.

사업이라 펼치니 나도 사기군이지만 여기 한국인들에게 많이 당하기도 했다.

해외와 북한의 인맥관계로 물건들을 끌어다 여기서 처분할려면 전부 사기치는 작자들이고 도와주자는 놈은 한명도 없었다. 오히려 같은 북한사람이라고 같이 돈벌어보자고 여기사람들 사기쳐 그사람 도와주니 그인간도 배신때리며 거래선 가로채느라 눈알에 피발이 되여 날뛰고 ,,그러나 그런다고 자기가 이익 본일도 없다더라. 참 고약한 인간이다. 나도 힘들면서 어덕하나 물건들 끌어내 중국이고 어데고 보내주니 그걸 물구 넘어지더라. 우리북한 사람들 그렇게 고약하더라고,,,그인간 자유북한방송에서 한때뭔가한다면서 지랄하던인간인데 아는 사람들도 많으리라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기와서 두주먹만 들고와 생판에서 시작하는 자리에서 서로가 감싸줄건 감싸주면서 미안한소리이지만 여기눔들 사기치며 자기를 도와주는데 어떻게 짐승처럼 물어버릴수 잇을가하고. 말이다, 그바람에 그인간 나쁜장난하는 바람에 또 한동안 고비를 겪었다. 거기에다가 한국에 도착하여서부터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까지 내가 허구한날 외국돌아다니고 일 때문에 집들어오는 날이 더 적으니 그사이 다른 남자와 눈맞아 결국 나와 헤여졌다. 그일로 남아공에 투자한 자그마치 6억이라는 돈도 하늘로 보내고, 그때 당시는 눈앞이 캄캄했다. 남들같으면 아마 여자에게 행풀이하면서 해준 것 다 걷어들이느라 야단일테지만 나는 그렇게할 수가 없었다. 비록 나보기가 싫어서 헤여졌지만 내가 한국에 수배로 잡혀온후 감옥바라지를 하느라 엄청 고생도 했고 푼전을 아껴가며 감옥에 넣어주느라 그여자도 고생이 많았다.

처음에는 화김에 집에 사들인 물건부터 시작해서 옷가지까지 전부 걷어내왓다가 또라이 짓거리인것같아 다시 그여자집에 전부 들여다 놓고 내손이 간 것은 전부 버리고 이부자리까지 새이불로 사들이고 장애인인 그가 내가 없으면 고생할가봐 내가 해줄수 있는 것은 다해주자 하는 마음에 사실 많은 물건들도 사다 넣어주고 하였다.

억울한 것이 많고 내려가지 않는 것이 많고 뒤에서 그여자를 꼬드기는 인간들 전부 머리통에 콩알하나씩 박아버릴가 ,그여자고 누구고 전부 죽여버리고 나도 자살이나 해버릴가 하는 고까운 마음도 많았지만 불쌍한 인간에게 두번다시 죄를 짓고 싶지않고 어찌 되였든 잘못은 내게 더 많다 생각하고 특히는 이제부터 인생을 달리해보자, 그리고 정신없이 달리느라면 언젠가는 그여자도 이해하고 후회하는 날 오겠지 하는 배짱으로 오직 일만 생각하고 0 0 듯이 달리였다.

옆에서 사람들은 모두 하는 말들이 장가한번 가보지도 못한 놈이 아이달린 여자를 미쳤냐며 왜 그러는가 하더라고, 솔직히 오랜 군생활로 여자라는걸 모르다가 한국왓는데 중국에서 몇 년 살다온 아이가 댓살되는 여자를 좋아하게 되였는데 솔직히 여자는 착하고 말수도 없다.

