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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팩트)일 수 밖에 없는 북한 초기역사 증언 3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233 2022-02-18 19:44:09

03편


              『소련은 1937년에 망했다』


●   홍범도 장군



정*진 은 아버지의 처형과 강제이주를 겪으면서, 공산주의에 대해 품었던 열정이 식었다.


『아버지가 처형되기 전까지 저는 공산주의를 무한히 믿었습니다. 하지만 강제이주와 학살을 보면서 「이런 건 공산주의라고 할 수 없다. 소련은 언젠가 망할 것이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탈린은 연해주의 고려인 인텔리들을 총살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우리의 신념과 꿈도 총살해 버린 것입니다.


레닌은 소련 내 소수 
민족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민족 간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반면에 스탈린은 민족들을 이간시키고, 탄압하고, 학살했습니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소련은 1991년에 망한 것이 아니라, 스탈린이 소수민족 강제이주를 감행했던 1937년에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참변 속에서 고려인 사회는 서서히 재건되기 시작했다. 농부들은 황망 중에 챙겨 온 씨앗들을 뿌렸다.


연해주에 있던 학교들이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민족교육을 할 수는 없었다. 조선사범대
는 크질오르다사범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의 친구로 해방 후 북한으로 들어가 활동하다가 6·25 때 죽은 '시인
 조기천'은 어문학부에서 세계문학을 강의했다. 1940년 청년 "정*진" 은 크질오르다사범대 노문학부를 졸업했다.


조선극장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시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1942년 봄 조선극장에서는 태장춘 각본의 연극 「홍범도」를 공연했다. 당시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은 조선극장의 수위로 일하고 있었다. 조선극장이나 언론사 등에서 일하던 고려인 청년들이 노 장군을 위해 만들어 준 자리였다.

연극이 막을 올리던 날, 청년 '정*진' 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작가 김기철과 함께 홍범도 장군 바로 뒷줄에서 연극을 관람했다.
『연극이 끝난 후 배우들은 객석으로 내려와 홍범도 장군의 손을 잡고 「장군님, 연극이 어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팔십이 넘은 장군님은 「너희들이 나를 너무 추켰구나!」 하시더니, 웃으면서 「어쨌든 고맙다」 하시더군요』

■   입당, 그리고 입대


1942년 "정 * 진" 은 공산당에 입당했다.

『지역당 서기가 「동무는 많이 배웠고 사상도 투철한데 왜 당원이 되지 않소?」라며 입당을 권유했습니다.

저는 당서기에게, 「아버지가 인민의 적인데, 어떻게 내가 당원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소련헌법은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 연루시키지 않소. 동무는 자격이 충분하므로 입당하시오」 하더군요』

1941년 청년 "정 * 진" 은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을 상대로 하는 신문 「레닌기치」에 시를 발표한 데 이어, 「시인과 현실」, 「로멘찌즘에 대하여」 등의 평론을 발표했다.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에게 나치 독일과의 전쟁은 그 동맹국인 일본과의 성전을 의미했다. '정 * 진' 은 수차 군사동원부를 찾아가 자원입대하려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추방당한 2등 시민은 군대에 갈 권리조차 없었다.

1944년 8월 "정"진" 은 우연히 태평양 함대 정보처에서 고려인 병사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다시 군사동원부를 찾아가 태평양함대 정보처 복무를 자원했다. 이듬해 3월 그는 태평양함대 정보처 직속 해군 육전대로 편입됐다

병중이던 어머니는 전선으로 아들을 보내며 『아버지가 늘 일본 놈들과 싸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더니, 네가 이렇게 싸우러 나가게 됐구나. 나는 너의 길을 막지 못하겠다』며 울었다.




청년단 시절의 정 * 진(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  청진 전투




1945년 10월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김일성 장군환영 평양시민대회」에 모습을 나타낸 김일성(金日成). 뒤편의 소련군 장성들이 김일성 정권이 소련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보여 준다.



1945년 8월9일, 소련은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대일(對日) 선전포고를 했다. 라디오로 방송되는 몰로토프 외상의 성명을 들으며 '정*진' 은 옆에 있던 병사를 끌어안았다. 이날 이후 이틀 동안 소련 폭격기들이 북한의 웅기·나진·청진·원산을 폭격했다. 태평양함대 소속 군함들은 포격을 가했다.


8월11일 아침, 정 * 진 은 60명의 육전대원들과 함께 6척의 어뢰정에 분승해 웅기항을 향해 출동했다. 지휘관 레오노프 대위는 『자네 조국은 해방되면 자유로운 나라가 될 것』이라며 "정*진"을 격려했다.


정 *진 의 부대는 웅기에 무혈 입성했다. 피난 갔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 * 진 은 그들에게 달려가며 『여러분은 오늘 이 순간부터 해방된 땅의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들은 『선생님, 아이구! 조선 분이시구먼』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도 눈물을 흘렸다.

8월12일 나진항 진주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소련군의 폭격과 함포사격으로 항만과 선박들이 불타고 있었다. 술과 안주를 들고 해방군을 환영하러 모여 든 주민들에게 "레오노프 대위"가 일장 연설을 했다. 정 * 진이 통역했다.

『우리는 여러분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켰을 뿐, 어떤 나라를 세울지는 조선인민들의 의사에 달렸습니다. 해방된 여러분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그로부터 65여 년이 지나 정*진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정말 소련군이 공언한 대로 조선이 자유로운 나라가 될 줄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소련 점령군의 정책은 조선 인민들에게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소련은 반 인민적 「붉은 식민지」 정책으로 일본 식민 통치자들보다 더 무서운 참극을 전체 한반도 인민들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는 북한의 비참한 현실이 웅변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일단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갔던 정*진)의 부대는 8월13~18일 벌어진 청진 전투에 참가했다. 60명의 소련 육전대원들이 청진항에 상륙했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나남사단 예하 일본군 1개 연대 병력이었다.

육전대의 임무는 적정을 파악해 본대에 알리는 전투정찰이었다. 포탄이 날아오고 총탄이 쏟아졌다. 전투가 잠시 잠잠해지자 정*진은 우울해졌다.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항일정신을 물려받았고, 이광수·김동환·이상화 등의 작품을 통해 조국애를 길러 왔던 그로서는 「조국해방전쟁」에 참여한 조선인이 자기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조선에는 이렇게도 투사가 없다는 말인가?」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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