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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詐術에서 깨어나야 이긴다.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1 214 2007-02-26 17:33:21
1. [훈계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훈계라는 말은 예측시스템과 경고시스템을 포함하는 말이다. 훈계는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예측하고 그것을 경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견책이라는 말은 경고하는 방법을 말함이다. 과연 제대로 된 견책이 나오려면 예측시스템이 정확해야 한다. 예측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은 直觀的 예측과 經驗的 예측이 있다고 한다. 세월이 지식산업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축적과 운영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때문에 인류가 걸어온 모든 내용들을 컴퓨터 속에 담아 정보의 바다를 이루게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마음껏 운영해서 예측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예측시스템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모든 내용을 기초로 해서 미래를 내다보는 방식이다. 함에도 미래를 내다보는 방식은 많은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나선다.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지식에서 새로운 개념의 세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2. 미래의 知識세계에서의 예측시스템이라는 것은 캄캄한 밤중과 같은 것이고 그런 것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본다. 이는 미래의 文物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심고 거둠에 있어 그 카오스적인 내용 속에 奧妙함이 어려 있다고 본다. 과거의 것을 가지고 미래의 것을 내다본다는 것은 완전하지 못한 예측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미래의 세계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未來學者들이 나름대로 많은 내용을 피력하고 있다. 인류가 시작하고 인류가 마치는 그날까지 인간에게 적용되는 변치 않는 진리가 있다. 그 진리는 인간의 경험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지만, 사람의 주관적 눈빛에 의하여 언제든지 상대성으로 보려는 傲慢不遜함의 도전을 받게 된다. 그때마다 진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안타까움을 피력하고 어떤 때는 경고하며 또는 견책을 하게 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지식산업의 발달과는 섞여 변질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야 할 길에 관한 내용을 깊이 볼 줄 아는 사람은 인간의 행복과 축복이 무엇인가를 꿰뚫어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사람은 각기의 개념과 각기의 주관에 따라 나름대로의 論理를 가지고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지식이 있으면 지식이 있는 대로 피력하고 사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쓰든지 그 사람의 눈빛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눈빛은 진리와 동일한 눈빛인지 아니면 비 진리와 동일한 눈빛인지 구별만 있을 뿐이다. 인간의 본질을 가지고 금력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학벌과 그 분야의 권위를 가지고 대중 앞에서 나름대로 군중을 이끌어가려고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각자가 자기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指示打를 치든지, 책망을 하든지, 견책을 하든지, 인도해가든지 리더십을 갖는 것은 자유대한민국 헌법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런 것을 신앙의 자유 안에서의 신념의 자유라고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신념이나 신앙이 시장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억제되어야 할 부분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각자의 논리를 가지고 사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사람이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하고 그의 선생이 되든지 그를 지휘하게 된다든지 하는 위치에 있다면, 아직도 그가 보기에 미몽에 빠져있는 자라면 따끔하게 훈계하여 이끌어 내려고 할 것이다.

4. 그것이 현재 인간들이 살아가는 나름 논리의 훈계요 견책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름 논리가 마음껏 보장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다 인간의 도리를 찾아낸 것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인생은 인간의 도리를 찾기 위한 부단한 방황이 시작된 것이고 방황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求道者라고 말한다. 인간은 진리를 등지고 비 진리를 통해 끊임없는 실패를 갖게 되고, 하여 진리를 찾아가는 행위라고 하는 것이다. 인생실험극장속에 가지가지 인생실험 속으로 들어가서 얻어내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도리를 찾기 위하여, 어떤 길이 인간의 가야 할 도리라고 깨닫게 되는 것은 참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 절대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을 숭배하는 우상을 거부하고 인물숭배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인간되신 것처럼 인간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도리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곧 그 인생실험극장속에서 드디어 찾아낸 구도의 결과, 人間道理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오랜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은 이웃에 대하여 어떤 관계성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실험하여 왔다고 하는 것이다.

5. 마침내 인간은 이웃은 나의 착취의 수단이 아니고 예수님처럼 생명을 주어 이웃의 靈魂肉을 건져내고 건전한 사람을 또 이웃 사랑하는 사랑의 길로 가게 만드는데 있다고 하는 것이다. 생물의 세계를 보면 속고 속이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회가 되어져 있다. 속지 않는 존재만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인간 속에는 수많은 존재들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논리를 倒置하여 인간파괴를 정당화시켜 가고 있다. 인간파괴를 정당화시킨다면 결론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논리가 절대성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는 세상은 커다란 독재자가 사람의 피와 살을 뜯어먹고 사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세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거짓말하는 자를 거짓선지자라고 말하고 그 거짓선지자는 사람의 피와 살을 뜯어먹고 사는 짐승 같은 집단의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인간은 인간답게 살 때에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인간답게 살수 없다는 것에 절대적 절망에 시달리게 된다.