아직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말이라는거 모르고 착하게만 사는 여자이다.지금 역시도,

솔직히 3년이라는 세월 나 때문에 눈물도 많이 흘렸고 나에게 욱박도 많이당하고 ,까놓고 말해서 북한식 생활방식이 꽉 차있는 눔에다가 우리집안은 북한식 봉건이 좀 심한편인데 외할머니도 그전날 김일성 부대에서 소년중대원으로 살아온 고지식하고 소위 말하는 당적양심,곧바른 성품밖에 모르는 집안에서 자라다 보니 여자를 대하는 품이 이북식이다.

여기서는 그것이 또라이짓이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니 중국에서 한두해도 아니고 5년넘게 산여자가 그렇게 내말을 들을리가 있겠나.? 나와 헤여지는 이유가 내성격 때문과 집에 들어오지않는 이유라고 한다. 글쎄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들처럼 할거 다하고 하다보면 언제 돈을 벌가.

이제는 정신차리고 제대루 살겠으니 마음 잡으라고 달래도 보고 위협도 하고 별짓을 다했지만 딴놈에게 마음 돌리니 어쩌지 못하겠더구만 . 마음이 아프더라도 보내주자 보내주되 잘해서 보내주자하여 솔직히 돈좀들여 가장집물까지 전부 멋있게 해주고 나왔다. 주변에서 대신 복수해주겠다는 눔들도 많고 내용을 확인해주겠다는 눔들도 많았지만 모두 그만두었다. 그런일에 정신 쓸거면 돈이라도 한푼 더벌자 하는 마음으로 진짜 그때 일전도 없이 잠자리도 없어 사무실에서 자고 먹고 하면서 새로운 발판을 만들어갔다. 그나마 여기 한국에서 발판 닦은 것이 도움이 되여 다시 인맥을 잡고 장사를 시작했다.그래서 그때부터는 북한사람 회사에 받는 것은 고사하고 일체 사업에 북한사람들 끌어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따르는 동생들까지조차 회사문턱을 넘지 못하게 하였다.

때로 만나면 술이나 한잔 하는 정도로 끝내고 .누구도 .북한사람 만나기가 싫었다.

그런 마음은 지금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도와주거나 다른 일은 해주어도 절대 그들과 사업은 함께 할수 없다는 것이 오늘 날 내 머리속에 꽉 차있다. 여기 이글을 사이트에 또 올리면 별 험한소리 다 할거라는거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떠돌면서 보니 딱한가지 그리운게 있어 ,그리고 지금의 이현실이 도대체 언제 막을 내려 보고싶은 엄마한테 가나 하는 고달픈 마음에 생각되는대로 적어본다.

나는 공부라는 걸 못하고 산사람 이다보니 말을 잘할줄 모른다.

생각나는 대로 적는 눔이다.그러다 보니 남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가 일쑤이다.

여기 사이트에 내나름으로 사진들도 자주 올려보고 하는 것은 할일 없어 말장난이나 하자는 게 아니다. 이제는 밥술이나 좀 먹게되고 남들보다 좋은 집에서 좋은 물건 쌓아두고 살만하고 한국인들보다 더좋은 차도 끌구 다니면서 여유라고 할가 내나름으로 살만 해졌다싶어 지난날에 나쁜짓 하두 많이 하다보니

이제는 돕고싶은 마음에. 아직도 그전날 나처럼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하여 힘이 될려나 하는 마음에 .적어보게 되고 자주 여기찾아오는 것이다. 오늘 여기에 기본 중심적으로 말하려는 목적이 있다.

해외를 많이 돌다보니 비행기안에서나 또 출장지에서나 기차에서나 버스에서나 북한사람들 을 자주 보는 경우가 참 많다, 똥개한테는 똥 밖에 안보인다고 북한놈 눈에는 북한 사람 딱 딱 들어온다.

