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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의 지령으로 가난을 악용하는 자들이 가난퇴치사로 나서지만 나라의 곡간만 거덜낼 뿐이다.
Korea, Republic of 구국기도 0 759 2017-05-20 15:00:13

[잠언 29:7.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가난을 이기는 힘을 가지려면 가난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왜 가난한지를 알아야 치료가 된다. 知彼知己(지피지기)百戰百勝(백전백승)인데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그 전쟁을 이기는 방책을 세운다는 의미이다. 가난을 이기려면 각 사람을 압제하는 가난의 성질을 알아야 한다. 가난의 성질을 알아야 그 성질을 다스리는 성질도 알게 되고 그 성질을 통해 그 가난을 이기게 된다. 성질은 힘으로 다스린다고 할 때 그것을 다스리는 힘을 가져야 한다. 스프링도 스프링을 누르는 힘이 있다. 그 힘에 의해서 그것이 다스려지고 그 힘이 없어지면 여전히 그 모양이다.

 

창세기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세상에서 제일 먼저 빛을 만드신다. 그 빛이 있으면 어둠은 물러가나 그 빛이 없는 만큼 그 어둠은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가 가난을 다스리는 성질을 알아내는 하나님의 빛을 가진다면 각자의 가난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빛의 성질이 그를 독촉할 것이다. 만일 우리 속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빛이 거하면 이웃의 가난의 성질을 알아보고 그것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빛의 힘을 구할 것이다. 가난은 그것을 다스리는 힘을 가지지 못한 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가난을 이기는 힘!

 

그 힘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빛 안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하시는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빛의 성질이 어둠의 성질을 永遠(영원)히 이긴다. 하나님 그 자체가 빛이 되시는데 만들어진 빛도 그 모든 어둠을 이긴다. 하물며 스스로 계신 빛이 모든 것을 이기지 못하시겠는가? 그분에게는 그 어떤 것을 다스림에 능치 못함이 없으시다. 가난으로 사람을 누르는 힘을 被造物(피조물)인 어둠이라고 할 때 그것을 다스리는 힘을 만드신다. 그것을 다스리는 힘을 빛이라 한다. 이는 만들어진 빛으로 피조물인 어둠의 힘을 이기는 것이다.

 

하물며 스스로 계신 이의 빛이시니 누가 그 빛을 감당하랴? “디모데전서 6:15.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스스로 계신 이의 빛이시다. “요한일서 1:5.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어둠을 이기는 힘은 빛에서 나오는데 그 빛은 만들어진 것과 스스로 계신 이의 것이 있다.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저가 증거 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 하러 온 자라그 빛을 온 세상에 소개하는 것이 사역자들이 할 일이나 스스로 계신 이의 빛이 아니다. 하나님의 빛으로 세상을 이기자.

 

하나님의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의 통치를 성령으로 받으면 생명의 빛을 얻어 누린다.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 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성령으로 받아 누리면 성령의 증거 하심이 진리이심을 확인하게 된다.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 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깨닫게 되고 그의 통치를 성령으로 받아 비로소 그의 영광을 알게 된다. 그 빛으로 모든 가난을 독해하고 다스리는 자가 되자고 함이다.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인간의 힘으로 만든 빛으로는 그 모든 가난을 다스리는데 너무나 역부족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마귀에게로 가서 그 탐욕을 극대화 한다. 이 나라의 경제가 지금 마귀의 경제로 몰려가고 있다. 그것은 결국 망하는 것이다. 어둠을 어둠으로 이기자고 하는 것 그 자체가 미혹이다. 흑암을 광명 삼는 짓이다.

 

인간의 그 모든 가난을 물리치는 빛은 인간이 만들 수도 없고 스스로 계신 이의 빛으로만 영원히 치료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3: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사람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 빛을 성령으로만 알게 된다. 성령의 각성이 답이다.

 

인간은 만들어진 등불을 좋아한다. 그 빛으로 일시적으로는 가난을 이기나 항구적이거나 장구함은 없다. 그 빛은 일시적으로 부분적이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빛이 절실한데 그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5:35.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36.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 하는 것이요하나님의 빛으로만 모든 가난을 이기는 것이다

   

요한복음 8:12.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9: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요한복음 11: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요한복음 12:35.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한복음 12:46.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우리의 운동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으로 세상의 모든 가난을 이기자고 강조함이다.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의 통치를 받자고 강조한다. 그들만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가난한 자들의 그 가난의 성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빛을 받아 누려서 그들을 구제하고 구휼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구휼하려면 그리스도의 통치를 성령으로 받는데 완전해져야 한다. 그들이 오늘 본문에서의 의인이다. ‘The righteous’ 히브리구음으로 tsaddiyq{tsad-deek} 차드디이크 차드-데에크 just, lawful, righteous 이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가득 차다. ‘차다또는 마귀와 그것에 속한 모든 것을 걷어차다 차다의미를 담는 우리말의 구음과 비슷하다. 그렇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야 의인이 되고 그들만 마귀와 그것에 속한 모든 것을 영원히 걷어 차버린다. 성령으로 그것들을 차버리면 비로소 하나님의 모든 부요가 거기에 모인다. 성령의 통치를 받는 그들만 하나님의 빛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된다. considereth로 번역했는데 히브리구음으로 yada` {yaw-dah}야다 이아우-다흐 to know인데 우리말 비슷한 구음 의미가 알다.

