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현재 겪는 진통은 성장痛(통)이냐? 사망痛(통)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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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4.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위한 것이니]
피조물은 언제든지 관리대상이다. 조물주의 관리를 받지 못하면 그 존재가 유지될 수도 없거니와 그 존재의 가치를 낼 수도 없다. 만일 피조물이 관리대상에서 벗어나서 조물주처럼 관리자가 된다면, 모든 피조물이 그것이 되고 싶어 한다는 定義는 내릴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마귀와 타락한 인간의 모습과 그 내역이다. 인간은 과연 조물주의 관리자의 영역으로 진입이 가능한가? 마귀는 세상을 꾀어내어 그것이 가능하다고 강변한다. 그 고혹에 미혹당한 인간들은 오늘의 바벨의 문명을 만든다. 그것으로 우주의 관리자가 되자고 한다.
그들의 내딛는 발은 첫 술에 배부르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이다. 만일 인간이 조물주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만물을 경영하는 위치를 점거한다면, 하나님의 통치 영역은 너무나 허술한 것이리라. 하나님은 홀로 영원히 스스로 계시다. 그분이 홀로 만드신 만물이다. 피조물은 결코 조물주가 만드신 그 어느 것 하나도 만들지 못한다. 흉내는 내도 진품이 아니다. 사람과 허수아비의 차이를 가진 창조문명의 차이는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간격이다. 이를 궁창이라고 한다. 그 궁창은 결코 건널 수 없는 간격이다. 수조 억 분의 1미리도 진입할 수 없는 간격이다.
이런 간격을 인간 스스로 뛰어넘어 하나님의 관리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가능하다. 그들만 하나님의 정직한 영의 도움을 받아서 진리를 깨닫는다. 인간은 영원히 스스로 神이 될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성령으로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가 아니면 결코 하나님의 본질을 공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성령으로 각성 받은 자들만 마귀의 미혹과 그것들의 사람들의 미혹에 휩쓸리지 않는다. 다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길로만 간다.
그들만 하나님의 관리대상에서 동시에 하나님의 관리권능을 공유하여 그 관리자로 함께 하게 하신다. “마태복음 12:30.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관리자의 위치에서 그 관리권능을 공유하고 그 관리에 참여케 하심이다.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養子(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관리자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관리자가 된다. 하나님의 관리권능을 공유하게 되고 그의 손길이 된다는 의미이다.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19: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 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의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의 관리권능을 공유하여 하나님의 손길이 되는 것이다.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인간이라는 피조물이 높아질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통치를 받음이다. ‘To give’ 히브리구음으로 nathan {naw-than} 나트한 나우-트한이다. to give, put, set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 위치에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나트한의 우리말 구음은 ‘놓다’가 가장 비슷하다. 의미도 비슷하다. 낳다 도 비슷한 구음이고 의미도 그러하다. 그리 세팅이 된 인간이니 위치를 알자.
인간은 결코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간격을 결코 좁힐 수 없다. 다만 그의 피조물이고 그의 통치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는 성령으로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그 권능을 공유하여 관리대상이며 동시에 관리권능을 누리게 된다.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님을 누리게 하시는 훈련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 훈련을 받아서 얻어지는 능력 곧 하나님과 동역하기 좋은 길들임과 장치를 받아 완전케 되는 것을 ‘subtilty’[|s?tlti] ‘명사’ 微妙(미묘)함; 巧妙(교묘)함, 絶妙(절묘)함; 예민함으로 번역했다.
히브리구음으로는 `ormah {or-maw}오르마흐 오르-마우이다. shrewdness, craftiness, prudence이다.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통치 곧 그리스도의 할례로 하나님의 본질과 全知(전지) 全能(전능)에 화답하는 인간으로 만드시고 길들이시고 장치하시고 그 은사로 행하는데 능하게 하심이다. 하나님의 본질에 화답하는데 능하게 하심이고 하나님과 동거 동역 동업하는데 능하게 하심이니 하나님께 순응하는데 능하게 하심이다. 微妙(미묘) 巧妙(교묘) 奧妙(오묘) 絶妙(절묘)에 예민하도록 만들어 민첩하게 응하게 하여 順應(순응)케 하심이다.
하나님의 종합적인 그 모든 정보를 동시에 처리함의 예민함 이다. “창세기17:1.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
인간이 스스로 그 간격을 좁힐 수 없다. 말씀이 그 간격을 좁혀주시는데 그 말씀이 인간으로 오셔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이 아브람에게 전능하시니 전능에 화답하여 완전하라고 명하신다. 아브람에게 그 능력을 주시려고 그 장에서 할례의 의미가 나오는데 하나님에게 완전하도록 순응하는 인간이 되게 하심은 곧 그리스도의 할례라 한다. “골로새서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그리스도가 주시는 할례는 곧 하나님께 순응하게 하는 모든 은사로 행함의 숙달이다.
이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라 한다. “골로새서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ormah{or-maw}오르마흐 오르-마우이다. shrewdness, craftiness, prudence이다. 오르마흐는 우리말 비슷한 구음은 奧妙(오묘) 이다. 의미도 동일하고 구음도 비슷하다. 오묘(奧妙) ‘오묘하다(심오하고 묘하다)’의 어근. 유의어: 深奧(심오), 신비이다. 그 반대말이 경박하다. 단순하다 이다. ‘to the simple’ 히브리구음으로 pethiy {peth-ee} or pethiy {peh-thee} or pethaiy {peth-aw-ee} 페ㅌ하이 페ㅌㅎ-이이 페ㅌ-흐이이 페ㅌㅎ-아우-이이이다. simplicity, naivete, simple, foolish, open-minded이다. 이는 오묘의 反對(반대)말이다.
내 뱉다. 의 뱉다가 가장 가까운 구음이다. 말을 함부로 내 뱉다. 뱉다 ‘밷ː따’ ‘동사’ 입 속에 있는 것을 입 밖으로 내보내다. (비유적으로) 차지하고 있던 것을 도로 내놓다. (비유적으로) 말이나 신음 따위를 함부로 하다. 유의어: 게우다, 떠벌리다, 내던지다. 단순하여 말을 함부로 하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니 의미도 거의 근사하다. 말이면 다 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살리는 말, 치료하는 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말미암는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해야 만이 그 말을 담아내고 전달한다. 하나님 성품으로 그의 말씀을 받아 전한다.
그리스도의 할례 곧 성령으로 주시는 그 훈련을 받게 되면 하나님과 동거 동역 동업하는 순종의 오묘의 화답의 권능을 받아 누리게 되는데 그것이 없는 자들은 單純(단순)한 자들이다.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린아이들이라 한다. ‘to the young man’ 히브리구음으로 na`ar {nah-ar}나 아르 나흐-아르이다. a boy, lad, servant, youth, retainer, servant, retainer이다. 나 아르는 우리말에 나아지겠지. 자라 나. 나아 져야지 나아 질 거야. 라는 말들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 자란다는 말도 자 나 아르이다. 나는 라로 자음동화가 된다.
자라난다. “고린도전서 3: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린도전서 13: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전서 14:20.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대한민국은 어린민주주의를 추행하여 망하게 하는 자들에게 당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하나님의 오묘에 응하는 자들이 적은 연고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출하시는 은총을 곧 장성하도록 그 오묘를 받아 공유하는 수준으로 자라나게 하시는 은총을 받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는 이 고통의 것은 성장痛(통)인가 아니면 사망痛(통)인가?
성장도 생사화복도 다 하나님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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