중국에가든 ,일본에가든 ,러시아에가든 ,몽골에가든,심지어 아프리카에 나가도 매번 식당이든 여관이든 꼭 만나게 되는데 그럴때면 참 마음이 이상하다. 저사람들이 내가 북한을 도망쳐나온 사람이라는거 알면 과연 어떤 표정일가. 저사람들은 우리처럼 도망칠생각이 안들가? 좌우지간 별의별 마음이 다 들면서 새삼스러워지고 괜히 마음이 울렁거린다. 이런마음은 나혼자아닌 여기모든 분들이 해외나 어디에서 이북사람들 보게되면 그런 마음일거라고 생각한다.

이야기 몇가지 해주겠다.

내가 지금 여기 러시아에서 나호드카 농장을 건설중에 만들어가고 있는데 러시아 현지인들을 고용해쓰는것도 여기 한국에 비하면 엄청 싼 인력이지만 그돈도 아까워 사실 북한에서 건설인력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데려다 쓸때가 더많다. 비록 돈받는 것은 한국돈으로 한달에 4만원내지 6만원까지이다.

여기서는 새발의 피겠지만 북한으로써는 큰돈이라 생각하고 양아버지에게 매일같이 찾아온다.

자기네 인력들에게 일감 잡아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꺼리다가 이제는 자연스러워 졌다. 죽어번져저도

그들이 내가 차마 북한사람인줄은 모른다. 여기서 채벌장들도 멀지않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면 북한사람들 참많다. 어찌보면 여기 한국 구로에서 조선족 교포들 보는 수준이라 해야겠다.

처음에 양아버지는 괜찮겠느냐 근심하였다. 그런데 동족애는 피할수 없는가보다. 코큰 러시아 돼지들 데려다 쓰느니 차라리 우리동포 살리겠다 마음먹고 그렇게 하였다.

여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양아버지되는 분이 고려인이고 전체 러시아 KGB 장군이다. 전체 러시아군에 고려인이 장군이 7명인데 그나마 5명은 퇴역하고 현재는 두명박에 없다.

이제는 그전날의 쏘련이 망해 케지비도 마피아나 다름없고 당간부이든 행정간부이든 마피아이거나 마피아에 연결안된 사람들이 없다.

나의 양아버지도 그런 부류로 보면 된다. 케지비 자금담당이고 콘스탄틴 플리코프스키의 보좌관이다.

참 이사람이 누구냐하면 구쏘련이 망하고 련방공화국이 망하면서 나라별로 해체된 다음 러시아 대통령은 각나라들에 대통령 전권대표들을 앉히였다.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에 대하여 아는 분들이 많으리라 본다.

김정일과는 막연한 친분 관계를 가지고 있는 친북인사이다.

솔직히 이사람이 남북관계문제에 관여도 많이 하고 남북을 오고가면서 량쪽의 중계사업을 많이한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좀 자세히 이사람에 대한 내용을 말하려고 한다.

이름 :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출생 : 1949년 출생지 : 러시아

직업 : 정치인 소속 : 러시아 대통령 극동전권대표 명예정치학박사

지난해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60주년에 맞춰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 평양방문,

