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생존의 양식을 어디서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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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남북빨갱이 악마경제가 창궐하는 이 시대에서 미래양식 유비무환양식 국가생존의 양식을 어디서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
[잠언 31:14.商賈(상고)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糧食(양식)을 가져오며]
창조와 생산의 경제로 가려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길만이 唯一無二(유일무이)하다고 우리는 오늘도 또 강조하고자 한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만이 창조주시기 때문이다. 물론 劃期的(획기적)인 부요가 창출되는 시대를 창조경제를 이뤘다고 나름 강조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창조적 경제 생산적 경제가 아니다. 인간의 신념에서 나오는 것을 창조흉내경제라고 해야 한다. 인간의 信念(신념)은 인간의 안목에 있다.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창조에 있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하는 경제를 의미한다.
인본주의 신념과 하나님과의 간격은 영원한 간격이다. 인본주의 신념으로는 결코 그 간격을 넘을 수 없다. 인본주의 신념의 안목으로 하는 경제는 결코 하나님의 안목에 이를 수 없다. 오늘의 본문은 상고의 배와 같아서 양식을 먼 데서 가져온다고 하신다. 북괴는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다. 중국공산당은 개방을 하였다. 貿易(무역)으로 양식을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북괴는 도리어 폐쇄한다. 다만 중국과의 접경무역을 통해서 그나마 인민이 겨우 먹고 살 양식을 확보하고 있을 정도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집단의 안목이 하는 경제는 악마의 경제이다.
인간의 인본주의 신념의 안목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의 안목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사야40:28.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 하리로다”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 속으로 들어가려면 상고의 배를 타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 속의 지혜의 양식을 가져올 수 없는 간격, 결코 건널 수 없는 간격, 그 영원한 간격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태초의 흙이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각종 씨가진 채소와 과목 곧 양식을 낼 수 있었겠는가? 혼돈 공허 흑암 깊음 눌림 갇힘에서 시달리던 그 흙이 어떻게 하나님의 명령을 알아듣고 그대로 낼 수가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지시를 알아듣고 순종케 하시는 로고스(Logos)의 안목과 능력과 순종으로 말미암는 통치를 받음이다.
하여 인과응보라는 씨와 과일이라는 양식을 내는 존재가 된다. 혼돈 공허 흑암 깊음 눌림 갇힘에서 극히 시달리던 흙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그것들 스스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양식을 내는 植物(식물)을 낸다. 그 不可能(불가능)의 간격을 뛰어넘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통치 곧 로고스의 창조 권능이시다. 북괴는 악마경제에 묶여있다. 악마경제란 하나님의 창조의 반대 곧 혼돈 공허 흑암 깊음 눌림 갇힘에 시달리게 하여 착취 강탈하는 경제이다. 거기서는 양식이 나올 수 없다.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한 연고이다. 그 때문에 최빈곤국이다.
땅은 스스로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것이 아니라 로고스의 권능의 통치를 받아 그대로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and it was so” “ken{kane}”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케 하시는 로고스의 권능의 통치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음이다. 북한 땅을 관리하는 안목 그 수괴들의 악마적인 안목에는 결코 인간의 자유와 생명과 행복과 그 모든 가치를 내는 양식이 나올 수 없다. 이는 그리스도의 창조의 반대편에 있기 때문이다. 남한에 그것들의 주구들, 간첩망에 의해 움직이는 종북세력이 있는데, 이들이 악마경제를 하는 핵심이고 다만 창조의 반대 파괴자들이다.
이는 그들이 악마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악마의 경제는 파괴만을 위한 파괴를 통해 자기들만의 이익을 얻고, 그것으로 주지육림에 빠져 극한 쾌락을 누리며 그것을 자자손손에게 유산한다. 이런 유산은 악마경제의 계속성이다. 이들은 언제나 개방을 거부하고 폐쇄경제를 통해서 착취 강탈경제를 실 삼듯이 하나, 사실은 거미줄을 짜내는 경제이다. 그들의 통치의 영역은 입에 거미줄을 치는 쌀독에 거미줄이 가득하다. 국토개발이 아니라 국토파괴이다. 이 악마와 그 종자들의 악마경제 때문에 인간이 망하는 것을 구출하시려고 인간으로 오신 Logos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로고스께서 후에 인간으로 오셔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누구든지 어느 나라든지 개방하여 문을 열고 그분을 모셔 들여 통치를 받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곧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창조時(시)부터 정하여 주신 모든 종류의 양식을 무한정 공급하신다는 의미이다. 모든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실 그 모든 양식의 종류를 다 알아야 하나, 다만 하나님의 안목으로만 알 수 있다.
