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최초접촉) 김일성과 솔라즈의 면담기록서. 01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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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편. [발굴] 김일성·스티븐 솔라즈 1980년 7월 18일 면담기록
김일성은 80년부터 북미관계 정상
화 꿈꿨다
1980년 7월 18일, 스티븐 솔라즈 전 미 하원 외교의 아태소위원장이 미국 공직자로는 처음으로 북한의 김일성을 만나 나눈 대화록이 유효기간에 의해 20년만에 공개됐다. 미·북관계 역사상 최초로 공식 접촉한 이 4시간 동안 두 사람은 무슨 대화를 나누었나.
** 발굴정리를 당시 유민호 미 조지워싱턴대학 국제정치경영대학원 특별연구원
북한의 김일성(金日成)이 1980년 처음으로 미국의 공직자와 만난 대화기록이 최근 미국에서 외교문서 관련법에 의해 일반에 공개됐다. 김일성을 만난 미국측 인사는 스티븐 솔라즈(Stephen Solarz·59) 전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소위원장(현직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 이사장). 그는 75∼92년에 9선(選) 하원의원으로 활동한 미국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인사다.
"한미관계 악화될 수도"
솔라즈 전 의원이 북한을 방문한 1980년은 한반도의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던 시기였다. 79년 10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사망한 뒤 80년 봄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었고, 전두환(全斗煥) 장군은 중정(中情) 부장서리, 국보위 상임위원장 등을 차례로 맡으며 권력을 공고히 다져가고 있었다.
즉 전두환 장군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그 시기에 미·북관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하원의원이 평양을 방문한 것이다. 예전에 솔라즈 전 의원은 98년 여름 방한했을 때 “80년 당시는 한반도에 어느 때보다 긴장이 고조돼 있었고, 북한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방북을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흥미로운 전문 몇 장이 첨부돼 있다.
▲솔라즈 의원이 김일성과의 대화 초록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보내면서 첨부한 편지이다
▲당시 백악관 안전보장회의(NSC)에 근무하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현재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가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에게 보낸 메모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이 솔라즈 의원에게 보낸 편지 등이 그것.
이 중 그레그 전 대사가 브레진스키 보좌관에게 보낸 메모에는 브레진스키가 직접 쓴 지시사항도 남아 있다.
(이들 중 특히 그레그 전 대사는 한국 인연이 특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레그 전 대사는 6·25전쟁 때와 73∼75년 정보요원으로 한국에서 근무했고, 73년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에서 납치됐을 때에는 CIA 한국책임자로서 납치 음모를 사전에 알고 그의 구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후 89∼93년에는 주한 미국대사로 근무했다.)
이 메모들은 당시 미국측이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레그 전 대사가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에게 보낸 메모(80년 8월15일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솔라즈 의원이 귀하 앞으로 북한에서 김일성·김영남과 나눈 대화 내용의 초록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이 초록을 흥미롭게 읽어봤으며, 다음의 관점에서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솔라즈는 숙제를 꽤 잘 해냈고, 북한 사람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습니다.
- 김일성은 솔라즈와 대화할 때 김영남보다 훨씬 전향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 김일성은 남한과 대화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남측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제스처를 보일 의향이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그런 제스처로는 자유무역, 이산가족·서신 접촉, 이전에 내걸었던 전제조건, 즉 국가보안법 철폐 요구의 철회 등이 포함됩니다.
- CIA 보고에 의하면, 아버지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김정일은 이미 그런 직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이상의 관측이 옳다면, 북한은 자신의 카드를 교묘하게 활용해 남한보다 훨씬 온건하고 유연한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본인은 이런 관점을 글라이스틴 주한 대사에게 설명했고, 그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 이렇게 될 때 한 가지 예상되는 결과는 미국의 대(對) 한국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전두환 장군이 북한의 양보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때 미·한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북한은 남한에 대해 본격적인 선전 공세를 펼치고 있는데, 이는 솔라즈의 잘못이 아닙니다. 북한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공직자를 맞아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 남한이 북한의 제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남북관계가 진전될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한반도에서 긴장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김일성이 내놓을 당근을 매우 의심스러워할 것으로 보이는 남한 당국을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권유
솔라즈·김일성 간의 대화내용은 흥미로운 대목만 발췌해서 읽으셔도 됩니다.