양식의 맨 위

양식의 맨 아래김정일에게 러시아 방문을 초청했다

1. 풀리코프스키 극동 전권대표 15일 방한 (여기에 한국뉴스에 났던 당시의 내용이 있다,)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57) 러시아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표가 통일부 장관을 지낸 박재규 경남대 총장의 초청으로 15일 한국을 방문한다. 그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차례 러시아 방문 때 모든 일정을 동행하는 등 김 위원장과 친분이 두텁다. 그는 방한 기간 중에 러시아 극동지역 개발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안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그는 청와대 및 이해찬 국무총리 예방, 김태호 경남지사 접견과 경남지역 기업 시찰, 경남대 명예박사학위 받기 등을 하고 18일 출국한다. 풀리코프스키의 직책인 전권대표는 푸틴 대통령을 대신한 극동지구의 행정수반으로 ‘총독’ 개념과 비슷하고 ‘권한대행’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 경제계는 러시아 극동지역 개발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리가 22일 밝혔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풀리코프스키 대리는 “한국의 재계 지도자들이 러시아 극동의 에너지 부문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이 △야쿠티아-아무르-중국을 잇는 가스관 건설 △사할린가스전 개발에 관심을 보였다면서, 한국 방문 기간에 이 문제를 협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남북한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계하는 문제가 정치적으로 절충됐으며, 이제는 프로젝트 실행에 관한 기술적인 가능성이 검토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2. 김정일과 친한 풀리코프스키 돌연 한직으로 푸틴의 대북정책 바뀌나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 내정설이 나돌았던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57) 러시아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표가 지난 5일 국가기술감독청장(장관급)직에 임명됐다. 국가 환경, 기술, 원자력 분야에 관한 감독사업을 총괄하는 자리다.지난달 14일 전권대표에서 돌연 해임됐던 풀리코프스키가 왜 해임되고, 새로운 직책을 맡게됐는지 그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해임 직후만 해도 그의 다음 자리는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인 것으로 알려졌었다.러시아 고위 인사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워낙 막역한 사이인 데다, 그의 입을 통해 러시아의 대북 정책이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던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김정일도 풀리코프스키를 통한 대외 발언을 유도해왔을 정도로 대북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었다. 일부에서는 그의 해임 이면에 러·북 관계에 이상 전선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도 있다. 푸틴 대통령이 김정일의 속내를 가장 잘 꿰뚫고 있는 풀리코프스키를 해임하고 카밀 이스하코프 전 카잔 시장을 극동 전권대표에 임명하면서, 풀리코프스키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다는 주장이다.또 그의 해임 이유는 업무 추진 능력 부족이라는 말도 있고, 주지사들을 통할하는 전권대표까지 지낸 거물을 북한 대사로 내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작용했다는 말도 있다. 대통령 전권대표란 푸틴 대통령이 주정부와 러시아 내 21개 공화국을 통제하기 위해 신설한 행정대표이다.미국 민간 정보분석기관인 스트레이트포는 “러시아가 풀리코프스키를 교체한 것은 북한에 찬물을 끼얹은 것과 같은 효과”라고 평가했다. 전권대표의 교체가 러시아의 대북 정책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풀리코프스키는 지난 2001년 김 위원장 방러 당시 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까지 23박24일 동안 전 일정을 동행했다. 올해 들어서도 김 위원장 생일을 비롯 북한의 광복 60주년 행사, 노동당 창건행사 참석을 위해 수차례 방북했다

3.북한은 주로 안방에서 양자협의를 진행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8일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후진타오 중국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은 앞서 8일 평양에서 우이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만난 데 이어, 9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 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와 만났다. 6자회담 북한쪽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우이부총리와 함께 방북한 6자회담 중국쪽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을 만난데 이어, 18∼20일엔 리빈 한반도담당대사(차석 대표)와도 협의했다.

