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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金正日) 육성테이프 반동(反動)분자 같은 놀라운 고백 60분
REPUBLIC OF KOREA 펌돌이 1 593 2006-11-25 09:03:22
{우리 사회주의에 자체 모순… 국가가 먹여살려 주니까 인민은 의욕이 없다… 南은 대학생인데 우리는 유치원 수준… 이대로 가다간 꼴지 중에서 1등 할 것}

주체사상의 수호자라는 金正日이 신상옥(申相玉)·최은희(崔銀姬)를 상대로 마치 反動분자처럼 쏟아 놓은 불평·불만, 사회주의의 자체 모순과 북한 인민의 나태성을 경멸하듯 비판하고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인정한다. 申, 崔 두 사람을 유인·납치한 것도 낙후된 북한 영화를 선진된 자본주의 방식으로 발전시키려고 함이었다는 실토. 독특한 말투에서 드러나는 허무주의와 고독… 그는 회의(懷疑)하는 폭군이 아닐까?




자신만만한 자기 비판-총구에서 나오는 배짱

〈편집자 注〉 북한 사람들은 金正日의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일상적으로 보아왔지만 그의 목소리는 한 번밖에, 그것도 10초 정도의 외마디밖에 들은 적이 없다. 그가 대중 앞에서 부끄럼을 타기 때문이라느니 연설을 잘 못하기 때문이라느니 나중에 극적으로 등장하기 위한 자세 낮춤이라느니 별별 추측만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86년에 신상옥(申相玉)·최은희(崔銀姬)씨가 북한(北韓)을 탈출하면서 갖고 나온 金正日의 육성녹음테이프는 金正日의 인간적 내면과 사고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희귀한 자료였다.

사석에서 솔직하게 쏟아 놓은 金正日의 토로를 몰래 녹음한 것이었기에 인간 金正日을 더욱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자(趙甲濟)는 이 자료를 재검토하면서 활자의 한계와 육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였다. 金正日의 녹취록을 읽었을 때?느낌과 이해는 육성을 들었을 때 크게 수정되고 보안되었다.

사람 목소리에 담기는 한 인물의 성격·인품·버릇·사고(思考)체계 같은 입체적 정보는 1차원적인 활자에선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金正日의 육성 녹음테이프 60분에 실려있는 정보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가차없는, 때로는 허무적인 느낌의 경멸과 비판이다. 주체사상의 수호자요, 유일한 계승자라는 그가, [사회주의는 불패(不敗)의 위대한 사상]이라고 주장해온 그가, [반동분자]들보다도 더 신랄하게 [사회주의 제도의 자체모순]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金正日이 아니라면 이런 불평, 불만은 그를 돌아오지 못하는 수용소로 보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녹음테이프를 북한 주민들이 듣게 된다면, 혹은 우리 정부나 국민들이 의지와 지혜를 모아 북한주민들로 하여금 그것을 듣도록 만든다면 金正日체제는 무너질 것이란 예감이 들 정도이다.

기자는 申相玉씨에게 金正日과 그 측근들의 희한한 행태에 물어 본 적이 있었다. 申씨는 {마적단 같더라}고 했다. 북한이란 마을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인질로 삼은 뒤 그 자신들은 온갖 퇴폐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없는 집단이란 뜻이었다. 申씨는 그러나 주의를 하나 주었다. {그들이 남한 노래 부르고 남한 경제를 높게 평가하는 것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남한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남한이 잘 사는 것 우리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남한을 무력으로 점령해 버리면 우리 것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배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북한을 노획물로 보는 마적단 적 발상으로 남한을 노획의 대상으로 보니까 별다른 갈등 없이(언젠가는 우리 것이 될) 남한의 영화·노래·여배우들을 좋아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사회주의니 주체사상이니 하는 것도 그들의 신념이 아니라(마적단엔 신념이 있을 수 없다) 정권유지용 통치도구에 불과하니까 [별다른 갈등 없이]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金正日의 그런 배짱은 물론 무력(武力)에 의해서만 보증될 수 있다. 하나회같은 군부(軍部) 내 사조직에 의한 군사 쿠데타로 성립된 정권은 국제적인 압력에 약한 데 반해 유고의 티토, 쿠바의 카스트로, 북한의 金日成처럼 게릴라에 의해 성립된 정권은 오래 간다고 한다. 게릴라 출신들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진리를 하나 알고 있는데, 그것은 총은 빵보다 강하다는 것, 즉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빵을 위해 총을 놓을 수는 없다]는 믿음이란 것이다. 金正日의 [자신만만한 회의(懷疑)와 자가 비판]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핵심은 [총구에서 나오는 그의 배짱]일 것이다. 金正日의 신념은 주체사상도, 사회주의도 아닌 무기의 힘, 바로 그것일 테니까.

