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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6.25 왜곡 (빡침)
Korea, Republic of 돌통 0 281 2021-04-05 12:36:40
 ●  중국 교과서의 6.25전쟁 왜곡

 



중국이 6.25 참전을 합리화하는 궤변을 하곤하는데, 이 궤변은 중국의 현대사 교과서에도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워낙 개같는 논리라 보기만 해도 기가 찰 노릇인데, 한번 직접 살펴보면

중국 고등교육출판사가 펴낸 '중국현대사' 라는 책의 내용임.



1950년 6월 25일 대규모 내전이 발발하여, 조선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 정부는 측각 출병하여 간섭하였다. 6월 27일 트루먼은 미국 해군과 공군을 파견하여 조선을 침략하고, 영국과 프랑스 등에 참전할 것을 요구하였다. 동시에 제7함대를 대만해협으로 출동시킨다고 선포하여 중국 내정을 간섭하고, 중국 인민이 대만을 해방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미국은 6월 30일 다시 제8군을 증파하였다. 7월 7일 미국은 유엔을 조종하여, '연합군'을 조직하고 미국이 사령관을 지명, 파견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7월 8일 트루먼은 맥아더를 연합군(UN군) 총사령관에 임명하였다. 이후 미국은 15개국의 군대를 모아 연합군의 깃발을 들고 조선을 침략하여 이승만을 지원하였다.

 
초기에 조선인민군은 38선을 뚫고 신속하게 남진하여 6월 28일 한성을 해방시켰다. 8월 초가 되자 38선 이남의 90% 이상이 해방되었다. 미군과 이승만군은 낙동강 동쪽의 대구와 부산 일대로 쫓겨 갔다. 하지만 9월 15일과 16일 4만여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여 조선인민군의 주요 보급선을 끊었고, 낙동강을 지키던 미군과 이승만군은 이를 계기로 반격에 나섰다. 조선인민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미군과 이승만군은 원산과 평양을 침략, 점령하였다. 중국과 조선은 산과 강으로 이어져 있어 이빨과 입술처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입술이 없어지면 치아가 시리게 된다.(순망치한)

미군과 이승만군의 광포한 진격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급한 상황이 되었다. 애국주의와 국제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김일성 수상의 요청에 응한 공산당 중앙과 마오쩌둥은 "항미원조, 보가위국"이라는 단호한 결단을 내리고 중국 인민해방군의 일부를 인민지원군으로 재편하여 조선에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중략)지원군은 다시 각각 50군, 66군, 제3, 9, 19, 20병단을 조선작전에 투입하였다. 이때부터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은 함께 작전하여 평화를 지키고 침략을 반대하는 정의로운 전쟁을 개시하였다.

 
조선으로 들어가자마자 지원군은 적과 조우하였다. 마오쩌둥이 제기한 "기동전을 위주로 일부 진지전과 적 후방 유격전을 서로 결합한다"는 작전 방침에 따라 10월 25일 부터 11월 5일까지 서부의 운산, 온정, 희천과 동부의 방초령 등지에서 조선에 들어선 이후 첫 번째 전투를 진행하여, 1만 5천 명이 넘는 이승만군을 섬멸하고 무모하게 흩어져 진격하던 적에게 통렬한 타격을 주었다.


11월 24일 적군은 다시 한번 병력을 분산 하여 북진에 나섰다. 지원군은 일부러 후퇴하여 적을 깊숙이 유인한 후에 병력을 집중하여 11월 25일부터 12월 24일까지 신흥동, 덕천, 군우리, 하갈우리 등지에서 두번째 전투를 치러 3만 6천 적군을 섬멸하였다.


평양과 원산 등 중요한 지역과 38선 이북의 대부분 지역을 수복하여, “성탄절 전에 조선전쟁의 총공세를 마무리한다” 던 맥아더가 총퇴각으로 말을 바꾸도록 만들었다. 이어서 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은 협력하여 1950년 12월 31일부터 1951년 5월 21일까지 37선과 38선 사이에서 세 차례의 대규모 기동전과 반격전을 진행하여 13만여 적군을 섬멸하고 전선을 38선 부근으로 안정시켰다.



(중략)1951년 가을엔 군사분계선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이 중국과 조선 측의 합리적인 제안을 거부하며 회단이 중단되었으며, 공중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과 조선을 집중 폭격했다. 1952년 1월엔 미국 측이 국제법을 공공연히 위반하고 중국과 조선 후방에 세균전을 벌여 전 세계 인민의 비난을 받았다.

 
(중략) 2년 9개월에 걸친 항미원조전쟁으로 모두 70만 명의 적을 섬멸하였다. 여기에 조선인민군의 3년 넘는 전적까지 합하면 미군 39만 7천 명을 합해 모두 109만 명의 적을 섬멸하였다.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지켜내고, 세계평화와 중국의 안전을 수호했으며, 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드높였다. 전쟁에서 지원군은 30만 명의 공훈자와 집단 공훈 6000여건을 배출하였다.
또한 항미원조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중국인민해방군의 건설을 이끌어내고, 국내 경제건설의 순조로운 진전을 보장하였다.




개같은 부분은 수도 없이 많지만, 크게 5가지 정도입니다.

 


1. 북한군의 남침 장면은 '해방'으로, 국군과 UN군의 북진은 '침략'으로 서술함.

2. 중공군의 개입을 '정의로운 전쟁' 운운하며 설명함.

3. 37도선까지 내려간 후 즈그들이 파로호나 지평리에서 쳐발린 건 은근슬쩍 빼버림.

4. 이미 애저녁에 반박된 미군의 세균전을 정설인 것 마냥 서술하고 있음.

5. 편의상 이 글엔 생략했지만 지들이 성과를 거둔 상감령, 금성 전투는 무슨 대승을 거둔 마냥 엄청 자세하게 서술함.


결론: 이딴 식으로 역사를 가르칠 바에는 걍 때려치십시오. 뭔 왜곡을 넘어 소설을 쓰고 자빠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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