풀리코프스키, 김정일 위원장 면담 -북한을 방문 중인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 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가 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양국간 무역과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풀리코프스키 전권대표의 대변인 예프게니 아노신의 말을 인용해 풀리코프스키 전권대표가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인정한 협상 참가국들의 결정에 찬사를 보냈다고 전했다. 아노신 대변인에 따르면 풀리코프스키 전권대표는 "러시아는 그동안 6자회담 최종 합의문을 통해 이 권리를 인정할 것을 주장해왔다"면서 "러시아는 앞으로도 북한측이 평화적 핵 개발 프로그램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다른 참가국들과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2단계 4차 6자회담 참가국들은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한다는데 합의했다. 무역문제와 관련, 김 위원장은 풀리코프스키 전권대표에게 지난 2개월간 여러건의 투자프로그램이 시작됐다면서 러시아 투자가들이 정유 및 금속공장 건설 자금을 댔다고 말한 것으로 아노신 대변인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이달 초에 북한내 투자를 돕기위해 평양에서 은행이 문을 열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4. 부산광역시 , 극동러시아와 경협 일궈내 - 부산광역시는 지난 7월 3일부터 7월 6일까지 허남식 시장을 비롯한 부산지역 정계, 경제계 인사들이 하바로프스크 등 극동러시아 지역을 방문하여 부산과 극동러시아지역간에 경제협력을 일궈냈다. 첫 번째 방문지인 하바로프스크에서는 극동러시아 전권대표부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대통령 전권대표를 비롯한 한·러협력 극동센터 쿠릴로프 공동위원장 등과의 만남을 통해 부산과 극동러시아 지역간의 경제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를 가졌고 부산시와 한·러협력 극동센터간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교류·협력을 증진하는 협정서를 체결하였다. 구체적인 협의 과정에서 양측은 러시아 극동지역에 부산 상품 홍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부산상품 상설 전시관 개설 그리고 극동지역 공공시설, 도로건설 등 사회인프라 구축 사업에 부산기업의 참여를 적극 지원할 것을 약속하였다. 또한, 한·러 협력센터를 부산에 개설키로 하여 부산이 한·러협력의 카운터 파트너로서 전국 지자체와 기업들의 대러시아 진출의 공식 창구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지자체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성과로서 향후 부산의 세계화와 지역발전은 물론 나아가 국가발전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협정서 체결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하고 승인 받은 사항이라고 전권대표부는 전했다. 그리고 부산시와 협정서를 체결한 한·러협력 극동센터는 러시아 극동지역과 한국간의 협력증진을 위해 러시아연방 극동지역 대통령 전권대표부와 극동국립대학이 공동으로 2005년 1월 설립하였으며, 풀리코프스키 전권대표와 쿠릴로프 극동대 총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두 번째 방문지인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니콜라에브 블라디보스톡 시장과 회담을 통해 부산시와 블라디시간에 경제분야 등에서 교류·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협력증진 협약서를 체결하였으며, 이어서 진행된 경제인 초청 설명회에서는 블라디시 도시개발 사업 등에 부산기업들이 적극 참여하고 지원하도록 하였다. 부산시 자매도시인 블라디보스톡시는 현재 자연 재해방지, 공공 상수도 시설 확충, 도시간 고속도로 건설, 호텔·쇼핑몰 건설 등을 위해 해외 투자 자본 유치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부산기업의 블라디 진출이 상당한 탄력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극동연방지구 러시아 대통령 전권대사의 관계를 언급하며 “풀리코프스키 대사는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가까운 몇 안되는 러시아내 친북인사이고, 지난해 11월에는 한국을 방문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이 러시아에서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라며 “이 의원이 풀리코프스키 대사와 접촉해 남북정상회담에 모종의 역할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우의 몇가지 내용을 보다싶이 이사람의 권력대행이 이정도이라는 것만 알면된다.

양부친의 소개로 작년에 하바롭스크에서 이사람을 만낫는데 한국말도 떠듬거리지만 괜찮은 정도이다.

이사람이 나에게 이런제안을 하였다. 이번에 북한 당창건 기념행사에 초청되여 가는데 이번에 가면 50만톤의 중유무상지원문제와 50만와트의 전기무상지원문제를 너희 김정일과 협상할것이라고,

북에서 살다온 분들은 잘알것이다. 전기체계나 기계체계가 북한은 중국설비지역.일본설비지역,러시아설비지역으로 나뉘는 것을.