녹취록의 프롤로그 : 인간 金正日 최초의 육성

저는 월간조선(月刊朝鮮) 부장으로 있는 조갑제(趙甲濟)기잡니다. 앞으로 1시간에 걸쳐 이 녹음 테이프에 대한 해설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체계가 反국가단체의 수괴로 규정하고 있으며 동족에 대한 전쟁·테러·학살의 양과 질로 따진다면 [민족의 원수]로 불러야 마땅할 북한의 金正日도 피와 눈물과 웃음을 가진 한 인간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7천만 한민족의 운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金正日은 과연 어떤 인간인가. 공식적으로 알려진 그의 육성은, 3년 전 인민군 창건 기념일에서 내뱉은 [영웅적 인민군 장병에게 영광 있으라]는 외마디뿐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릴 金正日의 생생한 육성은 1978년에 납북된 신상옥(申相玉)·최은희(崔銀姬)가 녹음한 것으로서 1986년에 탈출할 때 가져와 세상에 공개한 것입니다.

1989년에 국가 안전기획부는 그 녹음 테이프와 녹취록을 보도자료로서 언론사에 배포한 바 있으나 일반인들에게 金正日의 육성 테이프가 공급되는 것은 이것이 처음입니다. 인간의 목소리에는, 어떤 활자나 사진도 전달할 수 없는 현장감과 인격에 대한 느낌이 담겨지는 법입니다. 金正日의 육성을 통해서 인간 金正日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북한체제를 더 정확히 이해하는 길이 될 것이고, 북한에 대한 오판이나 실수를 줄이는 데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녹음된 金正日의 목소리는 알아듣기 어려운 데가 있습니다. 월간조선(月刊朝鮮) 10월호에 실려 있는 녹취기록과 대조하여 들어주시면 이해하기가 쉽겠습니다.

1·김정일(金正日)-신상옥(申相玉)·최은희(崔銀姬) 대화(1983·10·19)

납치 공작 최종 책임자의 육성 자백

金正日과 申相玉·崔銀姬씨 사이에 있었던 첫 녹음대화는 1983년 10월19일 저녁 6시부터 3시간 동안 평양 시내 노동당 중앙당사 內 3층 金正日의 집무실 바로 옆 접견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崔銀姬씨는 소형 녹음기를 핸드백 안에 넣고 가서는 그것을 발 밑에 두고 몰래 녹음을 했다고 합니다. 테이프를 바꿔 낄 수가 없어 3시간의 대화 중에서 45분 정도만 녹음되었습求? 이날은 金正日이 지령한 버마 아웅산 테러로 우리나라의 엘리트 관료 17명이 객지에서 횡사한 지 10일이 지난날이기도 합니다.

서울은 국상을 당한 충격과 분노로 침잠해 있을 때 동족집단 살인의 지령자 金正日은 즐겁게, 때로는 신들린 사람처럼 예술을, 또 영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金正日은 申相玉를 데리고 와 낙후된 북한의 영화를 발전시키려고 하나의 미끼로서 崔銀姬씨를 먼저 납치해 왔다고 스스로 실토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납치공작의 최종 책임자가 자신의 범행을 육성으로 자백하여 물증으로 남긴 세계 최초의 사례일 것입니다.

{첫째 조건이 이북사람이다}

金正日 : 에- 우리 남북교류에서 첫 번짼가 뭔가 하면 우선 문화교류다, 문화합작이다, 그렇게 하는데 내 타산이, 내 타산이 그렇습니다. 이왕 사람들이 이렇게 가고 오고 하는 거는 이제 이건 자기 의사에 따라서 가고 오고 하는데 (申감독이) 자기 발로 자기 뜻대로 이렇게 뜻을 가지고 오는 형식을 취할 수 있는 방도가 없느냐, 그래서 우리 동무들과 토론해 본 결과에 인제 홍콩 거점(申相玉씨의 가짜 중국인 동업자 이영생을 뜻하는 듯함)에서 연락 오기를 申감독 형님인가요

저-, (申相玉씨의 형 신태선씨는 77년 여름 [신필림] 부도로 약 5개월간 홍콩에 피신해 있었음) 에- 자주 (홍콩에) 내왕한다는 거, 내왕하고 거기서 영화를 하자고 하는데 그 본질에 있어서는 남조선에서는 활동을 도저히 할 수 없고 나와서 이제 판을 치갔다 하는 게 그 때 그 말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그 때 그러카는데 이제 그러니까 申감독 문제가 나온 거는 申감독 형님에 대한 문제부터 이야기 나와 가지고 그래서 인제 申감독에 대한 것을 그럼 요해(了解)해보자(알아보자).

