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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영화 "월미도"의 날조 ...(북괴전사를 위한 친절한 설명)
United States 친절한성하씨 0 767 2016-07-30 07:20:15

월미도가 북한의 '영웅의 섬'이라고? (16)

by 주성하기자   2008-12-23 5:49 pm

 전편 -2천 만이 속고 있는 6.25의 기록들(11월25일자)-에 이은 글입니다.

 

  영화 ‘월미도’는 북한의 대표적 전쟁 영화이다.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에서 1982년 만들어진 95분짜리 이 영화는 1990년대 북한에서 간첩으로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리진우가 극본을 쓰고 조경순이 연출했다. 모두 당대 최고의 작가와 연출가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낙동강 전선이 북한군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북한군이 작전상 후퇴하기 위하여 3일간의 여유가 필요한 시간…월미도를 지키는 북한군 해군포병 4중대에 섬을 사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중대장 이태훈은 승진 명령을 받았으나 섬을 지키기 위해 대원들과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한다.

  첫날 13일 미군의 함대와 비행기가 공격해 온다. 이들은 섬을 방어하지만 포 4문 중 2문이 파괴된다. 다음날 또 한 문이 파괴되지만 미 구축함 커크 호를 침몰시킨다.

  마지막 날…이들은 1문 남은 포를 개활지로 이동시키고 조를 구성해 포를 쏜다. 1조가 무너지면 다음 조가 나가서 쏘는 방식으로 결사항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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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에 주둔 북한군 해안포병 중대가 보유하고 있던 76미리 포. 군함에 명중해도 별다른 피해를 주기 어려운 중구경 포이다.

 

  마지막으로 이태훈과 몇 명 생존자들이 목에 반탱크 수류탄을 두르고 상륙정을 향해 육탄공격을 벌인다. 붉은 화염이 이들을 휩싸면서 영화는 김일성의 ‘교시’가 자막으로 떠오르면서 끝난다.

  <<월미도 해안포병들은 잘 싸웠습니다. 그들은 최고사령부의 명령대로 인민군대의 전략적 후퇴를 보장하기 위하여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결사 적으로 싸워 3일 동안이나 적의 상륙을 막아냈습니다. 우리는 월미도 용사들의 영웅적 위훈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영웅적 군상이 존재한다.

  두 눈을 잃고도 포탄을 장전하는 특무장 민국 아바이…19살 통신병 영옥은 떠나라는 명령도 어기고 포격에 끊어진 전화선을 몸으로 잇고 죽는다. 해안에서 파견된 기뢰부설조원 윤석이는 한 밤중에 기뢰를 끌고 적함을 향해 육탄으로 접근해 폭파시킨다.

  청순한 소녀와 같았으나 목숨을 내걸 때는 단호하게 행동한 영옥이의 역을 맡은 여배우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나이 50살이 거의 됐지만 북한에서 아직도 영옥이라고 불린다.

  월미도는 적의 5만 대군과 수백 척의 군함, 1000여대의 비행기와 맞서 이중 13척을 격침 격파했다는 것이 영화의 주장이다. 실제 북한은 6.25전쟁 때 533명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했는데 이중 이태훈 중대장은 영웅 중에서도 전세를 바꾼 영웅으로 북한 전쟁박물관에도 크게 전시돼 있다.

 

상륙작전이 끝난 뒤의 월미도 모습. 엄청난 포화가 퍼부어진 것이 눈으로 봐도 짐작된다.

 

  이 영화는 정말 당시로서는 매우 훌륭한 전쟁영화였다. 전투신도 그러했지만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는데 정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전국에 이 영화를 놓고 실효모임이 벌어졌다. 실효모임이란 영화의 주인공을 따라 배우기 위한 운동이다. 당시 전국에 “월미도의 영웅처럼 살며 싸우자”는 구호가 등장했다.

  전국 직장과 농촌, 대학에서는 “월미도의 영웅과 나”라는 제목으로 강연, 글짓기 모임. 웅변대회 등이 벌어졌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1000만 명 이상 시청자를 돌파하면 대박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영화는 최소한 1000만 명 이상 돌파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영화는 12번 본 적이 있다. 이유는 북한에서 1년에 만들어지는 영화가 몇 편 안되기 때문…

  많아서 수십 편이고 올해는 북한 전국적으로 4편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월미도도 북한 사람들은 몇 번씩 보았을 것이다.

 

  월미도의 영향은 지금도 남아있다.

  올해 만들어진 북한 영화 4편 중 1편인 “그날의 중위”는 “월미도를 지켜 싸운 영웅 중대장과 전투훈련 도중 뜻밖의 정황 속에서 전우들을 목숨 바쳐 구원한 선군시대 영웅 중대장의 넋을 이어 부대의 전투력 강화에 모든 것을 바쳐가는 한 인민군 중위의 높은 정신세계를 형상하고 있다”고 북한중앙통신이 12일 소개했다.

