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패역한 세대가 문재인을 선택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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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패역한 세대가 문재인을 선택했구나. 캄캄함과 흑암의 시대이니 생명의 빛으로만 이 시대를 이기리라. [잠언 28:25.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탐하는 자란 ‘He that is of a proud’로 번역한 히브리구음은 rachab {raw-khawb}이다. 라크하브 라우-크하우브라 발음하고 broad, wide란 의미인데, 이 구음은 인물의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라합이라고 한다. 여호수아의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여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말에 捏合(날합)이라는 말이 있다. ‘명사’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거짓으로 꾸밈. 이다. 같은 말로는 날조이다. 날로 먹으려고 한다는 의미의 그 날의 의미를 포함한 것인데, 구음과 의미도 거의 동일하다. 과대광고를 하는 허풍선이를 의미한다.
우리말 풍쉬가 있다. 풍쉬는 허풍선이. (명사)허풍을 잘 떠는 사람. (비슷한 말), 허풍선. 라합과 네페쉬를 합하면 허풍선이라는 의미인데 네페쉬의 페쉬가 풍쉬와 비슷한 구음이다. 하브+페쉬=하브페쉬=허풍쉬=허풍선이로 변형이 가능한 것일까? 마음은 heart이고 히브리구음으로 nephesh {neh-fesh}이다. 그 안에는 soul, self, life, creature, person, appetite, mind, living being, desire, emotion, passion을 담는다. 네페쉬 네흐-페쉬이다. 프라우다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들은 어디서든지 다툼을
일으킨다 이다. 날로 먹다 는 힘을 들이지 아니하고 일을 해내거나 어떤 것을 차지하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 자기를 허풍선이로 만들어 사람들을 혹하게 하고 그것에서 한자리 차지하여 그것으로 뭣을 탐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을 일으키는 짓이 될 뿐이란 의미이다. 영어로 변역함보다 우리말 그대로 날합이 원어적인 것이다. 이는 그 라합이 그대로 우리말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날합이 곧 라합이다. 라합의 마음을 합해서 하브푸쉐 허풍쉬 허풍선이가 된 것이라면, 네페쉬와 라합이 그대로 우리말에 녹아 흐름이라 하겠다.
풍쉬의 의미는 허풍선이로 날합의 의미 날조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김일성가문을 신화로 날조하여 우상화하고 그것으로 군림하는 계급을 삼는 것인데, 그것은 곧 권력투쟁을 일으키는 마당을 여는 것이다. 觸發(촉발)한다는 stirreth up 고무시키다. 각성시키다. 강한 감정을 일으키다. 촐싹거리다. 진작시키다. 휘정거리다. 일떠나다. 쑤석거리다. 궐기하다. 들이쑤시다. 들썩거리다. 부채질하다. 술렁거리다. 뼛성 내다. 主謀(주모) 라는 의미들을 담는데 히브리구음으로 garah {gaw-raw}이라 하고 to cause strife, stir up, contend, meddle, strive,
be stirred up을 담는다. 가라흐 가우-라우이다. 가라앉게 하다. 그것을 가라앉혀야 할 문제들이 일어난 것인데, 가라앉혀야 의미로 변형이 된 것이라면 비슷한 구음에 의미도 근사하다 할 수 있다. 분쟁과 다툼과 소요가 일어나면 가라앉혀야 하기 때문이다. 가라앉다= 흥분이나 아픔, 괴로움 따위가 수그러들거나 사라지다. 이다. 결국 가라앉혀야 할 이유들이 곧 가라흐 garah {gaw-raw}이다. 다툼을 strife로 번역했는데 히브리구음으로 madown {maw-dohn} 마도운 마우-도흔이다. strife, contention인데 우리말 구음에는 마당이 있다. 마당이다.
마당 ‘명사’ 집의 앞이나 뒤에 평평하게 닦아 놓은 땅.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의존명사’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판이나 상황.판소리나 탈춤 따위의 단락을 세는 단위를 의미한다. 싸움이 벌어지는 한마당이 된 것이다. 허풍선이가 있는 곳은 말싸움마당이 된다는 것이다. 요란스러운 곳이고 결코 아무런 득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창조와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짓임을 강조함이다. 창조와 생산은 허풍선이에서 풍쉬 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결코 허풍선이가 되지 아니하고 그 다툼에서 벗어난다.
“고린도후서 12:20.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忿(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빌립보서 2: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디모데전서 2:8.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디모데전서 6:5.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디모데후서 2:23.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디도서 3:9.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야고보서 3:14.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야고보서 3: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야고보서 4:1.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그리스도의 성령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은 다툼을 좋아하고 그들이 있는 곳은 늘 싸움마당이 된다.
