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돌아볼 이웃... 북한주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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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4:21.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罪)를 범하는 자요 빈곤(貧困)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福)이 있는 자니라]
몸의 주인에게 바쳐서 행동하는 것이 곧 인간을 만드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의이다. 몸의 주인에게 몸을 바치지 않고 자기 멋대로 몸을 사용하는 것이 곧 죄이다. 마귀는 인간을 미혹하여 인간의 몸을 만드신 주인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바쳐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때문에 마귀는 죄의 근원이다. 마귀는 교만과 궤휼과 강포로만 채워져 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마귀의 몸이 되어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으로 행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마귀의 교만으로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지 않는 자들은 주인의 통치를 버린 자들이다. 인간을 만드신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이시다. 그 본질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결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긴다. 하나님의 그 본질로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 속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에 통치를 받는 그 자체가 복인 것이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복된 길로만 인도하시려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오셨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모시라는 소식이 복음(福音)이다.
복된 소식이다.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보다 더 복이 있는 존재가 없고 복의 근원이 없다.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을 얻으면 곧 성령을 얻은 자이다. 성령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복이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본질의 성품에 통제를 받는다. 인간은 자기 본질을 거역할 수 없다. 인간은 피조물이다. 하물며 조물주의 본질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만유에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본질을 이길 자가 없다. 누구든지 천상천하 무적이신 하나님의 본질로 행하는 자들은 그래서 복이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언제나 만복의 근원이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행동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눈에 이웃을 깔보는 업신여기는 본질에 눌리면 안 된다. 이는 마귀가 그 몸을 사용함을 의미하는 것 곧 죄를 범하는 것이다. 나라에 이런 죄가 많아지면 나라가 망한다. (잠언 28:2.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그 속에 마귀의 본질에 눌리는 자들은 교만하다. 그들은 스스로 기준이 되고 잣대가 되고 저울이 되고 추가 되어 언제나 자신을 만민 위에 높이는 값만 양산한다.
그 때문에 세상을 주관(主管)하려고 나선다. 그들은 빈곤(貧困)한 자들을 위한다고 소리친다. 상대적인 빈곤감을 가진 자들을 서민(庶民)이라고 계급화하고, 그들을 위하는 권능 곧 명철과 지식이 있다고 소리치면서 서민들을 충동 선동한다. 이들 속에 있는 마귀와 그 본질인 교만 궤휼 강포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자들은 중우(衆愚)들이다. 그들은 늘 그들의 궤휼에 당한다. 마귀는 그 본질의 교만을 상품화하려고 학벌과 스펙 등의 것을 갖도록 그를 죄의 길로 유혹하여 이끈다. 그 교만이 그를 스스로 높여 세상을 깔아보는 자리에 선다.
서게 한다. 그가 서 있으나 그를 주장하는 것은 마귀의 본질인 교만이고 궤휼로 숨긴 강포다. 이들은 돈을 아주 좋아하는 기질을 보인다. 마귀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보다 인간보다 돈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자들이다. 마귀는 인간을 마귀화(化) 하는데 능하나 인간을 치료하고 치유하고 구원 구출 구조 구난 구조 구휼 구제하는 명철과 지식이 전무하고 전혀 무능하다. 그 무능 때문에 마귀에게 눌린 자들은 그것에 잡힌 자들은 그런 명철과 지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 속에 마귀의 강포로 가득하다. 다만 식인종의 세상을 만든다.
그들은 언제든지 교만하니 그것이 어디로 가겠는가? 이웃을 멸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이웃이 누구냐는 것이다. 마귀의 교만으로 행하는 자들은 서로가 교만으로 대하기 때문에 이를 이웃으로 정의(定義)할 이유가 없다. (마가복음 12:28.서기관 중 한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모세 율법의 계명에서 말씀하는 이웃의 의미를 밝혀야 한다. 그 때문에 우선 계명의 첫째가 무엇이냐고 묻는 한 서기관의 질문에 답하신 예수님 말씀을 고찰하자.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모든 계명 중에 첫째와 둘째를 명확하게 구분하셨다. 예수님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을 두번째로 꼽는다. 이는 곧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함이 첫째요 둘째는 그 본질로 이웃사랑이다.
(32.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그 서기관은 인간이 결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직은 알지 못하나, 예수님은 성령의 각성을 주실 것을 축복하신다.
누구든지 성령의 조명을 받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율법의 완성을 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에 이뤄지고 그들만이 성령 각성의 항구적인 은총을 입는다. 예수님이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네게 멀지 않다 하신 것은 조명에서 각성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심이다. 이는 그 서기관이 깨달은 계명의 순서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깨달아 얻은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 지혜를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은 성령의 조명을 주시고, 조명을 받은 자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각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서기관은 대박이다.