그래 그 때 쭉 영화들, 영화 그 자료들 다 훑어보니까, 인제 그 때 최익규 부부장 동무가 그때 그, 저-과장할 때입니다. 과장할 땐데 申감독이, 그 남조선에서는 누구를 제일 꼽느냐 그러니까, 申감독이다. 첫째 조건이 이북사람이다. (하하… 3인 웃음) 그 다음 그 사람이 정서가 정서상태가 지금 말하자면, 에, 이건 그저 우리 생각입니다. 그저 우리 생각인데 지금 박정희 밑에서는 아마 남조선에서는 아마 오래 지탱할라고는 안하는 것 같다, 그래 어떻게든지 해외에 나와서 자꾸 할려고 하는 기미가 있다는 거, 그걸 누구한테 들었는가 하면 그 형님한테, 그러니까 申감독도 사실 거기(한국) 들어가면 상당히 그저 지금 마지못해 왔다 갔다 하는데 진심으로는 앞으로는 바깥에 나와서 할 작정이다. 그런 거….

申相玉 : 그 때 제가 (신필림) 허가를 취소 당했을 때지요.
金正日 : 예예예. 에… 그래서 좋다. 그럼 그 사람을 한 번 데려와야갔는데, 그런데 그 사람 데려오는 걸, 남자 데려오는 건 좀 무리다. 그래 무린데 남자 데려오지 말고, 申감독을 유인, 유혹하자면 뭐가 필요한가. 그래서 실제 崔선생을 이렇게 데려다 놓았습니다. (모두 웃음) 그 때 나는 표방하는 게 뭐인가 하면 어떻게 남조선 사람들이 남반부 사람들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공화국 품에 찾아와서 진정한 자유를 갖고 진정한 에, 그 영화하는 데 대해서 자기가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한다는 걸, 하자고 표방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 내 생각은 왠가 하면 내가 그렇게 되어버렸단 말입니다.

[경쟁이 없어 발전이 없다]고 실토

金正日은 이어서 북한 영화인들의 나태성을 비판합니다. 그는 남한의 영화 수준이 높은 것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인데 북한에선 그런 자극이 없어서 발전도 없다고 실토합니다.

金正日 : 그런데 우리나라를 보면 우리나라서는 그야말로 남북이 지금 대결하고 있어, 또 세계에, 세계에 지금 존재하고 있는 존재가, 존재 자체가 뭐인가 하면 어디까지나 지금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에만 국한시켜 그저 사회주의 국가에만 나갈 수 있어. 어- 자본주의 국가에는 마음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실제상 일본사람들 하고 우리가 무역교역은 이렇게 한다고 해도 실제 우리 우리 민족간부 양성하기 위해서 기술 도입하고자고 실지 기술자들 보내자면 실제 그 사람들 받아주질 않습니다. 그건 적대적관계이니까 어디까지나….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거는 그 때 나 혼자 생각한 것은, 내 의도는 에- 누구한테도 말은 안했고, 내 그렇지 않아도 서방세계에서 서방세계에서 서방적인 기술을 습득해 가지고 자유자재로 이렇게 하던 사람들을 데려다가 우리가 그걸 바탕으로 해가지고 우리것 하고 합쳐가지고 서방에 침투해야 되겠다. 우리는 지금 동무들, 아니 선생님들 왔다가 보셨겠지만은 지금 딱 말하자면 울타리 안에서 자기 것만 보고 자기 것 좋다는 사람들이라구. (웃음) 이렇기 때문에 남하고 대비 안하고 대비해 볼 줄도 모르고… (중략)

즉 말하자면 그 우리가 수준 차이가 좀 있단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건 왜 그런가 하면 같은, 같은 기간에 어째서 남(南)은 밥을 먹어야 되겠고 돈을 벌어야 되겠으니까 피나는, 피눈물 나는 그러庸?애를 쓰는 결과와 여기 그저, 행복하고 그저 편안하고 하니까 또 채찍질하는 사람들이 없고 하니까 같은 기간인데 왜 우리 배우들이, 자라나지 못하는가, 또 남조선 배우들을 보게 되면, 이 배우들 역량(실력) 있는 사람들… 물론 역시 우리 신인들이라는 것은 한두 작품에서 쓰면 얼굴만 한 번 팔아먹으면 그저 그 뿐이라구. 연기력이란 건 전혀 없다니까.

다 그저 두 번째 작품, 세 번째 작품은… 첫 번째 작품은 그 얼굴 보구 관객이 혹하는데 그 다음 두 번째 작품, 세 번째 작품은 연기력이 없다나니까 얼굴은 다 이미 친숙해진 게구 이거 연기력이 없다나니까 그거 꼼짝하지 못한단 말입니다. 그래 남조선 실태를 보게 되믄 젊은 사람도 많이 갖다 쓰는데 그걸 한 번 쓰고 집어 팽개치는 게 아니라 한 번 쓰고서 다음 번부터 보면 확실히 연기발전했다는 거 그거 알린다 말입니다.

