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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통일교재의 친북-반국가성 (제성호교수)[KONAS]
REPUBLIC OF KOREA KONAS독자 1 249 2006-07-28 16:29:02
다음은 KONAS http://www.konas.net 에 있는 글임.



입력 | 2006-07-26 오전 10:09:15


전교조 통일교재의 친북-반국가성


written by. 제성호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는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위원회」가 2005년 10월 부산지부 소속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일학교의 교재용으로 제작한『통일학교 자료집』을 지난 달 입수해 이를 분석한 결과를 국민들 앞에 공개하기로 한다.

이 교재에는 총3편의 강의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제1강 “일제시대의 해방투쟁”(1-17면)과 제2강 “해방이후 이북의 현대사”(18-75면)에서는 북한당국의 역사서인 《김한길, 현대조선력사 (평양: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1983)》의 제1편(항일혁명투쟁), 제2편(새조국 건설, 조국해방전쟁), 제3편(사회주의건설) 부분을 발췌하여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친북좌파 단체가 소속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기 위해 작성한 교육자료는 많았으나, 북한원전의 상당 내용을 똑 같이 그대로 옮겨 제작한 것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통일학교 자료집』은 북한의 원전을 70페이지 이상 그대로 옮긴 것으로 이 같은 성격의 교재가 국내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최초이다. 그래서 지금 국민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또한 이번의 자료집 공개는 전교조에는 골수 친북주사파가 침투해 있으며, 이들이 초중등학교의 현대사 교육에 영향을 주기 위해 교사들에 대한 의식화 작업을 치밀하고도 조용하게 수행해 오고 있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의미가 있다.

전교조 부산지부의 《통일학교 자료집》은 북한당국의 공식 역사관을 반영한 역사서의 출처를 전혀 명시하지 않은 채 그대로 베끼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이 자료집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본다.

첫째, 대한민국의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북한정권에 역사적 및 정치적 정통성이 있다는 입장에서 근, 현대사를 기술함으로써 북한의 김일성-김정일체제를 정당화하고 있다.

둘째, 대한민국의 정통적 역사관을 부정하고 북한당국의 역사관을 정당화하며, 이를 미화․선전한데 따른 실정법(국가보안법 7조)의 위반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셋째, 현대사에 대한 객관적 인식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초, 중고생들에게 이 같은 친북편향적 역사관을 채택, 수용한 교사들이 교육할 경우, 나이어린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주입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 마디로 이 교재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정권과 북한정권에 의해 조작된 역사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 지지, 정당화한 ‘친북반국가성’을 띤 교재라고 평가된다.

이 같은 점에 비추어 전교조 교사들의 국가관에 대한 검증 및 반국가사상 보유자의 퇴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며, 아울러 근-현대사 교육 내용에 대한 사회적 감시 및 차단노력이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자체로 분석한 주요 문제 기술내용을 정리해 소개하면, 다음 내용과 같다.



전교조 교재와 북한역사교재 비교분석


1. 조선혁명군에 관한 부분

『전교조 통일학교』 교재내용 북한 『현대조선력사』 내용


이롱헌 고유수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핵심들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첫 혁명적 무장조직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였다. 조선혁명군을 결성한 후 그 대오를 부단히 확대하면서 대원들의 정치사상적 및 군사적 자질을 빨리 높이도록 하였으며 모든 면에서 실천적 경험을 쌓도록 하였다. 조선혁명군은 여러 소조들로 편성되어 각지에 파견되었다.
조선혁명군의 소조들은 만주의 장춘시와 금강산전투, 하얼빈시의 도리전투, 연길현 도목구전투를 비롯하여 사평가, 공주령, 노원, 안도, 돈화, 임강, 장백의 넓은 지역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맹렬히 벌였다.

* 당시 서울에서 발간되던 조선말신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조선혁명군 소조의 풍산군 파발리 경찰관 주재소에 대한 습격을 비롯하여 그 활동의 일단을 여러 호에 걸쳐 보도하였다.(1938년 8월과 9월의 상기 신문을 참조) ”(2면)


북한 『현대조선력사』 내용


김일성은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1930년 7월 6일
이통현 고유수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핵심들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첫 혁명적 무장조직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였다 ...중략...

