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꽃제비에서 장애인 아이스슬레지하키 국가대표로 |
---|
[탈북민 출신 첫 장애인 대표 최광혁] 2016 브라질 리우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19일 오전 전북 전주의 한 아이스링크. 썰매에 몸을 실은 최광혁(29)씨가 구슬땀을 흘리며 하키 스틱으로 퍽(아이스하키의 공)을 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최씨는 왼쪽 발목이 없는 장애인으로 지난달 7일 동계패럴림픽 종목인 아이스슬레지하키의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그는 "국가대표로 발탁됐을 때 험난하고 굴곡졌던 지난 20년이 떠올라 펑펑 울었다"고 했다. 최씨는 탈북민 출신 첫 장애인 국가대표다. 1987년 함경북도 화성군에서 태어난 그는 여덟 살 때인 1995년 300만명의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한 북한의 '고난의 행군'을 온몸으로 겪었다. 단란했던 그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가 학교를 그만두고 장터를 전전하며 음식을 구걸하는 '꽃제비' 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13세가 된 2000년 5월 최씨는 설상가상으로 왼쪽 발목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다. 암시장에서 물건을 떼다 팔던 건달들을 돕던 중 단속 요원을 피하기 위해 지나가던 열차에 올라타다 떨어져 발목을 다친 것이다. 마취 없이 발목 절단 수술을 받은 최씨는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해 상처 부위에 구더기가 들끓었다"며 "몇 번이나 죽음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탈북민 출신 첫 장애인 국가대표인 최광혁(29)씨가 지난 18일 안양시에 있는 자신의 집 앞에서 스틱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북한에서 사고로 왼쪽 발목이 절단되는 아픔을 겪은 최씨는 탈북 후 한국에 정착해 아이스슬레지하키에 입문했으며, 지난달 태극 문양을 달았다. /장련성 객원기자 절망 속을 헤매던 그에게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의 연락은 한 줄기 빛이었다. 몇 년 전 북한을 탈출한 아버지가 남한에 정착한 뒤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해 온 것이다. 최씨는 브로커의 도움으로 중국을 거쳐 2001년 8월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최씨는 "한국에 도착하니 지옥에서 천국에 온 것 같더라"고 했다. 일주일에 두 번은 학교에 가고 나머지 날에는 춘천과 전주 등을 오가며 훈련에 몰두한 지 2년 만에 최씨는 국가대표라는 꿈을 이뤘다. 최씨는 "태극 마크는 탈북자로서 그리고 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개인적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훈장이 <iframe width="250" height="250" src="http://cad.chosun.com/RealMedia/ads/adstream_sx.ads/www.chosun.com/news@x74"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noresize="" scrolling="no"></iframe>자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다음 꿈은 모든 장애인이 원하는 운동을 즐기면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장애인 스포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최씨는 "하루 끼니 때우기가 가장 큰 목표였던 제가 지금 이렇게나 큰 꿈을 꾸고 있는 게 참 신기하다"면서 "평창 패럴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새로운 꿈에 도전할 기회를 준 대한민국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김선엽 기자 입력 : 2016.09.20 03:00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신고 0명
게시물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