 

  그래서 나도 북한에 있을 때 월미도에서 굉장한 격전이 벌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전혀 내용이 달랐다.

  다음은 월미도 전투에 관한 한국의 전쟁사 한 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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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 준비사격을 받고 있는 인천 시가지와 월미도. 왼쪽이 인천이고 오른쪽이 월미도이다.

 

  “월미도의 무력화는 9월10일 스트러블 제독이 지휘하는 항공지원전대(TG 90.5)의 함재기에 의해 시작되었다. 호위 항공모함 시실리(Sicily)함과 바둥 스트레이트(Badoeng Strait) 함에 탑재된 해병 항공기들은 3일 동안 주로 네이팜탄을 사용하여 조직적인 항공 강습을 가해 월미도의 방어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많은 토론 끝에 월미도에 대한 공격전 포격은 9월 13~14일 주간에 실시하기로 결정됐다. 주간 포격은 기습의 효과를 감시키고 아군 함정을 노출시킨다는 위험이 따랐으나, 일날 수 있는 좁은 수로에서 혼란을 피하고 엄폐된 적 포대의 발포를 유발하여 그 위치를 노출시켜 파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하긴스 제독의 함포지원전대는 썰물 직전인 간조 시간에 인천수로를 통과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었다. 첫째, 구축함들이 포격을 위해 월미도 앞 해상에 투묘했을 경우 썰물을 받기 시작하여 함수가 수로 바깥쪽으로 향하게 되어 비상시에 외해로 탈출하기에 용이하였다. 둘째, 간조시간에 수로를 통과하면 기뢰가 수면 상에 노출될 수 있었다. 셋째, 구축함들이 월미도에 아주 접근해서 포격하기 때문에 만조시간에는 함포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30피트 가까이 높아져 표적에 직사 할 수 없었는데, 간조시간에는 이러한 사격의 제한을 피할 수 있었다.

 

  9월 13일 오전에 함포지원전대(미 중순양함 2척, 영 경순양함 2척, 미구축함 7척)는 월미도를 포격하기 위해 인천수로에 진입하였다. 11:45시에 구축함들이 기뢰를 발견하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간조시간이었기 때문에 기뢰들이 수면 상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구축함들은 40밀리 기관포로 기뢰를 폭파하면서 수로를 통과하였다.

 

  이날 12:42시에 선두의 거크(Gurke)함이 제일 먼저 월미도 앞 해상 800야드에 투묘하였고 이어 다른 구축함들도 포격위치에 투묘하였다. 순양함들은 인천 남쪽 수마일 되는 포격 위치에 투묘하였다. 13:00시가 되기 직전에 구축함들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몇 분 후에 월미도의 적 포대에서 반격을 가해 왔는데, 적의 사격은 주로 월미도에 가깝게 위치한 거크, 스웬슨(Swenson) 및 콜릿(Collett) 함에 집중되었다. 콜릿함에는 75밀리 포탄 9발이 명중되었고 거크함에는 3발이 명중되었다. 이날 전사 1명과 부상 5명의 피해가 있었다. 구축함들은 약 1시간 동안 월미도의 적진지에 5인치 포탄 1000여발을 발사한 후 14:00시에 묘지를 이탈하였다. 순양함들은 16:40시까지 월미도를 포격한 후 외해로 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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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 작전 직전 엄청난 로켓 화력을 퍼붙고 있는 미 함정들.

 

  9월 14일 월미도에 대한 포격이 재개되었다. 이날도 수로에 진입할 때 발견 되 기뢰는 역시 함포로 처치되었다. 이날 구축함 5척이 월미도 주변에 포진하여 12시 55시부터 14시 22시까지 함포사격을 실시하여 5인치 포탄 약 1700발을 발사하였다. 이날 월미도 적 포대의 반격이 아주 미약하고 부정확했는데, 이는 2일간의 공격 전 포격으로 적의 포진지가 상당히 파괴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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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정을 타고 월미도로 향하는 상륙부대원들.

 

  인천상륙 작전은 월미도의 점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9월 15일 03:30시에 시어스 대령이 지휘하는 선공격전대(TG 90.1)의 상륙선거함(LSD) 1척과 고속 수송함(APD) 3척이 제 5해병연대 제 3대대를 탑승시키고 함 지원전대와 함께 인천 수로에 진입하였다. 05:45에 지원함이 월미도에 대한 포격을 개했으며, 항공지원 전대에서 출격한 10대의 코세어(Corsair)기가 상륙해안에 폭탄과 로켓탄을 투하하고 기총소사를 가했다. 06:15시에 5인치 로켓탄 1000발씩을 적재한 3척의 상륙 로켓함(LSMR)이 로켓탄 사격을 실시하였다.