김일성은 조선혁명군을 결성한 후 그 대오를 부단히 확대하면서 대원들의 정치사상적 및 군사적 자질을 빨리 높이도록 하였으며 모든 면에서 실천적 경험을 쌓도록 하였다. 조선혁명군은 여러 소조들로 편성되어 각지에 파견되었다 ....중략...

조선혁명군의 다른 소조들도 만주의 장춘시와 금강관전투, 하얼빈시의 도리전투, 연길현 도목구전투를 비롯하여 사평가, 공주령, 노원, 안도, 돈화, 임강, 장백의 넓은 지역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맹렬히 벌였다.

*당시 서울에서 발간되던 조선말신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조선혁명군 소조의 풍산군 파발리 경찰관 주재소에 대한 습격을 비롯하여 그 활동의 일단을 여러 호에 걸쳐 보도하였다.(1938년 8월과 9월의 상기 신문을 참조)” 북한 현대조선력사, 26-27면 중

□ 위의 인용문 비교에서 보듯이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학교의 내용은 북한의 『현대조선력사』를 그대로 베껴 수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 동 책자 5-6면의 조선인민혁명군 관련 내용도 북한과 동일하다.


□ 조선혁명군과 조선인민혁명군의 실체


김일성이 조직했다는 조선혁명군과 조선인민혁명군은 역사날조이다.


첫째, 조선혁명군은 국민부(國民府) 산하 독립군조직으로 김일성이 조직한 것이 아니며, 김일성은 1930년 4월 조선혁명군에서 탈퇴한 공산주의계열의 대표격인 이종락(李種洛, 당시 조선혁명군 제9대장)이 길성 카륜과 고유수지방에서 지휘하는 ‘국민부 탈퇴파 조선혁명군’(이종락은 국민부 탈퇴후에도 계속 조선혁명군이란 명칭을 사용함)에 1930년 7월초 참사(參士: 하사관)자격으로 입대하여 비적활동하다가 1931년 1월 동 조직이 괴멸되면서 자연스럽게 이탈하였다. 김일성이 주체적으로 김일성이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여 지휘했다는 주장은 허위인 것이다.

둘째, 김일성이 1934년 결성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 역시 조작이다. 당시 김일성은 조선인민혁명군을 결성하여 독자적인 항일투쟁을 한것이 아니라, 만주 동만지방의 중공 유격대(1933년 이 유격대는 중국공산당 동북인민혁명군으로 통합)에 입대하여 중국공산당을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던 시기이다.

□ 결국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학교의 위 내용은 북한이 역사조작한 ‘조선혁명군’, ‘조선인민혁명군’ 부분을 북한책자를 그대로 수용하여 정당화하고 있다.


2. 최후공격작전에 관한 입장


『전교조 통일학교』 교재내용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 공격작전 드디어 1945년 8월 9일 조선인민혁명군 전체부대에 조국해방의 최후공격작전을 개시하는데 대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장기간의 가열찬 유격투쟁과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군정훈련을 통하여 불패의 혁명군대로 자라난 조선인민혁명군의 전체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최후공격전의 첫순간부터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 대중적 영웅주의를 발휘하였다. 적들이 ≪난공불락의 방어선≫이라고 떠들던 국경요새들은 아군의 드센 공격에 의하여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중략...

일제의 식민지통치기구는 종국적으로 청산되고 최후발악하던 일제의 저항이 완전히 좌절되고 말았다. 일제는 패망하고 조선인민은 근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통치기반에서 해방되었다. 15성상에 걸친 조선인민의 영웅적인 항일무장투쟁은 조국정사에 영원히 빛날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고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였다.”(16-17면)



북한 『현대조선력사』 내용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 김일성은 드디어 1945년 8월 9일 조선인민혁명군 전체 부대에 조국해방의 최후공격작전을 개시하는 데 대한 전투명령을 내렸다...중략...