여기 한국에서 정동영이 200만키로와트의 전기를 보내겠다고 할 때 나는 저사람이 북한의 체계나 알고 저런 소리하나 싶었다.일본식 설비가 되여있는 앞쪽은 그나마 한국전기를 볼테지만 북부지구는 전부 중국것 아니면 러시아제이다. 미국에서 주던 중유 50만톤이 귾어지면서 이것을 러시아에서 무상지원하기로 했는데 송유관설치와 전기선설치가 걸리는데 이것을 한국에서 건설투자를 받기위하여 자기가 한국도 방문하여 노무현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보고 너도 한국에서 투자자를 골라보라는 것이다. 은근히 네몫도 있을거라는 소리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내능력밖의 일이다. 자신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웃으며 저는 보따리상인이라 그런 큰일은 못한다 하니 북한 놈치고 솔직해서 좋다는 것이다, 힘든일 잇으면 연락하란다, 부친을 통해서 .글쎄 지금도 연락하면 도움이야 받겟지 그러나 구태여 도움 없어도 된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아직은 큰물에서 놀 형편도 아니다. 내가 왜 이자리에서 이사람의 소리를 많이 하느냐하면 이사람이 나 같은 북한 탈주병을 바라보는 시각이 참 마음에 생각되는게 많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 하지 말자. 나의 마음을 충분히 알리라 본다.

양아버지에 대하여 더 첨부 한다면 이분과의 인연은 참 이상하다.

세상이란게 참 넓구두 좁다, 나는 한국에서 우연히 러시아 태권도 총연합회 회장을 하는 고려인 미스터 초이를 알게 되였는데 같은 스포츠맨이라 우리는 정말 친하게 되였다.

이 사람은 김정일이 매번 러시아 방문 때마다 특별 통역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그의 딸들도 한국에 어학연수를 자주온다, 이사람도 국제경기로 한국에 자주오고,

내주위의 사람들은 그바람에 이 사람을 다안다. 북한친구들도 전부 소개시켜주었다.

솔직히 이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 중에 미스터 초이를 떠올리는 사람 많을 것이다.

매번 미스터초이가 한국방문때마다 공항에 마중가거나 바래우러 다녔던 방화동의 친동생이나 다름 없는 아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사람의 초청으로 러시아에 갔는데 케지비 장군을 소개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기심에 따라갔는데 한국말을 잘 모른다.

양어머니가 사진첩을 보여주는데 세상에 이런 우연이 어데 있나.

러시아 우랄의 군사대학 다닐 때 장군의 사진에서 우리 친아버지의 사진이 붙어잇을줄이야,,,

이게 어떻게 된일이냐 하니 그 사람이 더 놀라더군, 그때 북한 군에서 당시 군사류학생 13명이 들어왔는데 고려인은 자기하나로써 진짜 그사람들과 친했고 특히는 우리부친과는 의형제 사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부친이 쏘련방문때 4번이나 자기를 만났고 자기도 북한 방문 때마다 우리부친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북에서 살 때 우리집에 러시아 물건들이 많았는데 이것저것 물어보니 자기가 전부 사서 보낸거라고 한다. 양어머니도 조국방문 6차례때마다 우리집을 방문 했다는데 당시는 나는 7살에 체육대학을 가다보니 한번도 본일이 없었는데 자기들은 우리집에서 내 사진을 많이 봤다는 것이다.

양어머니가 온밤 나를 붙잡고 우는데 참 기가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우리 부친이 사망햇을 때 두분이 모두 나갔다 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집 사진첩에 우리어머니,부친,누님,그리고 동생들 사진 십여장은 넘게 있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여 작년여름 다시 찾아가 양부친의 생일상을 한국돈으로 5천만원되게 차려드리고 올해 환갑상 받는것도 자식으로써 내가 차리기로 결정했다. 그분들이 자식이 없다. 장군이 국내소란때 전쟁에 나가 부상을 많이 당하고 자식을 보지못하였다. 그게 인연이되여 장군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땅도 사실 절반을 내놓은 것이고 나를 보고 아주 러시아로 이주하면 재산 전부를 내놓겠다고 한다. 솔직한 말로 러시아 에서의 사업전부를 이분이 도와주는 셈이다. 양아버지의 친동생 한분은 하바롭스크에서 제일 큰 수산물 가공공장 두개나 운영하면서 나를 보고 네가 러시아에 아주 오면 공장 하나를 줄것이고 지금도 달라고만 하면 자기네 생산물 전체의 절반을 한국에 넣어줄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래저래 인복이 있어 러시아에 발을 붙이고 지금은 열심히 일한다.

