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가렸던 ‘북한 문학’ 해외에서 관심 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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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가렸던 ‘북한 문학’ 해외에서 관심 커졌다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반디라는 필명의 북한 작가가 쓴 체제 비판 소설집 <고발>과 탈북 시인 장진성의 수기 <경애하는 지도자에게>가 국제 출판 시장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북한(탈북) 작가들의 작품이 해외에서 활발히 번역되고 있다. 올해 초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돼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세계적 화제가 된 반디의 <고발>은 최근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등과 판권 계약을 마치고 내년 3월 16개국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이 책은 북한 문인단체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인 작가가 배고픔과 체제 모순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집으로 한 비정부기구를 통해 북한 밖으로 반출돼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옮겨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탄 데버러 스미스가 영역을 맡았다. 영미권에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저작권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가 얼마 전 내년 해외에서 성공 가능성이 큰 작품으로 꼽기도 했다. 앞서 탈북 시인 장진성은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라는 시집으로 2012년 영국 옥스퍼드대 ‘렉스워너 문학상’을 받았고, 이후 2014년 출간한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로 영국 집계 도서판매 순위 10위에 오른 바 있다. 해외시장에서 인정받은 작품들을 발판 삼아 그동안 베일에 가렸던 북한 ‘문학’의 입지가 커지고 있다. 올해 2월 탈북 작가 김유경이 출간한 <인간모독소>는 최근 프랑스 출판사 필립 피키에와 판권 계약을 맺었다. 책을 출간한 카멜북스의 담당 편집자는 “계약을 조만간 마무리짓고, 곧 번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인간모독소>는 북한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로 평양에서 활동하다 2000년 탈북한 것으로 알려진 김유경의 두번째 장편소설이다. 신문사 기자인 원호와 그의 아내 가야금 연주자 수련이 끌려간 정치범수용소가 배경이다. 수련을 짝사랑하던 민규가 보위원으로 배치되고 감독관과 수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이들은 점차 비뚤어진 욕망의 노예가 된다. 소설은 체제의 폭력 앞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무너지는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필립 피키에 측은 김유경의 전작 <청춘연가>도 출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남북 작가들이 공동으로 낸 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도 현재 일본의 도야마 대학에서 번역 중이다. 이지명, 설송아 등 탈북 작가 6명과 윤후명, 정길연 등 한국 작가 7명이 북한 인권이라는 큰 주제 아래 각각 고향과 국경, 국가 등을 소재로 쓴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작품집이다. 탈북 작가인 이지명·도명학·설송아는 내달 말 도야마 대학을 방문해 탈북 문학에 대한 강연회를 연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서정적인 소설 미학을 드러내고 있는 데 반해 북한 작가들의 소설은 생생한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을 본 전문가들의 비교·평가다. 북한 작가들은 북한 내 불륜, 금서, 꽃제비 아이들의 생활 등 사회의 이면을 조명하고 탈북자들의 불안한 위치를 담아냈다. 아울러 탈북자들의 삶을 다룬 탈북 작가 도명학, 10여년간 북한 사람들을 취재해 온 국내 작가 이정의 단편소설은 홍콩 인권단체 탈북자관주조가 번역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북한(탈북) 작가들의 작품이 조명받는 이유로 주제의식과 더불어 문학작품으로의 경쟁력을 든다. 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를 기획한 서울대 방민호 교수는 “한국 젊은 작가들의 문장은 섬세하지만 문장미가 적다고 보이는 데 반해 북한 작가들은 간결하고도 정확한 문장을 구사한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전달력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문학 판권 수출 에이전시인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는 “베일에 가린 주제를 다뤘다는 것을 넘어서 이제 소설 자체로도 경쟁력이 있는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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