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과 전쟁의 원인 및 배경. 시리즈 01편 총 11편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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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편. (총 11편작) 시리즈 ● '분단의 원흉’은 미국.
인터넷에서 ‘분단의 원흉’을 검색해보면 이승만, 김일성, 미국, 소련, 일본, 중국 등이 떠오른다. ‘원흉 (元兇)’이란 “못된 짓을 한 사람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니, 당시 남북한 지도자와 주변 4강대국 모두 악역을 담당하거나 주도했다는 말이다. 대체로 진보 쪽에서는 미국과 이승만이 분단을 이끌었다고 서술하는 한편, 보수 쪽에서는 소련과 김일성이 분단에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역사를 인식하거나 해석하는 시각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사든 세계사든 역사는 승자나 강자에 의해 써지고 고쳐지며 퍼지게 되기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고쳐 쓰기’나 ‘역사 재해석’ 또는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벌어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분단의 시기와 관련해서도 혼란이 빚어진다. 1945년 8월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1953년 7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1945년 8월 확정된 38선을 따라 처음으로 국토가 분단되었는데, 1953년 7월 그어진 휴전선이 현재 남북한의 국경선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분단의 원흉이나 시기에 대해 이견과 혼란이 생기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분단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다르고, 역사에 대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시각과 가치관에 큰 차이가 있으며,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의도적 역사 왜곡은 천벌을 받을 짓이다. 분단이 6·25 전쟁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은 분단의 원흉이 김일성이나 소련 또는 중국이라고 주장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해방과 동시에 분단이 이루어졌다거나 분단이 1945년 38선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또는 2021년이 분단 76주년이라는데 동의하면서, 분단의 원흉을 김일성과 소련 또는 중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억지를 부리거나 악의적으로 역사 왜곡을 하는 것이다. 38선은 미국이 1945년 8월 조선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소련에 제안하고 소련이 받아들임으로써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분단과 관련해 언론 오보가 역사 왜곡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1945년 12월 미국, 영국, 소련의 외무장관들이 모인 이른바 ‘모스크바 3상회의 (三相會議)’에서 미국의 끈질긴 요구에 소련이 마지못해 응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 회의가 끝난 12월 27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이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했는데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했다고 정반대로 엄청난 오보를 함으로써, ‘반탁 (反託: 신탁통치 반대), 반소 (反蘇: 소련 반대)’ 운동이 전개되고, 우리 역사책에도 그렇게 왜곡 서술되어온 것이다. 한반도가 1945년 8월 미국이 제안한 38선에 의해 분단되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이 늦어도 1943년부터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영국과 소련에 제안하고 주장하면서 조선의 즉시 독립을 반대했다는 사실은 우리 현대사를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들에겐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분단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말하기 어려웠던 것은 친미 반공의 사회구조 안에서 무지와 오해 그리고 왜곡과 억지가 어우러져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분단의 원흉’이라는 아주 기본적이고 엄연한 사실을 아래서 밝힌다. 이상... 02편에서 계속~~ 1.한반도 분단의 유형과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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