서기관이 질문하고 화답한 둘째에 해당되는 계명의 이웃은 누구인가?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묻는다.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묻는다. [누가복음10:25.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인간이 율법을 전혀 지킬 수 없음과 예수님은 인간에게 영생을 주려고 오신 분이신데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시다. 이는 곧 성령의 조명 각성 각인 강력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본질로 이웃사랑을 완성함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면 율법을 완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본질로 행하게 된다. 그들만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한다.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본질을 영원히 무한히 누리게 되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내린 구약의 율법의 요구를 이뤄지게 하는 것이다.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인간의 힘으로 어찌 지극히 작은 계명을 완수하고 DNA절제력이 뛰어난 자들을 앞설 수가 있겠는가? 만일 율법을 지키는 권능이 인간의 육적이고 유전적인 것이라면 구원받지 못할 인간이 절대 다수인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헛되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을 시험하는 자인 줄 아시면서도 그에게 진리를 전하시길 원하셔서 그의 질문에 응하신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했냐고 물으시면서 그가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계명을 깨달았으나 그것으로 예수님을 시험함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유와 겸손함으로 그의 시험을 감내(堪耐)하시면서 그가 대답한 것이 옳다고 인정하신다. 인정하시면서 이를 행하면 살리라고 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그 누구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지 않으면 율법을 지킬 수 없다. 불가능(不可能)하다. ##로마서 8: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그 율법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온유와 겸손으로 인내하심을 알지 못하고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또 질문하는 것을 하나님의 온유와 겸손으로 두번째 감내(堪耐)하신다. 깨달은 지식으로 예수님을 시험하고 사람들 속에서 자기를 옳게 보이는 자들은, 다 위선자들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부정하는 인본주의자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정하는 자이다.
예수님은 성령의 강력으로 명확하게 이웃을 정의(定義)하셨다. [3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세상은 마귀가 있고 마귀의 본질을 공유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마귀의 교만으로 궤휼로 강포로 아직 마귀에 시종이 되지 않거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사람을 잡아먹는다. 거기에 가세하는 자들이 제사장이고 레위인이다. 마귀의 이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웃을 잡아먹는다. 마귀도 제 것을 아낀다.
마귀의 이웃이 된 인간이 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웃된 인간이 있다. 마귀에게 속한 인간은 나르시스로 마귀에게 속한 인간을 에로스 스톨게 필리아로 사랑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한 인간은 하나님께 속한 인간을 아가페 사랑한다. 그가 비록 교회 목회자의 직분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가 속한 본질에 따라 행하게 된다. [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공동정범의 짓을 한다.
하나님께 속한 이웃이 있다. 하나님의 이웃은 마귀사람이 동질인(人)을 사랑하는 이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웃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이웃과 아직은 회개의 기회를 제공받는 이웃이다. 북한에는 두 종류의 이웃이 있다. 마귀에게 속한 이웃과 하나님께 속한 이웃이다. 마귀에게 속한 이웃은 북괴이다. 북괴는 남북빨갱이로 연결이 되어 하나님께 속한 이웃과 회개의 기회를 제공받은 이웃들을 압제하니 그야말로 강도만난 이웃이다.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이웃이 아니다. 그들은 이웃을 경멸 업신여기는 교만한 자들이다.
[33.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을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유와 겸손으로 감내하면 아주 중요한 이치를 세상에 알리신다. 이웃을 정의(定義)하신 것이다.
강도 만난 자가 곧 우리가 돌아볼 이웃이다. 강도는 곧 마귀의 본질을 강조함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면 악심이고, 악심이 습관이 되면 악습이고, 악습이 굳어지면 악성 곧 악질이다. 악질에 마귀가 들어가니 곧 비유에서 나온 강도이다. 마귀와 일체가 된 자들 집단은 모두 다 강도이다. 그 강도에게 당하는 하나님의 이웃들이 있다. 강도의 동료들이 아니라, 그 강도에게 당하는 하나님의 이웃들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 그분들을 돌아보는 하나님 손길이 절실하다. 국가는 그리스도의 통치로 채워져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일을 해야 하나님의 손길이다.
따라서 오늘의 본문은 이러하다. “잠언 14:21.(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여 마침내 그 속에 마귀가 들어간 자는 하나님의 이웃을 업신여기는 교만과 궤휼과 강포의 짓을 하니 죄를 범한 자이다.)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罪)를 범하는 자요(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본질로 하나님의 이웃의) 그 빈곤(貧困)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福)이 있는 자니라.”라는 의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남북빨갱이의 그 마귀의 강도짓에서 나라를 건져내자고 강조한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북괴에 시달리는 북한주민도 하나님의 이웃이다. 그 때문에 북한인권법을 제정해야 하고, 이를 돌아보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본질로 돌아보아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면 진리의 지식을 알아도 이를 지킬 수 없다. [37.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을 항구적으로 받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본질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 이웃은 하나님의 이웃이다. 마귀의 이웃이 아니다. 이는 빛과 어둠이다.
빛은 어둠을 돕지 않는다. 다만 물리치는 것이다. 어둠은 빛을 돕지 않는다. 다만 빛이 없어지면 그 자리를 차지할 마귀욕심만 가득하다. 친북이나 종북이나 동일하게 어둠이다. 빛과 어둠을 하나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도 어둠의 자식들이다. 하나님의 이웃을 괴롭히는 자들이 누군가? 남북빨갱이 북괴가 아닌가? 그들의 본질은 교만(驕慢) 궤휼(詭譎) 강포(强暴)이다. 그들이 남한에서 강포를 철저하게 숨겨 행하나, 북괴와 내통(內通)하는 그 자체가 강포이다. 이번 총선에서 하나님의 이웃을 돌아볼 지도자들을 국회에 보내야 하는데.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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