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빨갱이의 巢窟(소굴)인 일부교회와 목회자들의 영향공작을 斷罪(단죄) 隔離(격리)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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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4.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국가 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에 그 말씀에 집중하는 경향은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으로 보여 진다. 이는 곧 인간이 客體(객체)이나 사회적인 존재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을 향해 그의 일거수일투족 그 말씀에 집중하는 것은 영적본능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를 받도록 고안 만들어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무의식적으로 온통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그 신경이 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영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肉體(육체)의 性質(성질)이다.
그 육체의 성질의 힘(肉性)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가로막음은 영적인 본능의 경향을 의식치 못한다. 영적 본능의 작용 그 경향이라는 그 영의 성질을 의식하지 못함인데 거기다가 악마가 미혹하여 속인다. 사람은 육체의 성질에서 나오는 힘에 따라 영적소통의 장애와 악마의 미혹과 그것으로 묶인 자들의 세상의 힘이 작동하여 무신론자가 되게 하는 외적 내적 환경이 된다. 각기 나타나는 이러한 모든 장애사유로 인해 無神論(무신론)과 有神論(유신론)의 汎神論(범신론) 多神論(다신론) 우상숭배 接神(접신)과 종교다원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啓示(계시)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성령의 각성을 받지 못하면 인간의 영이 겪고 있는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각성을 항상 받아야 비로소 그 障碍(장애)를 극복하는 광명한 빛을 누리게 된다. 그 깨달음의 圓滿(원만)한 은총을 누리게 된다. 항상 성령의 각성을 받아 누리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줄여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항상 받는 은혜를 구해 받아야 한다. 그분들만 하나님의 아들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그 통치를 體得(체득)한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의미는 동행 동거의 의미에서, 곧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인간 안에 오시는 결합 연합의 의미의 일체화를 통해 알아가는 공식이 영원불변의 원칙이다. [미가서 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인간다운 인간인데, 그 인간은 그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과 그 본질을 체득한다.
하나님이 인간 속으로 오셔서 그를 하나님의 본질이신 사랑으로 통치하신다는 의미다. [요한일서 4: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 본질의 통치를 받아 그 사랑을 행동하는 자들만이 항상 하나님을 알게 되고 체득하게 된다. 이를 ‘본질계시’라고 한다. 이는 성령각성의 계속성을 의미한다. 일시적인 각성에서 계속적인 각성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시적인 각성은 곧 등불이 꺼진다.
꺼지면 과거 체험한 지식만 남는다. 이런 지식은 믿음이 아니다. 죽은 믿음이다. [야고보서 2: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음이 죽으면 그 남은 지식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살아있는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역사한다. [갈라디아서 5: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의 힘에 눌려있던 그의 욕심이 살아나서 靈性(영성)을 도리어 어둡게 한다.
그에 따라 그런 자들은 육체의 성질과 악마의 미혹과 세상의 미혹에 덮인다. 성령각성의 도움이 없는 인간의 靈性(영성)은 너무나 약해서 그것을 이길 수가 없다. 결국 類似기독인이 된다. 영성이 강하려면 성령의 각성을 받아야 하는데 과거 한때의 일시적인 각성이 아니라 계속적인 각성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계속적인 각성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통치의 항상성에 있다. 항상 그 통치 속으로 들어가는 은혜가 있는데 그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해 받아야 한다. [히브리서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각 사람이 그 은혜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해 받아야 한다. 인생을 주신 이유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해 받아 누리라고 주신 것이다. 그들만이 늘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아 그 사랑을 구현한다. 이를 사랑이 온전케 되었다고 한다. [요한일서 4: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3.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온전히 이루는’ perfected는 teleioo{tel-i-o'-o}라고 발음한다.
그 안에는 to make perfect, complete, to carry through completely, to accomplish, finish, bring to an end 등의 의미를 담는다. 성령이 인간 속으로 오심은 하나님의 본질의 사랑의 통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완전히 사로잡아 영원한 사랑의 출구로 삼으심을 의미한다. 곧 그리스도의 통치의 계속성을 의미한다. 그들만이 살아있는 믿음을 누리게 된다. 믿음이 죽으면 靈性(영성)이 어두워진다. 결국 肉性(육성)의 어둠과 악마의 어둠과 세상의 어둠에 묶이게 된다. 그 때문에 온갖 유혹에 넘어가고 성경을 그릇 풀어 類似(유사)기독인이 된다.