인간은 선택을 잘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 곧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행함이 선택을 잘 한 것이다.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는 의미를 ‘but he that putteth his trust’로 번역했는데 히브리구음으로 batach {baw-takh}이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to trust, trust in, to have confidence, be confident, to be bold, to be secure등을 담는다. 바타크흐 바우-타크흐 이다. 우리말에는 보채기와 보태기가 있다. 보채기는 「…에/에게 -고」 어떠한 것을 요구하며 성가시게 조르다. 보태기는 ‘명사’ <수학> 같은 말로 더하기(덧셈을 함).가 있다.
유사한 말로는 배채기가 있는데 ‘명사’ ‘배참(꾸지람을 듣고 그 화풀이를 다른 데다 함)’의 잘못. 곧 배채기는 배참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구음은 비슷하나 뜻은 다르다. 하나님께 보채는 자들은 지혜를 얻고 생산과 창조의 은총을 누린다. 하나님과 결합하는 자들 곧 하나님을 더하기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그만큼 누리게 되는 것이다. 본문의 의미를 영역함보다 우리말이 더욱 본뜻에 가깝다 하겠다. 이는 같은 뜻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께 늘 아가처럼 보채는 자들만 승리하게 된다. 하나님께 늘 보태는 자들만 승리하게 된다. 드리는 심령도 포함된다.
##누가복음 11:5.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을 그 안에 더 많이 보태는 자들도, 하나님께 더 많이 보태기 하려고 바치는 자들도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보채다의 또 하나의 의미는 ‘동사’ 아기가 아프거나 졸리거나 불만족스러울 때에 어떻게 해 달라는 뜻으로 울거나 칭얼거리다. 이다. 하나님을 그렇게 갈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복을 받는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인간을 하나님의 식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게 하는 세상의 선택을 굳이 막지 않으셨다. 이를 미리 안 성도들이 눈물로 간구하였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문재인을 선택한 세상을 허용하신다.
이제 정말 보채는 아이들이 되어야 하는 시절이 온 것이다. 하나님과 성령으로 보태기하는 더하기 곧 연합하지 못하면 결코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자천하여 헌신하는 자들 하나님께 보태기를 하는 자들만 이기게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성령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인본주의자들은 결코 이길 수 없는 길로 가는 것을 굳이 마다치 않으신 하나님이시다. 교회가 인본주의에 안착하는 것을 원치 않으심이 분명하다 하겠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자들, 곧 성령으로 보태기 보채기 하는 자들만 견딜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하심이다.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들만 이겨가는 세상을 허용하신 것이니, 하나님의 모략을 우리가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in the LORD=Yehovah {yeh-ho-vaw}’ 발음은 여호와 이에호바흐인데 이에흐-호-바아우 이다. 모음을 빼면 ???? 손을 보라! 못을 보라! 이다. 합쳐서 야웨이시다. Jehovah = the existing One 홀로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을 받으신다. 그 손을 보라 그 못을 보라이다. 그분에게 찬양과 감사와 기도와 순종으로 보채기하고 그분에게 더하기 하는 성령 통치를 받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복이 임하신다. 그분 때문에 풍족해진다는 번역을 ‘shall be made fat’ 라고 했는데 히브리구음으로 dashen {daw-shane}이라 한다. to be fat, grow fat, become fat, become prosperous, anoint등의 의미를 담는다. 기름부음으로 이뤄지는 이 풍요는 곧 성령으로 행하게 되는 것 구약에서는 이를 성신감동으로 표현했다. 구음은 다쉔 다우-사네 이다. 우리말에 다산이라는 말이 있다. 多産(다산) ‘명사’ 아이 또는 새끼를 많이 낳음. 물품을 많이 생산함. 유의어 : 多生(다생), 多作(다작)이란 의미를 담는 말이다.
이러한 다산의 복은 성령으로 보채고 그의 통치를 더 많이 받는 것과 보태다 ‘동사’ 모자라는 것을 더하여 채우다. 이미 있던 것에 더하여 많아지게 하다. 유의어 : 가산하다, 늘리다, 보충하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보태다는 하나님께 보태다 하나님으로 보태다의 의미이다.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사야 9: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기묘자로 번역된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배워야 한다. pele {peh-leh} 페레 의미는 onder, marvel, wonder (extraordinary, hard to understand thing), wonder (of Gods acts of judgment and redemption) 인데, 우리말에 페레는 없다. 변형이 되었다면 숨겨진 것을 펴야 비로소 알 수 있다는 펴라가 있다. 손바닥에 숨겨진 것은 펴라 인데 이불을 펴라. 로도 사용된다. 페레는 기묘이다. 펼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비밀이란 의미를 담는다면 펴라고 하는 것으로 변형된 것이 근사한 의미다. “사사기 13:18.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piliy {pil-ee} or paliy {paw-lee}
이런 구음을 생각하면 어떨지 싶다. 하나님의 기묘를 펴길 빌라 비밀을 파라. ‘필리이 파울리’ wonderful, incomprehensible, extraordinary이란 의미인데 “욥기 37:14.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pala {paw-law} to be marvellous, be wonderful, be surpassing, be extraordinary, separate by distinguishing action을 담는다. “이사야 28:23.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24.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그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이 패역한 세상이 교회의 대적 주적인 동성애와 북괴를 허용하는 문재인을 그들의 대통령으로 선출해도 막지 않으심은 하나님의 기묘하심이 그리 하심이라 하겠다.
