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勢(교세)로 남북빨갱이 남한赤化(적화)의 大勢(대세)로 영향공작하는 소경된 지도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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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9:3.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만유는 다 각기의 본질을 가지도록 고안 창조되었다. 만유에게 각기의 본질을 가지도록 고안 창조하신 조물주시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신 여호와 곧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만 스스로 계시고 나머진 모두 다 그분이 창조하신 존재들이다. 본질은 그 존재의 정체 성질이다. 배우지 않고 겪어보지 않고 즉각 그 본질을 알아보게 하는 능력이 곧 지혜이다. 그 지혜로 얻어진 지식이 형성되어 개념이 된다. 그 개념은 그 존재를 알아보게 하는 지식이다. 만들어진 존재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지혜로 알아보고 지식을 축적한다.
그 축적된 지식으로 개념을 삼아 각기 존재를 알아보고 그것을 응용하는 길로 매진한다. 물론 거기에 사용자에 따라 악용 남용 오용과 선용이 나온다. 오늘 본문에 지혜를 배운다는 말은 lamad{law-mad'}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to learn. teach, exercise in 등을 담고 있다. 인간의 각기 지혜를 통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마다 그 지혜의 분량이 있는데 그 지혜를 서로 공유하면서 만물을 읽어내고 응용하는 안목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가 확보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혜의 깊이 높이 넓이 길이가 더욱더 확보 되는대로 그만큼 지식을 축적한다.
지혜는 chokmah{khok-maw'}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wisdom, skill(in war), wisdom(in administration), shrewdness, prudence(in religious affairs), wisdom(ethical and religious)을 담고 있는데, 그리 사용되는 지혜이다. 응용의 의미가 더 강하게 부각되는 지혜의 의미이다. 인류가 그 동안 세상에서 수많은 誤謬(오류) 곧 지혜로 각기 만물을 읽어내는 능력의 오류를 극복하고 확보하는 지식의 蓄積(축적)이 있다. 그 지혜의 분량이 있다. 그것으로 응용하여 오늘의 문명을 만든다. 지금도 여전히 지혜의 오류를 안고 있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인간은 그것을 문명의 발전이라 한다. 그 때문에 축적되는 지식은 상상을 불허한다. 하지만 모든 존재와 각기 존재의 그 모든 情報(정보)에 비하면 영원한 바닷가에 모래 한알 정도를 얻은 것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각기 존재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정보가 축적되어 있다. 인간이 가진 지혜의 등불로 그 어둠에 감춰진 지식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것으로 응용하고 그것으로 문명을 구축하여 간다. 도대체 이런 지혜와 지식이 없으면 알아갈 수 없는 만물이고 그 각기 존재들이다. 누가 무한한 지식으로 만물을 만든 것인가?
또 누가 그 지혜로 이 만물을 하나처럼 움직이고 있는가? 만들어진 존재도 인간이 다 읽어낼 수 없는데 하물며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어찌 인간의 眼目(안목)으로 이를 읽어낼 수 있고 그 하나님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피조물이 피조물을 제대로 읽어내고 이를 그런대로 응용하는 데도 무한한 시간이 필요한데, 하물며 만물을 지으신 분이고 스스로 계신 분을 어찌 인간의 眼目(안목)으로 읽어낼 수 있는가? 그분을 알아보는 지식을 蓄積(축적)할 수 있겠는가? 만들어진 인간의 合(합)의 등불로 하나님을 알아낼 촉수도 개념도 축적할 수 없는 것이다.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은 da`ath{dah'-ath}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knowledge, perception, skill, discernment, understanding, wisdom이라는 의미들을 담고 있다. 모든 것을 제대로 알아야 그것을 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등불로는 하나님을 알아보고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악마가 그 빛을 오류 속으로 유인하고 교란하고 속이고 미혹하기 때문이다. 악마의 방해를 말끔히 걷어내도 인간의 안목의 합의 힘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읽어내는데도 너무나도 무기력하다. 마치도 잠든 상태처럼 있는데 이를 각성케 해야 비로소 깨어나 알아본다.