김일성의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장기간의 가열찬 유격투쟁과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군정훈련을 통하여 불패의 혁명군대로 자라난 조선인민혁명군의 전체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최후공격전의 첫 순간부터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성, 대중적 영웅주의를 발휘하였다.적들이 ≪난공불락의 방어선≫이라고 떠들던 국경요새들은 아군의 드센 공격에 의하여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중략...

일제의 식민지통치기구는 종국적으로 청산되고 최후발악하던 일제의 저항이 완전히 좌절되고 말았다.일제는 패망하고 조선인민은 근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통치기반에서 해방되었다. 김일성이 조직영도한 15성상에 걸친 조선인민의 영웅적인 항일무장투쟁은 조국정사에 영원히 빛날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고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였다“(북한 조선혁대력사 제1편 제6장 제1절 최후공격작전, 91-92면 중)


□ 위의 인용문 비교에서 보듯이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학교의 내용은 북한의 『현대조선력사』를 그대로 베낀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김일성’부분만 삭제한 채, 북한책자의 내용을 그대로 발췌하여 기술하고 있다.



3. 항일무장투쟁의 의의에 관한 부분


『전교조 통일학교』 교재내용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의의 조선인민의 혁명투쟁발전에서 항일무장투쟁은 참으로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가졌다.
그 역사적 의의는 첫째로, 이 투쟁이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켰으며 민족해방의 역사적 위업을 빛나게 실현하고 새 사회 건설의 넓은 길을 열어놓았다는 데 있다.
항일무장투쟁은 그 지도사상으로 보나 투쟁형태로 보나 가장 높은 단계의 민족해방투쟁이었다. 항일무장투쟁은 종래의 모든 투쟁과는 달리 노동계급의 혁명사상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루는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여 전개된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투쟁이었다.

항일무장투쟁을 계기로 올바른 지도사상과 지도이론, 과학적인 전략전술에 기초하여 새롭게 발전하게 되었다.

항일무장투쟁은 민족해방투쟁의 가장 높은 형태인 무장투쟁을 주류로 하여 전개된 혁명전쟁으로써 우리 인민을 생사존망의 위기에서 구원하고 민족의 자주권과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게 하였으며 인민대중을 새 조선의 당당한 주인으로 되게 하였다.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의의는 둘째로, 이 투쟁의 행정)에서 조선혁명을 앞으로 힘차게 발전 시켜나갈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이 튼튼히 꾸려졌다는 데 있다.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참다운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들이 자라나고 혁명대오의 주체사상화가 실현됨으로써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떠메고 나갈 골간부대가 튼튼히 꾸려졌다.

그리고 이 행정에서 조선혁명에 대한 노동계급의 영도가 확고히 실현되고 노농동맹이 강화되었으며 각계각층의 광범한 대중이 하나의 역량으로 굳게 단합되었다.

항일무장투쟁을 통하여 마련된 이 주체적 혁명역량은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할 수 있게 하였을 뿐 아니라 조선혁명을 더욱 힘있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튼튼한 밑천으로 되었다.(17면)



북한 『현대조선력사』 내용


조선인민의 혁명투쟁발전에서 항일무장투쟁은 참으로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가졌다.
그 역사적 의의는 첫째로, 이 투쟁이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켰으며 민족해방의 역사적 위업을 빛나게 실현하고 새 사회 건설의 넓은 길을 열어놓았다는 데 있다...중략...

항일무장투쟁은 그 지도사상으로 보나 투쟁형태로 보나 가장 높은 단계의 민족해방투쟁이었다. 항일무장투쟁은 종래의 모든 투쟁과는 달리 노동계급의 혁명사상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루는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여 전개된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투쟁이었다.

항일무장투쟁을 계기로 우리 나라에서는 주체의 혁명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갈 수 있는 길이 펼쳐지게 되었으며 우리 혁명은 올바른 지도사상과 지도이론, 과학적인 전략전술에 기초하여 새롭게 발전하게 되었다.

