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가짜,진짜설의 진실. 만주에서 소련으로 월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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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표시가 안되네요. 이해하는데는 상관없습니다. 북한 역사, 특히 김일성에 관한 전문가의 한명이고 교수였던 이명영(李命英, 1928-2000.06.20) 교수의 "김일성 열전(金日成 列傳, 新文化社, 1974)"의 내용은, 일제시대 때 일제와 맞서던 빨치산,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은 북한의 김일성이 아니며, 지금 북한의 김일성은 가짜이며 또 동명이인 이라는 김일성이 3명이라는 설 도 주장하고 있다.
이명영에 대해선 과거 박정희 정권때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압력 아니면 혜택등, 배후설이 주장되기도 하나 나는 정확히 모르겠고 관심도 없고 그냥 하나의 설이라고 해야 맞을것 같다.
그러나 현재 지금은 새로운 많은 북한 정보들이 들어오면서 전혀 새롭고 확실하게 맞는 팩트들이 밝혀지고 있다.
( 동북항일연군의 제2방면군장은 북한 김일성이 맞다.)
(1940.09.26~1940.11.12)
p.14부터 1940년 10월 23일자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조직표가 나온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 나이 29세 (증거 자료) * 1940년 10월 23일자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조직표 귀한 ( 증거 사료 ).ㅋ ㄴㄴ ㅂㅂ ㅂㅂㅂ 이명영 교수 연구에서 잘못된 대표적인 것은 북한 김성주가 동북항일연군시절에는 김일성(金日成)이란 이름을 쓴 적이 없고, 소련의 공작에 의해 나중에 그런 이름을 쓰게된 것으로 주장한 것과,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북한 김일성과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새로 발굴된 일제시대 자료와 증언에 의하면 북한 김성주는 보천보 전투때에도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고 1938년 6월 1일 기록에도 김일성(金日成)이란 이름을 쓰고 있고, 그후로도 그가 김일성(金日成)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것은 다수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1로군 개편으로 제2방면군이 생긴 것은 1938년 말이나 1939년 초이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기록에 처음 나올 무렵에는 북한 김성주도 김일성(金日成)이란 이름을 쓰고 있었으므로,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북한 김일성과 다른 인물이라면 1로군내 지휘관들 중에 김일성은 동시에 2명이 있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기록에도 2명의 김일성이 동시에 나오는 것은 없다. 또 당시 기록에 나오는 제2방면 군장 김일성과 북한 김일성의 행적에 일치하는 것이 많고, 주변 인물들도 동일하므로 두 사람은 동일인이 맞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제2방면군장 김일성은 별개의 인물이 아니라 북한 김일성이 맞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북한 김일성과 동일인인 증거로 새로 발견된 것들을 좀 더 제시하겠다. 이명영교수의 김일성 열전 pp.311~312 에는 1940년 당시 검찰측 대표로 노조에(野副) 토벌대의 작전에 검찰측 대표로 참여했던 서방호(緖方浩) 변호사 증언이 나온다. 증언요지.. - 서방 변호사는 작전계획을 수립하던 북부방웅(北部邦雄) 중좌와는 협력이 잘 되던 사이로 당시 정보를 많이 접함. 1940년 당시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나이는 34~35세 : 1905~6년생. 사진 속 인물이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란 것은 투항한 간부들을 통해 확인. 안경은 위장용이 아니라 심한 근시 때문임을 확인. 이명영 교수가 주요 근거로 제시한 위 증언과는 달리 아래 노조에(野副) 토벌대 자료에 1940년 당시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나이가 29세라고 나온다. ( 북 한의 김일성이 1912년생이니까 1940년이면 29세가 맞는건 쉽게 다 알것이다. ) 1940년 10월 23일은 정확히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상관 위증민의 허락도 없이 소만국경을 불법월경하여 소련으로 도주한 날이다. 1912년생인 북한 김성주는 1940년에 만 28세지만 한국식 전통적 나이셈법으로는 29세이므로 위 기록과 일치한다. 