이는 한국교회를 하나님이 다루심이라 해야 할 것이다.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않겠느냐” 모든 것은 다루는 방법이 있는데, 한국교회는 이렇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결정한 내용이다. 심판이 아니라 징계적인 조처로 본다면 어떨지 싶지만 징계는 당시에 슬퍼 보이는 것이다. 각 종류의 농사법이 다르듯이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다루심이니 그 다루심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원하시는 결과를 내신다.그분은 아버지시니 자식농사에 이익을 보셔야 한다.
***히브리서 12: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12.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그렇다. 모든 것은 다 적당한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데 그것을 인간이 스스로 알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알게 하셔야 아는 것이니 그 때문에 이제 그분의 인도하심을 감사함으로 받아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 때만이 그분의 기묘하심의 영광을 펼쳐내는 것이다. “26.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27.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28.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 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29.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which is wonderful= pala {paw-law} 파라인데 땅 속을 깊이 파면 팔수록 감추인 것이 드러나는 것이니, 우리말 구음의 파라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우리구음 파라와 구음이 같고 의미도 근사치에 해당이 된다. 왜 하나님이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허락하셔야 하였는지를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파고 들어가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략이 분명히 있을 것이니 열심히 파고 또 파면 그 비밀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허용케 하신 의미는 하나님의 모략에서 나온 것이니 하나님 편에 서서 감사 찬양으로 기도하면서 파내면 하나님이 이를 알려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구음을 우리말 구음과 연결하면 어느 정도 말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의미가 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전적인 언어 심층심리에서 나오는 잠재성의 동일을 의미할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하나님이 농사를 가르치시는데, 이것은 이것대로 저것은 저것대로 농사를 짓는 법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심이다. 문재인과 그 친구들이 대한민국을 완전히 망하게 하고 북괴를 받아들이는 일을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허용하라고 그를 세우신 것인가? 그것을 허용하지 못하게 막으라고 하심인가? 드러난 적과의 싸움이 시작이 된 것이니, 숨겨진 것이 드러남이다.
그들도 그동안 기묘하게 숨어 있었지만 이 마당에 다 드러내서 일을 할 것이다. 펼칠 것을 다 펼쳐서 싸울 것이다. 이 마당에 뭘 더 숨기고 자시고 할 것이 있으랴?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의 교회가 이를 침묵할 것인가? 자기들의 속에 감춰진 보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파내서 그 빛을 발하게 할 것인가? 인본주의는 나올 것이 없지만 그리스도의 통치를 성령으로 받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싸워보자는 말인데,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펴게 해야 하고 그것을 파내어 그 보배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하루 밤에 죽인 분의 영광이 어디로 가시겠는가? 성경에 그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분의 영광이 어디로 가시겠는가? 그 영광을 펴도록 기도하라. 그 영광을 드러내도록 파고 또 파라는 의미이신 것 같은데. 그리스도의 통치를 성령으로 받아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 찬송 기도하는 자들만 그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심이다.
“이사야 60:1.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3.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인본주의의 절망이 앞을 가려야 하나님의 조명을 받는 자들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하나님의 조명을 받는 사람들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니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어둠은 behold, the darkness =choshek {kho-shek} 크호세크 크호-세크인데 darkness, obscurity, secret place을 담는다. and gross darkness는 `araphel {ar-aw-fel}아라펠 아르-아우-펠이다. 그 안에는 cloud, heavy or dark cloud, darkness, gross darkness, thick darkness이다. 우리말로는 ‘알아 볼 수 없다’ 가 근사구음이다. 크호세크는 흑암 캄캄함 깜깜함인데 우리말에 없다. 흑암 깜깜함으로 대치된 것은 무슨 이유일지 이유가 있을 것인데, 특히 크호세크는 창세기 1장 1절의 구음인데 우리민족의 기억 속에서 소멸이 된다.
다만 흑암과 캄캄함과 어둠과 알아볼 수 없다 등의 언어만 유전이 된 것이다. 어둠을 싫어하는 민족성의 심리 때문인지는 모르나 어둠이 있어야 빛이 더욱 빛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빛이 되시고 문재인은 그 어둠이 되어 빛과 어둠의 한판 싸움이 이 땅에서 벌어질 모양이다. 빛 앞에 특히 하나님의 빛 앞에 그 어떤 어둠도 견딜 수 없다. 곧 도망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빛만 빛이라고 할 때 하나님의 빛이 아닌 자들은 모두 다 저 어둠에 삼켜질 것이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의 빛(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통치)을 가졌다면 이 시대를 넉넉히 이겨내고 그 빛을 온 누리에 발할 것이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요한복음 8:12.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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