그래 나는 두 가지로 보았어요. 하나는 이 감독이라든가 이 신인 신인 신인 육성하는 데서 이제 많은 요구성을 높인다는 거 하나 있고, 그 다음에 신인들이 역시 배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노력이 없으면 법, 밥통이 떨어지고 돈이 떨어지니까 그 노력이 얻는 결과라는 거. 그 노력이 대단히 그 피나는 노력을 한다는 걸 내가 실질적으로 봤습니다. 내가 한 근 10년 동안 남조선 아이들 영화들을 죽 갖다 보구 테레비 그 그 사극들을 내가 잘 봐요. 이런 것들을 내가 죽 보는데 최근에 남조선놈들 그 사극이라는 거 보면 그거 못 찍는 것도 역시 그놈들도 지금 망하는 망할 망하는데 그 끼들 지금…

{내가 방패가 될 테니 申선생이 개혁을 해달라}

金正日의 자가비판은 계속됩니다. 특히 그는 북한 체제의 낙후성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비판도 자신밖에 할 수 없다면서 {내가 방패가 될 테니 申선생이 개혁을 해달라}고 부탁까지 합니다.

崔銀姬 :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에 영화를 많이 보고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모릅니다. 이 문헌고, 영화문헌고에 있는 영화를 왜 활용을 안했는지 모르겠다고, 그거 보면서 기술지도도 할 수 있고 연기지도도 할 수 있고 물론 그렇게 모방만 하는 게 아니고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래 보면서도 안타까웠죠. 늘 그런 이야기 했어요. 그래서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빨리 만나면 어떻게…

金正日 : 그래서 난 밑에 동무들 보구는 다 대외적으로 얘기하는 거는 그저 申감독이나 우리 저 崔선생이나 다 그저 우리 제도가 좋으니까 그저 찾아왔다. 그리고 내 의도는 하지 않았어. 그렇게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여기 실지 실무 일하는 사람들도 반신반의하지요. 그래서 일하면 얼마나 하겠나, 내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그러나 실지 의도는 나 혼자 정치하는 사람으로서의 생각과 욕심이 바로 이런 바탕 위에서 이 두 분을 내가 요구가 됐고 그래서 이렇게 왔다는 겝니다.

그래서 전번에도 3월달에도 그 때도 그 구체적 이야기하자 해도 옆에도 다른 사람들이 많다나니까 그 의도를 내 안알리고 그저 고문 노릇 해달라 그 그렇게 말로다가 둘러다 이야기하고 말았는데 그저 의도는 그겝니다. 그러니까 이거 우리 낙후한 걸 낙후하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됩니다. 그리고 신인이 육성 안되는 원인도 우리가 인정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거 이거 감히 내가 말해야지 다른 사람들이 그거 말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왜 자기 것에 대해서 그렇게 만족하지 못해, 못하느냐 하하…. 그러니까 너 사대주의자 아닌가 이렇게 딱지가 붙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새것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누가 제일 잘 내 사고에 제일 적극적으로 나오는가 하면 저 최부부장이, 최부부장이 역시 영화문헌고 영화들을 거의 다 보았습니다. 이 동무가 이 동무가. 여기 이 동무는 어디까지나 당일꾼이지 그 뭐 이래라 저래라 뭐 요구하면 하나 받아 무는 게 열두 가지 받아 물어야 되구, 에 아 연출 고대로 받아물어야 되구 촬영도 받아 물어야 되구 미술도 받아물어야 되구 이렇게 되는데 그저 말할 때 그뿐이란 말입니다.

다음 화면에 옮겨지는 걸 보면 그 새것으로 나가자고 하는 이런 지향하는 그런 게 전혀 없다 말입니다. 그저 교조적으로 다 똑같고. 그러니까 화면이 반복화면이 많고 도식적으로 이야기거리가 메워 있고. 내, 내 우리 이야기하지, 왜 우리 영화 밤낮 나오는 것, 예를 들어서 이 총체적으로 영화를 보구 야 과연 그 영화스토리가 거 주장하는 사상이 많다, 이런 거 결과를 놓고 보아야 되겠는데 왜 화면 장면 장면마다 자꾸 저렇게 초상난 집처럼 우는 것만 저렇게 많냐, 우는 게 저게 저 우리 영화 왜 영화 안우는 영화 저거 없지 않느냐 예 하, 하…. 상가집도 아닌데 왜 이거, 이렇게 맨드냐.

崔銀姬 : 그야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지요.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에 엄길선 감독이랑 생일날 배려해 주셔서 참석했어요. 그래서 (申감독이) 아이 맞대 놓고 막 비판을 해서 제가 송구스러워서 혼났습니다. 나중엔 인제 비판 받을 때 받더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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