당시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나이가 34~35세라고 한 緖方浩(서방호) 변호사의 증언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므로,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북한 김일성과 별개의 인물이라는 이명영교수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위 기록의 나이가 단순히 착오로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은 다른 기록에서도 확인이 된다. 件名標題 : 3 行軍地方一般の?況 [ Reference code C13021441100 ] : 1939년 6월 24일 ~7월 3일
번역 : 건명제목 : 3행군지방 일반노내상황 [ Reference code C13021441100 ] : 1939년 6월 24일 ~ 7월 3일
위 문건에는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방면군의 편성표가 나오는데 총지휘자 김일성의 1939년 당시 나이가 28세로, 역시 북한 김일성의 나이와 일치하고, 이명영 교수가 주장하는 별개인물인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나이와는 다르다. 또 제2방면군 참모장(參謀長)으로 나오는 임수산(林守山)은 김창영(金昌永, 1890-1967)의 반민특위 증언에서 북한 김일성 부대의 참모장으로 귀순한 자라고 한 것도 위 표의 김일성이 북한 김일성과 동일인이라는 증거가 된다. 위 두 일제의 자료에 나오는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나이는 북한 김일성의 당시 나이와는 일치하지만, 이명영 교수가 주장하는 별개의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나이와는 다르므로, 제2방면군장 김일성은 별개의 인물이 아니라 바로 북한 김일성이 되어야 한다. 제1방면군장(第一方面軍長) 조아범(曹亞範, 曹?范, 1911 ~ 1940. 04. 08)이나 제3방면군장 진한장(陳翰章, ?翰章, 1913 ~ 1940. 12. 08)의 생년을 고려하면 1912년생 김성주가 제2방면군장이 되었다고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 「JACAR(アジア?史資料センタ?)Ref.B02032042700、?州?政況?係?纂/治安情況?係/匪賊動??討伐?況?係 第四?(A-6-2-0-2_8_1_004)(外務省外交史料館)」 번역 : JACAR(역사자료センタ?) Ref.B02032042700, ?주국정상황 ?계?찬/치안상황 系계/도적동작 및 토벌상황 ?계 제4?(A-6-2-0-2_8_1_004)(외무성 외교사료관) 아래 자료에는 1940년 7월 5일 ~ 7월 26일 사이 제2방면군장 김일성 부대의 상황이 주로 나온다. 번역 : 제목 표제: 표제: 1970년 7월 5일부터 2003년 7월 26일 중요 사료. ㅁ
p.20 안상길 신원이 나옴.
아래 자료에는 1940년 10월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일본 토벌군에 쫓기는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JACAR(アジア?史資料センタ?)Ref.B02032043000、?州?政況?係?纂/治安情況?係/匪賊動??討伐?況?係 第四?(A-6-2-0-2_8_1_004)(外務省外交史料館)」
번역 : 'JACAR(아시아역사자료센터) Ref.B02032043,000, 만주국정황관계잡찬/치안상황관계/비적동정병벌상황관계 제4권(A-6-2-0-2_8_1_004)(외무성 외교사료관)
pp.11~13
번역 : 건명표제: 2010년 9월 26일부터 2003년 11월 12일(1940.09.26~1940.11.12)
昭和十五年十月九日
번역 : 쇼와 15년 10월 9일
JACAR(アジア?史資料センタ?)Ref.B02032043100、?州?政況?係?纂/治安情況?係/匪賊動??討伐?況?係 第四?(A-6-2-0-2_8_1_004)(外務省外交史料館)」
번역 : JACAR(아시아역사자료센터) Ref.B02032043100, 만주국정황관계잡찬/치안상황관계/비적동정병벌상황관계 제4권(A-6-2-0-2_8_1_004)(외무성 외교사료관) 件名標題 : 11 昭和15年11月18日から昭和16年8月17日 (1940.11.18 ~ 1941.08.17) 번역 : 건명표제 : 2011년 11월 18일부터.. (1940.11.18~ 1941.08.17) 김일성이 만주에서 마지막으로 쫓기고 있는 장소가 훈춘(琿春)이며, 쫓기다 못해 소련으로 월경하게 된다. 북한 김일성이 1940년 10월 23일 훈춘(琿春)을 경유하여 입소(入蘇)하였다는 후대에 밝혀진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일본은 김일성이 소련으로 도주한 일자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토벌작전 마감 무렵에 소련으로 월경 도주했다고 기록하였다. p.22 : 제3방면군장 진한장 사살(12월 8일) 경과 보고
위의 증거 자료(사료)
1940년 12월 12일자의 野討秋作命第18? 野副討伐隊命令 12月12日에도 12월 8일의 진한장(陳翰章, ?翰章, 1913 ~ 1940. 12. 08) 사살을 기록하면서 김일성이 10월 23일 소련으로 도주한 사실은 모른채 계속 추격중이다.
