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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탈북자
Korea, Republic of 신사도 0 572 2015-08-09 13:39:19

    서설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내가 만나본 탈북자

1990년 중 후반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으로 200만명이 굶어 죽었다는 그때 이야기 입니다

그당시에 배고품을  견디다 못해 많은 탈북자가 중국 각처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탈북자들은 특히 한국 기업을 많이 찾아 다녀 어려운점을 호소 하고 도움을 요청 하였습니다

 

나는 그당시 심양시 신흥촌(瀋陽市 蘇家旽區 新興村) 조선족  마을에서 모피 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공장에도 탈북자가 이따금식  찾아 와서 공장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막무간내로 보챕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불법 체류자 고용하다 발각되면 많은 벌금형과 법적인 조치를  받으니 공장에 종업원으로 채용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주고 싶지만 나의 능력 으로는 어찌 할수가 없어

도움 준다는게 따뜻한 밥한끼 대접과  중국돈 인민폐 몇백원 줘서 보내는게 고작 이었습니다

 

공장에 찾아오는 탈북자의 특징은 외모에서 나타납니다

남루한 옷차림 더부룩한 수염과 머리 수심에 가득찬 얼굴 등

그야말로 살아가는 고단한 삶이 역역히 나타납니다 대부분 이들은 찾아와서 제일먼저 먹을것을 달라고 합니다

 

그무렵 한50대 되는 탈북자가 찾아 왔습니다

이사람은 신의주에서 중학교 선생님을 하였는데

월급도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먹을것이 없어 압록강가에 나와 물고기를 잡아 허기진 배를 조금 이나마 채웠다고 합니다

이런 고기 잡는 일이 잦다 보니 압록강 수심이 낮은 지역도 알게 되었고

인민군 보초 경계가 허술한 지역도 알게되어

어느날 밤에 처와 아들 둘 이렇게 4식구가 압록강을 건너 무사히 

중국 단동에 도착 하였다고 합니다

 

중국말을 몰으는 이들은 백지에 "朝鮮族家"글자 쓴것을 중국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 조선족 집를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렇게 조선족을 찾아 다니며 허기진 배도 해결 하고 하룻밤 신세도 졌다고 합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 조선족으로 부터 한국이 중국 보다 훨씬 잘살고 한국 기업이 중국에 많이 진출해 있으니

한국 기업 찾아 가면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 듣기전에는 한국이 거지만 우굴 거리는 아주 못사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기업이 많이 있는 심양 까지 단동에서 270km나 되는 거리를 인적이 드문 밤에 기차길 따라 보름 동안 걸어서 왔다고 합니다

신흥촌 마을에 들어서서는 동네 사람들 에게 한국 기업 물어보고

우리 공장에 까지 왔다고 합니다

 

오자 마자 이들은 월급 안줘도 좋으니 공장에서  일하게끔 해달라고 통 사정을 합니다

우리공장에는 남편이 공안국에 다니는 부인이 있어 안된다고 하니까

이사람 양발을 벗고 발을 보여줍니다

 

발은 퉁퉁부었고 발이 터져 피 고름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발이 이렇게 붓고 피멍으로 얼룩이져서 더이상 걸음을 못 걸어 다니겠다고 하면서 몇일 간만 이라도 쉬었다 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내입장에서 수용 하기도 곤란 하였습니다

우리 공장에는 외부 사람들도 많이 왔다 갔다 하니까요

그래서 거절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까지는 한국 기업 찾아가면 무언가 되겠지 하는 기대감에 왔다가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자 실망과 좌절 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그때 문득 우리 공장 마을에 조그만 조선족 교회가 떠 올랐습니다

나는 그사람을 교회를 가보라고 권 했습니다

교회에 가면 목사님이 이사람들을 선처 해줄것 만 같았습니다

나는 그사람이 너무 남루하여 내가  입던 옷중에서 골라 옷을 한보따리 싸주고  인민폐 이백원 손에 쥐워 주며 정 어려우면 다시 찾아 오라고 했습니다