앞으로 계획은 여기를 발판으로하여 농산물,수산물등을 직접 여기서 생산가공하여 유럽을 뚫을 목적이 기본인데 아직은 준비단계라고 봐야겠다. 얼마전에 한국에 지금 와있는 사람들로 북한에서 잠수하던사람들을 모집하여 연해주와 싸할린을 무대로 수산물 채취를 하려고 준비하댔는데 이래저래 궁리해봐야 북한사람들하고는 안될것같아 생각을 돌리고 지금은 중국에서 데려갈려고 준비하고 있다. 일체 장비와 준비를 다해두었는데 그일도 북한사람들이 말썽을 부려 안된것이다.

이문제로 작년여름 케지비장군을 한국에 초청햇다.

사람들이 많이 놀라더군.어떤사람들은 마치나 내가 간첩인것처럼 생각하더군.

그럴수박에 없으리라는 건 이해한다. 한 개큰나라의 헌다하는 장군을 나 같은 볼품없는 놈이 초청을 하니 당연하지 않겟나. 그분을 모시고 파주시 시장에게로 간일이 잇다. 파주시장도 그전에 유도선수였다고 한다,그래서 미스터초이와 인연이 깊다, 이래저래 비즈니스로 포천시 건물에 들어서니 나 같은 탈북자가 한나라의 장군을 달고 다니니 이상하게 보더라.

그래서 양아버지이라고 했더니 시 어른들 비굴함이,,,,,,

한국사람들 비굴할 때와 역경앞에서의 떠는모습을 보면 정말 역겹다. 입질들은 참잘하는데 행동앞에서는 특히 곤난앞에서는 개꼬리이다, 도망은 또 얼마나 잘치는지 .자기가 불리하다고 생각할때는 그수법이 족제비 뺨 친다 , 우리 북한사람들과 다른 것이 이것인가보다.

그래저래 북한사람들 지들 돈벌게 해주겠다는데도 이런다. 우에서도 말했지만 그래서 포기하고 현지인들과 중국인들을 쓸 생각이다. 얼마전에 여기에 현재 한국에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집을 팔면 어떻고 살기힘들어 하는 우리북한사람들에게 빌려주면 어떻나 도와주자는 마음에서 글을 올렸더니 참 시비군들이 많더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왜 남잘되는거 그리도 가슴아파하는지

전부 그런 사람들인건 아니겠지만 작년도에도 해외 떠돌다가 돌아와 여기 글 좀 올리니 얼매나 시비군들이 많던지. 다시 안온다고 그후 얼마동안 여기 안왓는데 해외 떠돌다보니 그나마 제일 보구싶은 게 미운 북한사람들이구만요. 이게 민족심인가요? 동족에 대한 미련인가요? 오히려 그사람들이 나에게 그렇게 많은 피해를 주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마음은 나하나 그럴가요?

여기에 또 한가지의 비밀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것도 여자소리인데 방화동에서 여자와 헤여진후 나는 어떡하나 그여자보다 잘되여야 한다는 마음과 그여자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나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솔직히 한국에서 주변의 어른들이 비즈니스로 많은 대인관계를 가지다보니 나에대해 아는 분들은 전부 나의 가정생활문제를 신경을 많이쓴다.

그래서 한국여자를 소개시키는 분이 참 많다. 그런데 만나는 여자마다 왜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지 나도 모르겠다. 돈많은 여자도 있고 배운 것이 많은 여자도 잇고 재력가의 자손도 있지만 전부가 마음에 안든다. 정신나간 얼드기라고 하겠지만 이것이 이질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잘아는 교포누님의 소개로 만난여자가 또 북한 여자이다.

