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몰라 빨갱이 경제로 몰려가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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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길을 몰라 빨갱이 경제로 몰려가느냐? 모든 것은 길이 있다. 창조와 생산의 경제의 길로 가야 거기에 이른다.
[잠언 31:13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창조와 생산의 시작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창세기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사람들이 이를 믿거나 아니 믿거나 각기 선택일 것이지만 각기 낳은 부모가 있는 것이 분명하듯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만물을 지으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에서 창조는 created는 bara'{baw-raw'}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to create, shape, form을 담는다. 오직 유일무이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곧 기독교다.
이는 곧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유일무이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 곧 그리스도의 통치이시다. 그리스도의 의미는 창조능력과 그 창조성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 창조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로 logos{log'-os} of speech라는 분이 육체로 오셨으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도 영원히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시고 그분은 모든 만물의 시작과 마지막이시다. 유일무이 창조주요 주관자시다. 그 때문에 그분은 인간과 함께하려 하신다.
모든 만물 곧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홀로 기획 설계 디자인하시고, 이를 만드신 분이시다. 그것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홀로 주관하시고 경영하여 통치하신다. 그것들의 순종과 예배와 찬양을 받으신다. 이러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려면 하나님의 眼目(안목)가운데 거해야 한다. 그때만이 하나님 기준의 함께함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안목은 피조물의 안목이나 하나님의 안목은 조물주의 안목이다. 그 안목에서 벗어날 존재가 누구인가? 그 누구도 그 안목에서 피할 수 없다. 그 안목을 인간에게 주어 하나님과 함께 하심이 곧 그리스도의 통치이다.
인간의 사고의 영역이 망원경이든 현미경이든 그 등불의 밝기에 따라 찾아낼 수 있는 모든 존재들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는 존재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 존재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인간은 다 찾아낼 수 없다. 인간의 눈의 등불로 가히 다 밝혀낼 수 없는 深奧(심오)한 깊이 높이 넓이 길이가 영원히 놓여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보이지 않는 그 모든 세계를 혹시 다 알아낸다 해도 이를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을 어찌 다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알아야 응용하는데, 많은 자들이 각기 실험실에서 각기 등불로 추구하는 것을 알아간다.
기독교의 의미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고 경영하시며 그것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그것들의 예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동행 동거하는 세상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모든 것의 지식을 공유하는 것에 있다. 하나님의 안목을 공유하는 유일무이한 길이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통치를 받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안목이 성령의 각성이 항구적으로 부여된다. 이를 지혜와 계시의 영(정신)이라 한다.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조의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사랑의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창조를 시작하신다. 하여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곳을 덮고 있는 물 위로 임하신다. 임하신 하나님의 신이 창조의 말씀을 발하신다. 하여 지구와 만물과 인간이 만들어진다. 창조자의 안목은 창조의 말씀으로 빛이 있으라고 하신다. 창조의 시작에 처음으로 발하신 말씀이 빛이시다. 그 빛이 있은 후부터 그 모든 것들은 그 말씀이 요구하는 대로 그대로 된다. 피조물이 어찌 하나님을 알아보겠는가?
땅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눌림과 갇힘에서 시달리는 땅이 어찌 스스로 그것에서 벗어나겠는가? 땅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깊음과 눌림과 갇힘에서 시달리는 땅이 그 만드시는 분의 명령을 알아보는 빛이 없다면 어찌 순종할 수 있고, 알아도 능력이 없으면 어찌 순종하고,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깊음과 눌림과 갇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 갇힘과 눌림과 굴종의 타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그 창조의 시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빛을 주신다. [3.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이는 하나님의 빛도 주신 것이다.