 

  06:33시에 태플리 중령이 지휘하는 제 3대대의 제 1파가 월미도의 녹색해안에 접안함으로써 상륙이 개시되었다. 9월 10일부터 시작된 공중공격과 함포사격으로 월미도를 방어하고 있던 북한군의 방어력이 거의 상실되었기 때문에 적의 저항은 대체적으로 경미하였다. 제 3해병대대는 08:07시에 월미도를 완전히 장악했으며, 곧 소월미도를 공격하여 11:15시에 점령했다. 이날 제 3대대는 부상자 17명이 발생했을 뿐 적 사살 120명과 생포 190명의 전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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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에 방치된 북한군 시신들… 이들 역시 6.25전쟁의 피해양들이다. 영혼이나마 월미도에서 편히 잠들기를…..

 

  결국 한국 전쟁사에는 월미도에서 전사 1명과 부상 22명으로 해안포 1개 중대와 보병 1개 중대가 주둔하고 있던 월미도를 완전히 점령했다고 돼있다. 북한이 3일 동안 방어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원래 상륙계획은 15일로 잡혀있었고 상륙 시작 단 수십 분 만에 점령했다고 한다.

 

  북한은 미 해군 구축함 3척을 포함해 13척을 격침 및 격파 시켰다고 주장한다. 위의 김일성이 ‘교시’라는 것을 보라. 실제 김일성이 아래에서 화려하게 꾸며 올려 보낸 보고를 그대로 믿었는지. 아니면 그 자신이 조작을 만들어냈는지는 모르겠으나 북한의 인식이 그의 말에 그대로 담겨 있다.

 

  나는 몇 년 전 월미도 상륙작전을 찍은 자료 화면도 보았다. 실제 상륙작전 당시에는 섬 쪽에서 짧은 사격이 있다가 금방 끊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월미도를 두 번 찾았다. 지금은 유원지가 들어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곳… 격전지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만이 옛 추억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오늘엔에는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월턴 워커(1889∼1950년) 전 초대 유엔 지상총사령관의 동상이 용산 미군기지에 세워진다고 한다.

 

  남쪽에서는 월미도가 6.25전쟁의 승패를 바꾼 성공의 상징이다.

 

  그러나 아직 북한의 주민들은 월미도를 영웅의 섬으로 여기고 있다. 나 역시 한국에 와서 다큐를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 나의 기억 속의 ‘영웅’들이 공포에 잔뜩 질린 얼굴로, 어지러운 내복차림으로 두 손 들고 한국군에 항복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 전까지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남과 북은 이렇게 똑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알고 있다. 통일이 되면 우리는 이런 조작의 흔적부터 어떻게 충격 없이 지워낼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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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복 ip1 2016-07-30 22:01:05
    잘 보았습니다.
    북한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구체적 사실로 알게 해주셨네요.
    -
    월미도 뿐이나요.
    신천대학살도 좌우익주민끼리 학살극인데
    미군만행이라고 박물관 만들고 아직도 선전.
    -
    워커장군은 자동차사고사인데 빨찌산 습격공로라고 해놓았고
    -
    주문진 앞바다 싸움은 북 어뢰정으로 빨찌모르라는 순양함 침몰시켰다고
    영화도 만들고 아직도 선전선동 하고 있고-
    실제로 그런 배도 없었다고 합니다.
    =
    북한은 그래서 거짓말 공화국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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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게요 ip2 2016-07-30 22:13:49
    북한사람들은 월미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는 말을 이만갑에서 본것 같네요.
    북에 있을때 영화는 봤지만 월미도가 섬인지 조차도 몰랐을것 같네요.
    한국사람들도 솔직히 월미도를 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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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복 ip1 2016-07-30 22:43:29
    2번님- 미안하지만
    북한사람들은 거의다 월미도를 압니다.
    영화도 있고 밤낮선전선동 덕분으로-
    혹 모르는 분은 고난의 행군때
    정신없이 사느라 그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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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번입니다 ip3 2016-07-30 23:09:18
    네~ 민복님.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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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미도 ip4 2016-08-03 16:18:15
    한국 온 이듬해에 인천으로 갔다가 월미도가 생각나서 마음먹고 들러 봤네요.
    영화에 나오던 그 섬 월미도를 상상하며 과연 어떤 곳일가 나름 기대하고 갔었는데...
    공원에 맛집들에... 하하 그 결전의 장소가 전혀 상상초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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