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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바리와 김일성은 뿌리가 같은 백제 민족이다.
Korea, Republic of 양산도1243 0 566 2016-10-10 13:35:22
친일을 제대로 배우려면 절라도를 공부하면 아주 잘 보인다.

원래 일본의 근본은 백제라는 것을 여러 학문적인 자료나 역사적인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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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 백제계 세력이 야마토 왜국(大和倭)을 세웠다! 비류 백제인이 세운 임나가라국 (일제 임나일본부설의 역사적 기원)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79721&section=sc11홍순주 역사전문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5/07/07 [16:36]

1980년대 초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이라는 책을 쓴 김성호 선생은 한성을 중심으로 해()씨 세력의 온조 백제와 공주를 중심으로 진()씨 세력의 비류 백제가 존재하였다고 2개의 백제설 이론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비류백제 왕 응신이 고구려 광개토 태왕에게 전쟁에서 패하여 왜열도로 들어가 이들 비류계 백제인 들이 야마토 왜국(大和倭)을 건설하였다고 하였으나 처음부터 기존 온조계 백제의 왕력 외 별도의 비류계 백제의 왕력을 각각 잘 알 수가 없어 점점 가설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다가 필자는 온조 백제 왕력 속에는 온조계 단독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백제국내에 두개의 왕권 세력인 온조계와 비류계 즉 두 개의 혈통이 서로 혼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면 소서노가 전 남편인 족장 우태(優台, 고어에서는 우이로 발음)로부터 얻은 비류 왕자와 졸본부여로 도피해온 고주몽(이름 고추모)과의 사이에서 얻은 온조의 두 아들이 있었는데 비류와 온조는 동모이제(同母異第)의 관계였다.  

 

소서노는 자신의 재력과 군대로 고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시키고 그 후 약 20년이 흐른 뒤 고구려로 전처 예 부인과 아들 유리가 가신을 이끌고 고주몽을 찾아오자 자신을 도왔던 소서노를 배신하고 예 부인을 정실 본부인으로 맞아들이고 유리를 태자로 책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서노 세력이 반발하여 고주몽과 소서노의 양 진영 간의 전투가 일어나고 여기서 고주몽은 사망하지만 전투에서 승리한 유리태자가 고구려 제 2대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러자 소서노와 비류와 온조 형제는 자신이 살던 졸부부여에서 탈출하여 발해만 대릉하 지역의 금주 지역으로 남하하여 소서노를 중심으로 초기의 어라하(於羅瑕) 나라를 구축하게 된다.

<중략>

임나가라 지역을 지배했던 비류 백제계 세력이 AD 369년 온조 백제계 근초고왕에게 그리고 나중 AD 396, 비류계 응신 세력들이 고구려 광개토 태왕에게 각각 밀려 왜열도로 도피하여 AD 405년 경 야마토 왜국(大和倭)을 세우게 된다.

 

왜열도에서 일본의 고대국가를 세운 비류 백제 인이 현재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거주하고 있으므로 일본인 자신들의 역사적 관점에서 서술하게 된다. 한때 자신들의 본거지였던 한반도 임나가라 지방과의 정치 경제적 관계를 AD 4C에서 6C까지 지속해 온 사실을 일제 시절에는 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임나일본부를 세워 지배하였다고 주장하여 한일 고대관계를 정반대로 왜곡한 식민사관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hsj8730@skku.edu 

 

*필자/홍순주.잃어버린 한국 고대사 연구회 겸 성균관 전학(역사담당 교수). 역사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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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보듯이 일본은 백제가 만든 것이라는 게 나타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럼 일본의 조상은 한국인데 지금의 일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한국을 싫어할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간단한 문제들이 있다.

 

그것은 김일성의 조상이 전주에 둥지를 틀었고 김일성의 부모는 열열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런 그가 무엇 때문에 기독교를 미워하고 같은 한민족인 남한을 싫어했을까?

여기에 일본과 연결해서 의문을 해보면 공통적인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백제가 세운 나라이고 북한은 전주에 근서를 둔 김일성이 만든 백제라는 공통점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일본과 김일성은  자기의 과거를 숨기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왜?그들은 자기의 과거를 숨기려고 할까?