항일무장투쟁은 민족해방투쟁의 가장 높은 형태인 무장투쟁을 주류로 하여 전개된 혁명전쟁으로써 우리 인민을 생사존망의 위기에서 구원하고 민족의 자주권과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게 하였으며 인민대중을 새 조선의 당당한 주인으로 되게 하였다...중략...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의의는 둘째로, 이 투쟁의 행정(과정)에서 조선혁명을 앞으로 힘차게 발전 시켜나갈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이 튼튼히 꾸려졌다는 데 있다....중략...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참다운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들이 자라나고 혁명대오의 주체사상화가 실현됨으로써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떠메고 나갈 골간부대가 튼튼히 꾸려졌다.

그리고 이 행정에서 조선혁명에 대한 노동계급의 영도가 확고히 실현되고 노농동맹이 강화되었으며 각계각층의 광범한 대중이 하나의 역량으로 굳게 단합되었다. 인민은 김일성을 우러러모시고 김일성의 두리에 굳게 뭉쳐 김일성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억세게 싸워나갔다.

항일무장투쟁을 통하여 마련된 이 주체적 혁명역량은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할 수 있게 하였을 뿐 아니라 조선혁명을 더욱 힘있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튼튼한 밑천으로 되었다. (북한 조선혁대력사 제1편 제6장 제2절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의의, 94-96면 중)



4. 해방직후 북한정세에 관한 부분


『전교조 통일학교』 교재내용


김일성은 1945년 8월 20일 군사정치간부들 앞에서 한 연설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 건설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였다.

≪이북은 무엇보다 먼저 조선혁명을 승리로 확고히 영도할 수 있는 맑스-레닌주의당을 창건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인민정권을 세움으로써 혁명에서 기본문제인 주권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나라와 인민을 보위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할 인민무력을 건설해야 합니다. 당면한 이 3대과업은 해방된조국에서 조선혁명을 급속히 발전시키기 위하여 하루도 지체할 수 없는 긴급한 혁명임무로 나서고 있습니다.≫ ...중략...

이어 1945년 10월 10~13일에 평양에서 당창립대회가 열렸다.

김일성은 대회에서 ≪우리 나라에서의 맑스-레닌주의 당건설과 당의 당면과업에 대하여≫라는 역사적인 보고를 하였다.

보고에서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창설안이 제기되고 당의 조직노선과 정치노선이 천명되었다. 보고에서 천명된 당의 조직노선은 항일혁명투사들을 핵심으로 하여 당을 건설함으로써 당의 조직적 골간을 튼튼히 꾸리며 노동자, 농민들 속에서 선진분자들을 당대열에 적극 받아들여 우리 당을 무산계급의 토대위에 튼튼히선 대중적 정당으로 만들며 우리 당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여 당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고 종파주의, 지방주의, 좌우경기회주의를 반대하여 적극 투쟁하며 민주주의 중앙집권제에 기초한 당의 혁명적 규율을 강화하는 것을 당건설의 기본원칙으로 규정하였다.

보고에서 천명된 당의 정치노선은 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을 기본정치과업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4대 당면과업을 밝혔다.

첫째로, 애국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각 정당과 각 파들을 망라하는 민주주의적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함으로써 광범한 애국적 민주역량을 묶어세워 우리 민족의 완전자주독립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우며

둘째로..중략..

넷째로, 이와 같은 모든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공산당을 확대강하며 사회단체들의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야 한다. 당의 정치노선에는 이와 함께 북조선을 부강한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설을 위한 강력한 민주주의적 기치, 혁명적 민주기지로 만드는 데 대한 당의 정치과업이 천명되었다” (18-20면)


북한 『현대조선력사』 내용


김일성은 1945년 8월 20일 군사정치간부들 앞에서 한 연설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 건설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였다.

