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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Korea, Republic of 두도구 0 110 2018-12-25 12:43:54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북한에서 학생들에게 배워주는 김정일의 혁명역사에 보면 이런 것이 있다. 그가 1970년대 초에 벌써 2일 및 주당 생활 총화 제를 실시하여 전체 인민을 하나의 사상의지로 단결시키었다.

과연 그런가.

1970년대 초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있은 일이다.

철학부에 다니는 김명철이와 오성열이는 친구도 이만저만한 친구가 아니었다.

어느 날 김정일이 발기했다는 2일 및 주 당 생활총화 시간이었다. 그 전에는 당 생활 총화도 월에 한 번씩만 하였다. 그것을 김정일이 2일에 한 번, 또는 주에 한 번씩 하게 한 것이다.

김명철이 먼저 일어나 지난 2일간 자기 생활에서 나타는 결함을 비판하였다.

공부시간에 졸았다는 것, 선생님의 강의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했다는 것, 늘 하던 소리 밖에 할 것이 없다. 자기 결함은 그런대로 만들어서라도 하면 된다. 문제는 자기 생활총화가 끝난 다음 꼭 해야 하는 동지 호상 간 비판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비판해야 하는데 과연 누구를 비판한단 말인가.

김일성, 김정일의 말대로라면 비판은 발전의 무기라고 하였는데 그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김정일조차 누구든 자기를 비판하면 절대로 가만있지 않는다. 무조건 정치범 수용소에 가거나 총살 될 수도 있다.

김명철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누구 비판할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던 끝에 그래도 오성열이를 비판하면 그는 이해해 주겠지 하고 전날 그가 공부 시간에 잠깐 존 문제에 대해 비판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 같이 교시하셨습니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임무입니다.’ 그런데 오성열 동무는 학습태도가 좋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결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제 김일성동지 혁명역사 공부 시간에 오성열 동무는 졸았습니다. 아주 엄중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쳐야 겠습니다.”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다.

당연히 오성열이로서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쁜 자식, 자기도 공부시간에 졸면서 내가 존 것을 비판해, 어디 두고 보자)

이런 생활총화에서는 절대로 비판받으면 그 자리에서 반박할 수 없다. 복수해서는 안 된다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다.

기회는 2일 마다 한 번씩 생활총화를 하기 때문에 오래 기다릴 것도 없었다.

눈에 불을 켜고 그의 일거일동을 살피다 보니 마침 좋은 비판거리가 생기었다.

그 날 저녁 김명철이 기숙사 뒤에서 몰래 담배피우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원래 대학생들은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절대로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대학생들 대부분이 10여 년씩 군대복무하고 대학에 왔기 때문에 몰래 담배 피우는 현상이 한 둘이 아니었다. 아니 절대 다수가 몰래 몰래 피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날 생활총화 시간이었다.

오성열이 먼저 자기 생활총화를 하고 동지 호상 간 비판을 시작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셨습니다. ‘대학생들은 절대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든 전부터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라 해도 대학생이 되면 반드시 끊어야 합니다.’ 그런데 김명철 동무는 뭡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부터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라도 대학생이 되면 반드시 끊어야 한다고 했는데 왜 담배를 피웠습니까.

동무 그러고도 당의 붉은 대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잘 못 되어도 아주 잘 못 된 일입니다. 명철동무는 이 문제를 꼭 고쳐야 합니다.” 말 그대로 비수 같은 비판이었다.

명철이 자기 한 짓이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했다.

이 문제는 아무리 김일성의 교시라고 하여도 너무 일반적이기 때문에 더 크게 비화되지는 않았다.

대신 쥐고리 만 한 것이기는 하였지만 명철이 장학금이 잘리었다. 대학에서 아무리 담배를 끊으라고 해도 끊지 않으니 걸리는 사람은 무조건 장학금을 잘랐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는 무서운 칼이 베려지기 시작하였다.

원래 이들은 다른 사이도 아니고 십 여 년 함께 군사 복무를 한 사이었다.

말이 쉽지 십 여 년을 함께 군사 복무 한 사이라면 어떤 관계였겠는가. 그건 더 말할 것도 없이 친구 중에 친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둘이 사이는 완전히 원수로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얼마간 세월이 흘렀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다 잊혀지고 정상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달 뒤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이들 모두는 문화 예술부 영화 촬영장 건설에 동원되었다. 고역 중에 고역이었다.

