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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창창한 반반도
Korea, Republic of 김태산 0 211 2022-09-06 10:07:19

추석도 다가오니 고향도 그립고 하여 오늘은 지나간 한담이나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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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07월 체코 신발 공장과 맺은 계약에 따라 먼저 23명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데리고 국제 열차로 평양을 떠났다. 글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을 헤치고 한 달 만에야 체코의 빠르드비체라는 도시에 있는 신발공장 숙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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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중을 나왔던 대방 사장이 처음 보는 외국의 풍경을 보고 좋다고 떠들어대는 우리노동자들을 한참 바라보더니 기분이 나쁜 표정으로 내일아침 공장에서 만나자고 하고는 그냥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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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음날 아침에 여성 노동자들을 데리고 공장으로 가서 통역과 함께 사장 사무실로 갔다.

그런데 나를 대하는 사장의 태도가 완전히 딴사람 같다. 곰같이 우람한 체구에 70이 넘은 사장은 나를 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첫마디가 김선생 여기가 무슨 소년단 야영소인줄 아는가?” 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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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하고 되물었다.

사장 왈 김선생 나는 일할 수 있는 노동자들을 요구 했는데 당신은 지금 어린 소년단원들을 데리고 왔다. 당장 내일 돌아가시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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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제서야 사장이 왜 퉁퉁거리는지를 알아차리고..“이보시오.. 저 아이들은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당당한 노동자들이요.” 하고 답했다. 그러나 대방 사장은 그런건 상관없고 저런 애들은 우리 공장에서 일을 못하니 내일 당장 돌아가시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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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장의 말이 이해는 되었다. 그 신발 공장은 기동경찰대나 소방대원들이 사용하는 신발이나 보호대 같은 탄탄한 신발을 생산하는 공장임으로 체코 노동자들이나 몽고 노동자들같이 체구가 큰 노동자들도 사실상 힘들어 하는 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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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는 물러 설 곳이 없는 나는 이보시오! 계약서에는 노동자들의 체중이나 키를 규정한 것은 없으니까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니요... 당신이 정 그러면 우리는 돌아가겠소.. 그런데 계약 당시에 당신들이 요구사항을 잘못 적었으니까 우리가 돌아갈 여비와 숙식비를 지금 당장 지불하시오.” 하고 우겨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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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펄쩍 뛰며 그리는 못한다고 어깨를 으쓱 거린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우리 노동자들을 우선 직장에 배치해서 일을 시켜 보고 우리 애들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면 그때에는 돌아가겠소. 당장 작업장 배치를 합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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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 사장도. 밑져야 본전이란 식으로 생각을 했는지..노동지도원을 부르더니 조선 노동자들에게 직장과 기계 배치를 해주라고 지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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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나에게 원래 신입노동자들은 6개월간 견습을 받으며 노임은 기본노동자의 절반만 주는데 조선 노동자들에게는 노임은 없이 숙식만 보장 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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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럴 수는 없다고 항의를 하자 그는 웃으면서 어차피 당신네 꼬마들은 이제 한 주일만 지나면 힘들어 못하겠다고 할 것이다. 덩치 크고 나이 많은 몽골과 우쿠라이나 노동자들도 한 달 전에 나가는 자들이 많다.“ 하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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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만약 당신이 노임을 안주면 나는 당신에 정부 노동청에 항소 할 것이며 신문에도 내겠다.“고 하니..사장이 웃으면서 당신네 꼬마들이 얼마나 견디는지 두고 보자고 약을 올리며 그만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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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온 나는 솔직히 겁이 났다.

정말 저 어린것들이 못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만약을 생각해서 다른 피복공장들에 좀 알아보라고 통역에게 과업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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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자 우리 애들이 뭐가 그리도 좋은지 왁짝 떠들며 퇴근해 온다.

나는 그들을 사무실에 불러다 놓고 일을 할 만하나?” 하고 물으니 모두 힘차게 할 만합니다.” 합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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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대방 사장은 너희들이 너무 힘들어서 한 달도 못 버티고 나가넘어질 것이라고 하는데..그렇게 되면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말 할 만 하냐?“하고 따졌다.

