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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대한제국의 일본육사 출신 김경천 (김현충=김광서=경천 김장군)/백마탄 김일성 장
Korea, Republic of 돌통 0 260 2019-07-30 14:41:03

(제 1편)   대한제국의 일본육사 출신 김경천 (김현충=김광서=경천 김장군)/ 백마탄 김일성 장군이 결코 아니다.

 


일본 육사 제23기 김경천[1888년~1942년. 55세로 소련에서 옥사]   

내용상의 사진들은 삭제했음..

 

본명은 김현충[金?忠]이고 독립운동시기에는 김광서[金光瑞]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09년 육군중앙유년학교[도쿄 소재. 만13세~15세의 남자 중에서 육군현역장교 지원자를 선발하여 교육하던 기숙제 교육기간은 3년이었다]를 졸업할 때는 김현충[金?忠]이었고, 육군유년학교 입학자는 당시에 7개의 고등학교나 제국대학을 웃도는 실력을 가진 수재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1909년 12월에 입학한 육군사관학교 재학 중 1910년 8월 한일합방 무렵에 김광서[金光瑞]로 개명했다. 1911년 5월에 740명의 졸업생 중 단 1명의 한국인으로 일본 육사 23기를 졸업했다. 1912년 서울에서의 호적명도 김광서이다. 독립운동 시기에는 김경천[金擎天]이라는 이름을 썼기 때문에 경천 김장군[擎天 金將軍]이라고 불린다.

 

김경천 장군은 대한제국 최후의 일본 육군사관학교 유학생으로 한일합방 후인 1911년 일제 육군기병중위로 근무하다가 망명해 독립운동에 투신해 주로 시베리아에서 활동했다. 소련 국적을 갖고 있다가 스탈린의 대숙청[볼쇼이 테로르Большой террор/Great Purge=1930년대 소련과 몽골인민공화국 등에서 행해진 대규모의 정치적 숙청사건] 때, 탄압을 받다가 1942년에 옥사했다.

 

김경천 본인이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쓴 적이 없지만 북의 ‘김일성‘이 38선 이북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고 그 주석을 맡자 그의 항일투쟁을 거짓이나 왜곡할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독립운동가 ’경천 김장군’을 김일성장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는 일본 육사 54기로 대한민국 공군을 창설한 김정렬이 ‘김경천 장군의 3년 후배인 아버지 김준원[金埈元. 26기]로부터 김광서가 전설적인 김일성 장군이라고 말을 들었다고 한다.

 

1888년 6월 5일 함경남도 북청군 출신으로 김해 김씨 무반 집안 출신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서울로 서울에서 자랐다. 일본어 학교인 경성학당에 진학해 일어를 공부했다. 그의 부친도 1895년에 일본에 유학하고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도쿄 공업학교에서 수학하고 도쿄 포병공창에서 총탄 등 무기제작 연수를 받았으며 귀국 후에는 대한제국군 간부여서 아들을 육군사관학교에 유학 보냈다.


1909년 일본유학 1주일 전에 유계준[柳桂俊] 딸인 유정[柳貞. 18921971]과 결혼했지만 아내에게 피아노 배울 것을 권하고 단신 유학했다.

 

1909년에 육군중앙유년학교를 졸업하고 육사 23기생으로 입학했다. 당시 사관학교에 유학했던 한국인들은 김경천 혼자지만 육군유년학교에는 3년 후배로 육사 26기인 홍사익[1887년1946년. 일제 육군중장, 필리핀에서 포로학대죄를 저지른 B급 전범으로 처형됨]과  지청천[1887년1957년.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역임] 등이 유학했다. 1910년 한일합방에 충격을 받고 탈주하여 항일운동을 하자는 말이 돌았지만 김경천은 지금은 배울 시기라고 하면서 자중을 촉구했다.


 제 2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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