적색 번역 : 1940년 12월 12일자의 야토추작명제18호야부토벌대명령12월12일~128일의 진한장, 진한장, 1913~ 1940. 12. 08) 사살을 기록하면 김일성이 10월23일 소요로 도주한 사실은 모조 계속 추격이 크다. 일본군은 1941년 초에도 김일성의 소련 도주를 모른체 체포나 사살시의 현상금을 내걸고 있다.
「JACAR(アジア?史資料センタ?)Ref.C13071219300、吉林、間島、通化三省治安?正の大要 昭和14年10月~16年3月(防衛省防衛?究所)」
번역 : 'JACAR(아시아역사자료센터) Ref.C13071219300, 지린, 간도, 퉁화산성 치안숙정의 다이요쇼 14년 10월~2016년 3월(방위성 방위연구소)'
pp. 5~6 : 김일성, 위증민 전광 잠복지대 重点ヲ指向 (중점지점) 체포 또는 사살시 현상금 : 김일성, 최현 각 1만원, 위증민, 전광 각 3천원
아래.. ( 증거 사료 )
JACAR(アジア?史資料センタ?)Ref.C13050338200、野副討伐隊冬作命綴4/5 昭和16年1月6日~16年3月1日(防衛省防衛?究所)」
번역 : JACAR(아시아역사자료센터) Ref.C13050338200, 야부토벌대 동작명철4/5 1954년 1월 6일 ~ 2016년 3월 1일 (방위성방위연구소)'
나가시마 공작대가 1941년 3월 8일에 1로군 부사령 위증민 이하 8명을 섬멸했다고 하였다. 1.(三月八日長島工作隊ハ樺甸?夾皮溝北方地?ニ於テ第一路軍副司令魏極民以下八名ヲ殲滅セリ). 김일성비 토벌을 중점 지향한다 2.(金日成匪討伐ニ重点ヲ指向スベシ)고 하여 그가 작년 10월말 소련으로 도주한 사실은 모르고 있다
번역 : .1.(三月八日長島工作隊ハ樺甸?夾皮溝北方地?ニ於テ第一路軍副司令魏極民以下八名ヲ殲滅セリ). 1.(3월 8일 장도 공작대 자작나무밭 협피구 북방지역 ニ우이 제1로군 부사령관 위극민 이하 8명 ヲ 섬멸) 2.(金日成匪討伐ニ重点ヲ指向スベシ) 2.(김일성 비, 토벌에 중점을 두고 지향해야 함)
[ 아래 증명 사료 (자료)
아래 동북항일연군 1로군 조직표에는 1941년 3월까지 토벌된 지휘관들이 표시되어 있다. 「JACAR(アジア?史資料センタ?)Ref.C13071220200、吉林、間島、通化三省治安?正の大要 昭和14年10月~16年3月(防衛省防衛?究所)」 번역 : 'JACAR(아시아역사자료센터) Ref.C13071220200, 지린, 간도, 퉁화산성 치안숙정의 다이요쇼 14년 10월~2016년 3월(방위성 방위연구소)' 건명표제 : 제5토벌성과 (C13071220200) 최종 토벌 성과표에, 양정우 사후 1로군 총지휘자였던 위증민 (魏拯民, Wei Zhengmin, 1909 ~ 1941.03.08)도 토벌되었다고 나오므로 그의 사후에 작성된 것이다. 위 표에 보면 1로군에서 토벌되지 않고, 살아남은 조선인들은 대개 다 소련으로 도주했는데, 모두 북한 김일성의 최측근이다. 이 표를 보아도 제2방면군장 김일성은 북한 김일성 외의 다른 인물이 될 수는 없다. 편성표의 조선인 중 토벌에 살아남아 해방 후 북한 김일성의 측근이 된 사람들 서철 (徐哲, 1907-1992) : 1로군 군수처장(軍需處長) 오백룡 (吳白龍, 1914-1984) : 제2방면군 제1중대장 김일 (金一, 1910 ~ 1984, 본명 朴德山) : 제2방면군 제2중대 박덕산 강위룡 (姜渭龍, 1914?2001) : 제2방면군 제3중대 김동규 (金東奎, 1912~?, 1933년 21세) : 제2방면군 제3중대 제1반장
또 나오는 제2방면군 정치주임(政治主任) 이준산 (伊俊山, 1908-1986)은 실제로는 김일성처럼 항련 상부의 허락없이 불법으로 소련 월경을 하여, 소련서 김일성과 함께 항련 상부의 심한 질책을 받는다. 이 또한 제2방면군장이 북한 김일성이라는 증거이다.