만물이 만들어지려면 하나님의 빛을 공유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뜻을 알아보고 그것을 준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빛과 불순종하는 타성을 극복하는 빛을 주셔야 한다. 그 혼돈과 공허 흑암 깊음 눌림 갇힘에서 시달려 전혀 쓸모없는 땅에서 하나님은 빛을 주신 것이다. 그 첫째 날 하나님은 피조물끼리 누리는 물질계의 빛과 동시에 하나님을 알아보는 그 말씀에 순종하는 능력과 그대로 준행하는 빛을 주신 것이다. 그것들에게 주어진 빛이라는 첫째 날의 시간동안 하나님은 그 창조의 안목을 피조물에게 그 말씀을 주신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안목을 공유하고, 그 안목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그리스도의 안목을 얻고, 그 뜻을 준행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얻고, 그 뜻을 거부하는 타성을 극복하여 그대로 준행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얻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 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통치의 의미이다. 하나님과 그 안목을 공유하는 복을 신령한 복이라 한다. 그 후부터 인간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에 관한 등불을 켜는 것이다. 물론 魂(혼)의 등불 이성의 등불이지만, 이는 흉내 냄 곧 악행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빛을 내어 일을 시작하는 것을 흉내 내지 말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그 안에 있는 빛을 모두 다 받아 동행하여 누리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안목을 공유하고, 그 빛 가운데 다니는 자들이 된다. 만물을 응용하여 인간은 생존을 유지하려고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생명과 그 생명싸개와 각기 DNA에 심겨진 유지능력을 통해서 존재를 유지하고 후손을 이어가게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天敵(천적)이 있고, 그 천적은 인간의 연약함을 악용하여 멸망의 길로 유혹하고 마침내 영구적으로 망하게 한다.
그 때문에 인간은 그 천적들과 악마의 유혹을 능히 이겨내야 한다. 그 길은 하나님의 안목을 주시는 유일무이한 길, 오직 그리스도의 통치에 있다. 그 통치를 받는 그들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천적들과 악마의 유혹을 능히 이기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싸개를 선용하여 하나님의 선을 세상에 끼치게 된다. 오늘 본문의 의미는 “잠언 31:10.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11.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12.그런 자는 살아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 하느니라”
여자가 누리는 하나님의 안목을 강조하심이다.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일을 한다고 한다. 이는 실 삼는다. 거리 삼는다. 삼는다는 의미 곧 부지런히 실 삼는 여자를 강조함이다. 이는 생명싸개 안에 주어진 것들을 응용하는 의미이다. 각기 응용에는 안목의 차이가 있다. 각기 응용에는 성질의 차이가 있다. 그 정체성의 차이가 있다. 악마의 안목을 가진 자들은 모든 것을 악용하는 것으로 삼는다. 그런 것으로 삼아낸다. 비판 정죄 단죄거리 시비 다툼거리 정욕색욕거리 탐욕거리 싸움거리 등등 악마의 짓을 할 거리를 부지런히 삼는다. 악마와 그 종자는 늘 그런 짓을 한다.
만일 사람이 모든 절망에서 양털과 삼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희망의 실을 삼아낼 수 있다면, 모든 위기에서 양털과 삼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기회의 실을 삼아낼 수 있다면, 모든 실패에서 양털과 삼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성공의 발판을 삼아낼 수 있다면, 모든 가난에서 양털과 삼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부요를 창출할 수 있다면, 모든 불가능에서 양털과 삼을 찾아내고, 그것에서 가능을 열어낼 수 있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통치의 결과이다. 이를 흉내내는 악행은 각기 DNA적으로 그런 능력을 조금씩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악마적인 것이다.
모든 적을 이기려면 그 속에서 양털과 삼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모든 적을 이길 차원과 수를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안목인데, 인간의 합의 안목이 아니라, 오직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안목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자는 것이 우리의 강조함이다. 인간의 안목은 악마와 악마화를 막을 수 없는 심히 허약한 안목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의 합의 빛 곧 인간 속에 있는 혼적인 등불의 수를 합하면 밝아지는 이치로 오늘날 문명을 이룩한다. 그리 되게 한 것이 곧 악마이고 악마가 그것으로 인간을 적그리스도의 성향으로 굳어지게 하여 영구 멸망케 한다.