솔라즈에게 답변을 보내신다면 다음의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권합니다.
- 한국에서의 숙제를 잘 수행한 것을 축하하고,
- 우리측이 전두환측의 좀더 분명한 입장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솔라즈 의원이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제기하지 않도록 강조하며,
- 김일성이 제안한 양보조치가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하고, 그러나 남한측에도 그런 가능성에 대해 철저하게 검토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십시오.
"한국측도 이 면담록을 봤습니까?"
한편 이 메모 하단에는 브레진스키 보좌관이 수기(手記)로 “이 자료는 한국측에도 전달됐습니까?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스티브에게 물어보세요(Has this been shared with the S. Koreans? It should be ask Steve.)”라고 써놓았다.
김일성·솔라즈 면담록을 읽은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솔라즈 의원에서 편지를 보냈다. 다음은 그 내용(날짜미상).
스티브에게
저는 귀하가 김일성, 김영남과 나눈 대화 초록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읽었습니다. 초록을 보내주신 데에 감사드립니다. 그 면담을 위해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하셨더군요. 테니스 코트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한편 그레그 전 대사는 브레진스키 보좌관이 메모 위에 남긴 지시사항과 관련, 브레진스키에게 재차 메모를 보냈다(80년 9월3일자).
이 문서가 한국인들에게 전달됐는지 스티브(솔라즈 의원)에게 물어보라는 귀하의 질문을 받고, 저는 솔라즈 의원 사무실에 전화로 문의했습니다. 그 결과 솔라즈 의원은 한국측에 그 초록을 보여주지 않았고, 현재로선 그럴 의향도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제가 솔라즈 의원에게 메모를 보내 이 문제를 상의할까요? 아니면 귀하가 이번 주 후반에 그를 만날 때 이 문제를 얘기하시겠습니까?
아무튼 미국 공직자로서 최초 사례였던 솔라즈 의원의 80년 방북은 미 정부측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미국은 이 면담을 통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김일성의 면모를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김일성이 솔라즈와 나눈 대화는, 지금 읽어 보면 지극히 상투적인 내용일 뿐이지만, 80년 당시 맥락에서 보면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다음은 20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김일성· 솔라즈 면담 내용이다.
만약 미군철수에 동의한다면…?
김일성: 환영한다. 한국 속담에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당신은 미국인으로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첫번째 정치인이다. 우리는 당신이 얼어붙은 현 상황을 깨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솔라즈 그 속담을 들으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알레망(El Alemain) 전투가 끝난 뒤 처칠 수상이 한 발언이 떠오른다. 처칠 수상은 “이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의) 끝이 아니다. 이 전투는 (전쟁의) 종결과정이 시작됐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이 전투는 (전쟁의) 시작부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귀하와의 대화를 통해서,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 양국이 어떻게 상호관계를 증진할 수 있을까 하는 점과, 한반도 통일을 위한 조건들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논의하기를 기대한다.
나는 귀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한다. 이 질문들은 미국이 귀하의 정책과 입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 귀측이 우리의 상황과 정책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귀하에게(여기서 솔라즈 의원은 김일성에게 처음으로 ‘President’라는 호칭을 사용했음)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방안들과 한반도 통일을 위한 방향 등에 대해 질문하고자 한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① 남북한이 통일을 이루기 위한 정치적 합의를 이루기에 앞서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과 서신교환과 같은 인도적 조치들에 합의할 의향이 있는가?
② 미·북관계를 개선시키고 이에 따라 긴장을 완화하며 궁극적으로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대화에 앞서 문화·체육 부문 교류에 나설 의향이 있는가, 아니면 문화· 체육 교류는 양국간 직접 대화의 전제조건으로서만 가능한 것인가?
③ 미·북 양국이 직접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미국이 북한 언론인과 학자들의 미국 방문을 허용한다면, 북한은 좀더 많은 미국의 언론인·학자들의 북한 방문을 허용할 용의가 있는가?
④ 미국과 북한의 직접적인 외교협상이나 교역관계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으로, 북한은 한국이 중국이나 소련에 대해 이에 상응하는 외교협상이나 교역관계를 맺는 것에 반대하는가? 반대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⑤ 한반도에서의 군사력 균형, 즉 미군을 제외한 남북한의 군사력에 관한 귀하의 의견은 무엇인가?