<다시쓰는한국현대사>38.만주서 소련으로 金日成(김일성)의 越境(월경) [중앙일보] 입력 1995.08.01 / 종합 10면
일본군 토벌 강화되자 승인없이 행동3천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41년 3월12일 저우바오중(항일연군 2로군 총지휘)이 웨이정민(魏拯民.항일연군 1로군 정치위원)에게 보낸 편지다.
이 편지는김일성이 소만(蘇滿)국경을 사전승인없이 넘은 것 에 대해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그 어떤 곤란과 원인이 있든 김일성.이준산(伊俊山)두 동지소속 부대원들이 소련 국경을 넘은 것은 오류다.이 오류가 비록전반적 혁명입장이 동요되었거나 총적 방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제1로군 총부대를 이탈하고 유 격대가 투쟁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한 조건을 포기한 것이다.또 전반 환경을 이해하지 않고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았으며 곤란을 극복할 방법을 더 많이 생각지 않고 기회주의적 성격인 월경방법을 취한 것이다.이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김일성과 그 부하들 및 당간부들이 각성하고 그 오류를 비록 승인하기는 했지만 기율상에서 김일성동지등에게 적당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당신이 적당한 처분을 주기 바란다. 東北地區革命歷史文件匯集,( 동북지구혁명역사문건회집) 甲61券, 107쪽)』
1940년 봄 김일성이 속해 있던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지도부는 유격대를 中.蘇(중,소) 국경지대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지만 월경(越境)을 결의한 것은 아니었다. 북한은 40년 8월 김일성이 소집한 회의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대부대활동에서 소 부대활동으로 노선전환을 결정했고,이 결정에 따라 해방직전까지 소부대활동을 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저우바오중(주보중)의 편지에서 알수 있듯 김일성은 일본군의 토벌이 강화되자 소련군과 항일연군 지도부의 결정없이 국경을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참고 : 서재진,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의 신화화 연구 - 서순옥, 주보중 증언
(중국자료) 만주에서 김일성등 월경..
《?北抗?第一路?越境人???表》
번역 : 《동북항련 제1로군 월경 인원 통계표》.
≪동북지구(東北地) 구명사문(건휘집明)》≫ 갑66권, 을2권
김일성은 1940년 10월 23일 불법 월경 입소.
이 통계표는 42년까지 월경한 3백41명의 도착일과 체류지가 기록돼 있는 귀중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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