모두정말 할 만 합니다.”또 합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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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말 않고.. “알았다 돌아가서 밥들 해먹구 빨리들 자라하고는 쫓아 버리고 또 고민했다. “저것들이 정말 견딜가?”...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20일이 지나갔다. 그 기간 나는 통역원에게 현장을 맡기고 노동자들 입국 밑 노동 수속과 대사관에 볼일로 거의 쁘라하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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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9월에 접어드 들었는데 하루는 퇴근하던 애들의 소대장이 나를 찾아와서 사장동지! 제기할게 있습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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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하고 마음을 조이며 뭔데?” 하고 태연한척 하며 물었다. 그런데 소대장 왈: “사장동지 내일부터 우리도 단독으로 기계를 타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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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생뚱같이 뭔 소린가 하여 나는 뭐야? ” 하고 물었다.

이젠 우리 모두 혼자서도 제품을 생산할 수 있으니까 견습받는거 그만하자는 겁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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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무지 뭔 소린지 확신이 안가서 통역원을 불러 오라고 했다. 통역이 샤쯔를 입으면서 사무실로 왔다.

! 지금 이 애들이 이젠 자기들 혼자서 기계를 돌릴 수 있다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정말 할 수 있는거야? ” 하고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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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이 우물거리며 ..이젠 우리 애들이 하루 종일 기계를 돌리고 체코 기능공들은 계속 놉니다.” 한다.

아니..우리 애들이 만든 제품이 검사에서 합격이 되냐 말이야?” 하고 다그치니 통역은 또 .... 합격됩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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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기지도 않고 괜히 화가 나서 애들 다 모이라고 하라.” 하고 통역에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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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같은 애들이 재잘거리며 그 기간에 좀 여윈 모습으로 모였다.

나는 대뜸 너희 소대장이 모두 단독으로 기계를 돌릴 수 있으니 견습을 그만하자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야?” 하고 물었다.

모두 ..우리끼리 할 수 있습니다. 23명이 합창을 한다.

정말이야?”

또 합창을 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통역에게 내일아침 10시에 사장 면담을 예약하라고 과업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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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 사장사무실에 들어가자 사장은 묘하게 웃으며 악수를 하고는 앉으라한다.

나는 대뜸 이달부터 우리 노동자들에게 작업반 배치를 하고 일을 하도록 기계 배치도 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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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사장은 통역에게 다시 묻는다.. 아니 평양으로 돌아가는게 아니고 기계를 배치해달라는게 뭔 소린가? 하며 믿으려 아니한다.

나는 통역에게 상황설명을 해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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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의 말을 들은 사장은 노동지도원과 직장장을 부르더니 다급히 뭔가 말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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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나를 보고 작업 현장에 가보잔다.

사장을 따라서 기계소리 요란한 작업장엘 갔다. 작업장 가운데 버티고 선 사장은 작업반장들과 제품 검사원들을 부르더니 조선 노동자들이 혼자 생산을 하며 불량품이 안 나오는가를 수차 묻는다.

그들 모두 조선 노동자들이 일을 깨끗리 잘한다고 인정을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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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나에게 큰 손으로 악수를 청하더니 김사장! 이건 정말 믿을 수 없는기적이요..세상에!..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하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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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내일부터 조선 노동자들을 단독으로 기계에 배치해주고 아직도 견습을 하는 몽골과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은 못하면 몽땅 내보내라고 내가 들으란 듯이 호통을 친다.

..

그러더니 우리 노동자들이 외국에 와서 쉬지도 못했는데 며칠 쉬라고 한다.

내가 우리 애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까 우리 애들은 돈도 없는데 쉬면 뭐합니까? 하면서 일을 하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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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사장에게 그 이야기를 하며 지금까지 일한 우리 노동자들의 완전 노임을 좀 달라고 하니 흔쾌히 승인하고 즉시 노동지도원을 통해 기본 노동자의 노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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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몇 달라 안 되는 돈이었지만 자기 힘으로 일해서 처음 외화로 노임을 받은 애들이 좋아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물이 나도록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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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무 좋아 어쩔쭐 모르던 70 고령의 체코측 사장의 모습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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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출신발의 출하 납기에 항상 쫓기던 그 공장을 우리 어린 노동자들이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해서 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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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독일과 이딸리아의 신발 주문이 폭주하고 체코 땅에서 개혁, 개방 후에 제일먼저 크게 성공한 공장으로 소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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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체코에는 조선 노동자들을 데려와야 살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나에게도 당장 500명의 노동자를 보내달라는 주문도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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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150여명의 노동자들을 더 들여다가 4개 공장에 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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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북한 땅에서 독재가 사라지고 한국의 정체된 기업들이 커다란 판매시장과 좋은 인력을 가진 북한으로 진출한다면 남과 북이 동시에 크게 발전하리라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하여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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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친님들 모두 그 날이 꼭 온다는 믿음을 안고 기도하며 꿋꿋이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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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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