≪이북은 무엇보다 먼저 조선혁명을 승리로 확고히 영도할 수 있는 맑스-레닌주의당을 창건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인민정권을 세움으로써 혁명에서 기본문제인 주권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나라와 인민을 보위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할 인민무력을 건설해야 합니다.

당면한 이 3대과업은 해방된조국에서 조선혁명을 급속히 발전시키기 위하여 하루도 지체할 수 없는 긴급한 혁명임무로 나서고 있습니다.≫ ...중략...

이어 1945년 10월 10~13일에 평양에서 당창립대회가 열렸다.

김일성은 대회에서 ≪우리 나라에서의 맑스-레닌주의 당건설과 당의 당면과업에 대하여≫라는 역사적인 보고를 하였다. 보고에서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창설안이 제기되고 당의 조직노선과 정치노선이 천명되었다.
보고에서 천명된 당의 조직노선은 항일혁명투사들을 핵심으로 하여 당을 건설함으로써 당의 조직적 골간을 튼튼히 꾸리며 노동자, 농민들 속에서 선진분자들을 당대열에 적극 받아들여 우리 당을 무산계급의 토대위에 튼튼히선 대중적 정당으로 만들며 우리 당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여 당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고 종파주의, 지방주의, 좌우경기회주의를 반대하여 적극 투쟁하며 민주주의 중앙집권제에 기초한 당의 혁명적 규율을 강화하는 것을 당건설의 기본원칙으로 규정하였다. 보고에서 천명된 당의 정치노선은 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을 기본정치과업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4대 당면과업을 밝혔다.

첫째로, 애국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각 정당과 각 파들을 망라하는 민주주의적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함으로써 광범한 애국적 민주역량을 묶어세워 우리 민족의 완전자주독립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우며

둘째로...중략...

넷째로, 이와 같은 모든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공산당을 확대강하며 사회단체들의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야 한다. 당의 정치노선에는 이와 함께 북조선을 부강한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설을 위한 강력한 민주주의적 기치, 혁명적 민주기지로 만드는 데 대한 당의 정치과업이 천명되었다” (북한 현대조선력사, 제2편 제1장 제2절, 102-104면 중)

□ 위의 인용문 비교에서 보듯이 북한의 『현대조선력사』를 그대로 베낀 것이다.


5. 한국전쟁 부분


『전교조 통일학교』 교재내용 북한 『현대조선력사』 내용


김일성은 6월 25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내각 비상회의를 소집하였다. 자기의 국가주권과 정규군을 가지게 된지 오래지 않아 이북이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적을 상대로 전쟁을 한다는 것은 실로 힘겨운 일이었으며 준엄한 시련이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김일성을 새로 조직된 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김일성은 6월 26일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을 전쟁승리로 조직동원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방송연설을 하였다.

김일성은 방송연설에서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한 전투적 과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먼저 인민군장병들은 공화국북반부의 민주개혁의 성과들을 사수하며 남반부동포들을 반동통치에서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정의의 투쟁에서 용감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야 한다고 하였다....중략...

김일성이 제시한 ≪모든 것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라는 전투적 구호밑에 나라의 모든 사업이 전시체제로 개편되었다.

당중앙위원회는 6월 27일 전체 당조직들과 당원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당사업을 전시환경에 맞게 개편하며 당안에서 혁명적 규율을 강화하고 모든 당원들이 군사지식을 습득하며, 어떤 조건에서도 당원답게 원수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같은 날 전시상태가 선포되고 7월 1일에는 전시동원령이 실시되었다.

모든 권력은 군사위원회에 집중되었으며 모든 것을 전쟁승리로 기동성있게 조직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전시동원체계가 서게 되었다.”(35-36면)



북한 『현대조선력사』 내용


김일성은 6월 25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내각 비상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에서는 적들의 무력침공을 격퇴하기 위한 대책들이 토의되었다....중략...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김일성을 새로 조직된 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김일성은 전체 인민의 절대적인 신뢰와 기대 속에서 당과 정부와 군대, 전선과 후방의 모든 사업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고 인민을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한 투쟁으로 힘있게 조직영도하였다.