 

이것은 신비주의라는 말상에 빠졌기 때문에 자기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것을 없애려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지우려고 했던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은 국민들이

충분한 공감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창씨 개명과 주요 명산에다 기를 뺀다고 쇠말둑을 밖은 짓이라든지 괄화문의 위치를 바꾸고

조선 총독부 를 만들면서 덕수궁을 가렸던 것들과 우리나라 곳곳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지우려고

수많은 짓을 했다.

 

여기에 김일성도 북한에서 자신의 부모가 열성적으로 다녔던 기독교를 탄압하고 성경을

베껴서 주체사상을 만들어서 자신을 유일 신으로 섬기게 했다.

여기에 6,25를 도발해서 남한을 강제로 접수해서 대한민국을 전체로 김일성 왕국으로 만드려는 수법이

일본과 똑같은 방법을썼다는 것이다.

 

지금 좌빨들이 친일파라고 들먹이면서 자기들 세력 안에 있는  친일파는 절대로 외면하는 것은

김일성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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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김구, 김일성 누가 친일파를 중용했나?

 

이승만과 친일파 청산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싸워온 이승만은 집권 후에도 반일노선을 강고하게 견지했었다.

 

김구와 친일파 청산

김구는 자신의 자서전을 출간할 때 친일 행적으로 비난받던 이광수의 도움을 받았다.

김구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함께 친일파 청산론을 강력히 제기한다.

북한은 친일파를 몰아냈는데 남한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며 화살을

남쪽으로 돌렸다.

 

김일성과 친일파 청산

 북한은 1946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창건하면서 친일파 청산을 하나의 당면과제로

제시한다.

아래 명단을 보면 상당수의 친일 전력자들이 김일성의 내각에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남로당의 경우에도 유사한데, 비율적으로 보면 남로당에 보다 많은 친일 전력자들이

가담하고 있었다.)

최승희 사례는 친일전력자에 대한 김일성의 태도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공연의 기획은 남편인 안막(일제 하 좌파 문학평론가)이 담당하였으며 공연과정에 친일적

구호가 홍수를 이루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에서 남로당이 몰락한 이후 남편 안막과 함께 숙청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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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보듯이 김구를 비롯한 김일성은 자기들이 친일파를 적극 옹호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는데 목적을

두고 자신의 측근이나 내각에 적극적으로 활용을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좌빨들의 원조격인 이들의 친일파를 적극 옹호하면서 그들의 지원을 받은 것은 뭐라고 말할 것이며

김일성과 일본의 공통점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본다면 김일성이나 일본이나 근본은 백제에 두고 있고 그들은 자기들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서

지금도 광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한에 있는 좌빨들이 친일파 청산을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먼저 친일파를 청산하고 따져야 할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뉴시스아이즈]차길진의 산따라 강따라-모악산② 인간미륵을 길러낸 땅

기사입력 2009-02-03 10:16

      

 모악산 동쪽 구이면 원기리에서 선녀폭포 쪽으로 가다보면 전주 김씨 시조묘 입구에 전주김씨 종가에서

 세운 공덕비와 정자가 있다. 군사정권시절 이 묘는 공공연한 국가기밀로 접근이 금지되었다. 이곳을

찾으러온 풍수지리가들은 덩치 큰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는데, 바로

김일성(金日成)의 32대 조상 김태서의 묘가 위치했기 때문이다. 일명 ‘김일성 조상묘’는 문민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접근 금지였다.

◇ 모악산에 자리한 ‘김일성 조상묘’

육관 손석우씨가 지은 ‘터’라는 풍수지리책에는 ‘이 묘의 지기가 발복하여 그 후손이 장기집권을 하게 되며, 그 운이 49년 만인 1994년 9월에 끝난다’라는 내용이 예언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이 내용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 예언한 날짜와 근소한 차이로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1994년 7월)부터 세인들의

관심을 끌어, 모악산의 또 다른 명소가 되었다.

출처 ; 뉴시스 I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250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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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본다면 쪽바리와 김일성은 뿌리가 같은 민족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들은 그런 과거가 들어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더라도 그런 과거를 감추려는 심보로 지금까지 과거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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