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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50키로 시멘트 이고 다니던 강복순씨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Korea, Republic of 북한맨0 0 401 2014-04-03 22:10:43

강복순씨가 북한의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사연을 보내시고 싶은 분은 북한개혁방송에 연락주십시오.)

http://www.nkreform.com/

 

 

 

 언니, 그간 잘 있었어요?

제가 언니가 사는 황해도로 장사를 다니던 일이 어제 같은데 벌써 8년도 넘었네요. 언니네 가정 모두 무고하겠지요?

저는 장사랍시고 밑천도 얼마 없이 조선8도를 다 돌아다니면서 빌어도 먹고 도적질까지 해먹으면서 별짓을 다 하면서 살려고 애를 썼지만 더는 살수 없어 끝내 중국으로 갔어요.

언니, 저는 그 후에 그립던 딸들과 중국에서 꿈처럼 만나게 되었고 다시 다음해에 우리 가족이 다 함께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정든 고향을 더나온 사람들 그 누구의 이야기도 다 그렇겠지만 저처럼 비참하게 산 사람도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언니, 언니를 찾아 가기 전 저는 북한 돈 100원을 가지고 평양-무산행기차를 몰래 타고 고무산시멘트 공장에 가서 시멘트를 사 날라다 팔면서 거지보다 못 하게 살았어요. 그때 조선 돈 100원이면 시멘트가 50킬로였는데 그 무거운 돌가루를 센 바람만 불어도 넘어갈 저처럼 약한 사람이 어떻게 끌고 다녔을지 상상이 되시나요?

그 것도 증명서가 없으니 차표도 못 떼고 도적차를 타고 다녔고 늘 무거운 돌가루를 이고 다니느라 제 머리카락은 다 빠져 버렸어요.

언니, 거지처럼 살았지만 그 때는 우리 가족이 남편까지 다 한집에서 살았기에 그 나마 행복했답니다.

언니도 알다시피 그 이후에 제가 황해도장사를 다니면서 집에 하도 먹을 것이 없으니 우리 애 아빠는 정말 거지처럼 이 곳 저곳을 다니면서 빌어먹고 살게 되었어요. 그 이 후로는 아주 집을 나가 전국을 떠돌면서 빌어먹는 거지가 되었는데 아마 제 생각에는 배가 너무나 고파 먹는 생각만 하다나니 정신이 조금 잘 못되지 않았나 싶어요.

북한정권을 위해 군사복무를 몇 십 년이나 하고 나중에 고향도 아닌 광산에 집단배치를 받은 것만도 너무 억울한데 뼈 빠지게 일을 해도 국가에서 먹을 것을 주지 않아 거지가 되어버린 남편의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군 해요.

언니 제 남편은 끝내 나가다니면서 빌어먹다가 어디서 죽었는지조차 몰라요.

밤을 자고나면 시체가 넘치던 시절이라 누가 어디서 죽었다고 해서 장례라도 해줄 형편도 아니었으니 시체조차 어디에 묻혔는지도 몰라요.

언니, 더 억울한 것은 제가 딸만 셋을 낳고 귀하게 얻은 막냉이 아들이 제가 황해도에 장사를 간 사이에 옆집에서 때는 연탄 냄새를 맡고 죽은 일이예요.

언제나 제가 장사를 다니면서 데리고 다니 군 했는데 그 일이 있을 때는 제가 혼자만 황해도에 가고 그 애는 집에서 공부를 좀 하라고 남겨 놓았던 것이 화근이 되었어요.

언니, 이밥 한 그릇 배부르게 먹여보지도 못하고 세상에 태어나 9년밖에 안 되는 막냉이 아들이 그렇게 엄마와 말 한마디 못 해보고 생죽음을 당했어요.

수백만의 백성들이 굶어죽고 얼어 죽어도 관심도 없는 그 정권에 무엇을 위해, 무슨 공부를 할 것이 있다고 집에다 두고 갔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스럽고 우리 막냉이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요.

언니, 그 진저리나는 세월, 우리 어머니와 오빠, 큰 언니 다 굶어서 돌아갔어요. 부자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소박하게 옥수수밥이라도 배 불리 먹는 것이 최고의 소원인데 북한 정권은 그 것도 못 해주면서 자기들만 하느님처럼 떠받들어 모시고 자기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강요하고 있어요.

중국에서는 개, 돼지도 잘 안 먹는 옥수수도 없어 천금같은 귀한 생명들이 굶어서 죽어갈 때 김정일은 외국에 비행기를 띄워 세상에 귀한 술과 음식으로 배를 두두리며 자기도 줴기밥을 먹는다고 인민들을 속였어요.

언니, 아마 제가 아직도 북한에 그냥 있었다면 아마 우리 집 식구들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 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제가 남은 식구들과 남한으로 온 일은 제가 사람으로 태어나 제일 잘한 선택이었어요.

제가 북한에서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울던 눈물도 이제는 다 말랐다고 생각했는데 북한을 떠 올리면 또 눈물이 나요.

언니, 언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어요? 언니도 저처럼 남한에 함께 왔더라면 지금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는 남한생활이 너무 좋아요.

북한에서처럼 매일 시장에서, 기차에서 천대받고 떨지 않아도 자기만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어요.

언니 같은 노인들도 혼자 살기 힘들면 보조금도 조금씩 주고 또 사회적으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노인들이 살기가 너무 좋아요.

저는 남한에서 늘 맛있는 음식을 보면 굶어서 돌아간 우리 애 아빠와 큰 언니,엄마, 오빠 생각에 목이 꽉 메어 삼키기 힘들어요.

전국을 떠돌며 빌어먹다 어디에서 죽었는지도 모르는 남편의 얼굴이 음식그릇에 같이 떠오르면 잡았던 수저를 도로 놓 군합니다.

언니, 북한에 정치가 달라지지 않는 한 북한 주민들은 영원히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없어요.

언니, 어쩌다 언니에게 쓰는 글이어서 그런지 하고 싶은 말은 끝도 없는데 벌써 밤이 깊었어요. 언니, 다음에 또 소식 전해 드릴게요.

언니네 식구 다, 부디 죽지 말고 잘 살아 있어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안녕히 계세요.

~서울에서 동생 , 복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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