인간이면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개방을 통해 그분의 통치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빛을 공유하게 된다. 하나님의 안목을 공유하게 된다. 하나님은 만물에게 빛을 주시는 분이시다. 만물에게 빛을 주시는 명령을 내리자 그 명령이 그 존재들로 있게 하였고, 그것들로 하여금 그대로 준행하게 하신다. 말씀하시니 그대로 된다. 그대로 된 것이 하나님의 안목에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다.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보시기에 saw는 ra'ah{raw-aw'}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to see, look at, inspect, perceive, consider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14.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때에 관한 양식을 거기 두신다. 15.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asah{aw-saw'})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이는 모든 생명체가 먹을 빛의 양식이다. 18.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의 안목에 보시기에 좋은 것을 하나님이 그 말씀 로고스로 만들어 내신 것이다. "made" 는 `asah{aw-saw'} to do, fashion, accomplish, make 등의 의미를 담는데 이는 가공창조를 강조하심이다. 창조는 created는 bara'{baw-raw'}라 발음하는데 이는 창조라는 단어들의 대표가 되는 의미이다. 이 바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심을 강조한다. 이런 개념으로 창세기 1장 1절을 해석하면, ‘태초에 무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창조하신 것이 아직은 가공되지 않는 상태에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아사(`asah{aw-saw'})창조하심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바라가 맞다. 바라(bara'{baw-raw'})창조에서 가공하는 아사(`asah{aw-saw'})창조와 가공된 것을 승화시키는 야찰(yatsar{yaw-tsar'})창조와 그것들을 모두 다 빠짐이 없이 만들어 조화하고, 그것들이 지구가 계속되는 날 동안 번성하도록 창조를 완성한 카라(kalah{kaw-law'})창조가 나온 것이다. 바라가 없으면 아사도 야찰도 카라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창조도 그분의 말씀이 그 입에서 나오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말씀되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개방을 해야 비로소 창조와 생산이 나온다.
창조주의 안목을 가지고 商賈(상고)의 배와 같이 먼 데서 양식을 가져와야 하는데, 인간의 안목으로 그 신념으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온다면, 이는 하나님 안목의 흉내경제일 뿐이다. 하나님의 안목을 공유하는 경제를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흉내경제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 간극과 간격은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간격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강조한다.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강국이 된다고. 이젠 우주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강국의 시대이다. 인간의 안목으로 바다를 나름 장악하는 나라도 있고, 우주로 첫발 띠는 나라도 있다.
그것은 다만 그리스도의 통치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안목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의 안목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처럼 흉내내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반역이다. 인본주의 반역과 敵(적)그리스도 반역, 반역들일 뿐이다. 본문의 商賈(상고)의 배와 같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제 간극 간격을 뛰어넘어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양식을 가져온다는 말씀이다. 상고의 배라고 하셨으니, 바다를 건너가서 양식을 가져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眼目(안목)에는 우주의 제 간격과 그 바다들과 천국에 琉璃(유리)바다도 포함된다.
인류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았으면 하나님의 안목으로 행하여 우주를 건너는 능력과 그 건너에 있는 양식을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시편 136:5.지혜로 하늘을 지으신(made=`asah{aw-saw'})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셨다고 하시니 하늘은 하나님의 지혜로 구축된 것이다. 그 하늘 속에 담겨진 비밀을 가져오는 것도 商賈(상고)의 배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니 하나님의 안목으로만이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뛰어난 두뇌들이 이 지혜를 추적하고, 그 지혜를 가져오려는 노력을 무한정 쏟아붓고 있다. 거기서 압축된 지혜를 풀어내면, 상상을 넘는 양식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하늘이라는 공간에 압축된 지혜들을 조금이라도 풀어내도 우주전단을 가지고 전 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 그 직전에 이른 나라도 있다지만, 아직은 요원하다. 하나님의 안목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들이 받을 賞(상)이지 그를 거부한 자들의 상은 결코 아니다. 인류가 인본주의와 적그리스도의 길, 악마화 되는 길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했다.