악마는 인간을 망하게 하는 영이고, 그 종자들은 그 흉기가 되어 세상을 망하게 하고, 자기들만의 배를 채우는 경제를 한다. 그것들의 길은 언제나 모든 것과 기회를 악용하여 함정 수렁 덫 올무 거미줄을 짜는 짓만 한다. 사고의 한계 밖의 외계적인 눈빛을 가진 존재가 되려고 하는 것도 그것의 기술로 더 많은 인간을 망하게 하고자 함이다. 이미 드러난 빛에 의한 지식세계 외의 것을 사고외계지식이라고 한다면, 그 외계로 들어가서 악마를 위한 악용거리를 찾아내려고 血眼(혈안)인데, 이는 곧 인간이 神(신)이 되고자 하는 흉내 냄의 극치로 달려가는 것이라 하겠다.
창조의 첫째 날에 드러난 두 빛에 관한 의미가 그대로 거기에 계시된다. [4.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하나님의 안목의 빛과 그 혼돈 공허 흑암 깊음 눌림 갇힘에 빠진 땅에게 주신 빛이다. 전자는 스스로 계신 창조주의 안목의 빛이요, 후자는 피조계가 누리게 될 만들어진 빛이다. 피조물은 만들어주신 빛을 가져도 하나님의 안목을 가져야 비로소 순종할 수 있게 하심이다.
피조물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알아도 능력이 없으면 못한다. 능력이 있어도 타성에 묶여 있으면 전혀 불가능하다. 그것을 다 극복하게 하는 말씀이 그것들을 통치하시니 그것들은 비로소 전능자의 안목에 흡족하도록 행동하게 된다. [6.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그대로 되니라 ‘and it was so’는 ken{kane}이라 발음한다.
그 안에는 副詞(부사)적인 의미 so, therefore, thus라는 의미를 담는다. 그대로 되게 하는 통치를 받아야 비로소 혼돈 공허 흑암 깊음 눌림 갇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요구하는 대로 그대로 되는 것이다. 만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북괴를 붕괴시키고 남북의 빨갱이가 대한민국을 시달리게 하는 이 혼돈 공허 흑암 깊은 눌림 갇힘에서 벗어나는 길을 방책을 알려준다고 해도, 이를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알아도 그것을 준행할 능력이 과연 있는가? 그것들로 인해 생긴 또는 그것들이 끼도록 만든 그 타성에서 스스로 벗어나 순종할 수 있겠는가?
“그대로 되니라”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되신 그리스도의 통치의 산물이다. [9.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안목을 충족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안목이요 순종의 능력이요 그대로 되게 하는 준행의 권능이시다. 그 통치에서 그것을 얻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안목을 공유하는 자들이 된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안목을 공유한다.
땅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응용에 모두 다 순종 준행하여 그대로 내는 은총을 입는다. [11.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3.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가난에 빠진 여자가 양털과 삼을 부지런히 구하는 역량이 DNA의 것 피조물에게 주신 역량이라면, 그것은 다만 하나님의 안목의 빛이 없는 역량일 뿐이다.