 

알다교육이나 경험, 사고 행위를 통하여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갖추다. 어떤 사실이나 존재, 상태에 대해 의식이나 감각으로 깨닫거나 느끼다. 심리적 상태를 마음속으로 느끼거나 깨닫다 (주로 알아서의 꼴로 쓰여) 사람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할지 스스로 정하거나 판단하다. 알아내다 알아보다 알려주다 알아가다 알고가다 등등의 의미로 연결이 되는데 우리의 강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알아가는 것 곧 성령의 힘으로 알아가는 것이다. 최초의 인간에게 태초의 말씀이 하나씩 깨우쳐 ?알레프 ?타우구음으로 말을 가르치신다.

 

모든 것을 창조주의 안목으로 깨닫고 그것을 통일된 구음으로 언어의 의미로 표기하고 공유한다면 이는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본조건일 것이다. 전능자의 안목을 공유하는 구음과 의미의 공유는 가난한 자들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진단하고 처방하는 이점이 넘쳐나는 것이다.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안목의 언어로 구음의 통일이 아니더라도 의미의 통일은 이뤄야 한다. 구음의 통일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각 나라의 고유구음이 있고 표기도 있으니 어쩌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음과 언어를 공유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분과 동행하는 기본이 갖춰진 것이다. ‘the cause는 히브리 구음으로 ’diyn {deen} or (Job 19:29) duwn {doon} 다이인 or 두온, 둔이다. 판단, 원인, 탄원, 정죄, 분쟁, 법적 소송, 政府(정부)이다. 우리말 구음으로 비슷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디냐 어+디냐 와 어둡다 의 어두운 에서 어+ 두운은 있다. 어디니, 어두운 이란 형성이 만일 히브리구음의 다인 두온 또는 둔에서 나온 것이면 동일의미이다. 성령으로 모든 것을 다 알아간다면 즉각 알아본다면 그들만 그 성질을 제대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성령으로 깨달아 세상을 살리는 손길인 것이다.

 

그들만 세상의 가난을 몰아내고 구제와 구휼의 방법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내어 세상을 구출할 것이다. 가난은 ‘of the poor’ 히브리 구음으로 dal {dal} 달이다. low, poor, weak, thin, one who is low이다. 달달 춥거나 무서워서 몸을 떠는 모양. 작은 바퀴가 단단한 바닥을 구르며 흔들리는 소리. 또는 그 모양. 가난한 사람의 곡간사정과 주머니사정을 쌀독사정을 알아보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안목으로만 그것을 안다. 하나님의 안목은 모든 것을 다 통찰하시기 때문이다. 그 앞에 숨겨질 것이 그 아무것도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통치를 거부한 자들은 다 악인이다. 그들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보지 못한다. 안다고 해도 인간의 안목이다. 통계학적인 안목이라도 그것을 악용하는 것이니 결국 속임이다. ‘but the wicked’ 히브리구음으로 rasha` {raw-shaw} 라사 라우-사우이다. wicked, criminal이다. 기근 시에 다 굶주려 죽어 가는데 자기만 살고자 하는 부자들이 있었다. 나사는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의미한다. 나사가 만일 지금까지 내려온 상고의 언어들이라면, 죽어가는 자들을 모른 체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을 의미하고 약육강식의 피비린내다.

 

그들의 안목은 하나님의 안목이 아니다. 그들의 안목은 자기사랑이나 식솔사랑의 안목이다. 아가페 사랑의 안목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이웃의 가난한 사정을 알아보지 못한다. ‘regardeth’ 히브리구음으로 biyn {bene} 비인이다. to discern, understand, consider이다. 우리말구음에는 속이 빈의 비인이 있다. 모든 것의 지식이 가득한 것이 아닌 너무나 비어 있어 알아보지 못하는 겉똑똑이나 내용이 부족한 자들에게 속빈 강정이라는 말을 한다. 비었다는 것은 충만하지 못하다 극한 반대쪽의 언어영역이다. 마귀의 안목은 누구든 다 그러하다.

 

그들은 약육강식의 눈이든지, 자기들의 육적 사랑의 눈에만 밝은 것이다. ‘not to know’ 히브리구음으로 da`ath {dah-ath} 다아아트흐 다흐-아트흐이다. knowledge이다. 우리말에 다하다. 라는 말이 있다. 그 다한다는 말의 의미보다는 다 안다는 말에 가까운 구음과 의미이다. 다 알아낸다는 의미인데 악인들은 하나님의 안목이 없기에 가난한 자들의 사정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세상의 가난을 악용하여 표를 받아 국가의 곡간을 헐어버려 장구하게 국민을 가난 속으로 몰아넣는 짓을 한다면 그것은 곧 망하는 결과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 이를 묵과 방치하면 안 된다. 반드시 이를 처리해야 한다. 성령의 조치를 받아서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면 결코 세상의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다. 성령의 안목으로만 세상이 하나님의 기준의 부요로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곧 가난한 자들의 가난을 몰아내는 길임을 직시해야 한다. 성령으로 가난을 몰아내자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고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만이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만이 그 유일한 답이다.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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