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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망령을 깨우지마라
조론 4 318 2005-02-23 16:18:08
잠든 망령을 깨우지마라


안호원 기자, egis0191@hanmail.net
우리나라 미술 시장에서 가장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장르가 서예 부분이다. 혹자는 ‘글씨는 바로 그 사람을 말한다.’ 며 인간 심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예술품이라고 서예가를 부추겨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 서예 작품을 돈을 주고 사서 집에 걸겠다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이런 추세임에도 잘 팔려나가는 글씨가 있다. 조선조의 명필 한석봉 이나 추사 김정희의 글씨 얘기가 아닌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의 글씨들이 인사동에서 불티나게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의 글씨들이 인터넷 경매 사이트 옥션에 매물로 올라오는 족족 응찰에 불이 붙는단다.

대통령이 친히 쓴 글씨 한점을 자기 집에 걸어두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싶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인사동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1989년 경기도 남양주시 한 음식점 주인에게 써준 “사람 사는 세상”이 즉시구매가 5000만원에, 1979년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게 ‘힘을 모아 새롭게 하고 민족을 일으킨다.’ 는 뜻으로 써준 “總和維新 民族中興” 은 시작 가(價)가 2000만원에 경매가 붙었다고 한다.

아무튼 전. 현직 대통령의 글씨가 불티나게 매몰되는 시점에서 미술평론가로 활동했던 유흥준 문화재청장이 경복궁 1차 복원사업의 하나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한글현판을 떼어버리고 다른 것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이유는 박 대통령의 현판글씨가 경복궁의 공간 성격에 맞지 않고 원래 한자 현판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아울러 고종 때 영건도감제조를 지낸 임태영의 글씨와 테두리 문양 등을 첨단 디지털 기술로 원래 모습으로 복원해 그 현판을 걸겠다는 것이다.

그런 대 역사를 하겠다고 나선 유흥준 문화재청장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우연의 일치일까 그는 1995년 ‘대통령의 글씨체’ 란 글을 매체에 발표하면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의 글씨체 론을 펼친바 있다. 당시 그는 여러 대통령의 글씨에 대해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했다. 그러나 유독 박 대통령의 필획에 대해서는 ‘살기’ 조차 느껴진다며 ‘사령관체’라고 평가하고 “왜 잘 쓰지도 못하는 글씨를 갖고 만인이 보는 현판을 써서 보는 사람들을 피곤케 하고 글씨 고생까지 시키느냐” 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꼭 10년이 지나 문화재청장이 되면서 눈에 가시 같았던 현판을 갈아치우려 하고 있다. 사실 그의 지적대로라면 광화문을 복원 한 대통령으로서 친필 현판이 내 걸린 것 뿐, 그 어떤 역사적 가치나 의미는 없다.

그러나 이 같은 현판을 왜 지금 갈아야하는지 많은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35년 이상 그 자리에 그 글씨가 걸려있었고 별다른 일도 없었다. 또 보수가 필요한 정도로 훼손되지도 않았다. 이유야 어떻든 이 현판도 이제는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까짓 현판 하나 바꾼다고 과거가 어찌되는 건 아니지만 그 또한 역사라면 중요한 자료로서 함부로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문득 이러한 현판 바꾸기 사업이 현 정권의 정치적 속셈과 연계되지는 않았는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일 수교문서의 공개, 육영수 여사 살해범 문건 공개, 광화문 현판 바꾸기 등 모두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련된 일이 동시다발로 터질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배 밭을 지날 때는 갓도 만지지 말라” 는 옛 말이 있듯 문화재청장이 이러한 의심을 받아가면서 굳이 지금의 현판을 바꿀 이유는 없다. 정말로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이라면 철근, 시멘트로 복원한 광화문을 헐고 고증에 따라 목조 건물로 복원 한 뒤 새 현판을 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모든 것은 그대로 놔둔 채 유독 박정희 현판의 글씨만 바꾸려고 한다면 의도적으로 역사를 훼손한 사람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원래 광화문 현판은 서화가 정학교 가 쓴 한자 체였지만 이미 한국전쟁 중 건물과 함께 소실되어 버렸다. 지금 바꾸려고 하는 것도 원형이 아닌 이상 굳이 글씨를 바꿔 역사를 지우지는 말자. 정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뀔 때 마다 이런 사업이 이뤄진다면 불행하게도 이 나라는 후손에게 물려줄 역사가 없어지는 것이다.

몇해 전, 5.16군사혁명 거사 장소인 문래동 공원에 있던 박정희 장군의 흉상도 일부 몰지각한 자들에 의해 훼손 된 이후 많은 사람들은 그 공원을 거닐면서도 역사적 의미가 담긴 공원임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좋던 나쁘던 역사는 보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후세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알게 되고 참 교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죽은 글씨 조각을 놓고 감정싸움을 하는 우리를 바라보는 저승의 정조대왕의 심경이 어떠할 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행여 박대통령의 망령이 되 살아날까 겁이 난다.


2005-02-23 오전 1: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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