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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지막 법문
Korea, Republic of 돌통 0 464 2019-05-12 12:10:12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지막 법문】


부처님은 80세로 열반에 드시기까지

만 45년 동안 갠지스 강의 중허리 부분을 중심으로 광막한 인도 대륙을 누비면서

위대한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까지 설법 교훈적 행동 또는 무언의 가르침으로써 광막한 인도대륙 곳곳의 많은 중생들을 교화하였다.

어느때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앞으로 석달 후 여래는 열반에 들리라."


제자들은 슬퍼하였다.

슬피 우는 제자들을 뒤로 하고 부처님은 바이 샬리에서 최후의 여름 안거를 지냈다.

그곳에서 모진 여름 더위를 지내고 발걸음을 쿠시나가라로 옯겼다.

쿠시나가라는 인도 중북북에 있는작은 도시로 부처님께서 그곳으로 가시는 도중에 바카리와 춘다를 교화한 일은 유명하다.


바카리라는 제자가 임종을 앞두고 부처님을 꼭 뵙고자 청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바카리의 집으로 갔다.바카리는 감격하였다.


"부처님, 저는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할 모양입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왕림해 주시니 정말 저로서는 더없는 영광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기븜의 눈물을 흘리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바카리여, 나의 늙은 몸을 본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너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본다'고.. "

부처님이라는 인격은 진리와 동일하다.


그래서 깨달음이 있는 곳이 부처님이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라는 인격이 따로 있지 않다는 선언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부처라는 인격을 신격화하지 않는 인격적 표현이기도 하다.


대장장이 춘다가 올린 공양은 독버섯이었다고 불전이 전한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고, 부처님께 맛있는 공양을 대접한다는 것이 잘못되어 부처님이 심한 고통을 겪은 흔적들이 <대반열반경>이나 <열반경>등에 나타난다.


그때 아난이 부처님 곁에 있었는데 부처님이 혼절하여 당황했었던 흔적들이 불전에 보인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 고통을 극복하고 묵묵히 쿠시나가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부처님은 그림자처럼 부처님 주변을 맴돌던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저 사라쌍수 밑에 침상을 만들어 다오. 등이 몹시 아프구나. "

아난 존자는 슬피 울면서 부처님을 위해 침상을 마련하였다.

나무 밑에 낙엽을 깔고 그 위에 담요를 덮은 초라한 침상을 만들었다.


<열반경>에서는 그때의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부처님은 마치 늙은 사자처럼 오른쪽으로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우셨다.

쿠시나가라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이 위대한 성인의 최후가 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많은 제자들이 슬피울면서 부처님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알고 있는 모든 것,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대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쳤노라.

그래도 아직 미심쩍은 것이 있으면 내게 서슴치 말고 물으라."

그러나 제자들은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모두들 슬픔을 삼키면서 부처님 주위에 옹립하고 있었다.

아난이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이 자리에 있는 저희들은 모두 한 점 티끌도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최후의 유언을 하였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겉돌지 말고 물과 젖처럼 화합하라.

만약에 내가 간 후에 교단의 지도자가 없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내가 가르친 진리를 등불로 삼아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리라.

모든 것은 덧없다 부지런히 열심히 정진하라."


위의 마지막 구절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이라고 한역 되는데

이것이 부처님 최후의 유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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