6. 참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주는 자가 필요한 것인데, 그 붙들어주는 자는 신앙을 통해 예수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 예수는 그의 영으로 그 사람을 붙잡아서 일으켜 세워서 인간답게 살게 만드는 훈련을 하게 된다. 예수는 인간에게 예측시스템을 가지고 경고시스템을 가지고 적당히 견책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인간을 길들이는 것이다. 진정으로 예수에게 이런 訓練을 받는 자들은 인간답게 사는 것의 의미를 내용을, 본질을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에게 길들여지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에게 길들임을 받는 자들은 그의 영적인 교통을 통하여 훈계와 견책을 받게 되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된다. 그 배움을 통해 인간을 사랑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아낌없이 던지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예수에게 배운 자만이 살아계신 예수에게 훈련받고 길들여진 자만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실질적 관계로서의 信仰生活을 그를 참인간으로 만들어지도록 훈련시켜주는 시스템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7. 그 속에서 길들여지고 만들어진 자들은 비로소 크리스찬 곧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고 虛構的 예수 神話的 예수 小說的 예수 宗敎的 예수의 틀 안에서 인간의 意識化 作用으로 가르치는 목사의 어떤 틀을 붕어빵 식으로 찍혀 나오는 것은 예수의 제자라고 할 수가 없다. 그것을 사이비라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어도 그들은 예수에게 배운 자들이 아니고, 예수 이름을 빙자한 목사들에게 배운 자들이다. 그들은 성령의 훈련을 받는 자들이 아니고 그들은 인간의 훈련을 받는 자들이다. 인간의 훈련을 받는 자들은 인물숭배에 깊이 빠져든다. 때문에 그들은 김대중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위치에 두게 된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을 김대중 式으로 해석하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 식으로 해석하면, 김정일만을 사랑하고 북한주민을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 이웃사랑이라고 하는 논리가 되고 그런 논리를 개발해 주는 것이다. 그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의 사랑을 김정일만을 위한 사랑으로 만들어 버렸다.

8. 김정일이가 350만 명을 굶어 죽였다. 북한주민들을 닭장 속에 가두고 있다. 혹독하게 인권을 탄압하며 食糧配給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김정일의 그런 탐욕극대화 하는 것에 대하여 아주 심각하게 책망하고 투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김정일의 행동을 미화시켜주는 것이, 덮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논리개발을 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이 거짓된 논리에 빠져있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하여 인간을 직접 통제하는, 훈련하는 참 인간답게 사는 것을 훈련시키는 것에 관하여 언제까지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을 것인가? 귀 막고 눈 막고 김대중만의 말만을 따를 것인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위기는 성령의 智慧統制를 받는 것이냐 인간의 통제를 받는 것이냐를 따라서 발생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이제 김대중을 극복해야 김정일을 이길 수 있다고 본다. 全 한국교회에 이 피 터지는 싸움이 마치 종교개혁처럼 분리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왔다고 본다.

9. 성령의 통제를 받는 기독인과 김대중의 눈빛으로 김정일이를 사랑하는 세력과의 分離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본다. 태초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그 빛이 드디어 어둠을 드러낸 것이다. 빛과 어둠은 영원히 合해질 수 없는 것처럼 김대중의 논리를 따르는 것과는 영원히 합해질 수 없는 원리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 교회는 생각해야 한다. 김대중의 논리를 따라서 북한주민을 더 혹독한 노예로 만들 것인가 또는 수령 독재의 확산으로 남한의 4,800만 국민을 김정일의 노예가 되게 할 것인가. 이제 한국 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통제를 거부하지 말기를 바란다. 성령께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 성령에게 훈련받는 자들이 모두 일어나 김대중의 논리를 거짓되다고 정죄하고 나서야 할 것이다. 그것은 김정일이의 수령독재의 악마성, 곧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온 세상에 들춰내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성령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모름지기 성령을 받는 모든 자들은 성령의 소리를 듣고 눈을 떠야 한다. 속히 김대중의 詐術에서 깨어나기를 권면한다. 성령의 훈계와 견책을 달게 받는 사람일수록 인간답게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10. [훈계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자기 영혼을 만드는 것이고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곧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라고 본다. 짐승의 자리에서 악마성을 벗고, 하나님의 형상 곧 참 인간의 모습 인간답게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것이 곧 지식을 얻는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것은 곧 문명을 사용하는 노하우를 의미한다고 본다. 文明을 흉기로 사용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2012년에 연합사를 해체하기로 정식으로 계약을 하였다. 이는 날벼락 같은 짓을 한 것이다. 이는 곧 김정일의 핵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위협하는 흉기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짓을 서슴없이 하는 것은 정권이 교체되어도 결국은 김정일의 핵 공갈 아래 자유대한민국을 두고자 함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짓을 하는 것은 그 만큼 우파에게 전략적 대응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진정으로 인간이 무기를 사용하면 그것은 凶器가 아니라, 正當防禦의 武器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지식이라는 말이다. 이런 지식이 가득한 우리가 되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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