워낙 일도 힘들었지만 먹는 것은 더구나 한심하여 더 힘들었다. 하루 세끼 폭탄구덩이 밥에 배추국 한 사발이 고작이니 왜 배고프지 않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인가 김정일의 배려라고 하면서 촬영장 건설에 동원된 모든 학생들에게 한 닭 한 마리씩 공급되었다. 물론 닭이라고 하여도 큰 닭은 아니다. 중병아리 정도 된다고 할까 주먹만 한 닭이 공급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늘 폭탄구덩이 밥만 먹던 이들에게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래간만에 기름기 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나오던 김명철이 말했다.

에이 아무 생각 없군물론 잘 먹었으니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소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로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여러 달 동안 그와 함께 다니며 복수거리만 찾던 오성열이 단단히 귀에 담아 두었던 것이다.

다음 번 생활총화 날이었다. 김명철이 일어나 자기 생활총화를 하고 앉았다. 이번에는 오성열이 차례가 되었다. 뭔대 대충 자기 생활 총화를 한 다음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열을 뿜기 시작했다.

명철동무, 동무 정말 자기 생활 총화를 다 한 겁니까명철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같이 지적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수령님의 크나 큰 은덕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동무는 뭐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크나 큰 배려로 닭을 한 마리씩이나 먹었으면 생각이 많아야지 아무 생각도 없다는 게 말이 돼? 동무 그러면서도 당의 붉은 대학생이라고 말 말 할 수 있겠어?

저는 이렇게 당의 배려도 모르는 사람은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동무의 문제를 상급 당 조직에 제기하고 크게 사건화 할 것을 제기 합니다

정말이지 소가 웃다가 구러기 터질 일이라 아닐 수 없다.

늘 무 배추 꽁다리만 먹다가 오래간 만에 기름진 음식을 먹었으니 아무 생각도 없다고 한 소린데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쩐단 말인가. 명철이 역시 여기 저기 불려 다니며 비판서를 쓰고 숱한 비판을 받고서야 간신히 용서받을 수 있었다.

당연하게 그의 마음속에 두터운 앙금이 앉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촬영장 거리 건설이 끝나고 학생들 모두는 대학으로 돌아왔다. 곧 이어 겨울이 닥쳐왔고 어느 추운 날 아침이었다.

이들은 등교하기 위하여 대학으로 가는 길 지하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밤새 어떤 사람이 얼마나 급했던지 거기 지하도에 변을 본 것이 보였던 모양이다. 물론 꽁꽁 얼어 돌덩이 같이 되어 있었다.

명철이 옆에서 가던 오성열이 그걸 보고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이거 어떤 자식이 여기다 백두산을 만들어 놨어물론 깊이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을 명심해서 듣는 사람이 있었다. 김명철이다.

됐다. 이 자식 어디 두고 보자오후 생활총화 시간이 되었다.

오성열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난 2일 간 자기한테서 나타났던 결함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다.

한 두 어 사람 더 생활총화를 하였다. 마침내 김명철이 일어나 자기 생활총화는 간단히 지었다. 호상비판 순서이다. 김명철이 흥분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시작은 차분하게 해야 한다.

“...바로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다른 동무들도 들었겠지만 오성열동무는 대학 등교하던 중 지하 건늠 길에서 어떤 사람이 봐 놓은 더러운 것을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백두산 같다고 했습니다.

동무! 도대체 제 정신이 있는 사람이요...” 여기서 부터는 언성을 높이작했다.

백두산이 어떤 산인데 그 더러운 것을 거기에 비교한다는 말입니까? 동문 그래 백두산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위업을 개척하시고 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태어난 혁명의 성산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런 소리를 했단 말이오? 저 동무는 원래 사상적으로 잘 못된 사람입니다. 그러지 않고야 어떻게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그렇게 비하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오성열이 때가 왔다 생각하고 말 그대로 사상전의 집중포화를 들씌웠다.

지난 번 자기가 당한 복수를 시원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일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원래 2일 및 주당생활총화에서 제기된 중요한 자료는 거의 전부 상급 당 조직에 보고된다.

이 문제는 김일성 김정일의 권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도되었고 눈덩이 같이 커졌다.

우연한 실수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이후 성열은 거의 몇 달씩이나 거의 매일 불려 다니며 비판서를 썼다. 그리고도 대학 당에서는 출학문제까지 논의 하다가 가까스로 용서 해 받았다.

물론 이후부터 둘은 완전히 원수가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김정일이 내 놓았다는 2일 및 주 조직생활총화라는 것은 사람들이 단합되는 것이 두려워 서로 물고 뜯게 하려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이런데도 북한에서는 지금도 이것을 김정일의 위대한 혁명역사에서 중요한 성과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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