김일성은 6월 26일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을 전쟁승리로 조직동원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방송연설을 하였다...중략...

김일성은 방송연설에서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한 전투적 과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먼저 인민군장병들은 공화국북반부의 민주개혁의 성과들을 사수하며 남반부동포들을 반동통치에서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정의의 투쟁에서 용감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야 한다고 하였다....중략...

김일성이 제시한 ≪모든 것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라는 전투적 구호밑에 나라의 모든 사업이 전시체제로 개편되었다.

당중앙위원회는 6월 27일 전체 당조직들과 당원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당사업을 전시환경에 맞게 개편하며 당안에서 혁명적 규율을 강화하고 모든 당원들이 군사지식을 습득하며, 어떤 조건에서도 당원답게 원수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같은 날 전시상태가 선포되고 7월 1일에는 전시동원령이 실시되었다. 모든 권력은 군사위원회에 집중되었으며 모든 것을 전쟁승리로 기동성있게 조직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전시동원체계가 서게 되었다.”(북한 현대조선력사, 제2편 제3장 제1절 중)



□ 위의 인용문 비교에서 보듯이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학교의 내용은 『현대조선력사』를 그대로 베낀 것으로 북한의 조국해방전쟁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 지지, 동조하고 있다.
또한 조선인민군의 전략적 후퇴와 반공격준비, 미군의 세균전, 양민학살 등의 내용도 북한 의 내용을 그대로 발췌, 수록하고 있다.

□ 이 밖에 7면의 조국광복회 부분은 북한 현대조선력사, 제4장 2절의 ‘조국광복회’ 내용부분을 수용하여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김일성이 1936년 5월 5일 김일성이 무송현 동강회의에서 그가 손수 작성했다는 조국광복회의 10대 강령, 창립선언, 규약을 발표하며 창설했다는 전국적 규모의 반일민족통일전선 조직이다.

북한은 조국광복회를 조선인민의 역사에서 최초의 주체형 반일민족통일전선체이며, 김일성의 유일적 영도를 통일전선운동에 철저히 구현한 강력한 지하혁명조직이였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조국광복회 결성으로 항일무장투쟁 승리를 가져왔고 결국 조국해방을 앞당기게 되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조선로동당력사, 1979. 118-140쪽, 력사사전 2권, 1985, 299-301쪽, 현대조선력사 1983년판, 제4장 2절)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주장은 역사날조임이 이미 여러 자료들에 의해 학계에서 객관적으로 입증된바 있다.

이를 정리해 보면 조국광복회의 본 명칭은 ‘재만한인 조국광복회’(在滿韓人 祖國光復會)이며, 중국공산당이 항일연합전선을 강력히 주장한 이른바 ‘8.1선언’(1935년)을 한 이후 만주에서 항일한인 통일전선체를 결성하기 위해 1936년 6월 10일 중국공산당 동만주지방의 최고 한인당원인 전광(全光: 본명 오성륜)에 의해 결성되었다.

동 단체의 회장이었던 전광의 본명은 오성륜(吳成崙)으로 중국의 동북항일연군 제2군 제3사장(후에 제6사장)으로 김일성의 직속 상관이었다. 당시 전광은 조국광복회의 지부를 ‘000 공작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조선내 접경지역에 결성하였다.

다만 김일성은 전광의 지휘하에 ‘재만한인 조국광복회 장백현 공작위원회’에 간여했을 뿐이다.

따라서 김일성이 조국광복회를 손수 조직하고 회장으로 추대되어 각종 항일투쟁을 주도했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는 조작극인 것이다.

특히 조선광복회는 한인에 의해 자주적으로 조직된 것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의지에 따라 전광이 조직했던 것이다. 조국광복회는 북한의 대표적인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사의 조작날조 사례이다.

□ 이 밖에 44-75면의 내용도 북한 역사서인 제3편(사회주의 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내용을 발췌하여, 북한의 주장대로 소개하고 있다. (konas) (출처:http://www.freezone.co.kr/)

제성호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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