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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야기 시리즈 01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251 2021-03-21 16:28:59
 01편.   시리즈



●  1949년, 한국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생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하여 북한은 남침을 하였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사 전 승인과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



※  위의 인용구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걸로 알고 있다.


한국전쟁에 관안한 서술 만큼은 다른 교과서 들도 윗글과 같은 뜻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교과서들을 통해 많은 한국인들은 1950년6월 25일 김일성을 대표로 하 는 북한이 중국과 소련의 도움을받아 평화로웠던 남한을 기습적으로 침략했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오늘 날 역사학계에서는 한국전쟁을 1950년 06월 25일이 아니라  1949년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 한국전쟁은1950년 6월 15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 그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내전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온다는 진리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



윗글처럼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1950년 6월의 전쟁 발발 상황에 대한 설명들 대부분은 완전히 방심하고 있는 적을 향해 북한이 새벽녘에 38도선 전역에서 공격을 개시한 듯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전쟁은 1949년에 많은 전투가 벌어진 바로 그 외진 옹진반도에서 시작되어 몇 시간 후에 38도선을 따라 동쪽으로 확산되면서 개성, 춘천, 동해안 에 이른 것이다



●  1949년,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드디어 오랜기간의 일제 강점기를 끝내고 독립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기나긴 식민지로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는 미군의 제안과 소련의 동의로 인해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사실 이 시점부터 남과 북은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으며 한반도는 반드시 각자의 영향력 아래에 통일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커져갔습니다


1948년 에 남과 북에 단독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갈등은 더욱 가시화되었고, 남한의 지도자였던 이승만과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일성은 둘다 스스로의 힘을 통해서 한반도를 통일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1948년까지 남과 북 사이에는 38선을 넘어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거나 총격전을 벌이는 식의 소규모(국지전) 충돌이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전쟁의 시작 년도로 알고있는 1950년의 바로 1년전인 1949년 이후 부터는 그 양상이 점 

차 변해갔습니다


정식 군인들이 충돌에 동원되는 것은 물론이고, 때에 따라서는 연대급 병력까지 동원되기도 하였습니다


기사문리 전투, 개성 송악산 전투, 옹진반도 전투 등 이 시기에 일어난 무장충돌의 결과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부상자들도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1949년 1월부터 10월까지 평균적으로 매일 1.5건 이상의 38선 충돌이 발생했고 매일같이 3.7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당시의 충돌은 심각했습니다


◇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왜 1948년까지 소규모 총격전에 그쳤던 38선 부근의 충돌이 1949년 들어서 갑자기 군대까지 동원하게 되는 무장충돌의 형태를 띄게 된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1949년 1월부터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1949년 중국 공산혁명이 완성되고 난 후, 중국 국공내전에서 싸웠던 한국인 병사들 중 상당수가 북한으로 귀국했다는 것입니다


(국공내전: 중국 내 국민당과 공산당이 수년간 싸운 전쟁을 말한다)



   이상..      0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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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반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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