그처럼 전능하신 자를 알아보는데 無氣力(무기력)하다. 인간의 힘으로 악마를 이기고, 이러한 무기력을 이기고, 전지전능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 여호와를 전혀 알아볼 수 없다. 그러한 간격을 가지도록 인간을 만드신 것이다. 이를 성경에서 ‘계시주권’이라 한다. [마태복음 11:27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이 성령으로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려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 때문에 인간의 문명은 하나님의 안목을 받아야 한다. 안목은 곧 지혜와 지식을 의미한다. 만들어진 인간의 지혜와 합, 그 지식의 합을 인간의 안목이라 한다. 그 인간의 안목의 등불로는 하나님을 알아내고 그분을 누리는데 무기력하다. 그렇게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하나님이 그 빛을 인간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빛으로 하나님을 발견하고 조우하고 얻게 하고 누리게 하신다. 이를 성령의 각성이라고 한다. 성령의 각성이 임하면 우선 인간의 눈앞을 가리는 모든 거짓을 말끔히 제거하신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빛을 주셔서 누리게 하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눈빛을 공유하면 그들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시고, 이를 경영하시는 유일무이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존무상하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알게 된다. 그 하나님을 얻기 위해 달려간다. 그 하나님을 얻은 만큼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누림의 의미는 응용인데 인간은 악마에게 속아 모든 만물을 악용하는 악성 악습 악심을 품는다. 특히 그 속에 악마를 품는 자들은 모든 만물을 언제나 악용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 안에 모든 은총을 악용하는 짓을 자행한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속죄의 은총을 악용하는 자들을 구원파라 한다. 유사기독교이다. 그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나 그 뒤로 악행을 주저치 않는다. 이게 곧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는 결과이다. 오늘의 본문처럼 야게의 아들 아굴이 통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를 통해 말씀을 전해 듣는 두 아들의 선택에 있을 것이다. 한 아들의 이름은 'Iythiy'el{eeth-ee-ale'}은 Ithiel="God is with me"이고, 다른 아들은 Ukal{oo-kawl'} or 'Ukkal{ook-kawl'}은 Ucal="devoured"이다. 하나님을 누림에 선용과 악용의 의미이다.
아굴의 아버지의 이름은 야게-Yaqeh{yaw-keh'}이다. 그 이름의 뜻은 Jakeh="blameless" ‘떳떳한, 책임이 없는’이다. 'Aguwr{aw-goor'}은 Agur="gathered" 사람들이 모이다 사람들을 모으다는 의미를 가진다. 사람이 자기의 깨달음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제자들을 부지런히 찾는다. 스스로 현자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그들만의 경지에서 세상을 가르치려 한다. [마태복음 23:15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倍(배)나 더 地獄(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아굴의 이름의 뜻이 Agur="gathered"이다. 사람을 모아 자기의 깨달음을 세상에 전하려고 하는 자들은 특성이 사람을 모으는 것이다. 모이게 하는 것이다. 아굴은 스스로를 탄식하기를 자기는 지혜도 배우지 못하였고 지극히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도 없다고 하였다. 이는 곧 계시주권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강조함이다. 이는 곧 눈 뜬 인도자의 고백이다. 우리는 계시주권을 행사하시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성령으로 진리를 깨닫고 성령으로 전하고 성령으로 전달받고 성령으로 이를 준행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자들이 성령으로 말미암는 계시를 거부하고 인간의 안목으로 진리를 해석하나 그것은 곡해요 왜곡이요 曲學阿世(곡학아세)요 牽强附會(견강부회)요 巧言令色(교언영색)이요 그들만의 脚色(각색) 혹세무민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본질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여 그것을 전한다. 그런 식으로 전달받는다. 그것을 굳게 믿고 행동한다. 소경된 인도자들의 짓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망한다. [마태복음 15:14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누가복음 6:39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이런 소경이 되고 소경된 인도자가 되는 것은 계시주권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치 않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힘을 맹신 과신한 결과, 인간의 안목과 가르침과 배움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통달할 수 있다는 傲慢(오만)의 특색 곧 자기陶醉(도취)이다. [이사야 29:9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아굴처럼 계시의 주권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성령의 각성을 받은 그 기조에서 성령으로 전하고 전달받게 하고 성령으로 준행하게 하는 인도자가 눈 뜬 인도자이다. 함에도 그 배움의 자리에서도 이다엘과 우갈이 나온다. 이다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선용의 길로 행하는 자들이고 Ithiel="God is with me"이고 Ukal{oo-kawl'} or 'Ukkal{ook-kawl'}은 Ucal="devoured"은 하나님의 은총을 악용하는 자들이다. devoured는 게걸스레 먹다 탐식하다 멸망시키다 삼켜버리다 탐독하다는 의미인데, 인간의 지식의 혼이 강하기에 성령으로 깨닫기를 거부한 자다.
거기서 하나님을 누림에 선용과 악용이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다엘이 되어야 한다. "God is with me" 그것이 곧 성령으로 전하고 성령으로 전달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의 길이다. 오직 성령으로 말씀을 깨닫고 전하고 전달받게 하고 그 길로 가도록 인도하는 자들이야 말로 야개의 아들 아굴의 이름값을 하는 자들이다. Jakeh="blameless" Agur="gathered"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당하게 떳떳하게 사람을 모아 성령으로 전하고 전달받게 하고 동행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빨갱이에 가담하는 목회자들과 類似(유사)기독교는 세상을 유혹하고 있다. 심히 불순한 목적으로 사람을 모이게 하고 모으고 있다. 그것에서 나오는 것은 영향공작의 소경이고 눈 멈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기독교교계의 형편이 어떠한지는 하나님이 아실 것이다. 그들이 모이는 것은 남북빨갱이를 위해, 남한赤化(적화)를 위해, WCC를 위해 모이는 것이다. 그들이 많은 교세를 자랑하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눈이 먼 교인들이고, 목회자들은 북괴가 제공하는 돈과 기득권과 미인계에 눈이 멀어 있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소경들이다.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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