⑥ 남한은 북한이, 북한은 남한이 자신을 공격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시키고 전쟁발발 가능성을 줄이면서 결국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북한은 다음 방안 중 어떤 항목이라도 동의할 용의가 있는가?
ⓐ DMZ 비무장화
ⓑ 휴전협정에 의거한 DMZ에서의 남북 합동감시단 결성
ⓒ 휴전선 경계표식 보수를 위한 합동팀 결성
ⓓ 중립국감시위원회의 DMZ 내 활동범위와 책임 확대
ⓔ 군사훈련에 대한 상호간 사전통지
⑦ 당신은 한반도의 군축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을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가? 남북이 합의사항을 실천하는 과정에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검증방안은 어떤 것이 있다고 보는가?
⑧ 김주석은 과거 여러 차례 남북한의 군사력 감축을 제의했다. 이런 제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상대방이 합의를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특별한 수단으로 어떤 방안이 있다고 보는가?
⑨ 만약 미국이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에 동의한다면 북한은 다음 사항에 동의할 용의가 있는가?
ⓐ 남한과 함께 상호 불가침조약에 서명할 것인가
ⓑ 남한과 함께 상호간에 신뢰할 만한 군축에 동의할 것인가
ⓒ 가족방문과 서신교환, 무역 등과 같은 여러 가지 긴장완화 방안을 남한과 함께 실행할 것인가.
(솔라즈 의원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략,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 티토 사후의 비동맹문제 등 국제정치 문제를 포함해 전부 15개의 질문을 김일성에게 했다.)
** '두 개의 한국' 정책 포기해야
솔라즈 : 본인의 질문이 복잡하다는 점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나는 미국과 북한 문제에 관한 귀하의 깊이 있는 견해를 듣고 싶다. 나는 미국 정부의 공식 대표가 아니라 미 의회 멤버로서 개인적으로 북한을 방문했지만, 미 정부 관계자들은 이 질문들에 대한 귀하의 답변에 큰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일 것이다. 또, 나는 귀국한 뒤 카터 대통령과 머스키 국무장관을 만나 오늘의 대화 내용을 포괄적으로 브리핑하려고 한다.
김일성 : 미 의회 정치인으로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당신을 다시 한 번 따뜻하게 환영한다.
미국 정부는 당신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것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당신의 방북은 매우 용기있고 대단한 일이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나는 것이다. 내가 미국 정치인을 만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당신은 우리의 만남이 시작도 아니고, 시작의 끝도 아니라고 말했다. 양국관계 개선은 중요한 일이다. 나는 오늘의 첫 만남으로 그동안 양국간에 얽혀 있던 문제들이 모두 풀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아마도 우리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갖고 있을 것이고, 우리도 당신들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을지 모르겠다. 즉 우리는 각자 주관적인 관점에서 서로를 보고 있고, 따라서 의견이 상당히 불일치할 수 있다.
물론 이견은 일시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주 만나다 보면 그런 이견들은 극복될 수 있다. 당신의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는 이미 그런 과정에 들어섰다. 양국간 많은 이견들이 극복되겠지만, 그래도 이견이 남는다면 당신이 우리나라에 자주 오면 된다. 우리는 당신의 방문을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얼어붙은 한반도 문제를 정당한 방법으로 해결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한반도의 현 상황을 타개할 모든 방안을 환영한다.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 미국과 남한 당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남한 당국이 두 개의 한국이라는 분단상황을 영원히 지속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원래 단일 민족인 한국민의 통일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딜 것인가 하는 문제다. 만약 한반도가 영원히 두 개로 나뉜다면 교류와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화와 교류는 양측 사이의 불신과 몰이해를 제거하고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입장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미국과 남한 당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올바른 견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한민족이 겪고 있는 고통을 줄이고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서 여러 질문들을 내게 던졌다. 내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당신의 질문에 답하겠다.
나는 북과 남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단일 민족이란 점을 우선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다민족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민족, 하나의 말과 글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따라서 한민족이 서로 갈라진 것은 엄청난 비극이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통일이라는 대원칙하에서 진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만약 우리가 한반도 내에서 두 개의 나라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민족과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02편에서 ~~
"우리도 군비감축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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