하나님의 안목을 공유하면 하였다면 하늘을 지으신 그 압축된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낼 수 없는 간격을 넘어 마침내 그것을 찾아내기 시작하였을 것이고, 그것이 인류의 양식을 만드는 宇宙産業(우주산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의 안목으로 우주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의 壓縮(압축)을 풀려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결코 허락지 않으신다. 때문에 그 전에 그리스도의 再臨(재림)으로 인류는 심판을 받아 마쳐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인간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間隔(간격)을 넘어야 비로소 양식이 있다. 하나 하나님의 안목에는 건널 수 없는 곳은 없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무한한 영역도 건너신다. 물론 遍在(편재)하시니 동시에 그곳에 거하시는 분이시다. 그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안목을 받으면 상고의 배와 같은 은총과 양식이 있는 곳을 알게 하시고, 그곳으로 가서 그것을 의롭게 공평하게 가져오게 하신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도록 개방하면 그들에게 그런 권한 곧 하나님의 안목을 공유하게 하신다. 모든 비밀의 간격을 순례 무역케 하신다. [빌립보서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숨겨두신 모든 지혜들을 다 찾아낸다면 상고의 배와 같고 그 지혜들이 곧 양식이 된다.
인간에게 진정한 양식은 유리바다를 건너야 도달하는 하나님의 보좌에 있다. [요한계시록 4:6보좌 앞에 水晶(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요한계시록 15:2.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그 바다가 水晶(수정)과 같이 맑다고 하셨다. 그 바다를 넘어서면 물론 그것도 그리스도의 통치와 은혜로 건널 수 있는 것이다. 그 너머에 인류로 사람답게 하는 참된 양식이 있다.
모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안목을 받아서 그 양식을 사모해야 한다. 만일 우리 국민이 그 양식을 먹으면 즉시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악마경제를 일소하고, 남북의 빨갱이는 발본색원하고, 북괴가 붕괴되고 악마의 그 모든 물적 인적 인프라를 파괴할 것이다. 그 양식의 힘이 그처럼 강력하다. 악마에게 묶인 인류를 구출 구원 구명 구조 구난하여 치료 치유하고 모든 선한 섬김으로 섬기게 한다. 모든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그 양식을 얻고자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상고의 배를 타야 할 것이다. 그 배를 타야 비로소 그 유리바다를 건너고 그 보좌 앞에 이르기 때문이다.
거기서 우리는 인간에게 양식이 되는 많은 물품을 物物交換(물물교환)하고 그것을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상고의 배로 실어 와서 인류를 살리고 복되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거대한 貿易船(무역선)을 띄워 온 인류가 먹고도 남을 양식을 가져온다면, 이는 지도자의 책무를 우선적으로 다한 것이라 하겠다. “요한복음 6:47.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49.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그곳에서 먹어도 죽을 양식이 아닌 영생의 양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51.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52.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그 통치를 받게 된다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게 하는 양식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그 양식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전달하신다는 말씀이다.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이는 개방하여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은 자들을 의미한다.
곧 유리바다 건너편 하나님의 보좌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공급되는 양식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행하게 되고, 하나님은 그에게 영생을 공급하신다. 유리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인본주의로 그리스도를 전하거나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들이 곧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상고의 배에 타고, 성령의 각성으로 그 감동으로 유리바다를 건너가서 인간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양식을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통치는 그 양식이고 그 양식의 유일무이 출구요 근원이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상고의 배를 타면 그는 그 즉시 유리바다를 건너가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러 때를 따라 주시는 양식을 얻게 된다. “히브리서 4:1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昇天(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은 사도요한은 어느 날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게 된다. “1.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그 창조의 말씀대로 그대로 되도록 통치를 받는 자들의 복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실로 상고의 배와 같다. 사도요한은 그 배를 타고 유리바다를 건너편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러 인류의 미래의 말씀양식을 받는다. 그 양식이 곧 요한계시록이다. 그는 그 양식을 받아 이런 말로 그 양식을 세상에 소개한다. ‘요한계시록 1: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받아서 인류에 전한다.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그 복을 그 미래양식을 가져다 전달하는 자가 된 것이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통치는 인간이 건널 수 없는 모든 영역을 건너가게 하는 유일무이하신 권능이시다. 그 권능의 상고의 배를 타고 원하는 정보를 구하면 그 즉시 그를 성령의 감동으로 그곳으로 인도하신다. 인간에게 미래를 알게 하는 것, 그 양식은 有備無患(유비무환)에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 양식은 지혜요 명철이요 능력이요 권능이시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상고의 배를 타고 즉시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러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 곧 남북이 대치된 휴전상태의 조국의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그것에 따라 유비무환을 하게 하는 양식을 가져온다면 이는 곧 요셉의 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마태복음 24:45.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때를 따라 양식을 공급하는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것이 곧 국민 된 도리이고 지도자들의 책무이다. “4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48.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미래양식을 가져다가 미리 준비케 하는 지도자들은 참으로 복된 지도자들인 것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그리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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