그 때문에 성령의 圓滿(원만)한 각성의 계속성을 받아 누려야 한다. [골로새서 2:2.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圓滿(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寶貨(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원만한은 plerophoria{play-rof-or-ee'-ah}라 발음하는데, 그 의미는 full assurance, most certain confidence를 담고 있다. 그 원만함은 곧 사랑으로 행동함에 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하게 행동하지 못하면 원만한 깨달음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이시다. 그 사랑의 통치를 받아 사랑으로 온전하게 행동해야 한다. [4.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분들만 성령의 각성의 계속성을 누린다.
그러한 계속성을 누리게 하는 첩경이 오직 그리스도의 통치이시다.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비로소 사랑으로 행하는데 온전해진다. 그들만이 참 하나님을 알고 그 독생자를 알고 나날이 그 체득함이 성장해 간다. 장성한 성도가 된다. 그분들이 가득한 대한민국이면 인간의 육성의 어둠과 악마와 그 세상의 어둠을 극복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한 세상은 이 모든 어둠에 묶여 악마의 종자, 그 흉기가 된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은 남북빨갱이의 득세를 자초한 것이다. 빨갱인 악마의 종자들 중에 하나인데 이는 한국교회가 일시적인 성령의 각성에서 계속적인 성령의 각성으로 점핑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실패의 주된 원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통치를 거부한 연고이다. 5천년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산업화의 열망은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돈은 꼭 필요하다고 하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동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소유만하여 자기 이기심과 모든 肉情(육정)을 위해 사용하려는 길로 가는 罪(죄)를 범하게 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의미는 가진 자가 더 가지려는 것과 없는 자가 그 가진 것을 빼앗고자 하는 충돌로 변질된다. 이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기 때문이다.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여세가 교회들에게도 뻗쳐온다. 그 여세가 怒濤(노도)처럼 교회에 덮친다. 산업화 민주화의 목표는 돈에 있다. 돈을 그리스도의 통치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합법적으로 벌고 사용해야 하는데, 그보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만 악용하여 돈을 벌려는 祈福(기복)신앙의 길로 달음질한다. 무릇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면 곧 악마의 그 어둠에 묶인다.
목회자가 어두워지면 그 교회에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한 모두는 곧 그 즈음에 어두워진다. 그 어둠 속으로 악마가 들어와서 교회를 악용한다. 산업화의 천민자본주의의 거점으로 악용되는 교회와 민주화를 악용하는 남북빨갱이의 사회주의 거점으로 악용한다. 한국교회는 이 두 세력의 거점으로 악용되는 형편에 처하게 된다. 그 때문에 세상의 빛을 주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줄 빛은 그리스도의 통치의 빛이다. 그리스도의 통치의 계속성은 곧 성령각성의 계속성이다. 그 때문에 유사기독교가 발생할 수 없게 한다. 그 빛을 항구적으로 발해야 하는데,
성령의 일시적인 각성으로 일시적인 효과를 주는 ‘은사계시’는 가득해지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통치를 거부하는 여세에 미혹된 자들은 본질계시로 점핑하는데 실패한다. 그 본질계시의 항구성에 실패하면 캄캄함은 여전한 것이다.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악마와 그것들에게 잘 속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악마도 영적인 존재라 영적인 誘惑(유혹)을 한다. 그 때문에 귀신과의 접신현상이 일어난다. 하여 수많은 類似(유사)기독교가 발생하게 된다.
인간된 누구든지 혹은 교회 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면 육체의 성질에서 나오는 어둠과 악마의 미혹의 어둠과 그런 자들의 합인 세상이 주는 어둠에 묶인다. 무엇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의 본질과 반대가 된다는 것에 있다. 어둠에 묶이면 어둠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빛이시다. 빛과 어둠은 결코 소통할 수 없다. 그 간격은 영원한 것이다. 인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 말미암아 사랑의 빛 되시는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해야 한다. 원만한 광명에 이르도록 그 빛 가운데서 거해야 한다. 하여 하나님을 알고 그 아들을 알아야 한다.
[요한일서 2:3.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의미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그 심령 속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온전하게 받아 사랑을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teleioo) 되었나니’라는 의미로 담아낸다.