우리의 강조는 하나님의 안목이다.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깊음과 눌림과 갇힘에서 시달리는 땅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마침내 인간이 가히 상상할 수 없는 種(종)의 씨가진 채소와 과목을 내게 된다. 우리의 강조는 영재교육의 천재성을 찾아 떠나는 인본주의 국토개발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모두 다 그리스도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안목을 공유하여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능력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천재 한사람이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직업을 개발하고, 그것에서 경제발전의 실마리를 구한다고 열심내는 것인데,
그것은 악마의 속임수이니 인본주의 그것의 결과는 적그리스도가 되어 악마의 흉기로 전락될 것이니, 이는 곧 부자가 되려고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짓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자고 우리는 늘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면 천재를 찾고 영재를 만드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면 하나님이 주신 안목으로 모든 것을 선용하는 능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 선용은 창조주의 손길이기 때문이다. 그 손길에서 그 열매가 나오는 법이다. 모든 것과 기회를 응용하는 손길이 문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양털과 실을 삼아내는 손길의 정체성을 구별하자 경고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손길이 되자고 한다. 그리스도의 손길은 그 통치를 받음을 의미한다. 여자들 중에 인간 義(의)가 양호한 자들은 각기 나름의 양털과 삼을 부지런히 구하여 실을 삼는다. 그것은 다만 인간의 손길이나, 거기는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는 능력 권세가 없기에 다만 인간을 망하게 하는 이리에게 羊(양)의 옷을 입히는 결과만 낼 뿐이다. 악마는 늘 ‘PRADA’를 입기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고급인력이라는 것은 결국 악마가 입혀준 옷이고, 그 옷으로 세상을 유혹하는 고지를 삼는다.
악마가 입는 옷을 만들기 위해 양털과 실을 삼아 악마의 흉기들의 옷을 삼으면, 그것이 양의 옷을 입은 노략하는 이리떼들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악마와 그 종자들에게 포위당해, 국가적인 위기에 묶여 있다. 북괴는 핵과 남한 내 간첩망을 구축하고 온갖 짓을 다하고 있다. 이를 적발하고 제거해야 할 지도자들이 도리어 인본주의 안목, DNA의 안목으로 이를 대처하려고 한다. 그들이 스스로를 높이려고 ‘PRADA’를 입고 국가위기에서 양털과 삼을 부지런히 찾아내어 국리민복 국태민안이라는 실을 삼을 수 있다고 하나 사실 力不足(역부족)인데도 그리하니 사악하다 하겠다.
아주 부족한데도 그 기만에 세상은 잘 속는다. 악마는 일곱 머리와 열 뿔과 일곱 면류관과 하늘의 별 삼분지 일을 땅에 끌어다가 던지는 권능을 가진 존재이다. 북괴는 남북으로 대한민국을 포위하고 질식시켜 잡아먹으려고 온갖 짓을 다하고 있고, 이를 제거해야 할 지도자들은 악마의 또다른 모습이 되어 잡혀먹도록 돕고 있다. 그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적그리스도와 인본주의에 매몰되어 있어 망해가고 있다. 이를 총체적 위기나 난국이라 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안목으로 양털과 삼을 부지런히 구하여 자유평화통일의 실을 삼아내야 한다.
교회는 지금 적그리스도와 인본주의 등의 여러 머리로 열 뿔로 그 일곱 면류관으로 그 꼬리로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악마의 소리에 심각한 위기의 전율을 느끼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려고 열심을 내야 한다. 하지만 악마의 소리를 자장가로 듣고 있는 것이니 대한민국을 수호치 못하는 무능에 빠져들고 있다. 대한민국이 망하면 기독교는 그날로 문이 닫히게 된다. 물론 지하로 스며들어 유지된다고 해도 오늘과 같이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태초의 혼돈 공허 흑암 깊음 눌림 갇힘이 이 땅을 덮어가고 있는데, 교회는 잠자고 있다.
그리 잠자고 있음은 그들의 눈을 멀게 한 여러 어둠이 그 앞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등불 그 안목을 구해야 한다. 성령의 각성이다. 성령의 각성이 오시면 모든 육체에게 성령의 각성을 부어주시면 그들은 하나님의 빛을 일시적으로 공유한다. 거기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해 받으면, 성령의 각성을 항구적으로 공유하여 하나님의 안목을 공유하는데, 그들이 곧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손길이 되어 세상을 치료 치유하여 복되게 할 자들이다. 하나님의 그 손길에서 진정한 창조경제와 생산능력이 나와 하나님 기준의 부요가 가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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