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의 보고서(報告書)
이 보고서(報告書)는 「메시아」시대에 법정에서 만들어진 공문서로서, 현재,지금도 「터어키」의 성「소피아」사원(寺院)에 소장되어 있다. 50권으로 되어있는 이 원고는 서기관(書記官)의 손으로 씌어졌는데, 각권이 2×4피트로 되어 있는 것의 전문(全文)을 옮긴 것이다. 「로마」사가(史家) 「빌레루스 파테르쿠러스」의 주(註)에 의한 원명(原名)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카이사르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로 되어 있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이 사가(史家)는 19세였으며, 그의 작품은 모두 소멸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사가(史家) 「프리시안」과 「타키투스」의 글을 빌면, 그는 「캄파니아」출신으로 카이사르와는 친한 벗이었고 16년동안 로마군을 지휘하였으며, 그 후 로마로 돌아가 「로마史」집필을 끝낸 후 집정관(執政官)의 직책에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사가(史家)「발레루스」 자신이 유다지방에서 만난 「나사렛」예수는 그가 만난 인물 중 가장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자신은 전 군대보다도 예수를 더 두려워했다고 기록하였다.
예수는 모든 종류의 병자들을 치료하였으며 죽은 자를 살렸고, 그가 결실하지 못한 과일나무를 저주하였을 때 그 나무는 즉시 뿌리까지 시들어 말라죽었다고 기록하였다. 예수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타인을 해치기 위해서는 결코 사용치 않았으며 항상 유대인의 여론은 양분되었다.
빈민층은 「로마」의 권력으로부터 구원해 낼 그들의 구원자로 여겨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지도층 계급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증오하고 시기하였으며 등뒤에서는 그를 저주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죽음만큼이나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애굽의 마술사라고 빈정거렸다고 사가(史家)「발레루스」는 기록하였다. 본 보고서의 내용은 「도날드 N.리드만」박사가 소정의 요금을 지불한 후 특별 허가를 얻어 읽고, 영어로 번역하여 「예루살렘」에서 간행(刊行) 되고 있는 월간{더 마운트 자이언 리포터(The Mount Zion Reporter 「시온산 보고서」; June 1974)}에 게재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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