[6.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 7.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를 받은 자들은 그로 말미암아 통치를 받아야 한다. 용서만 받고 그 통치를 거부한 한국교회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사랑의 통치를 거부하는 구원파의 영향이 대한민국을 강타한 것이다.
이에 성령의 각성의 빛이 꺼지자 악마가 들어와서 산업화의 천민자본주의와 민주화의 북괴식의 사회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그들 모두 다 예수의 피를 악용한다. 그 악용이란 결국 사악한 방법으로 돈벌이에 대한 면죄부를 받아 그 만행의 죄짐인 가책을 털어버릴 목적으로만 사용함이다. 오늘날에는 천민자본주의에 남북빨갱이가 합류하여 거대한 악마경제를 형성하고 있다. 그 악마경제로 반역경제를 일으킨 것이다. 하나님께 반역이고 이 나라에 대한 반역을 위한 군자금을 확보하게 하는 반역경제가 판을 치고 있다. 천민자본주의로 몰락하고 있다.
거기서 賂物(뇌물)경제 饗應(향응)경제 지하경제 탐욕경제 범죄경제 불륜경제 패륜경제 우상경제 등등이 독버섯처럼 돋아난다. 이를 개혁하는 힘은 무엇인가? 이들은 곧 악마의 경제이다. 악마는 어둠이다. 그 어둠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의 빛밖에 없다. 그 빛은 그리스도의 통치에서 나오고, 그 항구적인 통치에서 계속되고 원만한 광명에 이르게 한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가치를 깨우치는 성령의 각성이 일어나야 교회가 비로소 그 잠에서 깨어난다. 성령의 일시적인 각성에서 성령의 항구적인 각성으로 점핑하는 은혜를 힘입게 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리로 점핑하는데 실패한 자들은 어둠에 묶이게 된다. [9.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10.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어두움이 그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5: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서 그 피만 악용하지 말고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게 하는 그리스도의 통치 곧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완전하게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신의 욕심 악마의 욕심 그 조직들의 욕심을 따라 행동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거부한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신데 그 빛을 거부하면 어둠이다. 악마의 그 모든 어둠은 하나님의 빛의 진노를 산다. 그 피로 용서를 받은 자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들여야 비로소 그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믿음은 늘 살아있는 것이다.
[잠언 4:14.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찌어다 15.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찌어다 16.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17.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18.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19.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악을 떠난다는 것은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고 성령의 통치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완전히 받음이다.
그 길이 곧 하나님기준의 의인의 길이다. 그들만이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된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에 담대히 답할 수 있다. [잠언 30:4.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이제 악마의 어둠에 묶여 온갖 악행의 길로 가고 있고, 더러는 남북 빨갱이의 돈과 미인계에 묶여 그것들의 흉기로 적화역량으로 전락되어 있다.
‘if thou canst tell?’ 히브리말로 yada`{yaw-dah'}이다. 이는 먹어보고 겪어보고 입어보고 안다는 의미이다. 相關(상관)을 통해서 그분의 통치를 받아 그 체득을 통해서 아는 것, 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항구적인 각성을 하나님의 본질계시, 그 계시는 그리스도의 통치로 얻어지고, 그들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영생을 얻게 된다. [요한복음 17:2.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로 임하는 그리스도의 통치시다.
그 통치를 받아야 비로소 성령의 일시적인 각성에서 항구적인 각성으로 들어간다.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분들만 영생으로 들어간다. 그리스도의 통치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행동하는데 완전한 자가 되는 것 사랑의 온전함을 이루는 길만이 생명력이 넘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5:5.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야 의의 소망을 기다릴 수 있다. 성령으로 믿음을 좇는다는 것은 성령의 각성인데, 우리는 항구적인 각성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일시적인 각성으로 주신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성령의 항구적인 각성으로 말미암는 늘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다. 이를 항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 한다. 성령의 일시적인 각성에서 항구적인 각성으로 점핑하지 못하면 온갖 거짓에 속게 된다. 그 때문에 한국 기독교는 온갖 거짓이 파고들어와서 둥지를 틀고 있다. 일부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악마의 어둠에 묶여 기독교의 자유를 허락하고 보장하는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남북빨갱이 소굴이 되고 있다. 이를 단죄하고 격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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