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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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내 친구들 중에는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가 두 명이 있다. 그중 한 명이 남강원도 바닷가에서 1951년도에 태어난 전도민 이란 친구다. 평양에서 내가 그 친구를 만났을 때에 그는 잘 생긴 얼굴과 튼튼한 체격을 가졌지만 오른 손은 손가락이 거의 없는 불구였다.
알고 보니 그는 어린나이 부터 남한에서 어선을 타다가 1960년대 말에 납북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납북이 되자마자 10대의 나이에 당시 대남담당 비서였던 김중린 휘하의 대남 간첩이 되었단다.
몇 년간 간첩훈련을 받은 후 임무를 받고 수차례 남한에 침투도 했었고 강원도에 가서는 몰래 부모님들도 만나 보았다고 했다. 후에 들으니 부모님들이 가문이 위험하니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던 것 갔다.
그러던 중 그는 폭발물을 동작시키다가 실수를 하여 오른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그가 불구의 몸이 되어 쓸모가 없어지자 대남부서에서는 그를 사회에 내보내 버렸다. 그는 영예군인(상이군인) 판정을 받고 평양시 순안구역 영예군인 공장에 보내졌다.
공장에서 생산원자재 보장을 위한 외화벌이를 한다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그를 알게 된 후 순안구역에 있는 그의 집을 가보니 부엌, 집안 모두합해 7-8평이나 될 작은 집에서 가족을 꾸리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 작은 집에서 다 큰 딸이 연탄가스를 먹고 죽는 가슴 아픔도 겪었다.
내가 남한으로 와서 어느 사회단체를 통하여 전도민이란 친구의 부모님들이 살아계시면 소식이라도 전해 줄가 하여 부탁을 해보았다. 얼마 후 만남을 추진하던 그 단체의 책임자 분은 “전도민이란 사람의 부모님을 강원도에서 찾았고, 또 직접 가서 만나도 보았는데 아들이 위험한 일을 하기 때문에 소식도 안 듣겠다.” 라고 한다고 전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만두었다.
나는 지금도 그 친구가 납북이 안 되었다면 그와 그의 가족 전체가 불행과 고통을 겪지 않았으리란 생각을 가끔씩 해본다. 또 그 친구가 북한을 동조하는 한국의 종북들을 본다면 과연 뭐라고 말할가? 하는 생각도 같이 해보군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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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름이 정확히 뭐요?
전호민은 마치 전라도호남민을 지칭하는것 같고.
전도민은 마치 전라도민을 뜻하는것 같고.
지역분열을 은근히 조장하려고 친구의 이름을 그리 쓴 것은 아니겠죠?
김태산씨의 인격을 존중하겠습니다.
지금 보니까 본문의 두번째 줄에서 친구 이름을 전호민에서 전도민으로 수정하셨네요.
만약 친구 이름이 맞고 당신의 이야기가 당당하다면 왜 수정했습니까?
'그것은 오타였다' 라고 댓글로 설명하면 될텐데..
하여튼 그렇다 칩시다.
한국에서의 행운을 빕니다.
어디서 협박질이냐 씨벌새끼야
너 이 씨벌넘 마니 컸구나~
얼굴 안 보인다고 악다구리하다가 큰일난다!
제가 글을 잘 쓰지 못할뿐 저 내용과 이름은 사실입니다.
아마 1960년대 말에 납북 어부들을 찾아보시면 저의 친구 이름도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부족한글 많이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냉혹한 비판은 저의 자아 발전의 동력으로 받아 들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