그런데 또 안되였다. 왜? 나이가 너무 어린탓인지 .아니면 가정생활하던 여자라 미심쩍어 그런지 마음에 내키지 않은 것이다. 그여자 또한 본 남편에게서 너무 고통을 당해 남자라면 두려움부터 앞세우니 나 같은 못생기고 깡패처럼 노는 눔을 좋아할리가 있나.

나를 처음보는 사람들은 전부 말한다. 그정도로 나는 못생긴 사람이다.

얼굴이라도 받쳐준다면 이정도로 ,그리고 말주변이라도 유순하면 모르겠는데 군생활 오래한탓에 .그리고 한국 첫 생활을 건달로 살다보니 말투가 내보기에도 참 더러운데 고쳐지기가 참 힘들다.

이제는 내스스로도 내가 많이 변했구나 느껴지지만 연약한 여자들에게야 얼매나 무섭게 보이겠나.

마음은 그거 아닌데 그여자도 며칠 말걸어 보더니 사라져 버렸다.

아이고 이것이 다 팔자탓인가부다. 내게는 여자복이 참 없다.

그런대로 다른 일들은 좀 되는 편이나 여자문제만큼은 힘들다.

어리석은 소리이지만 나 여자에게 잘할 자신 있는데. 왜 이문제 만큼은 안되는지 모르겠다.

재작년도 떠돌아다닐 때 솔직히 북한에 몰래 몇번 다녀왔다. 집에도 가니 동생들도 이제는 시집장가 다가고 지식들을 다 두었다.

우리 엄마가 환갑이 넘어 이제는 내게 하는 말이 맏이야,이제는 돈두 그만 부쳐라, 내 죽기전에 네가 장가가는것만 보면 한이 없겠다 하더군. 아직 정신 안들어 그런지 여자에게 두려운 생각이 먼저들거나 마음을 열게 되지않는다.,,,,,,,,,,,,,,,,,,,,,,,,

오늘 여기에 말하려는 중심을 잃고 다른 쓸데없는 잡소리로 길어졌다.

솔직히 해외에서 떠돌면서 여러 북한 사람들. 고향사람들 만나고 나니 집 생각이 나서 언제면 집에 돌아가나 하는 간절한 마음에 적어보려 한 것 인데 이야기가 다른데로 길게 나갔다.

이런정도로 나란 눔은 무식하기 그지없다.

이런대루 내글을 봐 주신다면 고맙게 생각하고 조언을 주시면 감사하게 생각한다.

남들처럼 평탄한길을 걷고잇는 사람이 아닌 남다른 길을 걸어온 한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계속 들어주시겠다면 더 연결하려고 한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하려고 한다,

솔직히 나를 욕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잘안다.

그래서 더구나 이런 소리를 약으로 들으려고 염치를 쓰고 여기에 글을 남기는 바이다.

그러니 많은 조언 부탁한다.

때때로 여기에 사진을 비롯해서 글들을 자주 올리는데 허심탄회하게 조언들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그리고 꼭 여기서 돈들을 많이 벌어 집에가는 날 돈배낭 메고 고향길 귀향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떠돌이 드립니다,
좋아하는 회원 : 4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 동갑 2006-01-22 19:16:26
    우리 탈북자 중에 이런 영웅 있나요.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죄송하지만 이메일 번호라도 알려줄수 없을가요? 혹시 제가 님께 도움될지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알려드릴게요 2006-01-22 21:39:29
    그사람 이메일 내가 알거든요
    <a href=mailto:kook19692003@yahoo.co.kr>kook19692003@yahoo.co.kr</a> 이예요
    지금 러시아 갔는데 생일도 아마 거기서 보낼려나 봐요
    1.28일이 생일인데
    백두한라회 게시판에 보면 돌아왓다로 사진 많이 올렸어요
    그사람 이거든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지나다 2006-01-23 10:23:09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관리자님 잘하셨습니다.
다음글
천기원목사님 많이 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