아픈다리를 이끌고 옷보따리 들고 교회로 갈려고 쓸쓸히 돌아서는 그모습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한달 가량이 지나 그사람이 다시 공장에 찾이왔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이 완전이 변해 가지고 왔습니다

외모도 깨끗하고 옷은 깨끗한 옷으로 입고 말이나 행동도 아주 활기가 넘쳐 흘렀습니다

그당시 교회에 찾아 가니까 목사님미 아주 따뜻하게 맞아 주시고

이들 숙식 제공도 해주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북한에서 왔다는 말대신에 중국 흑룡강성 산골(산골에 사는 조선족 중국말 모르는 사람 많음)에서 왔다고 하고 교회 부근에  있는 농장에 소개 해주어 부부가 일을 해서 월급도 받는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이모든게 교회로 인도 해줬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요?하며

저한테 고맙다고 인사 하러 왔다고 합니다

 

나는 그당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탈북자가 찿아오는걸 한국사람이나 조선족 모두 사실 많이꺼려 합니다

같은 동포라 하여도 밥한끼 먹여주고 돈 몇푼줘서 보내는게 전부 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들이 찾아오면 내식구 처럼 보살펴 주고 감싸 줍니다

사실 공안국에서 이런 사실을 알면 많은 곤욕 치르고 많은 벌금 내야 합니다

그래도 교회에서는 그런것 관계 안하고 이들을 돌봐 줍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사람들을 교회로 보내기를 잘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교회와 목사님에게 존경의 마음이 들기 시작 하고

교회와 목사님에게 조금씩 마음에 문을 열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있었으나 그당시는 교회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후 탈북자가 찾아오면 모두 교회로 보냈습니다

교회에서 모두 이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하느님 앞으로 인도 하였을 것 입니다

나는  그때 그탈북자가 나한테 한말이 지금도 생생 합니다

 

"나는 3일간 물만 먹고 굶어 보았는데 3일 굶으니 먹을것만 생각 하게 되고 먹을게 있어도 자식이 굶어 죽어 가고 있어도 자식에게 줄생각이 들지도 않고 그저 나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 일뿐 먹을게 내입에 들어 갑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성을 점차 잃게 되어서

극단적인 행동도 생각도 하게됩니다"

 

지금 북한 황해도에서만 2만명이 굶어 죽었다는데 제이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 되는것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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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by ip1 2015-08-09 14:15:26
    ㅎ ㅏ 때려죽일 김씨일가 놈년들과 평양에 기득권 간부새끼들.
    이분 브럴그 주소좀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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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기는 ip2 2015-08-09 17:21:15
    쓰기는 한글을 쓴것 같은데, 뭐 외계어? 브럴구?? 아하...아래 행복님 글 보고 힌트 얻었네.."블로그"..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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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사도 ip3 2015-08-09 19:28:54
    2번아 뭔 불평불만이 그렇게 많노 "외계어 브럴구"라고해야 속시원하니 잘 보고 갑니다 하면 서로가 좋을걸 꼭 힌트고 뭐고 촉잡야 시원하니 바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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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눔아 ip2 2015-08-11 14:11:19
    불편불만이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좀 알아봐라. 내가 지금 불평하고 있냐? 글 잘못썼다고 비난하는거잖아. 대한민국에 "브럴구"를 블로그라고 알아볼 사람 어디 있냐? 대가리에 개념 좀 탑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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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ㅂ ip4 2015-08-09 16:39:03
    저분께 감사드려야 겠네요. 저분덕에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았을 테니까요.^^ 저도 저분 블로구 주소 알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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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복 ip5 2015-08-09 20:33:17
    아주 정직하고 양심적인 글이네요.
    탈북인한사람으로서 감사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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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ip6 2015-08-09 22:03:33
    저 아래의 글과 여기 신사도님의 글은 비숫한 내용의 글이지만
    발제의 목적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진심어린 글 잘보았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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